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거닐던 해질녘의 부둣가 어느 전봇대에 원양어선 선원을 모집하는 전단지가 나부끼고 있었다. 1년 반의 선원 생활이면 남은 3,4학년의 학비/생활비 걱정도 없고, 잘하면 짧은 한달간의 유럽 여행도 가능한 금액이었다. 어촌에서 상경한 고학생에게 생활비를 벌기 위한 노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4년의 대학 생활동안 7개월 정도의 막노동을 하였다. 곰방,비계공,배관공,미장공,시다,잡부,철근공,콘크리트,황태덕장 상덕,정원사...땅의 많은 일을 경험한 나에게 바다의 소식은 나름 매력있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돈이 가장 큰 매력이었지만. 그당시의 난 어쩌면 졸업후 나의 삶이 지금처럼 사무직으로 굳어질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졸업전에 세상의 다양한 일들을 접하고 싶어했다. 사실 이것도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한 하나의 자기 최면의 일종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평발, 신검시 평발 판정을 받은것이 생각났다. 훈련소에서 최종 재검이 있다고 하기에 병원에서 다시 X-RAY와 진단서를 끊고 돌아서는 나의 뒷통수를 향해 의사는 "50만원 정도면 면제 가능하겠는데요"라고 말했다. 젊기에 가능한 결정을 하고 돌아섰다."흥". 이런 저런 정의니 논리를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왠지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게 젊음인거다.

너의 어머니에게 다시는 너의 평발을 내밀지 말아라.아프고 괴롭겠지만, 나라의 더 큰 운명을 긍정하는 사내가 되거라. 네가 긍정해야 할 나라의 운명은 너와 동년배인 동족 청년과 대치하는 전선으로 가야 하는 일이다. 가서, 대통령보다도 국회의원보다도, 그리고 애국을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보다도 더 진실한 병장이 되어라.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p20-



재검에서 떨어진후 돌아가던 봄밤은 조용조용 봄비가 내렸다. 훈련소를 끌려가던 버스는 암울하고 적막했다. 내 인생 절대 잊지 못할 노래가 되어버린 김건모의 "잠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는 왜 그리 처량한던지. 가슴과 옆구리로 날아들 군화발과 배신의 이미지로 낙인찍힐 치욕보다도 뒷주머니에 고이 접혀있던 원양어선 선원 모집 전단서는 또 왜 그리 눈에 밟히던지. 자정이 되기전 도착한 훈련소에서 숱한 군화발과 치욕속에서 이를 갈며 생각했다.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그러나, 얼마전 다시 평발을 내밀었다. 회사 통합후 새로 부임한 부회장이 마라톤과 등산 매니아였다. 천성이 뒷통수에 반골이 있는지라 강압적인 마라톤에 참여를 거부하고 평발을 내밀었다. 몇번의 강압에도 버티었다. 총무팀에서 이 문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라톤 불참 사유 - " OO본부 OOOO팀 잉과장 - 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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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8-2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마노아 2007-08-21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을 앞세우며 추천! 크흑...;;;;

Mephistopheles 2007-08-21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과 메차장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하는 페이퍼였습니다.^^

프레이야 2007-08-21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발이 많으시구나.. 아무개님에 메차장님에 잉크님까지..
강압적인 건 뭐든 싫어요, 그죠? ^^

비로그인 2007-08-21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발만 아니면 내 이상형인데;;; 아쉽 잉과장님 :)

잉크냄새 2007-08-2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아무개님 / 무엇에 동감하시는지요. 평발? ㅎㅎ

비연님 / 김훈이 평발이었다면 아들에게 저러지 못할겁니다.

마노아님 / 눈물이 훈련소 때인지 총무팀에 걸린 치욕 때문인지...ㅎㅎ

메차장님 / 그럼 메차장님도 아시겠네요. 박지성이로 인하여 평발이 더 구박받음을...평발도 다 "사랑해요 지성"이 처럼 뛸수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혜경님 / 설마, 혜경님도 평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모든것을 싫어라 합니다.

체셔냥 / 평발에 대한 편견을 버리세요. 우리 지성이도 있잖아요.

비로그인 2007-08-21 12:27   좋아요 0 | URL
ㅎㅎ 지성군은 원래 좀 좋아했어요.

