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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과 신약성서
민희식 지음 / 블루리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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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전 [성서의 뿌리 신약편]이 신약성서 내용의 원전을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둔 신화들에서 근거를 찾았던 것에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이번에는 신약성서가 불교 경전들을 표절했다는 것을 하나하나 불교 경전들에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법화경]이라는 불경에 대해 학술적이며 신앙적 차원에서 해설해주는 내용이다.

 

본서는 [성서의 뿌리]시리즈를 집필하고 나서 [예수와 붓다]라는 책을 집필한 이후 그 둘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출간한 책 같은데 [예수와 붓다]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본서 내용을 근거해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다. 본서에서도 기존의 미트라 신앙, 조로아스터교의 교리가 구약과 신약에 특히 신약의 성립과 카톨릭 성립에 끼친 영향을 재삼 언급하고는 있다. 전작들(성서의 뿌리 시리즈)에서 구체화해 설명한 내용이 그것이었다.

 

다만 본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즈음부터인 기원전 400~300년 즈음부터 불교가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전체에 성행했으며 당시 유럽의 영향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미술이 영향을 받으며 조성된 불상들을 이후 기독교에서 그대로 차용해 예수상과 성모상, 성모자상 등이 불상의 영향을 받다 못해 그대로 표절한 사례들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이전 시기의 유럽 불상들이 유물로 출토되는 현상은 무엇보다 놀랍고 예수가 당시 성행했던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했다.

 

다만 본서에서는 예수의 마지막 말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i, Eli, lama sa-bach-thani'가 불교 진언인 Arya, Arya, Lama samyak sam bodhi를 예수의 제자들이 곡해하고 자기들 들린대로 옮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예수의 불제자 시절의 스승이라며 스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수위의 주장을 하려면 전거를 제시하고 그 전거가 명백히 믿을만한 사료인지부터 검증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했다.

 

본서를 좀더 신뢰하거나 부정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전작인 [성서의 뿌리] 시리즈와 [예수와 붓다] 그리고 다른 저자분의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라는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문제가 있다면 [예수와 붓다]는 도서관에서라도 찾을 수 있지만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는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을 지경으로 절판되었다는 게 난점 같다. 예수의 불교 수행설이랄까 불제자설이 근거가 있다면 어떤 사료에 의해서인지 어떤 고고학적 근거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절실하지 않나 싶다. 그 책의 저자분은 목영일 님으로 서울대 출신이자 뉴욕대 공학박사 출신이며 국방연구소를 거쳐 UC버클리 초빙교수이자, 유네스코 아태지역 에너지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전국과학기술인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분으로 대툥령표창, 국무총리상, 국방과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공학자인 분이다. 그분이 쓰신 책이라 문과적인 창의성보다는 이과적인 사실 근거한 사고를 담은 책이리라는 믿음이 다소 간다. 그래서 구하기 다소 어렵겠지만 나중엔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본서에서는 삼위일체설, 천사와 악마, 천지창조, 종말, (삼일 만에) 부활, 구세주 탄생과 사명(동정녀에서 태어나, 12세에 집을 떠나 30세에 강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12제자를 이끌고 기적을 일으키며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는 미트라교의 신화를 기독교가 차용하고 있다), 선한 목자라는 표현까지 조로아스터교(미트라교) 교리를 기독교와 유대교가 그대로 표절하였다는 내용을 간략히 언급한 후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불교 내용을 표절한 것을 나열하는데 이 책에서 각략히 축약한 도표로만도 28가지의 내용 표절이 있다.

 

-수태고지, 아기예수 경배, 신전에서의 12살 예수, 예수 세례, 광야에서 시험에든 예수, 물 위를 걷는 예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빵과 물고기의 기적, 돌아온 탕아, 가난한 과부의 헌금, 간음한 여인, 산상수훈, 유다와 예수를 저버린 제자들, 고향에서의 푸대접, 평등한 사랑, 좋은 열매 나쁜 열매, 세례자 요한, 말세, 거짓 선지자 출현, 유아학살과 도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진정한 보물,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의식주를 걱정말라, 예수의 변용,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깨어있으리라-

 

이렇게 예수의 일화들과 예수의 가르침, 예수가 든 비유 중 대표적으로 28가지에서 각 불교 경전들이 근거가 되었다며 근거가 되는 불경들을 나열하고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칼 융이나 분석 심리학자들은 모든 신화에는 원형이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겠지만 이미 이전 이야기의 원작자과 이후의 이야기들의 작자 사이에 서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현실을 부정한 채 원형에서만 원인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싶다.

