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 1월 중순까지는 이런 책들을 샀다.
뭐여, 나 조금 샀다고 생각 했는데…. 왜 또 10권 넘어가지? (전자책도 샀고, 택배 파업 덕에 감감 무소식인 책들도 있는 건 안 비밀)
방금 온 따끈 따끈한 책은 로렌 허프의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에세이의 지존(?)이라 할 수 있는 록산 게이와 무려 김보라 감독이 강력 추천 한다는 소개 글을 보았지. 저자가 사이비 종교재단에서 자라 탈출한 레즈비언으로 이런저런 직업들을 전전한 한 많은 인생을 풀어놓은 에세이인데 그것이!!! 재밌다고 한다. 그렇다. 재미. 재미다! 세상에 많은 미들이 있지만 언제나 나는 골계미에 끌린다.
책이 오자 마자 게걸스럽게 펴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맙소사, 케이트 블란쳇의 추천사도 있네? 갑자기 웅장이 가슴해져벌여…. 나는 무려!! 케이트 블란쳇이 읽는 책을 읽는 사람이다. (응? 어쩌라고?) 이래서 BTS가 읽은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그런 거구나. 좋아하는 배우가 읽은 책을 읽는다니 뭔가 우리 사이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고 나 자신의 책 고르는 안목에 자긍심이 생겨…😌
사적인 연유로 해서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에 빠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그것에서 빠져나오는 이야기,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삶을 재건하는 이야기라면, 더할 나위 없이 내가 원하는 이야기다. 재건. 그것은 적절하지 않은 단어인 것 같다. 다시 세우는 일이 아닌 삶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친구들은 일을 하고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아이를 낳아 사진을 올린다. 가끔 한 사람의 몫을 다하고도 기운이 남아서 누군가를 기꺼이 돌보며 사랑하는 비범한 삶들이 탐날 때도 있지만, 금방 내 것은 아니라고 느끼고 만다. 내가 욕심 내는 것은 딱 나 자신 하나 뿐이다. 실은 나 하나를 유지하는 것 마저도 헐떡 대는 중이다. 그럴 때 나를 미워하지 않는 방법은 내가 떠나온 세계를 생각하는 것이다.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Leaving Isn’t the Hardest Thing 언젠가 미래의 내가 돌이켜 보았을 때 그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며 웃으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멀리 멀리.
장르 좀 읽는 알라딘 별점 자린고비 물감 픽 1위!!!는 사서 읽어 드리겠다. <심플 플랜> 중고 알람 뜨자 마자 바로 겟함. 따끈 따끈. 근데 재미가 없을 리가 없는 모양이다. 아주 극찬이 수두룩 하고만?
스무 살의 카슨은 작가가 되고 싶어 남편 리브스와 결혼하며 계약을 맺었다. 1년씩 역할을 바꿔가며 한사람은 돈을 벌고 한 사람은 글을 쓰자는 내용이었다. 먼저 리브스가 돈을 벌어오기 시작했고, 당연히 카슨 매컬러스는 천재였기 때문에 1년 만에 소설 출간 계약이 성사 되버렸다. 그리하여 문학 청년 리브스는 결국 글을 못쓰고 돈을 벌어야 했다는 어린 부부의 일화를 <리추얼>에서 읽었다. 특별히 카슨은 살림에 대단히 무신경한 채로 글을 썼기에 집이 난장판이었더라는 이야기도 귀엽고 통쾌해서 카슨 매컬러스를 검색 때렸더니 아아니, 내 책장에는 이미 그녀가 쓴 소설 <결혼식 멤버>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ㅋㅋㅋ🙄 <제2의 성>에서 보부아르가 인용한 구절들이 근사해서 샀던 기억이 빼꼼 났다.
이쯤하면 저자와의 인연이 생긴 것도 같아(?) 호기심을 느끼던 중 친애하는 알라디너 에로이카님 페이퍼에서 또(!) 이 책 <슬픈 카페의 노래>를 발견하고 반가워서 지름. 시시한 운명론 따위 개나 주라지~라고 하지만 책이야 말로 ‘읽을 운명’이라는 게 있는 것도 같다는 책 한정 운명론쟝.
