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동. 한참 일하고 있는 데 책이 왔다. 응? 요새 택배 자제 중인데? 오늘 도착한 책은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이정순 역으로 새롭게 번역되어 나온 <제2의 성> 되시겠다.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받은 것이다. 나 이제 같은 책 다른 버전으로 다섯 권(93년 버전 을유, 21년 버전 을유, 동서문화사) 있는 무려 <제2의 성> 부자다🙄ㅋㅋㅋㅋ 우리의 보부아르 언니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라 생각해본다.
사실 언제나 읽을 목록이 너무 넘쳐나 서평단 신청은 물론 도전해 볼 법도 한 100자 평 독후감 대회도 스킵하는 편인데, 이 책은 너무 사고 싶고, 너무 갖고 싶고, 그러나 사자니 너무 킹받아서ㅋㅋㅋㅋ 구구절절(구질구질)하게 사연을 써서 서평단을 신청했다.
을유에 제출한 내가 이 책을 꼭 받아야 하는 이유, 일부 긁어와 본다 …
“때는 2년 전 가을, 당시 함께 읽던 친구들 모두는 동서문화사의 <제2의 성>을 읽었는 데, 출판사에 대한 맹신(!)으로 저만 홀로 을유문화사의 <제2의 성>을 읽으며 악전고투하다 93년식 단어 버마재비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패잔병처럼 동서의 번역본으로 갈아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1권은 거의다 읽었습니다. 당시의 심경 참조 -> https://blog.aladin.co.kr/jyang0202/11396256)
그러고보니 뜻하지 않게(^^) 책에 악평을 달았네요? 그치만 번역 이토록 오래된거 표지만 갈아서 내신거 ㅜ_ㅜ 너무했잖아요? 아닌가요? 저 진짜 을유 믿고 두권 다샀고, 읽은 게 아까워서 계속 읽다가, 눈이 침침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져... 그런데 이건 뭐 이미 줄 너무 그어버린데다 의미있는 책이 되어서 팔지도 못하고 그냥 갖고 있습니다.(투덜투덜) 혹시 이걸 읽고 계신 출판사 관계자님, 본인도 아마 못 읽었을걸요? 저는 그 책을 340페이지까지 읽고 새 번역으로 동서문화로 다시 읽었다고요..(후략)”
나는 또 백자평 못쓰는 천자만자평자답게, 쓰다 보니 과몰입해서 신청하는 이유만 3천 자 썼다. (아마도 출판사 관계자가 질려서 준 것 같다능 😤) 어쨌든 무려 <제2의 성>을 공짜로 받았다며 있는 그대로 즐거워하고 싶었는 데, 맙소사 10월 3일까지에 안 읽고 안 쓰면 책 반납하라는 편지가… 함께 동봉되어 왔다!! 응? 네?!!!
이번에 을유에서 새로 나온 이 책은 총 1024페이지(!)로서 재생지를 사용한 것인지 두께에 비해 굉장히 작고 가볍다. 그러나, 그러나, 아무리 작고 가벼운 들 <제2의 성>이다. 글씨가… 글씨가… 글씨 크기가. 알라디너 여러분 너무 흥분하지 말고 들으(읽으)세요. 노안 오신 분은 돋보기 필수입니다. 8.5pt에 줄 간격 125% 예상해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물론 나는 읽을 수 있다 읽을 것이다 읽어낼 것이다!!!! (93년도 번역으로도 읽은 나님 아닌가!!) 그러나!!!!!!!!!!!!!!!!!!!!!
이번 달에 뭔가 분주해서 슬쩍 미뤄둔 마리아로사의 <페미니즘의 투쟁>이 560페이지이다. 사실 추석이 있다고 조금 미뤄놓기도 했고, 가독성이 좋다니까 미래의 나를 믿으며 미뤄놓…은 것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제인 에어>까지 읽다가 지쳐서 살짝 제쳐둔 지난달의 페미니즘 책 <소설의 정치사>를 절반 정도밖에 못 읽었기 때문에… 먼저 그걸 읽자는 나 자신에 대한 다짐 때문에 안읽고 있는 것도 한 이유를 차지한(합리화 중😮💨 그런 합리화를 하는 내가 싫어지는 중) 아 모르겠다. 아직 말일이 다가오려면 멀었다... 그러나 슬슬 똥줄이 타기 시작한다. 중간에 <제2의 성>이 끼어들 줄이야…
게다가 이번 달에 누가? 다름 아닌 나라는 내 안의 자아가 읽겠다며 사놓은 책들을 좀 살펴보자.