 

이미 예수 시대 이전에 유럽 전역에 불교는 성행했다는 게 유적과 유물로도 밝혀지고 있으며 예수 당시에는 불교가 상식인 유럽과 중동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예수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가 불제자였다는 것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억측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신약성서의 내용들이 불교경전들을 표절했다는 건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만한 지적이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제가 간과하고 넘어간 대목을 다른 님께서 언급해주셔서 첨가하는 내용이다. 기독교의 장로, 집사, 마귀, 천사라는 표현도 불경에서 표절해간 내용이란 것도 본서의 내용 중 하나이다. 기존의 한문 불경이 빨리어 불경의 내용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용한 용어들이기는 하겠지만, 그리스도교 역사 보다도 오래된 불교의 용어들을 아무 꺼리낌없이 표절한 그리스도교의 행태가 어이없기도 하다. 이제는 장로와 집사도 마귀와 천사라는 한자 표현도 천주교와 특히 개신교의 원래 용어인줄 아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하니 이미 언급한 불경을 표절한 내용들까지 보면 이 종교는 표절이 아니고는 성립될 수 없었던 종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반(신약의 근거는 무엇인가)과 후반(법화경 해설)이 명확히 나눠지는 책이니 전반부의 내용은 무신론자든 타종교인이던 비신앙인이던 기독교 신앙인이던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씀드려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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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뿌리 (신약) - 그리스.인도사상과 신약성서
민희식 외 지음 / 블루리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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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는 동지가 지난 직후 1225일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다.

그는 결혼식 때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기적을 행하였으며,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는 성찬 의식 내지는 영성체 의식을 행하였으며, 최후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나무에 매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이게 신약 성서의 복음서 부분 줄거리를 요약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건 그리스부터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에 이르는 지역에 있었던 고대 신들의 공통된 줄거리라고 한다. 구약의 시대 유대인들이 고대의 타민족 신들의 이야기를 참조해 자신들의 이야기로 날조한 것을 [성서의 뿌리 구약편]을 보며 알 수 있었는데, 기독교는 그보다 더해 존재 자체가 사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저작이 본서이기도 하다.

 

미트라 신의 일화와 그리스 신화 중 디오니소스 신화, 이집트 신화들이 짜깁기되어있는 것이 신약의 복음서 내용에 다름 아니었다. 예수의 모든 이야기가 타민족 신들의 신화 내용에서 도용한 것이고 예수 생일이 1225일이 아니라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고대 미트라 신을 위시한 일본의 아마테라스 여신까지 태양을 근거한 전 세계 모든 신들의 탄생일이 1225일로 기념된다고 한다. 1222일이 동지인데 동지까지 해가 짧아져서 상징적으로 태양이 죽는 것을 상징하고, 1225일쯤부터 해가 다시 높아지기 시작해서 태양이 다시 태어나는 것을 상징하는 날이 되기에, 태양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신들의 생일이 1225일이라고 한다. 예수 사후 몇백 년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생일은 16일로 기념되다가 예수가 신격화되기 시작하며 미트라 신의 신화 내용을 도용하여 태양신의 생일까지 뺏어오게 되어 크리스마스가 1225일이 된 것이다. (아직도 아르메니아 정교회에서는 16일을 예수 탄신일로 기념하고 있다) 미트라 신의 영향은 그 밖에도 적지 않아서 현재도 카톨릭 사제인 교황이 의식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관 같은 모자를 미트라 관이라 부른다. 교황을 Papa, Pape, Pope라고 부르는 것도 미트라 사제를 부르던 호칭에서 유례했다고 하니 기독교의 빼앗고 베끼는 신공 하나는 초절정 고수의 풍격이 느껴지는 것 같다.

