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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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世間,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라,
情爲何物, 정이란 무엇이길래,
直敎生死相許  이처럼 삶과 죽음을 서로 허락하는가?

 

금나라 시인 원호문의 안구사雁丘詞라는 시의 첫 소절이다. 이 소절은 신조협려를 읽어본 김용 작가의 팬들이라면 누구라도 잊지 못할 한 소절일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이 시와 신조협려를 떠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존 트라볼타와 셀마 헤이엑의 2006년 작 영화인 [론리 하츠 Lonely Hearts]도 떠오르게 만든다. 그 사랑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기억 속의 이 작품들과 맞닿아 버리는 것이다.

 

 

농담 안 할 테니까 해준 씨도 솔직히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날 떠난 다음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마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당신은 내내 편하게 잠을 한숨도 못 잤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내가 보였죠?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날 밤 시장에서 우연히 나와 만났을 때,

당신은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서래가 번역기의 힘을 빌려 해준에게 물었던 이 물음들에 대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난 세월 어디에선가 대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들도...

삶에서 사랑을 뺀다해도 물론 무슨 맛이든 맛은 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빠진 맛은 커피에서 커피 맛이 사라진 것과 무엇이 다를까?

 

보이지 않을 곳들 뼈만 골라서 부러뜨리던 깔끔한 남편 기도수는 서래의 몸에 자신의 것이라는 낙인을 찍듯 KDS라는 문신까지 새겨넣었다. 그런 남편과 살던 그녀였기에 해준이 그녀에게 신문 이후 사준 사시미가 친절하고 다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해준 역시 처음부터 그녀가 남달랐기에 그리 대접한 것일 테고. 길고양이가 까마귀 사체를 먹이의 답례로 놓아 둔 이후에 그녀의 대사나 그녀의 말을 번역해 들어 보려는 해준의 잔망스러움도 감정의 오고 감이 거듭 느껴지는 연속들 사이에서 인상 깊던 부분이다. 자신을 감시하려 잠복 아닌 잠복하던 그에게서 그녀가 느낀 심정은 후에 대사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녀의 마음을 이미 짐작했지만 그녀의 고백으로 듣는 심정은 더 깊이 와닿았다. 임호신과 재혼한 그녀의 심정도 이해가 갔지만 역시 그녀 자신의 입으로 들으면서 더 깊이 와닿았다.

 

해준 (답답하다는 듯 약간 톤이 올라가서)

왜 그런 남자하고 결혼했습니까?

 

서래 (눈에 힘주고 똑바로 보면서)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 대사 속 다른 남자는 다름 아닌 해준을 이야기하고 그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그녀의 면면은 그녀가 결코 그와 헤어질 인연이 아니었고 헤어질 마음도 진심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극의 대미에서 보여준 그녀의 최종 결정은, 그녀의 마지막 결심이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 하나될 결심임을 확인시켜준 것이라 생각됐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결코 헤어질 수 없는 불멸의 연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그녀에게 해준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론리 하츠란 영화가 깊이 연상된 것도 다음 대사 때문이다.

 

서래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 결혼할까요?

... 해준 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 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한마디라도 하려면 살인 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시나리오 중반의 서래가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라고 말하고 나서 해준의 대사는 거기까지 각본을 읽는 동안엔 그냥 지나치게도 되었는데 그 대사의 깊음을 극의 종반에 이르러 그것이 얼마나 깊은 사랑 고백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인용해 옮기지는 않겠다. 스포일러를 최소화하려 하지만 그런데도 스포일러가 넘치고 있는 이 리뷰에 최소한의 양심을 담아 남겨 두어야 할 대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나에게 선물을 꼭 하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이 말은 극 초반의 서래의 중국어를 번역해 남자 성우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대사로 길고양이만이 아니라 해준에게 꼭 전해져야 할 마음이었고 다행스럽게도 해준은 그녀를 따라가 그녀의 그 말을 녹취해 번역해서 듣는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씬들이 잦지만 그녀의 대사와 해준의 집요함이 드러나는 이 장면은 그 중에서도 백미가 아니었나 싶다

 

나로서는 이 영화의 스토리 자체와 스토리 보다 튀지 않고 짧은 사랑 이야기를 잘 담고 있는 대사들도 마음에 들었다.

