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권성우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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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라는 영화제목은 들어봤지만 본적은 없다. 사실 그 제목의 뜻이 전해주는 느낌때문에, 아니 어쩌면 한때 시대를 누리던 홍콩 느와르라거나 지고지순한 사랑을 말하는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그렇다는 뜻이다) 천장지구 같은 영화만을 접했었던지라 비정성시도 어쩌면 비극적 로맨스 정도의 영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대만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 2.28 혁명속에서 한가족이 겪는 비극을 그려낸 것이고 제주의 4.3에 비유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비정성시를 인생영화라 말하며 김석범님의 화산도를 평론하고 서경식님의 에세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까이는 허수경시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까지.

 

시작은 조금 가볍게 문학가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긴장하며 읽게 되는 비평문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의식의 흐름을 기록한 듯한, 때로는 근래 우리 문학계에 있었던 역사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어 어쩌면 하나의 기록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재일한인문학인의 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 같은 화산도를 쓰신 김석범님에 대한 이야기는 자꾸만 그 대하소설을 읽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서경식님의 에세이들은 나 역시 너무 좋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서경식님이나 이 책의 저자인 권성우님처럼 책장속의 낡은 책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지는 못했기에 단순히 '좋았었다'라는 느낌말고는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없다. 최근에 서경식님의 여행기행문을 구입해놓고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했는데 괜한 조급함이 생긴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넘쳐나지만 그중에서도 반드시 빠른시일내에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고 새삼 다시 새겨본다.

 

문학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삶과 사람에 대해, 재일조선인들의 아픔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으며 좀처럼 언급하기를 꺼린다는 느낌이 들었었던 신경숙 작가의 표절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고 뼈아픈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 산문집을 읽는 것은 좋았지만 문학평론가인 저자의 글을 읽고 뭐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좋은 책을 읽는다는 건 타자의 인생과 지혜를 연료 삼아 그만큼 더 성숙하고 지혜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단지 성숙이나 지혜로움 때문만은 아니다. 그 어떤 쾌락도 좋은 책과 만나는 쾌락에 비길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읽기는 무엇보다 쾌락이다"(92)

그러니 나도 다른 모든 것을 다 잊고 지금은 그저 책읽기의 쾌락을 즐겨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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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한 달 살기 - 인생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을 때
조숙 지음 / 문예바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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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다. 아니, 사실 혼자 다닐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나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겨우 서울에서 집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혼자 짐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가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짐분실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배가 고파 죽겠는데도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그냥 굶어버리는 것을 선택하는 나로서는 혼자의 여행이라는 것이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여는 말에서 외롭고 두렵기 때문에 혼자 여행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행은 머무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을 확장시키는 경험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한살살기,라는 것이 이제는 좀 흔한 여행의 형태처럼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 역시 그렇기에 그저 부럽다,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여행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에만 빠져있었는데 이 책은 라오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전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다. 관광이 아니라 머무는 시간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이기도 하다. 사람들, 화폐, 모계사회, 나라꽃인 독잠파 등 라오스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아프면 그 어떤 부위에든 파스를 붙인다거나 그저 멋있다는 이유로 체 게바라의 사진을 붙여놓는다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리고 첫날부터 시작하여 라오스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술술 나오기 시작한다. 심심한것에 익숙해져야 라오스 살이가 편해진다는 이야기를 할만큼 라오스는 느릿느릿 흘러간다. 익히 알고 있듯이 탁발스님에 대한 공양에 지극정성이고 동네 꼬마들은 해맑게 미소를 전해준다. 이런 풍경만으로도 라오스는 천천히 머물며 느릿느릿 여행을 하기에 딱 맞춤인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를 찾아간 이야기도 나오는데 저자 역시 라오스에 학교 세우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수줍게 자신의 이름으로 지어지는 학교가 세워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저자이 은근한 자랑에는 슬핏 웃음짓게 되기도 한다.

