흔히들 호퍼 작품의 중심 주제로 기다림과 고독을 꼽지만 내게 그것은 그런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깃들지 못함이라는인간 존재의 비참함이다. 자연으로부터 단절되고 문명이라는 공간에 유폐된 인간은 과르디니의 표현대로 뿌리내릴 곳 없이 쉼 없이 부유할뿐이다. 카페, 술집, 극장, 휴양지, 호텔 객실, 주유소처럼 모두 언젠가는 떠나야만 하는, 결코 주인일 수 없는 공간에 계류할 뿐인 호퍼의 그림속 주인공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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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할 이유

갈릴레오 재판은 가톨릭교회가 2000년, 대희년大年을 기해 인류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한 교회의 과오다. 누군가 이 재판을 두둔한다면분명 맹목적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비판하겠지만 과르디니는 재판의 다른 측면을 바라보길 제안한다. 그는 재판의 부정적 측면을 간과하지않되, 왜 교회가 갈릴레오에 대해 그토록 완고한 태도로 일관했는지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실제로 교회가 보인 반응은 단지 교리와의 논리적 충돌 때문이라 보기엔 과도하게 폭력적이고 신경질적이었다. 과르디니는 기존 세계관의 붕괴 이후 벌어질, 인간에게 찾아올 끝을 알 수 없는 허무와 상실감을 교회가 무의식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니, 인류의 무의식이 교회를 통해 발현된 것이라 보는편이 더 낫겠다.
창조의 중심에 땅이 있고 스스로를 그 동심원 한가운데의 존재라고여겼던 인간에게 돌연 지구가 다른 별들과 다를 바 없이 태양을 중심이로 돌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우주관의 변화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상실을 초래할 것이라 예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심원 한가운데의 인간은 땅에 대한 권리와 함께 그만큼의 책임도 느꼈지만, 이제부터 그에게 땅은 있는 대로 쥐어짜고 빼앗아도 상관없는 대상이자 자원이고 그 자신도 창조의 우연적 존재일 따름이다. 기원도 목적도 없이 부유하는 그저 소비하고 생존하는 존재 말이다.
사실 모든 것을 어떤 물리적 현상으로 설명하고 환원할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단지 신화나 낭만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존재할 이유, 삶의 가치와 같은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더 근본적인 것들의 상실일 테다. 기계문명의 도래는 자신만만히 ‘인간의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인간은 실상 호퍼의 군상처럼 더 고독하고 허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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