 

해준과 서래 둘 다가 이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사랑의 정의를 온전히 실천하고 있는 인물들이라 여겨졌다. 사랑이 얼마나 거대한 깊은 원형인지를 다시금 깊이 느꼈다. 각본집부터 보게 되었지만 꼭 영화를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헤어질 결심]을 읽으며 까만 밤이 보랏빛이 되었다.

 

 

아니다, 소화야... 아니야... 진정 용맹한 행동은 사랑이야.

 

사랑은... 그 외 다른 모든 것의 포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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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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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초딩 때 20대 초에 또 오늘까지 3번을 읽었다. 초딩 때는 정서적 동요와 함께 애착은 느꼈지만 별다른 인상을 깊이 갖지는 못했던 것 같다. 20대 때는 아련함을 갖게 되었으나 그때도 사람들이 어린 왕자라는 동화에 갖는 깊은 인상이 왜인지 막연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중년이 된 지금 읽었다고 해서 그다지 깊은 감동으로 몸부림치거나 그렇지도 않다. 예전 몇몇 문장에 감동하던 때보다 감동 어린 문장들을 더 찾게 되었고 이제까지 읽고도 기억 못한 결말의 충격이 크기는 했지만 말이다.

 

인상 깊은 문장들은 많았으나 그걸 다 옮기는 건 조금 부담될 것 같다. 키보드와 씨름하면서 버거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다. 문장에서 받은 개별적 인상보다 어린 왕자 전반에서 받은 총체적인 인상을 남기는 것으로 이번 리뷰는 대략 마무리하려 한다.

 

어린 왕자는 사랑과 우정, 후회와 회귀, 회복에 대한 갈망 등등의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는 이것이 삶에서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삶의 본질이라고 정의한 것이 정언적으로 주어지는 듯도 하지만 그것이 대중의 기대나 바람과 큰 차이가 없었기에 이 시대까지 어린 왕자가 잊혀지지 않는 것일 거다. 이야기의 시작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린 어린이의 그림을 모자로 착각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들어서고 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꿰뚫어 보는 어린이와 모자로 착각하는 어른. 그것으로 본질에 대한 통찰과 그것을 통찰해내지 못하는 성인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해와 착각 속에서 성인들은 서로 오해의 여지를 남겨둘 거리를 두고 관계를 갖는다. 이야기 속 화자는 성인이 된 이후 그 그림을 보여주고 모자로 보는 성인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주변적인 주제만으로 화제를 삼았다. 반면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는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통찰했다. 양을 가둔 상자마저도 아주 쉽게 통찰하고 말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떨어진 씨앗에서 자라나는 바오밥 나무들을 제거하려던 중 하나의 씨앗이 바오밥 나무가 아니라 장미로 자라나자 애정을 쏟는다. 그러다 서로 간 소통의 혼선으로 그는 장미를 두고 자기 별을 떠나 유랑을 하며 몇몇 별에서의 경험을 거쳐 일곱 번째 별인 지구로 온다. 어린 왕자가 유랑 중 마주친 이들을 통해서도 조금씩 주제로 다가서지만 일곱 번째 별에서 여우를 만나고야 자신의 이상과 합치되는 가르침을 받는다. 정말 보석 같은 명문들이 이어지지만 옮겨적기는 생략하겠다. 저자는 성인이 놓치고 있는 본질을 우정과 사랑,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로 정의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가치들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본질이 아닌 상에서도 인간은 깨우침을 얻어가며 살아간다. 물론 상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겠으나 인간은 이 상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도 성장한다. 사랑이나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로만 무너져내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질이나 권력, 명예 따위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도 결국은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결과에 가닿고 그 추구하던 과정(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허무하게만 작용하는 게 아닌 것이 대부분의 사람의 삶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는 불교 가르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쨋건 저자는 자신이 그리는 이상과 본질을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정의 내리고 이 동화 속에서는 그것의 정점을 우정과 사랑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정의들로 독자에게 인상을 깊이 남기고 있기도 하다. 본질을 바로 본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핵심일지 모른다. ‘사랑이 진리다라고 오래전의 블로그에서 누군가가 남겼던 댓글이 기억에 남기도 하고. 하지만 각자에게는 서로가 깨우친 본질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린 왕자가 이토록 깊이 대중을 오랜 세월 사로잡은 이유는 그 본질을 우정과 사랑에서 찾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가 어린 왕자와 같은 주제를 마음 깊이 갖고 싶다면 누군가가 남긴 밈으로서가 아니라 어린 왕자처럼 집요하고 맑게 깨우침을 얻고자 추구해 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다른 이가 닦아 놓은 길을 가도 나쁠 게 없고 자신이 헤쳐나가도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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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0-10 1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진 책도 요 표지라 반갑네요, 제껀 표지 바탕색이 흰색이네요ㅎ
다음, 4번째 다시 읽기때는 또 어떤 느낌이실지^^