정이 넘치고 아름답고 느릿느릿 흘러가는 라오스에도 배신자로 찍힌 몽족에 대한 차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베트남 전쟁의 여파로 아직도 어딘가에 묻혀있는 포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도 있다. 포탄으로 만든 장식물을 신기하고 아름답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몇몇개의 장에서 큐알코드를 볼 수 있고 연결하면 동영상이 나오고 저자의 목소리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종이로 된 책의 한계를 동영상으로 보충하는 것이라 사진과는 또 다른, 라오스의 반짝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아마추어가 찍은 영상의 모습은 조금 아쉽다. 게다가 가장 궁금했던 라오스의 결혼식 모습은 비공개영상이라 볼수가 없는 것은 좀 많이 아쉽다.물론 가장 아쉬운 것은 라오스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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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위한 인문학 -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노은주.임형남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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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온도는 무엇이고, 삶의 온도는 무엇일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멀리서부터 우리를 맞이하던 밥 짓는 연기처럼, 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처럼, 가꾸지 않아도 편안한 마당처럼, 가족들이 아랫목에 발을 맞대고 하릴없이 떠드는 말의 온기처럼,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모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98)

 

점점 더 깊이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일단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집을 위한 인문학이라니. 평소같았으면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집을 지어 이십여년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 우리 몸도 나이들면 자꾸 어딘가 쑤시고 아프기 시작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집도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조상들의 옛집은 그 배 이상을, 아니 백년을 넘게 살아도 끄떡없이 잘 버티어주었는데 왜 기술이 더 발전하고 있다는 현대의 집은 채 백년을 채우기는 커녕 그 반도 못채우고 재건축을 해야하는 걸까.

 

이 책을 다 읽어갈즈음 한옥의 마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 그 이전에 '한옥'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 2장에서 먼저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 표현 자체도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딱히 한옥을 대체할 수 있는 말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보편적으로 한옥이라면 우리의 전통가옥을 의미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면 그 개념을 확장해 사용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아무튼 그 한옥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다시 나온다. 흔히 방의 구조나 원하는 인테리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지만 대부분 마당에 대해서는 그저 마당의 존재, 정도만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나무가 있고 기왕이면 꽃이 있으면 더 좋고 이쁜 의자도 있으면 좋고... 사실 나 역시 초록초록함이 있기만 하다면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옛 가옥의 마당에는 마사토가 깔려있고 그 마당에 햇빛이 비추면 빛이 반사되어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천장까지 빛이 도달하게된다고 한다. 거기에 마당은 지안의 온도와 습도까지 조절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한 마당인가!

 

"건축에서 선이란 책임이 따르는 행동이다. 단순히 종이에 가지런히 흔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전에 그은 선과 지금 긋는 선이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점과 점, 선과 선은 일정한 간격을 가져야 한다. 너무 가까워져도 안 되고 너무 멀어져도 안 된다. 일정해야 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177)

 

그러고보니 이미 지나쳐간 말들의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그래서 집을 위한 인문학인걸까?

사실 집 화장실 타일이 무너져내리고 있어서 견적을 내는데 옛날에는 그렇게 설렁설렁 집을 지어서 시멘트가 마르기도 전에 땜빵처럼 타일을 붙여버리고 환풍기도 없이 잘못지은것 같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세면기를 새로 할 때도 변기교체 후 하수구 냄새가 나기 시작해 공사를 잘못한거 아니냐 물었을때도 애초에 집을 잘못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십여년전에는 - 물론 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일정 규모 이하의 개인 주택은 건축사가 아니어도 설계하고 집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하니...

