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왕자는 초딩 때 20대 초에 또 오늘까지 3번을 읽었다. 초딩 때는 정서적 동요와 함께 애착은 느꼈지만 별다른 인상을 깊이 갖지는 못했던 것 같다. 20대 때는 아련함을 갖게 되었으나 그때도 사람들이 어린 왕자라는 동화에 갖는 깊은 인상이 왜인지 막연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중년이 된 지금 읽었다고 해서 그다지 깊은 감동으로 몸부림치거나 그렇지도 않다. 예전 몇몇 문장에 감동하던 때보다 감동 어린 문장들을 더 찾게 되었고 이제까지 읽고도 기억 못한 결말의 충격이 크기는 했지만 말이다.

 

인상 깊은 문장들은 많았으나 그걸 다 옮기는 건 조금 부담될 것 같다. 키보드와 씨름하면서 버거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말이다. 문장에서 받은 개별적 인상보다 어린 왕자 전반에서 받은 총체적인 인상을 남기는 것으로 이번 리뷰는 대략 마무리하려 한다.

 

어린 왕자는 사랑과 우정, 후회와 회귀, 회복에 대한 갈망 등등의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는 이것이 삶에서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삶의 본질이라고 정의한 것이 정언적으로 주어지는 듯도 하지만 그것이 대중의 기대나 바람과 큰 차이가 없었기에 이 시대까지 어린 왕자가 잊혀지지 않는 것일 거다. 이야기의 시작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린 어린이의 그림을 모자로 착각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로 들어서고 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꿰뚫어 보는 어린이와 모자로 착각하는 어른. 그것으로 본질에 대한 통찰과 그것을 통찰해내지 못하는 성인 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해와 착각 속에서 성인들은 서로 오해의 여지를 남겨둘 거리를 두고 관계를 갖는다. 이야기 속 화자는 성인이 된 이후 그 그림을 보여주고 모자로 보는 성인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주변적인 주제만으로 화제를 삼았다. 반면 B612에서 온 어린 왕자는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통찰했다. 양을 가둔 상자마저도 아주 쉽게 통찰하고 말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에 떨어진 씨앗에서 자라나는 바오밥 나무들을 제거하려던 중 하나의 씨앗이 바오밥 나무가 아니라 장미로 자라나자 애정을 쏟는다. 그러다 서로 간 소통의 혼선으로 그는 장미를 두고 자기 별을 떠나 유랑을 하며 몇몇 별에서의 경험을 거쳐 일곱 번째 별인 지구로 온다. 어린 왕자가 유랑 중 마주친 이들을 통해서도 조금씩 주제로 다가서지만 일곱 번째 별에서 여우를 만나고야 자신의 이상과 합치되는 가르침을 받는다. 정말 보석 같은 명문들이 이어지지만 옮겨적기는 생략하겠다. 저자는 성인이 놓치고 있는 본질을 우정과 사랑,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로 정의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가치들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본질이 아닌 상에서도 인간은 깨우침을 얻어가며 살아간다. 물론 상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겠으나 인간은 이 상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도 성장한다. 사랑이나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로만 무너져내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질이나 권력, 명예 따위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도 결국은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결과에 가닿고 그 추구하던 과정(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허무하게만 작용하는 게 아닌 것이 대부분의 사람의 삶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는 불교 가르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쨋건 저자는 자신이 그리는 이상과 본질을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고 정의 내리고 이 동화 속에서는 그것의 정점을 우정과 사랑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정의들로 독자에게 인상을 깊이 남기고 있기도 하다. 본질을 바로 본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핵심일지 모른다. ‘사랑이 진리다라고 오래전의 블로그에서 누군가가 남겼던 댓글이 기억에 남기도 하고. 하지만 각자에게는 서로가 깨우친 본질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린 왕자가 이토록 깊이 대중을 오랜 세월 사로잡은 이유는 그 본질을 우정과 사랑에서 찾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누구나가 어린 왕자와 같은 주제를 마음 깊이 갖고 싶다면 누군가가 남긴 밈으로서가 아니라 어린 왕자처럼 집요하고 맑게 깨우침을 얻고자 추구해 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다른 이가 닦아 놓은 길을 가도 나쁠 게 없고 자신이 헤쳐나가도 버겁기만 한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라알라 2022-10-10 17: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진 책도 요 표지라 반갑네요, 제껀 표지 바탕색이 흰색이네요ㅎ
다음, 4번째 다시 읽기때는 또 어떤 느낌이실지^^

이하라 2022-10-10 18:48   좋아요 3 | URL
같은 표지라시니까 반갑네요. 흰색이 더 맑고 깨끗한 느낌일 것 같아요.^^
4번째 읽기도 그전의 읽기까지의 세월이 걸린다면 한 10년도 넘은 후일 것 같아요ㅎㅎ

Falstaff 2022-10-10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 왕자>를 무척 여러 번 시도했다가, 단 한 번도 끝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상당히 친한 동무의 아내가 번역한 책을 선물 받고도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군요. 혹시 이것도 병인가 합니다. ㅠㅠ

이하라 2022-10-11 21:46   좋아요 4 | URL
완독하기까지 몇 번이나 미루게 되는 경우가 저도 몇 권이나 됩니다. 결말까지 읽게 되는 심정적 계기가 있어주면 그때가 완독하게 되는 순간이더라구요. 그런 계기가 꼭 있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