 

예수는 부활도 하지 않았다는 게 논리적 사고를 떠나서 사료적으로 복음서가 쓰여지고도 초창기에는 예수 부활의 기록이 없었던 것으로 증명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부활 대목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며 기록된 바대로라고 주장하는데 그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되는 해당 구절을 구약에서 동정녀 내지는 처녀로 한글 번역을 하는 걸 원문으로 찾아보면 처녀가 아닌 젊은 여자가 임신한다는 내용으로 쓰여있어서 성 경험이 없는 처녀(동정녀)를 뜻하는 원어와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한마디로 동정녀에게서 (구약 당시의 기준에서) 미래의 구세주가 태어난다고 하는 기록적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윗의 씨에서 구세주가 난다는 내용도 구약에는 없으며 구약에서는 다윗 자체를 구세주(기름부음 받은 자)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다윗의 씨에서 구세주가 난다고 억지를 부린다 해도 성령 잉태되었다는 예수가 요셉의 계보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기 크리스천 시대에는 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아서 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인간이라고 받아들이던 아리우스파와 삼위일체설을 주장하는 아타나시우스파 중에 왕권의 온전한 강화를 추구하던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종교 중 하나로 공인한 이후) 3251차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투표로 아리우스파를 제거하고 예수를 신으로 선언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성서 편찬이 시작되어 예수의 인성을 보여주는 경전들은 외경과 위경으로 몰려 대부분 소각해 버리고 신약 성서를 첨삭하고 변개해 지정했으며 그 외의 경전들은 지금 일부만 남아있다.

 