 

집 앞에 공사하는 모습을 보니 금세 뚝딱 지을 것 같은 집을 꽤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있다. 처음엔 너무 게으르게 짓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기초를 튼튼하게, 기초가 단단히 자리를 잡은 후 기둥을 올리고.. 그렇게 천천히 든든한 집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기본이 아닐까. 그리고난 후 어떤 가족이 살게 될지, 그 집이 주위의 풍경과는 어울리는지 같은 요청사항이 그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 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 책에는 그렇게 만들어가게 된 집에 얽힌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담겨있고 기존의 존재해있는 집에 담겨있는 역사가 이야기처럼 담겨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집을 위한 인문학이라는 건 어쩌면 그저 비바람을 가리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편히 쉴 수 있게 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건축은 책임이 따르며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는 인문학적인 사상이 담겨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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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 미술 산책 - 그 그림을 따라
길정현 지음 / 제이앤제이제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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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보는 순간, 바로 이 책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프로방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에 마음이 더 쏠렸다. 몇년 전 여름, 김화영 선생님의 여름의 묘약이라는 책을 읽으며 프로방스에 대한 로망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아니 더 이전에 엑상프로방스에 갔었던 친구가 전해준 그 지역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기회만 된다면 언젠가는 꼭 프로방스에 가는 꿈을 이룰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은 프로방스 지역을 여행하며 그곳에서 생활하며 작품활동을 했던 화가들, 고흐, 세잔, 모네, 샤갈, 로트렉, 피카소... 이름만 대면 모두 한번쯤은 찾아봤을 화가들과 그 작품들에 대한 에피소드와 그들이 직접 살면서 그림 속에 담았던 풍경을 여행하고 느낀 것을 담아내고 있다. 처음엔 더 많은 미술작품과 도판을 기대하고 미술관에 대한 이야기만을 기대했어서 그런지 조금은 가벼운 여행에세이처럼만 느껴졌는데 글을 읽어갈수록 화가와 작품의 발자취를 찾아 느긋하게 풍경을 즐기고 미술관 관람을 하며 소소한 에피소드를 전하는 이야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미술서적,으로 기대를 했다가 여행에세이라고 생각을 하니 기대이상이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다 읽고 어떤 쪽으로든 다 괜찮다,라는 생각이다.

 

프로방스와 주변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여행을 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색다른 소품과 까페의 풍경, 이색적으로 느껴지는 골목들과 성당 회당의 모습들이 담긴 사진은 또 다른 볼거리를 주고 있어서 한참동안은 사진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미술산책뿐 아니라 글의 뒷부분에는 부록처럼 저자가 전해주는 와인이나 숙소, 음식, 기념품 등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던 것은 '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고양이 열전,이라고 해서 뭔가 궁금했는데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그려넣은 고양이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고흐는 모작이나 연습용이 아닌 자신의 작품 도비니의 정원에 유일하게 고양이를 그려넣었는데 그마저도 덧칠해 지워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니...

 

저자는 아비뇽을 여행하면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떠오른다고 해서 그 배경이 이곳인가? 싶었는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뒷골목 아비뇽임을 알면서도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고 했다. 그저 우스운 에피소드처럼 털어놨지만 교황청이 있던 종교적 영광을 누린 아비뇽과 사창가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스페인의 아비뇽이 같은 이름인 것이 그저 우연인가, 라는 말에는 괜히 나 역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세계인이 사랑하는 휴양지, 가난한 화가들이 머물렀던 아뜰리에 세탁선, 대천사 미카엘의 계시로 지어진 몽 생 미셸, 몽마르뜨... 프로방스와 노르망디 해안 그리고 파리의 몽마르뜨에 이르는 여행의 풍경은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전해주었는데 미술산책을 하면서 화가들의 그림과 그 그림 속 실제 풍경을 사진으로 보는 즐거움도 있었고 부담없이 전해지는 저자의 글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읽고나니 더더욱 프로방스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만 하는 것을 뺀다면. 아니, 뭐 이것도 그리 나쁜것은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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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주문을 해야하는데 고민이다. 굿즈를 구매할것인지, 어떤 굿즈를 구매할것인지 고민이라니. 이럴수가!
한동안 굿즈 욕심은 버렸구나, 싶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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