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의 눈물 - 문학으로 읽는 아시아 문제 팔레스타인
수아드 아마리 외 지음, 자카리아 모하메드 엮음, 오수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동네의 서글픈 일이랍니다. 물질적인 삶의 질은 높지 않지만 나름 만족하며 사는 삶이었지요. 어느 날 1)안개가 무지하게 끼고 비가 많이 내리는 마을에 사는 녀석이 2)동네 패싸움에 가담하는 길에 우리집 앞마당을 지나야 한다며 패싸움이 끝난후 마당은 물론 자기 땅이라 우기던 지역의 마당확장까지 협력해 준다는 조건으로 3)종이조각을 하나 들고 왔더군요. 뭐, 동네 패싸움에 관심도 없던지라 솔깃하여 싸인을 했죠. 좀더 검토하고 그들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 우리의 실수일수도 있지만 그들이 신의를 저버린건 더 큰 문제죠. 글쎄, 안개처럼 음습한 그넘들이 4)천년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던 양아치에게 5)이중계약을 한겁니다.  패싸움이 끝난후 양아치들은 동네 곳곳에 있던 떨거지들을 규합하며 우리 앞마당으로 들어오더군요. 6)몇몇 뜻있는 동네사람들과 힘을 합쳐 7)항의해 보았지만 원래 저속한 세상의 이치는 이면계약이 힘을 발휘하는지라 항의는 불발되었고, 탄력받은 양아치들은 8)자기 마당인양 줄을 긋고 억압을 하더군요. 뭐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항의 당시 마당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마당에 들어올수가 없다나요. 더 억울한건 대문에 양아치들을 배치하여 마당으로의 진입 자체를 막더니 얼마간 마당에 들어오지 않는 마당의 소유권은 자기들에게 있다고 하네요. 이건 아니다 싶어 9)동네 전체 모임 안건에 의제를 제시했지만 대다수 선량한 동네 주민들의 뜻과는 다르게 양아치와 호형호제하는 10)조폭 출신들에게 가로막혀있는 상태입니다. 가끔 어린애들이 그 금을 지울라치면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대고 좀 철좀 들었다 싶은 청년들이 지울라치면 동네방네에 유언비어를 터트려 마치 자신의 것을 빼앗는 11)파렴치한으로 만들더군요. 아직 저희는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어쩌면 희망도 사치일지는 모르지만 사랑방 한구석에서 정신분열에, 절망에 빠진 가족들을 다독여 그 금을 지우고 마당 한켠에 각종 꽃을 심는 날을 상상해 봅니다.

주석)
1) 영국
2) 1차 세계 대전
3) 후세인-맥마흔 서신
4) 유대인
5) 밸푸어 선언
6) 아랍국가
7) 1948 전쟁
8) 부재자 재산법
9) UN / 안전보장이사회
10) 미국
11) 테러범

팔레스타인 작가들이 말하는 그들의 희망과 절망과 자아상실과 자아분열에 대한 글입니다. 그들이 결코 그 끝자락을 놓을수 없는 판도라 상자속의 희망은 필연적으로 상응하는 절망과 상실을 품고 있나 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그들의 글에서 왜 그리 끝없는 절망과 처절한 상실감을 느껴야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마 절실한 희망은 절박한 절망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본 사진 한장이 생각나네요.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고사리 손에 든 조약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사진이죠.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 되어있겠죠. 어떤 꿈을 꿀까요. 아마 악몽이 아닐까 싶군요. 그 작고 따스한 고사리 손과 가슴을 향해 차가운 총탄을 퍼부은 이스라엘을 보면서 자라난 청년이 지금 할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속칭 테러군요. 물론 그 울분을 표현하는 방법의 정당성 측면에서 결코 자유로울수는 없겠지만 내던질 것이 목숨뿐이라는 사실에는 한번쯤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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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리뷰가 올라왔네요 :) 반갑게 잘 읽고 갑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한 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안 연후에... 그때야 비로소 하느님이 움직인다고 말들 하더군요.
극과극은 통한다고,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지요.
죽음을 밟고 서있는 게 삶인 것처럼요...