이 신약의 첨삭과 변개는 대대적으로 일어나 히브리 성서와 랍비들의 문헌, 타 종교의 신화들을 짜깁기해 예수의 복음서와 그 외 신약 성서의 내용을 만든 것이다. 애초에도 처음 쓰여질 때부터 이런 짜깁기로 완성된 것이 신약이라는 것이다. 마태는 특히나 소설가적인 창의성과 표절가로서의 재능도 뛰어나 그가 날조한 대목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산상수훈과 예수의 계보까지 예수의 부활에 이르기까지 날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비교종교학자 등 전문학자들은 기독교를 뻐꾸기 종교라 부른다고 하는데 뻐꾸기가 다른 종의 새의 둥지에 알을 몰래 낳고 가면 그 알에서 부화한 뻐꾸기 새끼가 숙주가 되는 새의 알과 다른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모두 몰아내서 떨어뜨려 죽여버린 후 먹이를 독점하는 생태를 빗대어 기독교를 비판하는 말이다.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해 타종교의 신화들을 훔쳤고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해 요셉의 계보도 조작했으며 (그 계보는 구약의 기록과 맞지 않는 것은 물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상충한다) 산상수훈부터 예수의 가르침 전반이 기존 유대교의 기록들과 탈무드를 변개한 내용일 뿐이다. 신약의 내용들 전반인 서간문들에서의 구약 인용도,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이 난무하고 있다고 한다. 오로지 예수를 구세주로 만들기 위해 기존 히브리 성서의 내용과 탈무드 등 히브리의 지혜를 변조해서 날조하고 있다고 하는데 유대교 랍비들은 그래서 유대교의 지혜를 도둑 맞았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무엇보다 다윗 왕과 바사의 고레스(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를 구세주로 칭송하는 내용들을, 교묘히 편집하고 조작해 예수에게 대입하며 예수를 신격화하고 있고, 유일신의 독생자를 참칭하고 있어서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평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성모 마리아도 성령 잉태했다는 설을 말도 안 되게 보고 있는데 같은 원류인 유대교, 이슬람 모두에서 한결같이 말하는 바는 여호와 신에게 아들을 따로 낳을 이유도 낳을 필요도 없으며 유일신이 굳이 성령 잉태를 왜 하게 하겠냐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예수 시대에도 예수가 혼외정사로 태어났다는 것은 상식이었으며, 그로 인해 예수의 평판이 좋지 않았다는 건 신약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빌라도가 예수를 살리려 도둑놈과 예수 중 누구를 살려주랴하는 물음에 유대인들은 모두 예수가 아닌 도둑놈을 살려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예수에 대한 평은 좋지 않았다. 저자들은 예수 시대에 예수가 보였다는 기적들이 실제 했다면 당시 로마나 이집트, 근동 여러 나라에 기록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며 성서의 주장을 근거 없다고 한다. 또한 예수가 탄생한 당시의 예수 탄생 시 유아 살해 등과 그로 인한 예수의 이동 경로 등이 마태와 누가 두 기록에서 모두 다르며 마태만이 유일하게 예수 탄생 직후의 헤롯 왕의 유아 살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누가와 마태 두 기록에서의 예수 탄생 시기는 (당시 역사 문헌들을 근거하면) 12년의 차이가 난다. 예수 사후 그리 긴 세월이 아닌 초창기에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신앙하고 기록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예수의 탄생 시기가 다른 것이다. 누가는 예수 탄생 직후 헤롯왕의 유아 살해를 기록하고 있지도 않고 누가복음에서는 헤롯왕 시절에 예수가 태어난 것도 아니다. 역사 문헌상으로는 헤롯왕 시절에는 유대인을 위한 제도들이 많았으며 오히려 유대인들의 눈치를 많이 보던 왕이었다고 한다. 또한 동방박사 이야기도 마태와 누가 중 한 사람은 기록하고 다른 한 사람의 기록에는 등장하지도 않고 있다. 그리 방대한 살육이 있었고 예수의 부모가 그를 피해 피신할 정도의 중요한 내용이었는데, 또 동방박사 이야기는 예수의 특별함을 지지하는 내용인데 기록자 중 한 명은 왜 기록하지 않았을까, 왜 기록이 다를까 하는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본서를 보면 마리아의 성령 잉태, 예수의 출생, 출생 이후의 기록, 공생활 중의 기록, 사후 부활의 기록 등 무엇 하나 날조가 아닌 것이 없으며 예수가 과연 실존했는지도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 했더라도 문맹률이 높고 지역 간 이동에 한계가 크던 (문맹이자 지역적 문화적 한계를 안고 있는) 당시 사람들을 통제하고 홀리기 위해 날조한 내용이 더 많다는 감상이 인다. 이런 대중 통제의 의도는 초기에는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기독교가 공인 된 이후에는 왕권 강화뿐 아니라 교황과 사제들의 권한 강화를 위해 더해졌으며, 시대를 거쳐 대중 통제의 효과를 실감하던 위정자들의 의도와 목적을 통해 기독교는 확산된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학자들이 종교학과 역사학과 고고학, 인류학 등 총체적인 연구와 추적을 할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이런 막가파식 종교의 횡행이 막을 내리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이 시대에 상식을 가진 누가 성령 잉태를 믿을까, 신의 화현과 신의 아들에 등장과 재림을 믿을까 싶지만, 아직도 인간은 미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한 혹세무민과 범죄 행각들은 그쳐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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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뿌리 (구약) - 오리엔트 문명과 구약성서
민희식.이진우.이원일 지음 / 블루리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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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서 성격이 어떤 책인지 다소의 정보는 지니고 독서를 시작했는데도 저작의 서술 성향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다 읽고 나서 떠올랐는데 이미 과거에 한 차례 읽어본 책이었다. 그런데도 내용의 90%가 기억에 없어서 독서를 마치기 전까지는 처음 읽는 책인 줄 알았다. 어쨌건 기억나지 않은 내용이라 처음 읽은 것과 다름없다. 저자의 서술 성향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는 이유는, 성서 그 중 구약을 비판하는 조의 책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비판을 넘어 비아냥과 조롱에 가까운 서술을 하고 있어서다. 저자가 기독교도와 기독교의 신에게 감정이 다소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저자가 창세기, 출애굽기부터 시작해 모세5경 전체와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 모두를 비판한 것은 학자적인 연구의 결과를 근거로 한 것이라 당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이 도를 지나쳤다고 생각되었다. 여호와를 흡혈귀라고 한다거나 마귀에 다름없다고 표현한 대목을 보고는 도대체 이 책에 어떻게 장로교 목사들의 추천평이 있는 건지 의아스럽기도 했다. 해외 성서 연구가들이나 고고학자와 문화인류학자의 평이 좋은 것은 이 저작의 학술적인 근거들이 탄탄하기에 그렇다고 이해는 하지만 목사가 추천평을 한다는 건 이해가 쉽지 않다.

 

저자는 성서에서 케루빔은 이교도의 신들을 유입한 결과이고 여호와가 하나님의 회중에 나서서 재판한다는 대목을 히브리어 성서와 공동 번역 성서를 동원해 다신교적 해석을 내보이며 당시 가나안과 근동의 여러신들 중에서 여호와를 내세우기 위한 서술이었다는 대목도 이해는 가지만 저자가 그 전후로 여호와를 비아냥 거리는 대목들은 개인적인 감정이 다소 있어 보이기도 했다.