아르떼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쭉 나오는 것 같다. 여행에는 정말 관심이 1도 없어서 이 시리즈가 계속 추천 마법사에 떠도 쌩 무시했는데, 프롬이라고 해서 사봄 <에리히 프롬 x 옌스 푀르스터>. 프롬은 20대 후반의 내가 운명처럼 만난 저자다. 사랑이 잘 안되서 읽었던 <사랑의 기술>과 우울증의 한가운데서 만난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 인간에 너무 환멸 나서 봤던 <인간의 마음> 등… 다시 읽어도 그 때 처럼 좋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책에 의지해서 한 시절을 통과한 사람 치고는 인간 에리히 프롬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것 같아 한 번 사봄. 부제가 ‘사랑의 혁명을 꿈 꾼 휴머니스트’다. 음…🥱 아무래도 이젠 나랑 안 맞을 것 같다 ㅋㅋㅋㅋㅋㅋ
데버라 리비의 <살림 비용>은 크리스마스 선물💝 받았다. 꺄! 때 탈까봐 비닐 포장도 아직 안 뜯었다. 누구한테 받았게요? ㅋㅋㅋㅋ 그것은 이 책을 2021년 올해의 에세이로 뽑으신 제가 커서 되실 그분이시지요! 감사 감사링링 💕 아무튼 언제라도 내가 읽고 싶을 때 딱 꺼내서 읽어야지. 머지 않은 시일 안에 설거지가 하기 싫어질 때 읽어보마 싶어진다! 그리고 오늘 그분이 추천해 주신 장칼국수 처음으로 사서 끓여 먹어 봤는 데 맛있었다.
비록 <하나이지 않은 성>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리가레는 파이어 스톤과 함께 가장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다. 왜 좋을까 생각해보는 중인데 이건 이론이라기 보다는 성향인 것 같다. 좀 비약이 심하다는 오해(?)를 사더라도 자기 논지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종류의 래디컬한 태도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닮고 싶다고 해야하나? 내겐 맹아(?) 정도만 있는 자질이고 언제나 조금씩 더 용감해지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딘가 소심한(?) 나만의 방어선이 있어… 블라블라~
여튼 불돌 언냐, 이리가레 언냐 두 저자 모두 책이 너무 어려워서 머리에서 쥐가 났지만 덕분에 부지런히 그들의 해설 문헌(?)들을 뒤져본 결과 그녀들이 좋아졌고 독서력을 높이고 공부를 열심히해서 그들의 저작을 읽겠다고 마음 먹었더랬지. 그런데 이리가레의 <반사경>(스페큘럼)이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되고 만 것이다!
사긴 사야하는 데, 2만 5천원 부담스럽기도 하고, 사더라도 결국 읽을 수 있을 때까지 독서력을 높이려면 3년 정도는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라캉을 읽어볼 생각이었다)하는 마음에 주저하던 중… 선물🎁 받았다. 내맘 같은 문해력의 초천재 intj 잠자냥 님한테!! 정말인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저는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을 샀습니다.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냐고요? ㅋㅋㅋㅋㅋㅋ 이 책에 이리가레 페미니즘 철학의 해설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나 대단하지? 이건 검색한다고 알기도 어려운 정보이며 제가 이 정도로 이리가레에 진심임) 아무튼 3년 뒤에 읽으려던 거 2년 뒤 정도로 당기려면 뭔가 좀 더 관련 문헌들 천천히 사이드로 읽어나가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방금 막 펴보면서 깨달은 지점. 이리가레 온냐 1930년 생. 응? 이 언냐… 이미 영생 중이시네… 조금 만 더 버텨서 우리 같이 영생해요! 이리가레여!