춤추는인생. 2007-04-23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실한 희망을 절박한 절망에서 나온다는말은 아주 공감되는 표현이네요.
예전 낙안읍성의 글이였던가요? 땅콩사세요를 외치던 그 소녀에게 소녀여! 꿈을 꾸어요. 꿈을 잊지 말아요 라고 말씀하셨듯 . 저역시 어딘가에 있는 그 청년에게 아름다운 꿈을 놓치말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잉크냄새님의 글속에 묻어나는 따뜻한 시선이 저는 참 좋아요.^^

은비뫼 2007-04-23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의 서평 읽으니 좋네요. ^^
내던질 것은 목숨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네요.

프레이야 2007-04-23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을 지우고 마당 한 켠에 꽃을 심는 기대, 그런 걸 희망이라고 부르겠지요.
님의 온기가 느껴지는 담담한 글이 참 좋습니다.^^

icaru 2007-04-2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쓰신 다른 리뷰들과 어투가 달라서~ 좀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잘 읽었구요.
그들이 물질적인 삶의 질은 높지 않지만 나름 만족하며 사는 그 삶을 어서 되찾기를 저 또한 희망합니다!

잉크냄새 2007-04-23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진정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던가요. 가끔은 어설픈 희망이 더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가슴만큼은 그 희망함을 향하여 나아가야겠지요.
춤인생님 / 와, 그 옛날의 페이퍼를 찾아 읽어주시고 여기에 인용을 하시다니.아마 2004년 페이퍼 같은데요.^^ 감격입니다. 그래요, 절박한 상황에서 희망을 찾는 행위가 때론 가진자의 위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눈엔 분명 희망이 보일겁니다.
은비뫼님 / 예전 예이츠의 하늘의 융단이라는 시에도 나오죠. "내 가난하여 가진것 오직 꿈뿐이라 그대 발밑에 내 꿈 깔았으니...." 그들이 가진것이 오직 목숨뿐이라...
배혜경님 / 우리가 희망이라 부르는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희망은 귀천이 없음을. 어느것 하나 무시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카루님 / 가끔 존대로 쓰기도 한다구요. 그들이 다른 누구의 모습도 아닌 그들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지켜나가길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모습을 바라듯이.

파란여우 2007-04-23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별일이야요. 잉끼냄새님이 이런 책을 다 읽으시다니!
난 또 서정적 시인의 발광체를 최대한 부풀린 요즘이신가 여기고 있었는데...

가난, 전쟁, 추방자, 이주 노동자... 다 열거 할 수 없는 고통이 지구에 있습니다.
제 팔이 아픈것도 고통스러워요.
언능 로또가 대박나야 할텐데....쯥!@.@

잉크냄새 2007-04-24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아시면서요. 전 잡다하게 읽는 습성이라는 것을. 다만 지식이 짧아 이런 류의 책 리뷰는 손이 잘 가지 않죠. 고통을 체화하지 않고 희망을 말한다는 것이 좀 위험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말하고 싶었답니다.
 

무늬들

- 이병률 -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 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십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여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 몸을 향해 깊숙이 꽂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이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

누구였던가요.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지처럼 접을수 없었다는 시인이.
유리창의 오래된 물자국처럼, 무늬들처럼, 밀어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군요.
시간이 지나니 알겠네요.
그리우면 그냥 그리워하면 된다는 것을.
그냥 흔들리며 그리워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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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잇! 잉과장님 여기 소주 한 병이요! ㅜㅜ
누가 이렇게 심란한 페이퍼 올려달랬어요... 진짜 울고 싶잖아요...
어쨌거나 멋진 글이라 추천.

춤추는인생. 2007-04-2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오늘 저랑 통하셨네요^^
이곳 서울은 비가와요. 아침에 빗방울맺힌 창문을 밀다 문득 이시가 생각나서
오전내내 읽고 또 읽었어요.
저도 오늘하루만큼은 마음껏 흔들리는 내자신을 그냥 그대로 봐줄참이예요.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까요.

