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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치유하는 부엌 - 삶의 허기를 채우는 평범한 식탁 위 따뜻한 심리학
고명한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21년 6월
평점 :
나를 치유하는 부엌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다양한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에세이이다. 저자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고 있는 글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자의 이야기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라거나 그 음식으로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통해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기도 하고 스며들듯 위안을 받게 되기도 하는 치유의 글이 되기도 한다.
저자의 어린시절 소풍때만 먹을 수 있는 김밥을 기대했지만 그와달리 엄마는 삼단도시락을 싸주었고, 친구들과 다른 밥이 부끄러워 끝내 도시락을 꺼내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는 이야기에 나 역시 친구들과는 다르지만 김밥이 아니라 달걀로 밥을 말아 도시락을 싸갖고 갔던 것이 생각났다. 친구가 말을 꺼내야 떠올랐으니 어린적 나는 '차이'라는 것에 꽤 둔감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어쨌든. 저자는 엄마의 정성이 더 들어간 도시락을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꺼내지 못했지만, 저자의 아들은 일률적인 샌드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볶음밥을 싸주니 더 좋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획일성과 자발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자발적 행위를 통해 세상에 무기력하게 편입되기보다 스스로 세상을 포용한다"(152)고 말한다.
나의 추억은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을까. 성인이 되어 우연히 듣게 되었지만 내 친구는 내가 꽤 부잣집 아이인 줄 알았다 그랬고, 어머니는 그때 김밥김을 살 돈이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달걀 한판을 외상으로 빌려 와 밥을 싸줬다고 하셨다. 사실 나는 친구가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아무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친구들의 까만 밥과는 달리 노란색으로 돌돌 말아진 밥이 꽤 이뻤다는 기억밖에는.
이 책의 이야기들은 이처럼 저자의 이야기속에서 나의 추억을 꺼내어보게 되기도 하고,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마음들에 대해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고마움과 뒤늦은 후회와 감동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육개장을 보는 순간 허기를 느꼈던 그 죄책감 같은 감정은 오랫동안 그 음식을 멀리하게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장례식장은 삶과 죽음이 명확히 갈린 곳이 아니라 무기력과 열정, 상실감과 충만함 등 모든 상반된 것들이 공존하며 서로를 어루만지는 자리"(27)임을 알게 되고, 육개장은 오히려 아버지를 추억하며 먹게 되었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나 역시 그러한 감정들과 치유의 시간들을 가져보게 된다.
처음 책을 읽을 때 순차적으로 읽었는데 이후에 온갖 감정들로 지쳐갈 때 책을 펼쳐놓고 목차를 보며 저자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고 나는 또한 나만의 위로가 되는 음식을 만들어 먹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물론 저자가 '분노'라고 써놓은 초콜릿 이야기와 달리 나는 '분노'의 감정을 떠올리게 되었을 때 저자가 '승화'라고 써놓은 힘겨웠던 여름날을 위한 제철 밥상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 이건 아마도 말도 안되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는 내 정당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서일수도 있고, 쉬는 날 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더구나 그것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직장상사나 누군가의 일방적인 통보에 의해 망가지게 되는 것을 더 힘겨워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것이든 저것이든 저자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여러 감정들을 느끼고 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게 될 것 같은 이 느낌들이 좋다.
내가 한 음식은 너무 심심하고 밍밍하다며 그닥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를 위해 주말이면 어머니 입맛에 맞게 조금은 짜고 달게 부식을 만들곤한다. 오늘도 역시 달달한 떡볶이를 만들었더니 평소 점심은 잘 안드시는 어머니가 평소보다 많은 양을 드시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신장기능이 떨어져 언제 기능이 멈추게 될지 모르고 그때는 어머니의 임종을 준비해야 되겠지만 주치의 선생님 말씀처럼 약으로 조절하고 있으니 굳이 음식을 너무 가리지 말고 좋아하시는 것 드시게 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짜고 달달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것이 그리 마음을 무겁게 하지는 않는다.
'나를 치유하는 부엌'은 그렇게 내 마음을 도닥여주는 위안을 주고 있는 책이다.
늘 반복되며 자로 잰 듯 변함없이 흘러가는 것 같은 일상도 실제로는 어느 하루도 같은 모습인 적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과 환경의 변화, 그리고 매 순간 나의 감정에 따라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그 모든 변화를 즐기며 받아들이고 다듬어감으로써 우리는 예쁘게 발효된 빵 반죽을 오븐에 넣어 맛있게 굽듯이 인생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다구워진 빵을 꺼내기 직전의 설렘처럼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해 ‘불안‘이 아닌 ‘기대‘를 안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