 

사사기 11:30~31 민수기 31:17~41 레위기 27:28~29 의 내용들을 근거로 또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했다가 철회한 대목까지 포함해 여호와가 (인간의 생명을 제물로 받는) 인신공희의 신이었다는 대목은 구약을 읽으며 몇몇 대목에서는 나 역시 문제의식을 느끼기도 했고 어느 대목에서는 문제의식 없이 넘기기도 했었다. 저자의 표현은 과격하지만 아주 근거 없는 비판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거룩한 진멸이라는 대목은 성경을 읽으며 가장 문제적인 대목이라고 생각되던 부분이기도 했어서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공감이 갔다. 여호와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은 공격해서 성노예로 삼을 남자 경험이 없는 어린 여자만 남겨두고 그 외의 남자와 여자는 남녀노소 할 것 모조리 죽이는 것을 저자가 비판하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성경에 보면 그리 살려둔 성노예들 중에도 여호와에게 바치는 여자가 30명 이상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인신공희의 제물이 되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런 지시를 했다는 여호와는 사탄이나 마귀와 다름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호와가 만물의 창조자라기보다 유대민족의 민족신이기만 했다는 데는 더더군다나 전적으로 공감이 과거부터 갔던 바이다.

 

저자는 여호와라는 신이 이집트의 아톤 신과 조로아스터교의 신에 대한 상을 빌어 완성된 신의 상이라는 것이 최종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그 결론에 이르기 위해 모세5경에서부터 예언서까지 모든 구약 성서가 타민족들, 타국가들의 신화와 전승을 짜집기해 만들어졌다는 걸 사료적이고 고고학적인 근거들을 바탕으로 증거하고 있다. 사실 나라는 한 사람이 자신의 지적 한계상에서도 구약과 신약은 비판할 여지가 많았는데 학자가 작심하고 성경을 비판하니 학문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논리적으로도 온전한 비판서가 나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성궤만 하더라고 고고학적 유물 발굴로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귀족들과 왕가의 궤를 유대인들이 그대로 표절한데다가 베낀 주제에도 더 조악한 모조품을 만든 거란 걸 본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고고학적 발굴로는 성서의 근본적인 인물들과 역사들이 하나 같이 위작이며 조작인 것이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에 의해서도 드러나 있다. 유대인들이 장정만 60만 명, 여자와 아이까지 포함하면 20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가 이집트에 거주했거나 탈출했다는 사료적 근거도 고고학적 유물도 흔적도 없다는 게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이스라엘 랍비도 고고학자도 역사학자도 심지어 이스라엘 교육부 장관까지도 성서는 민족 설화집이며 역사서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있고 역사적 사실과 고고학적 근거에 입각한 진정한 이스라엘 역사서를 다시 써야 한다고 나서는데 기독교 신앙인들만이 모든 성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는 현실이 쉽사리 수긍이 가지 않기도 했다.

 

본서를 읽어보면 그간 성서는 신화라던 주장들이 이 시대까지 보편적 지식이 되지 않는 게 의아해질 지경이다. 홀린 사람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일독이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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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07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희식 선생이 저자 가운데 한 명이네요. 깜짝 놀랐습니다. ^^

이하라 2023-09-07 20:30   좋아요 1 | URL
제 기억으로는 저자분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라 어떤 저작들이 있는지 잘 모르는데 유명하신 분인가 보군요.^^

yamoo 2023-09-08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성경 비판서라서 땡기는데 거기다가 민희식 선생이 저자로 있으니 구매할 가치가 충분한 책인듯합니다. 좋은 책 리뷰 갑사합니다!!ㅎㅎ

이하라 2023-09-08 11:16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을 소개해 드리게 된 듯해서 저도 기분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의미 있는 독서 되세요.^^

서니데이 2023-09-09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3-09-09 09:5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즐거운 주말 되세요.^^
 