이하라 2022-10-10 18:48   좋아요 3 | URL
같은 표지라시니까 반갑네요. 흰색이 더 맑고 깨끗한 느낌일 것 같아요.^^
4번째 읽기도 그전의 읽기까지의 세월이 걸린다면 한 10년도 넘은 후일 것 같아요ㅎㅎ

Falstaff 2022-10-10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 왕자>를 무척 여러 번 시도했다가, 단 한 번도 끝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상당히 친한 동무의 아내가 번역한 책을 선물 받고도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군요. 혹시 이것도 병인가 합니다. ㅠㅠ

이하라 2022-10-11 21:46   좋아요 4 | URL
완독하기까지 몇 번이나 미루게 되는 경우가 저도 몇 권이나 됩니다. 결말까지 읽게 되는 심정적 계기가 있어주면 그때가 완독하게 되는 순간이더라구요. 그런 계기가 꼭 있으실 거예요.^^
 
탱자 - 근현대 산문 대가들의 깊고 깊은 산문 모음 봄날의책 한국산문선
강운구 외 지음, 박미경 엮음 / 봄날의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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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읽어본 적은 있지만 에세이와는 친근하지 못했었다. 이번 기회에 장문의 서술에서도 시적 함축이 있을 수 있고 타인의 생에 대한 감상과 성찰에 공감할 때 그 감정의 폭이 신선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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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마리의 봄 소풍 14마리 그림책 시리즈
이와무라 카즈오 지음, 박지석 옮김 / 진선아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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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올리고 보니 사진이 작화의 여운을 다 담지 못하네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작화 자체의 색감과 터치가 어찌나 이쁘고 편안한 느낌을 주던지 제가 어린이였다면 하루 종일 펼쳐 볼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줬습니다.  

 

이사 이야기와 봄소풍 이야기 중에 이사가 조금 더 끌리기도 했지만 봄소풍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을 떠올려보고는 [14마리의 봄 소풍] 이야기도 너무 흥미로울 것만 같았습니다. 

 


 

이와무라 카즈오님의 그림책은 난생 처음이었지만 작가 소개를 통해 그의 수상경력들이나 세계 15개국에서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이 화사하고 편안한 그림과 색감만으로도 그의 그림책에 빠져들기에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연을 담고 있는 그의 세밀한 터치나 자연보다 더 자연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듯한 색감이 너무도 사랑스러웠습니다.

 


 

소풍은 무언가 도전과, 모험, 즐거움과 놀이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이미지이잖아요. 이 그림책 속에는 아이들이 연상할 수 있는 소풍의 이미지를 풍부히 담고 있더라구요. 실수 속에서도 함께 도와가며 해결해 나가는 바로 위의 그림도 유대감을 아이들이 그려보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됩니다.

 


 

어디까지나 가족의 봄 소풍이기도 하니 아이들에게 포근함도 더 안겨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봄 소풍에서 연상되는 게 도전, 모험, 즐거움, 놀이 그리고 자연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그 외에도 함께하는 식사 시간도 떠오를 것 같네요.  책 속의 작은 모험으로 아이들에게 시원한 마음 여행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과 함께 이 그림책을 보신다면 어린시절의 봄 소풍을 떠올려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진을 잘못 찍다보니 그림의 아름다움이 다 전달되지 않을까 봐도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리뷰어님들의 포토리뷰도 있으니 걱정 접어두려 합니다. 

 

그리고 사진으로는 이 그림책의 색감과 아름다움이 다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네요. 마치 꿈결 속에서 봄 소풍을 거닐다 오는 것만 같은 여운을 가득 주는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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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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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좋아하던 시절이 오래오래전엔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문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생활을 해왔다. 순수문학을 읽던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고 읽는다해도 장르문학에 한정되어있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순수문학을 그것도 고전들을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그 감상이 여운이 깊다. 다시금 문학 소년이 아니 문학 중년이 되는 느낌이다.