프레이야 2007-08-21 12:42   좋아요 0 | URL
저 말고 옆지기요.ㅎㅎ
그래서 오래전 군에서 훈련 받을 때 참 불편했다고 하더군요.^^

잉크냄새 2007-08-23 12:35   좋아요 0 | URL
체셔냥 / 그럼 지성이를 버리세요.

혜경님 / 아마 행군이 가장 어려웠을 겁니다.

비로그인 2007-08-2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페더러랑 샘프라스랑 11월에 테니스 매치 있답니다
것도 한국, 잠실에서요! 캬오-

은비뫼 2007-08-22 0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발의 슬픔이네요. 글이 참 좋아요, 잉크냄새님. :)
제가 아는 친구와 언니도 평발인데 많이 걸으면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쉬엄쉬엄 내미세요~

잉크냄새 2007-08-2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냥 / 진짜 세기의 대결이라 할만하네요. 개인적으로 샘프라스의 우승을 바라지만 나이를 속일수는 없을것도 같네요.

은비뫼님 / 슬픔이라고 까지야...ㅎㅎ 지성이 때문에 자주 내밀수가 없어요. 요즘은 "지성이도 평발인데.." 이 말이 통용되기 때문에 내밀기 무안해요.

2007-08-23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07-08-2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발이신분은 인라인 못타시려나요?^^
아들아 평발을..은 지금 상병으로 복무중인 남동생이 첫 휴가나온 마지막날밤. 누나인 제가 읽어준 글이랍니다.. 눈물을 감추려 기어코 돌린 옆모습 그러나 조금씩 들썩이던 어깨. 그래서 잊지 못하는글이지요.^^

가시장미 2007-08-27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화발과 치욕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늘 우리 주위에.. 으흑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드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무서운 것이던 드러운 것이던,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겠죠.
전 그 대처에 대해 많이 미숙한 사람인 것 같은데, 잉크님은 안 그러신 것 같네요. ^^

잉크냄새 2007-08-28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일단 불편한 신발을 신고 하는 운동은 다 별로입니다. 누나가 읽어주는 김훈의 저 문구들,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가시장미님 / 하하, 어리숙한 평발 대처법을 읽으시면 아시듯이 저도 참 미숙합니다. 다만 그 미숙함을 부끄러워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2007-08-29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29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농담

- 이문재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

뜨거운 국수의 김이 안개처럼 엄습해오던 비 내리던 저녁 나절,
가슴 한켠을 치달아 올라오는 뜨거운 그리움을 뜨거운 국수발로 가라앉히던 시절에 아련히 떠오르던 얼굴 하나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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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8-08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점심으로 차가운 국수발 먹었슴다^^

비로그인 2007-08-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해라, 시간이 없다 .
사랑을 자꾸 벽에다가 걸어두지만 말고 만지고 , 입고 그리고 얼굴에 문대라.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으며
내릴 곳을 몰라 종점까지 가게 된다 할지라도 아무 보상이 없으며
오히려 핑계를 준비하는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랑해라. 정각에 도착한 그 사랑에 늦으면 안 된다.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 오늘 읽은 것, 이병률님의 끌림 중에서요 :)
구질구질한 댓글보단, 이런 인용이 나을 거 같네요. 잉과장님.

잉크냄새 2007-08-0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님 / 차가운 국수발로 누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죠.^^

체셔냥 / 이거 왠지 동병상련의 회초리 같은 느낌인데요.

플레져 2007-08-09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안녕하시지요? ^^
오랜만에 들른 (아, 네, 제 서재는 매일 들르지만 아직 습관이 안되서 브리핑 안보고 훌쩍~ 나가버리곤 해요. 흐흐) 서재에서 찰떡처럼 달라붙는 시를 만났습니다. 문득, 국수는 왜 먹고 싶은건지... 양념같은 원망도 조금 뿌려놓고 갑니다 ^^!