메시지 구약 역사서 영한대역 -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 옆의 성경 The Message 시리즈
유진 피터슨 지음, 김순현 외 옮김, 김회권 감수 / 복있는사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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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모세오경에서 간략히 언급했던 왜 조선 시대에는 천주교를 넓게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를 다시 한번 짚고 이어서 조금 이야기하려 한다. 하긴 더 이야기한다고는 해도 모세오경에서 언급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인의와 도덕을 중시했으며 그건 인간의 이해와 지성이 수용하는 방향에 따라서였다. 무속 신앙적인 맹신을 조선 시대 선조들께서는 즐기시지 않았다. 그런 방향에서 보면 왜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사람들(신앙인들)을 죽이면서까지 기독교를 멀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삼강오륜이나 인의와 도덕, 덕의 다스림과, 신구약에 기록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역사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세오경과 역사서만을 보더라도 하나님을 군주로 보던 창조자이니 아버지로 정의하던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 이 셋 사이에는 임금과 신하의 벼리도 아버지와 자식의 벼리도 지아비와 지어미의 벼리도 없다. 하나의 금기만을 주고는 그것을 깨었다고 신하이자 자식을 저주하고 버렸으며, 아담과 하와 또한 자식이자 신하라고 보아도 그들에게도 신의와 도덕율이 없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도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 할 기준이 없었다. 그들이 낳은 자식들도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였다. 아브라함의 둘째이자 유대인들의 선조인 이삭은 자신의 아비를 속여서 상속받았으며 룻의 딸들은 소돔과 고모라 이후 자신의 친부를 돌아가며 강간해서 대를 이었다. 심지어는 시아버지를 속여 잠자리를 가져 대를 잇는 이야기도 실려 있는 것이 구약이다. 그들의 신은 아비에게 그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기를 요구하는 신이기도 했다. 물론 심장을 찌르기 직전에 중단시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룻의 경우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그렇지만 신 혹은 신의 사자라고 판단하거나 죄 없는 객이라고 판단하는 경우 일부 사람들이 그 신 또는 사자, 죄 없는 객을 동성 강간하려 하면 자신의 남자 경험 없는 딸을 내어줄 테니 이들에게 무례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딜을 하기도 하는 작자들이다.

 

무엇보다 거룩한 진멸은 어쩔 것인가? 타국을 공격할 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현재의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와 다름없이 성 노예로 삼을 성 경험 없는 어린 여성 몇몇만 살려두고 애, 어른, 남녀를 구분 안 하고 모조리 죽였다.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까지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죽였다. ‘호생지덕도 인간으로서의 인지상정도 더더욱 이라는 것도 찾아볼 수 없는 종자들이었다. 타국은 적이라고 규정되면 모조리 죽여 없애며 자신들의 혈통만을 확장한 것이다. 물론 이들의 지상의 규범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기는 하다. 무조건 확산하고 보는 게 이들이 신으로부터 받은 지령이니 말이다. 하지만 규범도 원칙도 십계명이라는 단조로운 몇 가지만으로 번식하고 영토만 확장해 간다는 건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과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에서 톰하트 만이 이미 정의했듯 암과 바이러스와 다를 바 없다. 구약만 보자면 이 종교는 인간이 따라서는 안되는 암이고 바이러스인 것이다.

 

구약에서는 어떠한 지성이나 합의에 의해 도출된 도리가 아닌 신탁을 통한 역사가 이어진다, 그들의 신은 생육하고 번성하면 한마디로 번식하고 확산만 하면 거룩한 진멸이라는 이름의 살육을 장려하고, 성 노예를 권장하며, 딸들이 지아비를 며느리가 시아비를 강간하거나 속이고 자고는 애를 낳아야 하고, 늙은 아비를 속여 재산을 탐해도 되고, 신의 명령이면 인지상정도 무시하고 자식도 죽이려 해야 사랑을 주는 신이다.

 

이는 신약에서 이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그들의 계명이 허울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가 등장해 하나님이란 존재를 한껏 포장한다고 해도 하나님이란 존재가 사랑이었던 적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 유대인의 하나님일 수는 있겠지만 우주 만물을 창조한 신이라면서 구약에서 보여주던 그런 잔혹함과 악랄함을 인간에게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 할 테지만, 인간을 게임 속 캐릭터나 전투용 게임의 소형 로봇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거룩한 진멸이라는 지시는 가당치도 않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인간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라면 인간을 소모품으로 여길 뿐이라면 인간은 왜 그에게 굴종해야 하는가?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성경을 읽고도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는 불균등한 무력차, 압도적인 힘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여기기에, 굴종하면서라도 살아남고 그가 주는 단맛을 빨아 보고 싶은 게 다일 것이다. 무의식 깊이에서 이런 신에게 정서적으로 감동해서 섬기는 자가 어디있겠나? 압도적인 무력차가 아니라면 스스로가 전지와 전능과 편재와 불멸할 수 있다면 누가 그따위 신에게 굴종하겠는가? 그리고 전지할 수 없고 전능할 수 없고 편재할 수 없고 불멸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런 신이라는 존재에게 굴종해야 할 이유도 없을 거다.