누누이 나의 최애라고 말해온 최은영을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한국 소설가는 사실 한강이다.
그런데 한강을 좋아한다고 하면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차마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 밝히는(?)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말하자면, 아름답기 때문이다. 문장과 정서가 아름답다. 이 느낌을 표현하면? 난 소설가 한강이 엘프 같다. 뭐여, 갑자기 분위기 판타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아름다움을 표현해본 무리수였따… (ㅋㅋㅋ 미안해요, 한강이여ㅋㅋㅋ) 어쨌든 <작별하지 않는다>가 다루는 소재가 4ㆍ3이라니 안사고 배겨? 일단 사야지. 한강 작가님은 꼭 노벨 문학상을 타시면 좋겠다. 그렇지만 내가 또 노벨 문학상 수상작을 좋아하느냐? 그건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안 좋아할 이유도 없지만 좋아할 이유도 없을 만큼 문학적 소양이 얕다.
그리하여 얕은 내 문학적 소양에 돌을 던진 작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닉 혼비 되시겠다. (닉 혼비는 노벨 문학상 안탔죠?)
피식피식 웃게되는 문체와 쿨내 나는 데 따스한 인간에 대한 시선이 좋다. 소설을 별로 읽지 않는 나로서는 엊그제 읽은 그의 소설 <어바웃 어 보이>가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몇권 더 읽어 볼까? 하던 참에 친애하는 알라디너 공자냥님의 맥주병나발 도발 댓글에 일단 덮어놓고 사고보자! 첫 페이지를 눈으로 훑는 순간, 온다. 오고 말았다.
“(첫 문장) 내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다섯 번의 이별을 연대순으로 꼽아보라면 다음과 같다.
1) 앨리슨 애시워스
2) 페니 하드윅
3) 재키 앨런
4) 찰리 니콜슨
5) 세라 켄드루
모두 내게 정말로 상처를 준 여자들이다. 로라, 거기 네 이름 보여? 넌 10위 안에 어찌 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5위 안에는 절대 못 낄걸, 5위까지는 내게 굴욕감과 비통함을 안겨준 사람들에게만 할애되거든. 너는 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말하고 보니 의도했던 것보다 더 잔인하게 들리는군. 사실 상대방에게 비참함을 안겨주기엔 우리 둘 다 너무 나이 들었지. 그건 다행이야.”
아… 벌써… 재밌잖아…😭 😭 😭… 이렇게 난 닉혼비에게 빠져들 게 되는 것인가..
내 인생에 대머리는 푸코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 데… 벌써 두 번째 대머리가? 앙대… 이건 나의 신념과도 관련된 문제… 아,
넘어가자.
시대의 명저 이유경님의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드디어 구매했다.
3장의 제목은 “여분의 사람이 필요해”이다. 3장의 첫 번째 글을 먼저 뽑아 빼서 읽었다. 소설을 읽고 (내가 읽은 소설의 대부분을 그는 읽었더라) 저자의 감상문을 찾아 읽는 것은 몇 년 사이에 새롭게 생겨난 독서 루틴이다. 끄덕끄덕. 다행히 이번엔 내가 읽은 소설의 핵심이 그가 읽은 소설의 핵심과 많이 벗어나지 않는 듯, 요 느낌은 모처럼(!)이라 좀 행복하다.
