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달이 시작되었다,

봄이다. 이제는 겨울옷들을 정리하고 봄을 꺼내 놓고 옷장정리도 해야 한다,

아이는 오늘도 활기차게 놀고 엄마랑 싸우고 ,,,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오늘은 문화센타에서 만들기를 잘했다,

그리고 책은 오후 늦게 되어서 읽었다,

 

 

 

 

 

등등 ...아이는 책을 보기 시작하면 나를 너무너무 힘들게 한다.

한참을 읽다가 지쳐서 혼자보라고 하면 자신은 못한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오늘은 그림위주의 책을 많이 보았다,

먼저 책을 읽어주고 혼자서 보게 한다.

그러면 혼자서 한참을 읽다가 새로운 책을 들고 온다,

그래서 그 시간에 나도 책을 본다,

아마 나랑 같이 책을 읽는것을 좋아하는것 같다,

앞으로도 류랑 책을 많이 읽어야지...

사월 기다려라 우리 모녀가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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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5-04-02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번개 안가세요? 류도 같이 번개 가셔서 좋은 분들 많이 보시면 좋으실텐데요. 전 못가서 아쉬워요~

울보 2005-04-0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친정에 가요..
류가 할머니를 너무 좋아라 해서요,,
저도 가보고 싶은데,,
 
 전출처 : 바람구두 > 네버랜드에서 네버랜드로 떠난 고양이
100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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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는 "슬픈 인연"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단, 단 한번의 눈마주침으로/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슬픔은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못본체 했고,/ 사랑하면서도 지나쳤으니/ 서로의 가슴의 넓은 호수는/ 더욱 공허합니다// 자신의 초라함을 알면서도/ 사랑은 멈출 줄을 몰랐고,/ 서로가 곁에 없음을 알면서도/ 눈물은 그칠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서로가 한 발씩 물러나/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이들을 우린/ 슬픈 인연이라 합니다" <전문>

그의 인연은 슬프고, 미묘하며 또한 신비롭다. 그것은 "단, 단 한 번의 눈 마주침"으로 서로의 가슴에 "넓은 호수"를 만들고, 눈물을 그칠 줄 모르게 만든다. 그럼에도 결국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서로가 한 발씩 물러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이 때의 인연이란 사랑이란 인과율에 얽매였으나 서로의 사랑이 맺어지지 못함을 알게 되고, 결국 한 발씩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인연이란 운명이기도 하다. 

인연(因緣)...
불교에서는 일체(一切) 중생(衆生)은 인(因)과 연(緣)에 의하여 생멸(生滅)한다고 보았는데, 인이란 결과에 대한 직접 원인을 말하고, 연이란 그로 인해 얻게 되는 간접적인 힘(결과)이다. 인이 전생의 업에 의해 이승에서 연결된 하나의 고리라면, 연은 전생의 연결고리에 현재의 나란 존재가 만들어내는(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자유 의지가 관여할 수 있는) 현생의 업(결과)에 해당한다. 불교에서는 인연이 발생하는 것을 "연기(緣起)"라 하는데, 인과 연은 상호작용하는 것이므로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만물은 인연으로 얽매여 있으므로 나와 너는 남이 아닌, 둘이 아닌 하나란 사상으로 이어진다. 너와 나는 남이 아니므로 너를 구원하는 것은 곧 나를 구원하는 것이 되고, 내가 남을 돕는 사랑(혹은 구원)을 일컬어 불교에서는 자비(慈悲)라 부른다.

사랑 '자', 슬플 '비', 물론 저 '자'를 그저 사랑이라고 옮길 수도, '비'자가 그저 슬프다는 뜻만 가진 것은 아니다. 사실 자비의 속뜻은 세상 사람들의 고통스러움을 함께 탄식하며 슬퍼한다는 뜻이다. 그러고보니 윤동주의 시와도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인간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인연의 씨줄날줄이 빚어내는 번뇌로부터 비롯된다. 석가의 사랑인 자비는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에 괴로운 것이고, 우리 같은 무지랭이 중생은 인연으로 비롯된 사랑때문에 그 사랑의 괴로움을 내 것으로 하기에 괴롭다.

여기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 살았던 한 마리 얼룩 고양이가 있다.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을 읽노라면 기독교 문명권을 제외한 다른 문명권에서 상상했던 저승의 지리학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는데, 대개의 저승의 지리학엔 소위 "중간계"가 존재한다. 지옥에 보내자니 아직 이승과의 인연 혹은 해탈할 기회가 남아있는 영혼, 천국(극락)에 보내기엔 아직 이승의 업이 쌓인 존재들은 이승에서의 업을 다 씻어내기 위해 혹은 전생의 업보에 대한 벌을 받기 위해 다시 이승으로 보내진다.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백 만 번이나 죽고 다시 살았다는 이야기는 굳이 불교적 윤회전생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신화적 이야기이다.