 

예수는 자신들의 신이 사랑이라며 빛의 자녀가 되라고 했지만, 그 사랑과 빛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건 결국 순교라는 이름의 자발적인 죽음과 종교전쟁과 마녀사냥의 시대를 거쳐 홀로코스트에 이르렀다. 홀로코스트가 왜 기독교의 탓이냐 하겠지만 당시 유럽 인구는 절대다수가 종교인이었고 그 종교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종교였다. 크리스천이 유대교인들을 박멸하던 게 홀로코스트이기도 한 것이다. 알곡과 나락을 구분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유전적 우성인자와 유전적 열성인자를 가르는 우생학과 다름없고 더 거슬러 자신들만이 선택받았다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 발전을 거친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근래에는 예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저작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예수라는 사람은 행동과 말이 달랐고 그의 말에서도 일관성이 없었던 자이다. 유교에서는 공자의 오도일이관지라는 말을 깊이 여기며 가르침이 하나로 통하는 것 즉 일관되는 맥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행적이 표리부동한 인간의 분열적인 정신과 사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사랑을 이야기하며 겉옷을 벗어달라면 속옷까지 벗어 주고 잠시 같이 가자면 한참을 같이 가라던 이가 자기 어머니를 곁에 두고도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들이란 말이냐라는 선긋기를 시작할 때, 유학자들에게는 예수가 인간 말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느 선비가 자신의 어머니를 부정하는 자를 성현으로 여기겠는가?

 

그리고 예수는 사랑을 말하다가 돌연 나는 너희에게 칼을 주러 왔다 불을 던지러 왔다며 아비와 아들이 서로 대적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대적하게 하려 왔다는 말을 한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그가 사회를 변혁시키려 하는구나’ ‘이 초능력자는 메시아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특히나 유다가 그리 믿었기에 내가 떡을 찍어주는 자가 그이니 니가 할 일을 속히 행하라는 말에 바로 일어나서 로마군에게 예수가 어디있는지 고발한 것으로 보인다. 유다 복음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아마도 유다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예수 사후에도 오랜 후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설만을 정설로 받들기 전까지 예수를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는 종단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예수를 신앙하는 대다수의 종단들은 대부분 예수를 메시아라고는 믿었다고 한다. 예수는 무력하게 죄수가 되어 형벌을 감당하다 죽었는데도 메시아로 추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생존해 있던 시기에 그에 대한 그의 추종자들의 시각은 어떠했겠는가? 이미 홀린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가 사회를 변혁시키러 온 자로 보였을 것이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유다 역시 예수가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과정으로 유다 자신이 어떠한 역할을 해주면 죄수로 끌려가기 전에 폭동을 일으키던가, 예수의 초능력으로 폭동의 효시를 일으키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다 복음에서 말하듯 예수가 부추긴다고 해서 배신자가 되어 자살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는 어떠한 혁명의 시도도 하지 않았고 그저 십자가에 매달리자 마자 다 이루었다를 외치고는 십자가에 오래 매달려 있게 되니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라며 신이여 신이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외친 후 비탄에 빠지다 죽었을 뿐이다.

 

그는 사랑을 외치면서 (당시 십일조 하려면 당연히 환전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환전상에게 테러를 했으며 불을 던지러 왔다. 칼을 주러 왔다면서 마치 사회 변혁을 이루려는 것처럼 바람을 잡아놓고는 무력하게 죽었다. 도무지 일관성이 없고 표리부동하지 않은가?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신구약을 두루 읽어 봤다면, 주님이라며 신에게 가축을 죽여 제를 올리고 그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살육하고 가족 간에 죽이고 강간하며 그저 암이나 바이러스처럼 확산만 하면 된다는 종교 그리고 어느 시점 포장을 하고 사랑을 외치지만 알고 보면 순교라는 이름의 자발적인 죽음을 장려하고 서양사까지 보면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 등으로 피비린내 진동을 하게 하는 이 종교를 도대체 어떻게 정상적인 종교라고 판단했겠는가? 천주교 박해는 비단 조선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정당성이 너무나도 깊고 크게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사이비 종파만이 아닌, 이단으로 분류되지 않는 천주교와 기독교 대부분의 종파들의 해악은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종교 자체가 이 세계에 뿌려진 악성 바이러스인지도 모르겠다. 이 바이러스를 치료할 치료제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면 그가 바로 메시아이고 마이트레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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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구약 모세오경 영한대역 The Message 시리즈
유진 피터슨 지음, 김순현 외 옮김, 김회권 감수 / 복있는사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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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로만 카톨릭 그외에도 영국 국교회, 그리스 정교회 등 알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종교가 전체 종교인의 과반수일 것이다. 물론 그들 다수는 성경을 완독하는 경우들이 없다는 것도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의 정신 저변에 기독교적 원형은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싶다.