 

새움의 움라우트 세계문학 시리즈는 [이방인], [노인과 바다] 이후로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다. 앞서 두 권은 서평단 모집 때 눈여겨 보았다가 구매해서 읽고 리뷰를 남겼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 두 권으로 익게 된 이정서 번역가님에 대한 신뢰가 커져서 서평단 응모로 리뷰를 남길 기회를 얻게 되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읽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번역가님의 문단 하단의 짧은 기록들을 보며 이 소설을 다른 번역본으로 보았더라면 도대체 내게 남은 개츠비에 대한 인상은 얼마나 오해의 층층이었을지 생각하니 다행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윌슨을 향한 언급들을 개츠비로 판단한다거나 하는 그 단순한 것만으로도 인상의 빛깔이 전혀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안타깝지만 한심한 졸부로만 개츠비에 대한 인상이 남게 되었다면 이 소설을 읽은 의의는 무엇이 되었을까? 

 

닉의 시선으로 전해지는 개츠비이기에 오역되지 않은 원작대로의 개츠비에 대한 인상은 닉의 감상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개츠비에 대해 닉의 시선은 그의 자산을 보며 느끼는 선망과 그의 출신과 자신의 출신을 비교하며 드러나는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모든 것을 자수성가한 개츠비에 대한 나름의 인정하는 심리와 당시에는 정당하다고 볼 수 없는 밀주 커넥션에 연루되어 개츠비가 부를 축적한 것을 알고서 느끼는 다소의 경멸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는 것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닉은 개츠비에게 깊은 호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의 시선이 있기에 독자 역시 그의 시선으로 인해 개츠비라는 한 사람에 대한 인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닉의 정서가 반영되지 않았다면 다를까 싶지만 이 작품에서의 개츠비는 참으로 양가적인 사람이 아닌가 싶다. 소설을 퍼즐처럼 조각을 이어보자면 그의 아버지가 보여준 그의 옛 애장소설의 기록으로 보아 개츠비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며 미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그리고 전쟁의 참상으로 뛰어든 그 시대의 무거운 한 장면을 감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전쟁 속에서도 사랑에 빠져버리고 오랜 세월을 한 여인에게 연연하는 순순한 열정을 품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반면에 그는 전쟁 후의 특혜로 가게 된 옥스퍼드 대학 생활 몇 개월을 나름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활용해 일자리를 찾아낼 줄도 알고 평판을 일구어 보려고도 하는 기회주의자이기도 하다. (역자 이정서님은 개츠비가 옥스포드 맨이라고 그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지만 울프심에게 그가 옥스포드 출신임을 말할 사람은 그다지 따로 찾을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이력을 이용하지 못하는 자라 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옳고 그름이라는 관점에서 터부시하며 뿌리치지 않는 어떤 면에서는 진취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잠자던 사람을 깨워 데이지와의 자리에서 분위기를 자아내려 연주케하는 면모로 보아 자신의 의도가 우선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고마는 독선도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회주의자이며 성취자이기도 하고 미래를 꿈꾸던 소년이었고 한 사람만을 향하는 불타는 사랑을 안은 열정가이기도 하다. 돈을 추구하는 인물로만 보이기도하지만 그를 떠난 데이지와의 신분차이가 그에게 금전적 성취를 우선하게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닉을 태운 차 안에서의 그의 부산함은 그가 부를 축적한 졸부나 부호로만 보이지 않게 하는 유치한 이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또 그토록 잊지 못하던 데이지와의 재회를 닉의 집에서 갖게 되었을 때 그의 모습은 한 소녀에게 빠져버린 소년의 심정과도 비슷해 보였다. 재회한 그녀에게 아직 자신이 부족해 보이지는 않을까 주저하는 그는 벽에 걸린 시계에 머리를 기대다가 허둥거린다. 그 시계가 마치 깨어진 것만 같이 여기는 것 같다는 닉의 표현은 개츠비가 데이지를 대하는 그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고 있음을 얘기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의 양가적인 면들과 그 속에서 두드러지는 그 순수함이 미국인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위대한 개츠비]를 사랑하는 이유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 면들이 현시대의 유일한 대제국 미국의 모습과 미국인들을 대변해 준다고 미국인 자신들이 여길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 호기롭게 달러패권으로 독주하는 미국, 그러면서도 인종갈등과 총기사고, 마약으로 점철되고 있는 미국, 또 세계경찰이라면서도 일루미나티 주축들의 근거지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미국, 그러면서도 한없이 자유를 사랑하고 성장하려 하고 아직까지도 아메리칸 드림은 있다고 믿어마지 않는 미국인들의 모습이 개츠비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보였다. 