잉크냄새 2007-08-09 09:55   좋아요 0 | URL
플레져님, 오랫만이네요. 문득 생각이 날때는 울컥울컥 국수를 먹어주는 겁니다.ㅎㅎ

2007-08-10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0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0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7-08-0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시인데 오랫만에 웹에서 만나니 새롭네요.
음악은 이 시와 함께 올리신거죠?
국수 먹고싶어졌어요~.
책임지시라고...ㅋ

은비뫼 2007-08-1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시 너무 간만에 읽어요. 그때도 읽고 나서 내 맘과 같아라...했는데 말입니다.
덕분에 다시 읽어봅니다. 감사해요, 잉크냄새님~ :)

잉크냄새 2007-08-10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비님 / 음악은 다른 분에 올려주신 페이퍼에서 흘러나오는 거랍니다. 국수는,,, 이 시는 사실 국수랑 무관하기에 제가 어찌해드릴수가 없나이다...ㅎㅎ

은비뫼님 / 어느날, 어느 시가 가슴에 콕 박히는 날이 있죠. 저도 오래전부터 보던 시인데 얼마전 가슴에 슬며시 자리하더군요.

가시장미 2007-08-1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윽, 시선이 한참을 머물었드래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제 종소리, 세상에서 제일 크게 울려퍼졌으면 좋겠는데...
그러다가 아파서 저 죽으면 어쩌죠? _-_)~ 켁!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인데.
행복만큼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요?
사랑하면 다 줄 수도 있어야 하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깟 자존심도 때로는 버릴 수도 있는건데,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늘 말로만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아프면, 알 수 있겠죠?
제가 아직 사랑을 잘 모르나봐요. 으흐

잉크님. 가슴을 울리는 시 감사해요.
오늘 휴일인데...평온하신 하루 되시길 바래요..

잉크냄새 2007-08-20 12:37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랑이 그리 어려운가 봅니다. 어디 아프지 않은 가슴이 있겠나요.^^

순오기 2007-08-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문재, 전 '노독'이 참 좋더군요.
제 서재에 잉크를 흘려주셔서 따라 왔어요. 축하 댓글도 감사하고요!
어떤 것으로도 통하는 것이 있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죠! ^*^

잉크냄새 2007-08-29 12:47   좋아요 0 | URL
님의 소개로 "노독"을 찾아서 읽어보았어요.
좋은 시 소개, 감사드려요.
 
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 호미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적극적인 생태주의자도 환경론자도 아니다. 다만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모든 영혼이 깃든 사물들의 조화로움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라 여기고 있다. 그런 삶의 실천적 인물이었던 니어링 부부의 "덜 갖되 충실한 삶" 혹은 "조화로운 삶"을 나름 삶의 모토로 삼고자 한다. 물론 실천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지만.

작가는 스스로를 생태주의자라 말한다.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과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들이 은연중에 잃어버리는 삶의 한 단면을 이야기한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낙오자로 낙인 찍히는 세태 속에서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 미학의 중심에 자연이 있다.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남겨져야 할 자연이 있다.

인간이 걷는 속도는 시속 4키로이다. 봄꽃들이 북상하는 속도도, 가을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도 인간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 대지를 버티고 선 두 다리로 땅을 딛고 걸어본 이는 느낄수 있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이라는 한 영혼이 소유할 수 있는 삶의 무게와 범위와 속도를 느낄 수 있다. 무한 질주의 도로 위에서 영혼은 풍경속으로 편입되지 못한다. 오직 길 위에서만, 자연이 허락한 그 속도에서만, 주어진 삶의 무게만큼 짊어질 때에만 인간의 삶도 풍경이 될 수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수많은 잃어버린 것들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것은 "발효의 시간"이다. 발효는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머리에 이르는 가장 먼 거리, 편지의 봉합과 개봉 사이에 깃든 손 떨리는 기다림의 시간, 당신과 나 사이의 바람이 춤추는 거리... 그 사이사이에 깃든 숨 막히는 감정의 떨림과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발효의 시간"이다.

올 가을에는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로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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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시 2007-07-1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이 책 관심은 많았는데, 아직까지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리뷰 보니까, 갈팡질팡하게되네요^^

비로그인 2007-07-2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의 시간, 멋지네요...
발효와 부패의 미묘한 차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갑니다.
과연 그 양자를 어떻게 구별해낼 것인가를...