휴거라던가 아마겟돈, 666, 짐승의 인, 적그리스도, 요한계시록, 종말론 등은 어미만 꺼내도 완성시키는 비신앙인들이 더 많을 것이다. 현대인의 의식에 저변을 이해하는데 성경을 빼놓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들이 갖는 세계상과 시대상의 문제점을 이해하는 것도 성경이 한 측면은 차지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신자라도 성경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자리에 누운 상황이 되어 차분히 정독해 보고 있다. [모세오경]을 완독하고 현재는 역사서의 [열왕기 상]까지를 읽었다. 여기까지 읽는 동안 기독교적 도그마 중 몇몇을 알게 되고 또 자잘한 의문도 갖게 되었다.


창세기에서의 문제들은 접어두고라도 출애굽기의 낮에는 구름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했다는 대목은 UFO와 외계인의 영향이라고 여겨진다. 언약궤(증거궤)를 이동시키는 중 언약궤가 흔들리자 손을 대다 죽는 경우와  장막에 들어서다 언약궤 앞에서 죽는 장면 등은 과거 오파츠 관련 과학 책에서 보았던 해석처럼 외계 인류의 기술력인 에너지 집적기이자 방출기를 이집트에서 훔쳐와 자신들의 언약궤라며 호도한 경우라고 생각된다.


또한 당시 여성의 처지를 알 수 있는 대목들(천사나 방랑객의 등장시 그들에게 동성애 강간을 하려는 이들을 진정시키려고 자신의 남자 경험이 없는 딸들을 내어주겠다며 진정시키는 대목, 제사장의 딸이 매춘을 하는 경우 화형시키라는 조목을 만드는 대목) 남성의 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전 세대의 적대 행위에 후손인 남성들을 추려내 목졸라 죽여버리는 대목)등을 통해 고대에 인권이란 것은 없었구나 하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거룩한 진멸이라며 유대인들이 정복하는 지역마다 성노예로 삼을 성경험 없는 여자 몇몇을 남기고는 아이 어른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죽이고 또 그 지역에 사는 가축까지 모조리 생명있는 대상은 말 그대로 모조리 죽이는 것을 보며 이딴 짓을 하고도 그걸 역사라며 기록하는 것들이나 그 기록을 보고도 거룩한 종교라며 신앙하는 것들이나 다 그 나물에 그 밥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 욕은 그렇게 할 것이다. "니들 종교도 다를 바 없단다."


룻의 딸들은 소돔과 고모라 이후 룻을 강간해 아이들을 출산한다. 룻의 딸들이라고 했으니 그녀들이 강간한 룻이 그녀들에게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라.


이쯤에서 조선시대에 왜 그토록 유학자들인 조선 관리들이 천주교인들을 몰살하다시피 하고 천주교가 조선에 자리잡는 것을 싫어했는지 알 수 있다. 여호와가 창조주라면 아버지일테고 주라면 군주로서 보아야 할텐데 아담과 하와와 여호와에 관계에서는 조선 유학자들의 관점으로는 천주교는 삼강도 오륜도 없는 종교이다. 그들의 눈에는 철학도 윤리도 없는 것이 성경이었을 것이다. 다윗이 자신의 부하 장수의 아내를 취하려 부하 장수를 전쟁터에서 죽도록 유도하고 아내를 빼앗은 것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내용이나 거룩한 진멸 등을 보아도 인의도 도덕도 없는 것이 성경이다. 신약의 예수 같은 경우도 성전의 환전상들에게 보인 행패나 내가 평안을 주려온줄 아느냐 나는 칼을 던지러 왔다는 그의 발언은 이전 설교들과 달랐다. 언행이 불일치 하는 인물이고 말 바꾸기가 자유롭던 인물이다. 자기 성질을 조절할 줄 몰랐고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버젓이 옆에 세워두고도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들이란 말이냐고 하던 이이다. 예수는 수신도 제가도 못하는 인간 전형으로 보였을 테니 유학자들 눈에는 용납될 수 없는 졸렬한 사기꾼이었을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야 왜 천주교 박해가 있었는지 선조들은 마녀사냥이나 십자군 전쟁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못했을 텐데 어떻게 금방 이 종교가 폐단이고 사이비이며 적폐가 될 줄을 미리 아셨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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