"사노 요코"의 이야기는 소설의 문체에 비견할 수 있는 그림책의 그림체와 캐릭터에도 등장하지만 드러내놓고 교훈적이지 않다. 백만 번을 죽고 살아난 고양이라면 의당 그럴 것이라고 어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때묻고, 거만한 표정의 얼룩 고양이. 얼룩 고양이가 백 만 번 죽고, 다시 태어나는 동안 고양이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리란 건 이미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된다. 이 심드렁한 표정의 고양이는 늘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새삼스럽게 이런 게 다 뭐야!" 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얼룩 고양이의 냉소는 백만 번이나 반복된다. 중요한 건 백만 번이란 횟수가 아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출근길 만원 지하철 안,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 미술전시장에서 한 꺼번에 수 만 번의 미움을 같은 시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인연들에게 쏟아내지 않는가. 가령, 이렇게 "이 사람들이 말이야. 집구석에나 처박혀들 있을 것이지. 뭐 처먹을 거 있다고 돌아다니냐."  한 마디 뱉어낼 때 어쩌면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상처받을 지도 모른다.

사노 요코는 반복한다.

"한때 고양이는 임금님의 고양이였습니다. / 한때 고양이는 뱃사공의 고양이였습니다. / 한때 고양이는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였습니다. / 한때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였습니다. / 한때 고양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였습니다. / 한때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였습니다."

"싫어 했습니다. 싫어 했습니다. 싫어 했습니다. 싫어 했습니다. 싫어 했습니다." 이 장면들을 보노라면 얼룩 고양이의 잘난 척하는 얼굴이 떠오르면서 얼핏 얼룩 고양이의 본성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임금, 뱃사공, 서커스단, 도둑, 홀로 사는 할머니, 어린 여자 아이와 고양이의 관계를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고양이가 이전의 누군가와 관계맺고 있던 형식은 주인과 그 애완동물, 소유와 종속의 관계였을 뿐 진정한 관계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양이는 누군가의 소유물이었던 그 횟수만큼 관계맺은 상대를 싫어했다. 이런 관계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분화될 수 있다. 진정한 관계맺기의 형식은 소유나 종속이 아니란 사실과 누군가와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선 우선 그 관계가 대등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란 누군가의 꿈에 상대방이 종속되거나 소유되거나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자신만의 세계와 꿈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제 아무리 멋진 경험, 꿈이라 할지라도 다른 존재를 억압하는 형태로 출현할 때, 그것은 종종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런 폭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은 가부장적 가족 관계이다.

마지막으로 환생했을 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다. 고양이는 도둑의 고양이가 아니라 그 자신이 도둑고양이였고,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다. 그는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고양이였고, 이전의 상처들이 있으므로 누군가의 소유나 종속된 고양이가 되길 원치 않았다. 그런 얼룩 고양이는 모든 암고양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먹이로, 아양으로 유혹하는 고양이들에게 얼룩 고양이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자신의 거만함이, 혹은 상처가 이들과 관계 맺는 것을 거부하게 만들었을지도, 인연의 새로운 싹이 자라나지 않는한 백만 번 죽어도 아플 일은 없을 것이었다. 얼룩 고양이가 상처받는 것, 상처 주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존재들과 관계, 인연을 맺지 않았다고 해서 이 얼룩 고양이가 이기적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마치 네버랜드에서 영원히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는 피터팬터럼 비록 영원히 어린이로 머물 수는 있겠지만, 그곳엔 고통도 슬픔도 없는 대신 성장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룩 고양이는 성장하지 않았고, 성장을 거부한다는 것은 타인의 도움도 기대치 않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도 싫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다.

하얀 암고양이가 얼룩 고양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얼룩 고양이를 성적인 미숙함, 어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고양이라고 한다면, 성숙한 암고양이로서야 이 고양이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얼룩 고양이는 아직 어린 아이처럼 하얀 고양이 앞에서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다. 

"난 백만 번이나 죽어 봤다고!"

그러자 하얀 고양이는 "그러니." 라고만 대꾸할 뿐이었다. 자신을 몰라주는 하얀 고양이의 행동에 화를 내는 얼룩 고양이의 모습은 더욱 미성숙해 보인다. 다음날에도 얼룩 고양이는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다.

"너 아직 한 번도 죽어 보지 못했지?"