잉크냄새 2007-07-2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탈이님 / 반가워요. 이 책을 구매하기까지 발효의 시간이 필요한가 봅니다. 가을쯤에 읽으셔도 좋으실듯...^^

체셔냥 / 발효란 더도 덜도 아닌 어느 정도의 적당함이라면 부패는 발효의 신뢰구간을 넘어서는 기각역에 존재한다고 해야할까요?ㅎㅎ

춤추는인생. 2007-07-2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서 일으켜지는 고요한 바람 같은 떨림. 그 잔잔한 진동에
기대어 걷고 싶어져요. 가슴속에 하나하나 새겨지는 저마다 다른 촉감들을 몸으로 느껴가면서요.... 오늘은 어떤무늬가 우리곁에 다가와. 발효의 시간들을 통과해나갈지.
가만 가만 기다려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7-20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세상이 제 속도를 따랐으면 좋겠어요. 제가 같이 하기엔 너무 빨라요, 요놈의 세상!

잉크냄새 2007-07-2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사람마다 지닌 파문이 잔잔히 흘러 물결치듯 만나는 지점, 그곳이 떨림의 시간인가 보네요. 저도 가만가만 기다려봅니다.^^

마음님 / 세상은 세월과 같아서 그리 녹녹히 따라주지 않나 봅니다. 그저 자신의 가슴에 길 하나 품고 살아가는수 밖에요.^^

2007-07-22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23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07-07-2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미워요. 나 춤인생님 아닌데 흥흥흥-_-

잉크냄새 2007-07-23 12:48   좋아요 0 | URL
엇, 이런 실수를...관찰력이 대단하세요...ㅎㅎ

은비뫼 2007-07-24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
가을에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로 걷는 이를 보면 잉크냄새님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가시장미 2007-08-02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의 시간이라.. 멋진 말이네요. ^-^
제가 잠수 탄 시간도 발효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랜만에 들렸는데도, 잉크 냄새가 향으로 음악으로 전해져..귀까지 즐겁습니다.
저도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에 대해 알고싶어요. 그동안 너무 빠르게 달려왔거든요.
빠르게 달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지도, 그렇게 믿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왜 그래야만 하는지...
궁금해져서. 잠시 쉬었다 가려합니다. 잉크님.. 잘 지내시나요?

잉크냄새 2007-08-06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비뫼님 / 오래전부터 생각하곤 했는데, 아직 걸어보지 못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이라는 말만 자꾸 되뇌이네요.

가시장미님 / 앗, 오랫만이네요. 오랜 시간 님 스스로를 더 숙성시키시고 오신 느낌이네요.그러한 삶의 미학들은 누군가 알려줄수도 없는것이고 배울수도 없는것 같네요. 스스로 살며 느끼며 몸으로 체화될때가 있겠죠.^^

2007-08-07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0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8-0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1님 / 네, 님 서재로 슝~~
속삭2님 / 가을은 많은 면을 가지고 있는 계절인듯 합니다. 그래서 어떤 속도로 걸어도 멋진 계절인가 봅니다.

프레이야 2007-08-2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어느새 가을단풍이 그리워지는 리뷰에요^^
당신과 나 사이의 바람이 춤추는 거리..

잉크냄새 2007-08-20 18:07   좋아요 0 | URL
이제 그 속도를 몸이 느끼도록 슬슬 걸어야하나 봅니다. 날이 좀 서늘해지면요.ㅎㅎ

여울 2010-07-24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효,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쓰는 말들이 겹쳐 친근합니다. ㅎㅎ 팔랑팔랑 왔다가 취해서 돌아갈 것 같군요. ㅎㅎ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가끔 마실 나올께요. ㅎㅎ

잉크냄새 2010-07-26 17:07   좋아요 0 | URL
네, 김치나 된장이 아닌 삶의 발효는 가슴에 어떤 향을 남길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도 가끔 마실 다닐께요.
 

나, 땅(진창)에 무수히 넘어졌지만, 그 땅(진창)을 짚고 일어서지 못했다. 일어서려 하기는커녕, 넘어졌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넘어졌다는 사실은 인정했을 때는, 나를 넘어지게 한 원인을 밖에서 찾고, 그 책임을 외부로 돌리기에 바빴다. 내가 진창에서 일어서는 동안,적지 않은 주변 사람들이 내 몸에 묻은 진창 때문에 지저분해졌다. 진창에 넘어져 있는 동안, 나는 없었다. 나는 넘어지기 이전, 또는 다시 일어선 이후에만 있었다.

