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네시
수잔나 클라크 지음, 김해온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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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이름 피라네시는 18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에서 따온 듯하다. 그는 16점으로 구성된 '감옥'을 판화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지하에 있는 이 감옥들을 보면 계단과 기계장치가 두드러진다. 감옥이라서 그런지 좀 무시무시해 보이는 공간이다"(354)

책을 읽기 전부터 궁금했던 '피라네시'라는 이름의 의미였는데 책의 말미에 옮긴이의 설명이 있다. 아마도 피라네시의 의미를 먼저 알았다면 이 소설에서 말하는 '세계'를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피라네시는 '집'에 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집'이 아니라 신의 존재라거나 살아있는 유기체같은 느낌의 '집'을 의미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집은 신전처럼 조각상이 세워져있고 기둥과 홀이 있으며 그 공간 구성을 알 수 없을만큼 복잡한 미로로 구성되어있다. 세상 종말의 느낌처럼 살아있는 것은 피라네시와 죽어서 뼈가 되어버린 13명과 나머지 사람, 그리고 피라네시와 나머지 사람을 위협하는 악의 존재 16이 있다. 물론 16의 존재는 실존으로 마주친 것이 아니라 그저 말로만 들었을뿐이지만.

또한 집이라 불리는 신전은 때로 홍수로 물이 넘쳐나기도 하며 바닥에는 바닷물이 흐르고 있어서 해조나 물고기로 식량을 조달한다. 

피라네시는 날마다 기록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날짜가 아니라 알바트로스가 미로로 들어온 날부터 시작하여 첫째날, 둘째날...식으로 기록이 넘어가고 있어서 도무지 어느 시대쯤의 이야기인지 짐작하기도 힘들다. 


이렇게 피라네시의 이야기는 문명이 있었으나 먼 미래의 어느 날 바다가 육지를 뒤덮고 세상은 그렇게 달라져있다...는 전제로 시작되는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며 글을 읽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 흐름으로 꺾여버린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끊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버릴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제로 피곤하지 않았다면 밤을 새며 읽었겠지만 졸면서 읽으려니 내용이 뒤섞이는 느낌이라 아침에 일어나면서 바로 책을 펼쳐들었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전체 흐름이 파악되는 구조지만 그걸 깨닫게 되는 순간까지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던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피라네시라는 이름의 유래를 알게 되는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는다면 미로의 구조는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며 이 소설은 훨씬 더 가독성 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굳이 말하자면 재난 영화가 아니라 한편의 스릴러를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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