시몬 드 보부아르, 뤼스 이리가레, 샌드라 하딩, 캐롤 길리건, 엘렌 식수, 아이리스 매리언 영, 주디스 버틀러, 깁슨-그레이엄. 책은 페미니즘의 현대의 이론들을 다루는 듯 하고 앞으로 읽어갈 많은 페미니즘 책들의 해제 느낌으로 두고 두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반사경>도 내 손에 들어왔으니, 열심히 읽어야지! 아 진짜. 중년에 무슨 공부 복이 이렇게 터졌나. 역시 사람은 롤 모델을 잘 삼아야 한다. 내가 10대 20대 때 이 열정으로 공부를 했으면 마~ 뫄~ 마~
작년에 아무님 덕에 알게 된 <서울 리뷰 오브 북스>라는 서평 잡지의 주요 저자로 알게된 ‘김홍중’님. 축하합니다. 제 맘에 들어오셨습니다🎉(응?) 진지하게 믿으면서 읽는 한국 사회의 주요 저자로 딱 두명 정희진과 엄기호를 꼽아왔다. 요즘 엄선생님 팬더믹 이후로 책이 잘 안나오셔서… 심심하던(?) 차에 리뷰 오브 북스 0권, 1권에서 김홍중의 글을 보고 3번째 저자가 될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진단과 사색과 참고 문헌이 맘에 들었다. 먼저 가장 최신 작인 <은둔기계>를 구매해 절반 쯤 읽었는데, 역시 좋다. 아포리즘이라서 좀 더 정리가 된 긴 글을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중이고… 이거 다 읽으면 이이의 다른 책을 또 사겠지….
“(55) 세계는 좁아져 있다. 숨을 곳이 없다. 초연결사회의 참된 도덕성은 단절의 능력에서 발견된다. 얼마나 깊이, 진지하게, 창조적으로 끊어질 수 있는가? 끊어짐과 연결됨 사이에 얼마나 생동감 있는 리듬을 설계할 수 있는가? 공동체의 우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은둔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심오한 고립, 심오한 분리, 심오한 비사회성.
(...) 오직 특정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때만 유익한, 그리고 너무 가까워지면 재앙인 태양처럼, 자아는 타자와 행성적 거리를 유지해야한다.”
아,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이 책에 따르면 나는 은둔기계다.
“(65) 은둔기계는 세계를 바꾸거나, 계몽하거나, 비판하려는 열정이 없다. 그는 오히려 세계를 두려워한다. 세계 위에 서지 않는다. 그는 세계의 무서운 힘을 잘 알고 있다. 은둔기계는 지사가 아니며 선비도 아니고 열사도 아니다. 그는 생존주의자다. 그는 도망치면서라도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생존은 그에게 지상의 가치다. 다만, 그 지상성은 신중하게 은폐되어 있다.”
윽!! 근사하다! 이런 글 읽어버리면,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 보일까봐 집 밖에 안나가는 내가 너무 심오하고 근사한 사람인 것 같자냐..😱
핑크핑크한 엘리자베스 문의 <잔류 인구>는… 연말 연초에 쓸모 어쩌고 무쓸모 어쩌고, 가치 어쩌고 무가치 어쩌고 하면서 존재만으로 소중한 사람이 어딨냐고 입 삐죽삐죽 하던 나에게 보란 듯이 이런 책 소개가 등장하길래 찔려서 사봄. ‘무쓸모/무가치의 시선을 기꺼이 부수고 스스로 잔류인구가 된 70대 노인의 행성 생존기’라… 아…. 읽기도 전에 벌써 나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쓸모’ 따위에서 찾아보려 했다는 사실에 살짝 반성을 하게 될것 같은 것이… 그러나 쉽게 반성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런데… 야, 나 그만써 지금 오천자 넘어가고 있어…
세상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의 ‘고립’이라는 상태가 주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혼자) 일하는 나, 북플하는 나, 가끔 유튜브도 만드는 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타자와 접촉하지 않으며 거의 ‘행성적인 거리’를 유지 중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까 가까운 타인에게 소중한 존재일 수 없으니, 쓸모로라도 인정을 좀 받아야겠다 싶은 기분이었던 걸까나.
가끔 들여다 보는 비공개 인스타에서 이제는 거의 만나지 않는 친구들의 새롭게 꾸려지는 가족 사진을 보게 될 때. 특히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 축하하는 마음 한 구석에, 나는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원 가족과는 심리적 거리 두기를 애써서 하며, 대부분 혼자 지내는 중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벤트가 되어버린 지금의 나는. 나는. 음. 아이는 너무 먼 일 같고… 의식적으로 누군가를 곁에 두어야 할까?도 생각했다가… 그런 식의 관계란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라는 쪽으로 항상 결론을 낸다.