그러나 저자와 나는 독서 목록이 거의 겹치지 않는 편이며 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감상일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써내어놓는 다른 관점을 읽을 때, 좀 더 세밀하게는 그가 포인트를 겨냥한 디테일이 내가 간과한 것일 때, 묘한 쾌감을 얻곤 한다. 그러고 보니 2013년의 독서 에세이인데도 전혀 진부하지가 않다. 우와, 알고 있었지만, 역시 독후감계의 맛집 리뷰어다. 천천히 저자 이유경의 책을 따라 그가 안내하는 대로 소설을 더 사랑해 가볼 요량이다.
<법률가들>은 해방공간 안에서 사라진 법조인들(대한민국 최초의 판검사와 변호사)을 추적하고 분류(?)하는 책인 데, 프롤로그를 읽다가 반해서 샀다.
난 대한민국 정부 수립시기의 타노스급의 빌런이 이승만이라면 에보니 모(그 볼드모트처럼 생긴 애 있다. 사심 섞인 충성도가 남다르고 전투력도 꽤 셈)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게 오제도 검사(안 살아봐서 모르지만 70년대는 반공 히어로로 유명했다고 한다)라고 생각하는 데, 안 낀 데 없이 자꾸 껴드는 이 검사님 참 관종이로다 하다가 그럴 수밖에 없는 출생의 비밀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일제 서기관 출신이었던 그는 해방 후 운이 좋아 검사가 된 케이스로 신생 대한민국의 법조 엘리트들 사이에서 가장 취약한 출신임을 반전시킬 뭔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엄청난 전투력(?)으로 일단 자기 열등감을 자극하는 직속 선배들부터 쳐내기 시작하는 데…? 구렁이 같은 욕망 빌런 오제도의 수기가 조금씩 인용되는 데, 오글거리는 자의식을 징그러워해 주면서 읽는 맛이 있었다. 버뜨… 이번 달에 읽긴 그른 듯.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부터는 빌린 책. 요즘 혼자 일하는 데(과연 내가 혼자 일할 수 있는 인간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됨과 동시에) 일에 집중하는 루틴 만드는 게 어려워서 도움을 얻어보려 읽는 중, 김겨울… 너무 멋져. 멋지니까 언니라고 할 테다. 언니, 겨울 언니, 멋져요. 김개미 시인님은 뭐랄까, 생각보다도 훨씬 창작자들이 사는 삶이 건강하구나 했다. 예술가들은 좀 막살아도 되는 거 아닌 감? 하는 내 편견이 깨졌고, 나도 글만 쓰면서도 매우 정갈하게 잘~ 살아가는 고런 창작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이후의 글들은 정말 팁처럼 읽고 있는 데, 저자들마다 글 스타일의 차이가 매우 상이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는 듯싶고, 책의 기획 자체가 센스(!) 있으며 시의 적절했다는 평을 남기고 싶다. 혼자서 살아가는 건 그렇다 치고 혼자서 일도 할 수 있을까? 요즘 스스로에게 부여한 미션은 이미 너무 혼자이므로 조금은 혼자가 아니기 위한 노력들을 하자이다. 주에 1번씩은 꼭 시간을 내서 친구를 만나거나 짧은 여행을 나선다.
<휴거>는 무섭고 재밌는 거 읽고 싶었는 데, (내게는 좀비물과 귀신물 연쇄살인마물 보다… 사이비 종교가 역시 제일 무서운 주제다) 역시 무서워… 무섭다…. 시작부터 백 명 죽이고 시작한다. 읽다가 궁금해서 92년 <휴거> 관련된 동영상 유튜브 보니까 더 무섭다… 내가 다녔던 유치원 이름이 그 사건 때문에 바뀐 것이 생생히 기억나 버렸다😱 아무튼 읽다가 무서워서 안 되겠다 싶어 주말에 친구 있을 때 다 읽으려고 했는 데, 정작 책은 못 읽고 같이 넷플릭스 <D.P>만 봤고… (ㅋㅋ 근데 디피 너무 재밌어버렸고ㅋㅋ) 친구는 갔고, 반납 3일 전… 읽고 싶은 데 역시 밤 되니까 또 꿈에 나올까봐, 못 읽겠음. 무서움..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은 재밌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으니 언젠가 각 잡고 써볼까한다. 무튼 달리기는 여전히 힘들지만 달리기 시작하고 나면 확실히 불안함이 가시는 느낌이고, 다 달리고 난 후엔 고민들이 좀 가벼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는 데, 그게 과학적 근거가 있는 현상이었나 보다. 뭔가 삶의 꿀팁을 얻은 것 같기도 하고, 읽으면서 좋다 좋다. 더하여 내가 달리는 사람이 되길 잘했다 잘했다. 이러면서 읽고 있다. 참, 요즘의 날씨란 두 다리 빼고는 모든 것을 잊어버릴 만큼 좋은 바람이 부는 달리기 좋은 초가을 날씨다.