하얀 고양이는 단지 "그래." 라고만 대꾸할 뿐이었다. 얼룩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앞에서 공중 돌기를 세 번이나 해보이면서 "나 서커스단에 있었던 적도 있다고." 하지만, 하얀 고양이는 "그래." 라고만 대꾸할 뿐이다. 얼룩 고양이는 자신을 앞세우는 미숙함 탓에 관계 맺는데 실패한다. 이번에도 "난 백만 번이나...." 라는 말을 꺼내려다 얼룩 고양이는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라고 하얀 고양이에게 묻게 되었다. 이제 이 둘 사이의 관계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그 변화는 일방적인 통보나, 자기 자랑이 아닌 대화로 시작된다. 그제서야 하얀 고양이는 "으응."이라고 대답하고, 얼룩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의 분신인 새끼 고양이들을 많이많이 낳아가면서 말이다. 이후부터 얼룩 고양이는 "난, 백만 번이나....." 란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고양이는 나 자신보다 하얀 고양이와 아기고양이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타불이인 셈이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들도 자라 뿔뿔이 흩어지고, 하얀 고양이는 조금씩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하얀 고양이는 세상을 떠난다. 얼룩 고양이는 밤이 되고 아침이 되고, 또 밤이 되고 아침이 되도록 백 만 번이아 울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도 하얀 고양이 곁에서 숨졌다. 사노 요코가 백 만번이란 횟수만큼은 아니더라도 같은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반복함으로써(국내 번역에 비해 일어 원문을 살펴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는데) 반복의 의미를 더욱 잘 살려내고 있다. 비록 백 만 번을 환생했으나 그 백 만 번의 삶과 단 한 번의 삶 가운데 얼룩 고양이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을까? 어떤 삶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얼룩 고양이가 두 번 다시 환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불교적으로야 해탈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사노 요코의 이 이야기를 반드시 불교적인 우화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앞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백 만 번 인연 맺기를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미 백 만 번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을 다람쥐 쳇 바퀴 돌 듯이라고 말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매일 한 번 잠들 때마다 한 번씩 죽는다. 1년에 365번 죽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과연 얼마나 훌륭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

못본 체 지나치고, 더이상 그리워할 것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또 그리워하는 만큼 스스로를 성숙시키기 위해 노력하는가? 스스로 대등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100만 번 산 고양이"는 우리에게 인연의 고리에서 피어난 관계맺기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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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몇점을 줄까요,

류랑 즐거웠습니까?

대인관계는요.

날씨는요?

건강은요?

신랑은요?

아무것도 대답할수가 없다,

다만 류랑은 즐거웠던 것 같다. 그릇만들기도 잘하고 밥도 잘먹고 놀이감 정리도 잘하고 퍼즐도 잘하고,책도 많이 읽고 일찍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것만 빼면 내일은 사진정리를 하자,,

몇일째 미루고 있는 사진정리를 열심히 해야지,,,

그럼 모두모두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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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5-04-02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하시잖아요.
저는 간신히 아이들하고 놀아주었는걸요.
허긴 그것도 친구집에 데려가서 놀 수 있게 해준 정도입니다만^^;;

책읽는나무 2005-04-02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정리....ㅡ.ㅡ;;
전 지금 2004년도 1월 부터의 사진을 정확히 말하자면 2003년 12월의 사진을 이제 현상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정리할지 깜깜합니다...ㅠ.ㅠ

세실 2005-04-02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사진정리...제가 풀어야할 숙제입니다. 아마도 2년치는 그냥 봉지에 있는건 같지요~ 한때는 도서관 주말근무할때 사진이랑 앨범 들고나와서 사진밑에 설명 일일이 적고, 그림도 그려 넣었는데...전설이 되어버렸습니다. 열심히 하세용~

줄리 2005-04-02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사진정리 한다 한다 하면서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울보님 하루하루를 너무 알차게 보내시는것 같아요. 늘 부럽다는...

울보 2005-04-0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다했습니다,,어제 밤늦게 그래서 새벽에 잠이 들었지요,,
 

사람에게 장애가 있이 태어난다는것,

그건 서로에게 얼마나 힘든일일까?

난 내주위에 그런이가 없어서 그저 아하!힘이 들겠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본인들과 그들의 식구들의 고통은 아주 클것이다.

오늘 류랑 같이 버스에서 한아이를 만났다,

그아이는 류보다 조금 어려보이는데 그냥 눈으로 보아도 조금 아파보였다,

그런데 류가 동생이라고 동생하는데 그 아이가 침을 흘리며 손을 약간 흔드는 상태로 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류의 반응이 가만히 손을 잡는다.

"엄마. 동생이야..동생"하면서

이다음에 류가 커서도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의 손을 잡아줄수 있을까?

