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위한 인문학 -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노은주.임형남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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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온도는 무엇이고, 삶의 온도는 무엇일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멀리서부터 우리를 맞이하던 밥 짓는 연기처럼, 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처럼, 가꾸지 않아도 편안한 마당처럼, 가족들이 아랫목에 발을 맞대고 하릴없이 떠드는 말의 온기처럼,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교감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모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98)

 

점점 더 깊이 생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일단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집을 위한 인문학이라니. 평소같았으면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집을 지어 이십여년이 지나가고 있는 요즘, 우리 몸도 나이들면 자꾸 어딘가 쑤시고 아프기 시작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집도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우리 조상들의 옛집은 그 배 이상을, 아니 백년을 넘게 살아도 끄떡없이 잘 버티어주었는데 왜 기술이 더 발전하고 있다는 현대의 집은 채 백년을 채우기는 커녕 그 반도 못채우고 재건축을 해야하는 걸까.

 

이 책을 다 읽어갈즈음 한옥의 마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 그 이전에 '한옥'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 2장에서 먼저 언급을 하고 있는데 그 표현 자체도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딱히 한옥을 대체할 수 있는 말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보편적으로 한옥이라면 우리의 전통가옥을 의미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면 그 개념을 확장해 사용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아무튼 그 한옥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다시 나온다. 흔히 방의 구조나 원하는 인테리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지만 대부분 마당에 대해서는 그저 마당의 존재, 정도만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나무가 있고 기왕이면 꽃이 있으면 더 좋고 이쁜 의자도 있으면 좋고... 사실 나 역시 초록초록함이 있기만 하다면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옛 가옥의 마당에는 마사토가 깔려있고 그 마당에 햇빛이 비추면 빛이 반사되어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천장까지 빛이 도달하게된다고 한다. 거기에 마당은 지안의 온도와 습도까지 조절해준다고 하니 얼마나 중요한 마당인가!

 

"건축에서 선이란 책임이 따르는 행동이다. 단순히 종이에 가지런히 흔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전에 그은 선과 지금 긋는 선이 어떤 관계를 맺게 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점과 점, 선과 선은 일정한 간격을 가져야 한다. 너무 가까워져도 안 되고 너무 멀어져도 안 된다. 일정해야 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177)

 

그러고보니 이미 지나쳐간 말들의 의미가 더 명확해진다. 그래서 집을 위한 인문학인걸까?

사실 집 화장실 타일이 무너져내리고 있어서 견적을 내는데 옛날에는 그렇게 설렁설렁 집을 지어서 시멘트가 마르기도 전에 땜빵처럼 타일을 붙여버리고 환풍기도 없이 잘못지은것 같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세면기를 새로 할 때도 변기교체 후 하수구 냄새가 나기 시작해 공사를 잘못한거 아니냐 물었을때도 애초에 집을 잘못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십여년전에는 - 물론 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일정 규모 이하의 개인 주택은 건축사가 아니어도 설계하고 집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하니...

 

집 앞에 공사하는 모습을 보니 금세 뚝딱 지을 것 같은 집을 꽤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있다. 처음엔 너무 게으르게 짓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기초를 튼튼하게, 기초가 단단히 자리를 잡은 후 기둥을 올리고.. 그렇게 천천히 든든한 집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기본이 아닐까. 그리고난 후 어떤 가족이 살게 될지, 그 집이 주위의 풍경과는 어울리는지 같은 요청사항이 그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 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 책에는 그렇게 만들어가게 된 집에 얽힌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담겨있고 기존의 존재해있는 집에 담겨있는 역사가 이야기처럼 담겨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집을 위한 인문학이라는 건 어쩌면 그저 비바람을 가리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편히 쉴 수 있게 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건축은 책임이 따르며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위하는 인문학적인 사상이 담겨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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