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는 눈이 두자나 내렸다고 했다.
노모는 염소가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지 않는다고, 자고 났더니 잘 낳은 염소새끼가 둘이나 죽어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뗄 감 할 요량으로 동네 청년이 뒤란의 참죽 나무을 베다가 집의 일부가 부서졌다고도 했다.
모서리 양철지붕이 휘고 흙 담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노모의 소식은 매끄럽고 간결하다.
다른 사람의 일상은 그렇다.
개개의 삶이 물 흐르듯 유연한 것은 아닐진대 지나고 난 시간은 몇 줄로 요약되고 분노나 노동, 모멸이 없다.
지난 해 말 나는 천 여 권의 책을 팔았고 그만큼의 책을 버렸다.
책이 팔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에 당황했고 버리는 행위가 통쾌해서 더 당황했다. 나는 남김없이 책을 팔았다.
적요한 호퍼의 그림책을 좋아했었다. 빌려간 P가 철길가의 하얀집을 A4에 그려 넣은 채 돌려주었기에 그 여백에 나도 같은 그림을 그려 꽂아 두었었다.
추억까지 팔아버린 나는 소설을 읽으며 잠깐 P를 떠올렸다. 모멸을 목격한 P가 손을 당겨주었던 연민의 시절이었다.
간결하고 요약 될 수 있는 어떤 과거가 있었다.
현재는 분노, 노동 모멸이 있고, 살아가는 중이다.
노모는 다른 염소가 낳은 새끼 둘을 밤새 돌보고 혼내고 억지로 젖을 물리고 우유를 먹여 살려냈는데, 아기염소 입에 상처를 냈다고, 그렇지만 살았다고 여러번 말하다가 호호 웃었다.
자주 생각하지 않는 시절이었다. 기억하고, 생각해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