 

데이지는 어떤가? 피로연 당일 신부가 (아마도 개츠비가 보낸) 편지를 움켜쥐고 만취한 채 자신을 욕조에 담궈달라고 말하며 눈물 흘리던 그녀, 재회한 개츠비를 연이어 찾아가던 그녀, 자신의 아이를 안고 개츠비를 보여주던 그녀... 그런 그녀가 개츠비에게 진심이 아니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끝내 우연이었는지 자신의 남편과 바람이 난 여성을 개츠비와 동승한 차로 치어 죽인 그녀에게 개츠비는 어느새 연인에서 자신의 죄를 목격한 목격자로 자리바꿈 해 버렸을 것이다. 개츠비를 보는 순간마다 그녀는 자신의 죄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녀의 머리에 카인처럼 하나님의 인이 더해지지 않고서는 그녀는 결코 개츠비와의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개츠비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

 

개츠비는 그녀에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개츠비가 매일을 화려한 파티를 열어 대중들을 불러모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이는 안스러울 정도이다. 개츠비의 삶은 작가가 닉의 시선으로 보여준 외연만큼이나 그 심연 또한 양극적인 면을 띠고 있다. 이 소설의 독자들에게 개츠비는 어떤 감상을 안겨주는 인물이기를 피츠제럴드는 바란 것일까?

 

피츠제럴드는 퍼즐 조각 하나하나를 나열하는 듯하다가 어느새 퍼즐을 맞춰놓는 뛰어난 문장력을 보여준다. 자못 일상적인 이야기만 서술하는가 싶다가 소설의 끝에 이르르면 이 얼마나 뛰어난 구성의 소설인가에 감탄하고 말게 하는 것이다. 인물 한 명 한 명도 허투로 등장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탐 뷰캐넌이 [오셀로]의 이아고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줄도 짐작할 수 없었고 그저 주변 이야기일뿐인줄 알았던 탐의 불륜 이야기가 이렇게 대미에 영향을 줄지도 몰랐다. 더구나 윌슨이 결말을 가져올지는 예상조차 못했다. 그의 이름이나마 기억하게 될 존재일지 짐작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개츠비의 매력 만큼이나 소설의 얽개의 치밀함도 이 소설을 잊지 못하게 할 이유 중 하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츠비를 오해 하지 않음으로서 소설에 대한 감상이 온전했다고 생각된다. [위대한 개츠비]는 반드시 새움의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으로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정서 번역가님의 번역서 중에서도 [위대한 개츠비]는 반드시 이 책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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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2-04-25 0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츠비는 여러 판본을 구해서 읽었는데 하나 더 늘어날 예정이 되어버렸네요 ㅎ 언제나 조금씩 다르면서도 비슷한 쓸쓸함을 느끼면서 때때로 다시 읽습니다

이하라 2022-04-25 08:29   좋아요 2 | URL
개츠비에 대한 인상이 깊으셨군요. 저는 이 책으로 개츠비를 처음 만났는데 첫인상이 강렬한 소설이었습니다. 저도 때때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4-25 1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콧피츠제럴드는 개츠비도 좋은데 단편도 좋더라구요 ^^ 다시 문학소년이 되신걸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2-04-25 12:5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피츠제럴드의 단편이라면 기대되네요. 구성력이 남다른 작가 같아서 다른 소설들도 완전 기대됩니다.^^

페크pek0501 2022-04-28 1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로도 보고 소설로도 읽었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은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거예요.
사랑 받을 만한 자격도 없어 보이는 이기적이고 가벼운 생각으로 사는 듯한 여성의 무엇을 개츠비는 사랑했을까요.
그 자체 모든 걸 사랑했을까요.
사랑은 그저 환상의 산물이었는지 몰라요. 잘 모르겠어요. 책을 두 번이나 읽었는데 말이죠.

이하라 2022-04-28 18:29   좋아요 2 | URL
저는 사랑이야기로서 보다는 쓸쓸한 한 남자의
생의 한 대목과 죽음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데이지의 매정함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개츠비의 연연함도
그의 마지막도 너무나 고독하게만 느껴지더군요.
그의 외로운 생과 죽음이 사랑이야기를 압도해 버리는 것만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