난 류가 그런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나도 잘 하지 못하지만 내가 한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조금은 마음미 넓어지는건지 아니면 철이들어가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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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과 탁월! 타이밍 원칙 알기

1. 운동하기 전에 마셔야 효과 있다

녹차 마시고 운동하면 곧바로 체지방 연소가 시작된다. 이온 음료처럼 30분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운동하기 전엔 꼭 녹차를 마셔주자. 찻사발에 물을 붓고 가루차 1스푼을 넣은 다음, 거품이 나도록 저어 마신다.

2. 다이어트할 때 꼭 마셔야 한다

녹차에는 갖가지 영양소가 들어 있다. 다이어트할 땐 영양상 불균형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녹차로 균형을 잡아준다. 특히 찻잎을 우려 마시는 것보다 가루차를 물에 타먹는 것이 녹차의 섬유질과 비타민 A 섭취에 효과적.

3. 물은 눈뜨자마자, 녹차는 식후

공복에 먹어주는 물 한 잔은 변비 치료와 다이어트에 좋다. 하지만 녹차는 빈속에 마시지 말고 식후에 마실 것. 소화를 촉진하고 지방 연소까지 도와 뱃속에 과다한 지방이 쌓이는 걸 막아준다.

4. 식후와 식간에 5~7잔을!

너무 많이 먹어도 좋지 않다. 식후에 한 잔씩 3잔, 아침과 점심 사이, 점심과 저녁 사이의 식간에 1잔, 자기 전에 1잔 정도가 딱 좋은 양. 틈나는 대로 마시고 싶으면 차를 엷게 우려내 물처럼 마시는 것도 좋다.


5. 매끼 밥 먹을 때마다, 밥 위에도 뿌려 먹기

좀 더 빠른 방법으로 효과를 보고 싶다면 녹차가루를 씹어 먹으면 좋겠지만, 웬만한 비위 아니면 날로 먹기 힘들다. 밥에 녹차를 뿌려 먹으면 반찬과 함께 먹을 수 있어 역하지도 않고 지용성 비타민 섭취에도 좋아 인기.

6. 기름진 요리 먹을 때도 녹차 챙기기

느끼하고 살찌기 쉬운 라면이나 고기 같은 고열량 음식에는 녹차가루를 살짝 뿌려서 먹는다. 느끼한 맛이 없어질 뿐 아니라 지방으로 전환되어 몸속에 쌓이지도 않는다.

7. 이온 음료에도 적절하게 타 먹으면 갈증 해소 탁월


운동과 병행하는 녹차 다이어트에는 이온 음료가 필수. 갈증이 심하게 날 때는 이온 음료에 가루녹차를 섞어 흔들어 마신다. 갈증이 멈출 뿐 아니라 입 안이 상쾌해진다. 몸속으로의 흡수율도 높아져 효과 만점.
◆ 녹차 마셔주면 효과 두 배, 녹차 운동 요법

1. 외출 전 녹차 한 잔, 워킹 요법


외출하거나 운동하기 전, 시원한 녹차를 마신다. 문을 나서면서 운동 시작. 허리를 곧추세우고 무릎을 높이 들면서 배 근육을 끌어당기듯이 걷는다. 힘들긴 하지만 올 바른 자세로 걸어야 유산소 운동이 되고, 짧은 외출이라도 효과를 볼 수 있다.

2. 녹차 마시면서 스트레칭, 업무 중 다이어트 요법
척추를 곧게 펴고 배의 근육을 긴장시켜 똑바로 앉아 있기만 해도 자세가 교정되고 뱃살이 처짐을 예방해준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는 똑바른 자세에서 양다리를 아래로 쭉 펴준 다음 가슴 쪽으로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동작을 12~15회 정도 실시할 것. 커피나 과자 같은 열량 많은 음식은 피하고, 물 대신 녹차를 마시자.

3. 녹찻물에 몸을 담근다 차 목욕 다이어트 요법


목욕탕에 물을 받아놓은 상태에서 거른망에 싼 녹차를 담가놓는다. 따끈하게 우려놓은 녹찻물에 몸을 담그고 스트레칭해준다. 무릎을 세우고 앉아 발목을 구부렸다 펴는 동작과 수건 양쪽 끝을 잡고 팔을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기를 반복. 예쁜 보디 라인을 만들 수 있다.

4. 녹차 마시고 가볍게 운동! 잠자리 체조 요법
잠자기 전 배가 출출할 때, 엷게 우린 녹차를 마신다. 이때, 가벼운 체조를 해주면 다이어트 효과 만점. 하늘을 보고 누워 두 발을 쭉 펴고 양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긴다. 구부린 다리를 천장으로 쭉 밀어올렸다가 가슴에서 당기는 동작을 천천히 반복한다. 다리 부기가 빠지고 뱃살을 빼는 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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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5-04-02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전 하지 않을래요..

울보 2005-04-0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