마지막, <미루기의 천재들> 그렇다. 나는 천재다. 미루기 천재. 사실 읽기 전엔 나만한 천재가 없지, 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은 진짜 천재들이 나온다. 이를테면 따개비 집착남 찰스 다윈이라던가… 나 같은 미루기 수준으로는 겨룰 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든가 다빈치라든가, 마감을 25년을 미뤘다고? 오 다빈치여.... 이 존경스러운 천재여...
“(110) 레오나르도는 많은 일을 벌였지만 자신이 상상한 것을 그대로 구현할 완벽한 기술이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했다. 교황 레오 10세는 일을 제때 끝내지 못하는 레오나르도에게 실망해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그 무엇도 끝내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헬리콥터나 잠수함, 심지어 로봇의 도안을 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그 시절 레오나르도를 고용한 이들이 궁금해했던 건 단 하나였다. 과연 이자가 약속한 날에 약속한 일을 마칠 것인가?
(111) 계약직으로 일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할 순진한 낙관주의로, 레오나르도는 7개월 안에 그림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그림이 예배당에 걸린 건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후였다. 이 사건은 레오나르도를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루기의 거장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레오나르도 본인도 말년에 이르러 끝내지 못한 작업들 때문에 고민이 크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한다지만, 그의 미루는 습관을 그 천재성과 따로 떼어놓을 수 있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그를 대단히 박식했던 사람이자 미학과 해부학, 천문학, 공학을 넘나들며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뤄낸 사상가라고 평한다. 물론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실망시켰던 그 시절에는 그저 산만하고 변덕이 심한 사람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레오나르도가 능수능란했다면, 고객을 만족시키고 마감을 지키는 것에만 열심이었다면, 사람들에게 기억될 만큼 가치 있는 일은 하나도 못 남기지 않았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라면 다빈치 따위와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는다고 내가 내일까지 마감해야 하는 일을 사실 다 못 끝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일을 미루고 이걸 쓰고 있다. 이걸 써야지 천재에 가까울 것 같… 다는 아니고, 사실 내일의 일을 정확하게 배분해놓았기 때문….
아마도 나는 마감을 지킬 것이다. 왜냐면 나는 언제나 마감을 지키는 사람이고… 그래서 안천재다. 젠장!! 이래저래 지혜로운 창조적 핑곗거리를 만들어내며 어떤 것들은 미루고 그러면서 스스로가 부여한 스스로의 너무도 많은 매일의 투두 리스트(!)들을 지워가다 보니…(내 인생 내 성격 진짜 지겹다) 잠시 깜빡한 반납 3일을 남겨두고 있는 책이 4권 남았고… 걔네들 빼고도 이번 달에 어떻게든 읽어야 할 책의 페이지는 약 1600페이지 정도?
그러니까 지금 나는… 아……
걱정이다. 스스로가 뭔가 지옥을 도입한 것 같은 이 익숙한 느낌은 마치 몇 달 전에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권을 4일 연속으로 쉬지 않고 읽다가(그러나 다 못 읽고) 거의 녹초가 되어 진저리 치며 반납했던…(보름 넘게 책 태기 왔음). 선택과 집중… 선택과 집중. 아니야, 나에게는 추석이… 추석이… (중얼중얼) 무튼 일단 오늘은 을유의 뉴 버전 <제2의 성>을 시작한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