이문재 <이문재 산문집>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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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7-1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라고 했던가요?

도종환의 시가 생각나네요
아! 저도 모르게 자꾸 부인하고 싶었는지. 페이퍼 보는동안 뜨끔했어요;;


비로그인 2007-07-14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드팩도 할 겸 진창에 계속 넘어져 있어야겠다~

얄랄라~~~(파란여우님 전용 의성어 도용)

3=3=3=3=3=3=3

은비뫼 2007-07-16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창, 진창, 진창.... 숙연해집니다.

잉크냄새 2007-07-1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제가 걸어온, 걸어갈 길... 길을 지우며 길을 걷고 싶어도 어쩔수 없는건가 봅니다. 그것이 길의 속성인가 봅니다.
체셔냥 / 보령으로 고고 하셔야겠네요. 보령 머드 축제가 한창이라는데...
은비뫼님 / 진창에 넘어지기전, 넘어져 나뒹글때, 그리고 잔뜩 묻어 일어날때조차 오롯이 자신이어야 하나 봅니다.
 

그녀와 헤어지고 - 고흥준

 

어느 골목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 은새잎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그때가 유월이었는지, 칠월이었는지, 하루종일 비가 왔는지, 비가 오다 잠시 그쳤던 저녁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네. 내가 기억하는 건, 당신의 창가에서 흘러나오던 작은 라디오 소리. 초승달이 낡은 지붕 위로 살금살금 걷던 소리.


때로는 어느 골목이었는지 모두 기억할 수 있네. 당신이 잠시 걸음을 멈춰 처음으로 나를 돌아본 길이었는데 그날은 고양이들이 낮은 담장에 나란히 앉아 낯선 이를 구경하던 밤, 아직 밤이기엔 너무 일러 낮잠을 실컷 잔 늙은 호박잎들이 옹종옹종 수군거리던 저녁이었네. 그때 사랑은 참 다정도 하여 반짝거리는 심장을 내게 주었지.


그 밤을 지나는 동안 젊었던 몸뚱이는 참으로 쉬이 늙어 흐느끼던 울음으로도 추억은 남질 않았네. 고양이들의 밤도, 호박잎들의 밤도, 은새잎 가벼이 지던 밤도, 당신이 안녕하며 뛰어갔던 골목에는 무엇 하나 남질 않았네. 그 길에 이리 늙은 몸만 홀로 남아 옛 소리를 듣던 귀는 자꾸 닫혀가고, 당신의 이름 석 자를 담벼락에 쓰다가 주저앉았던 그 골목에, 스물 몇이었던 세월만 고스란히 남았네.


 


*

 

제 서재보다는 잉크냄새님의 서재에 더 어울리는 시라서...

선물로 드립니다 :)

사진은 제가 몇년 전에 홍대 한 골목에서 찍은 거예요. 담벼락 그림이 하도 예뻐서 ^^

 

- 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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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7-07-1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서 입체감도 느껴지는게 참 정겹네요 ^^

stella.K 2007-07-1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지금도 가면 볼수 있으려나? 잉크님이 부러워요!!

비로그인 2007-07-12 11:03   좋아요 0 | URL
2,3년전에 찍은 건데요, 아마 일부러 다른 그림으로 덧칠하지 않은 한은
있을법도 한데...^^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

잉크냄새 2007-07-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냥 / 이거 황공무지로소이다. 이런 글을 만날때마다 예전의 펌 기능이 간절해요. 제 페이퍼의 "우물에서 퍼올린 낭만"이 펌글 전용이었는데...하여간 멋진 시 고맙소.

rainer 2007-07-1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정말 근사한 그림이군요 ^^

프레이야 2007-07-1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담벼락 그림이 행복한 기운을 팍팍 내뿜네요.
오,순,떡!! 저 아이 붉은 혓바닥 좀 보세요..^^

잉크냄새 2007-07-1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니어님 / 반가워요. 정말 근사한 그림이죠?
혜경님 / 하하, 오,순,떡이 뭔가 했네요. 오뎅,순대,떡뽁이. 저리 해맑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지는것 같네요.

누에 2007-07-2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별 만들어갑니다.

잉크냄새 2007-08-07 12:54   좋아요 0 | URL
노란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