턱을 괴고서 조금 더 생각해보는 중이다. 소중한 존재… 무쓸모한 존재…. 가까이에 있는 어떤 특정 사람에게 특별히 중점적으로 친밀하고 소중하지는 못하지만, 넓고 희미하게 별 관계 없는 타인들에게도 조금 조금씩은 상냥할 수 있으며, 내가 그들을 소중히 하면서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만큼 그들도 나를 소중히 여기고 관심 두지 않는다고 느끼며…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 상태가 지금의 내게는 최적의 상태야.
내게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통해 반노동과 탈노동의 가치를 알려주는 책을 번역했던 번역가 제현주. 이 저자의 <일하는 마음>도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투자사 퇴사하셨다는 이 분, 갑자기 ESG 임팩트 투자사 대표가 되셔가지고 책을 내셨네? 무엇보다 어쩌다 대표님 나오는 인터뷰를 봤는 데 탈코도 하셨어… 대표님…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핫! 너무 멋져… 갑자기 생겨난 팬심으로 사버렸음. (좋은 종목 추천해주세요! 뿌잉?) 이 온냐 크게 되서 나중에 대통령하면 좋겠다. 책 제목은 이번에도 잘 뽑았다. <돈이 먼저 움직인다>
마지막 <릿터 33호>는 ‘문학에 있어 정치적 올바름이란’게 궁금해서 샀고, 그 주제를 다루는 부분까지는 다 읽었다. 김봉곤-김세희로 이어지는 창작자들의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들에 내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 걸까?(나는 그이들의 소설을 각각 한 권 씩 읽었고 읽다 말았다)가 어려웠다. 정바비의 노래야 안들으면 되는 거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셀럽들이야 ‘캔슬’해 버리는 데에 어떤 거리낌도 없지만은… 문단 혹은 거의 최저 생계비로 예술하는 창작자들에게 어느 수준의 창작 윤리(?)를 요구해야 한다면 그 기준이 있는 건지, 그건 소비자로서의 권리(?)인건지, 창작 윤리의 감수성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건지? 솔직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희미한 물음표였던 것들을 잡지가 마침 다뤄주고 있을 것 같았고. 샀고. 읽었고. 더 복잡해졌다… (응… 그랬다.)
그래도 공들여 읽긴 읽었으니 내려보는 결론은 좀 뜬금없지만, 나는 *끝까지 읽는 독자가 되어야겠다*
창작자의 창작 윤리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 이렇게 좋은 책들이 넘쳐나서 미친듯이 내 텅장이 텅텅비어가는 데…, 저자들에게 기대하는 어떤 잣대를 올려봐야 독자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생각. 세상에는 훌륭한 저자보다 더 많은 좋은 독자들이 필요하다는 생각. 읽는 사람이, 어쨌든 ‘끝까지 천천히 눈 기울여 읽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지 알라딘이 안망하고, 출판사도 안망하고, 책 만드는 사람들이 돈을 벌고, 그래서 책 팔아서 돈 번 사람이 많아지면, 더 좋은 책이 나오고… 그럼 난 더 좋고, 내 통장은 더 텅장? 얼씨구! 결론이 이상하네요?
깜짝 소식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이 잡지의 한 꼭지에는 알라디너이신 ‘자목련’님도 필진으로 등장하십니다.
“(19) 작가는 곧 개인이며 독자다. 소설 속 문윤의 논리에 따르면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존재해야하는 이유처럼 좋은 소설만 읽는 독자가 필요하다. 그것은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이다. *이쯤에서 독자인 나는 어떤 독자인가 생각한다.*”
그래요, 좋은 독자가 되고 싶다는 제 마음은, 자목련님의 저 문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독자가 ‘좋은’ 독자일까? ㅎㅎㅎ 🤔 그건 알라딘을 계속하면서 차차 생각해보도록 하자. 내가 좋은 독자가 되기 전에 읽는 종족이 멸종 할까봐, 그게 제일 걱정. 사람들아, 책 좀 읽어라! 아니다, 그 전에 사람들아! 책 좀 사라!
바로!! 나 처럼!! ~~~~~ 어쨌든, 이달의 뒤메질 끗! 다음 달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