잉크냄새 2007-04-22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심란하긴요, 그냥 읽던 시집에서 맘에 쏘옥 드는 시라서요.^^
춤인생님 / 그 페이퍼 저도 읽었어요. 봄비가 통하게 해주었나 보네요. 가끔은 그리 흔들려주는 것도 삶이 부러지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 - 옛사람의 사귐
이승수 지음 / 돌베개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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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친구 사이의 우정의 의미는 다소 과격한 분위기를 띄기 시작했다. 시골 다방의 통성냥을 잘근잘근 씹으며 롱코트 자락 휘날리며 쌍권총을 멋지게 쏘아대다 친구의 품안에서 죽어가는 홍콩 느와르와 조폭이 아니면 친구를 논하지 말아야할것 같은 사회 분위기를 연출한 조폭 영화 신드롬이 그것이다. 맹목적 헌신과 희생,  비극적 결말, 비참한 최후. 심하게 말하면 세기말적 관계가 친구의 전형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인간관계의 밀도가 점점 약해져가는 분위기에서 한번쯤 상상해 봄직한 일이지만 그 진정성에는 다소 의구심이 든다.

얼마전 알라딘 어느 분의 페이퍼에서 나이 든 사람들의 친구 관계가 형성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하여 읽은 적이 있다. 딱 잘라 말하자면 그 이유는 오해라기 보다는 이해에서 온다는 것이다. 철없는 시절의 만남은 이해 관계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만남이기에 그 순수성이 침해받을 일 자체가 없다.  나이 들어서의 만남이 잘 형성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오해라기보다는 이해에서 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해의 방향에 따라서 두가지 결론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기는 하지만) 오해는 풀어나갈 길이라도 보이지만 나와 상충되는 부분을 이해한 상태에서는 더 이상 만남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서글프지만 머리를 주억거리게 된다면 아마 우리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만남은 다소 맥빠진 만남일수도 있다. 극적인 사건도, 가슴시린 사랑도, 생과 죽음을 초월한 감동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함과 고즈넉함이랄까. 아무말 없이 바라보며 거문고 줄을 타는 이과 누군가 연주하는 거문고 자락에 담긴 의미를 가만가만 읊조리는 병풍속의 그림일수도 먼지 폴폴 나는 시골길 옆을 한자락씩 맡아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부분에서 만날듯한 어느 노부부의 그림일수도 있다. 거문고의 현은 서로 따로이 존재하지만 서로 공감할때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친구 사이의 우정도 그러한 것이라고 옛 선인들의 만남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한 대목중 가장 잊혀지지 않는 구절중의 하나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의 아버지로 나온 목사가 살아 생전 결코 이해할수 없었던 아들을 추모하며 던진 한마디이다. "우리는 서로 완전히 이해할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수는 있습니다."  이 책도 조용히 그 구절을 거문고 자락에 태워 흘러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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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1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음. 알라딘 어느 분의 페이퍼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알려주세요 :)
흐르는 강물처럼의 저 대사는 저도 무지 좋아라 한다는...

은비뫼 2007-04-1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베게에서 나온 책이군요. 궁금하네요. ^^
흐르는 강물처럼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고요. 잘 읽었습니다.

잉크냄새 2007-04-11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저도 궁금해요. 그 페이퍼도 그 분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인데, 황인숙 시인이 출연하여 그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은비뫼님 / 돌베개. 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권만으로도 그 출판사에 믿음이 가더군요. 좋은 책에게 햇살을 부여하는 출판사는 오아시스란 생각이 듭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 지라도 나는 사과를 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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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09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띄워쓰기, 이렇게 보니 정말 중요하네요.^^

마노아 2007-04-0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핫! 멋져요^^

비로그인 2007-04-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썩...!
낚였다고 생각되면서도 웃음이 나는 이유는?
잉과장님 재치 짱이십니다요 ^^

잉크냄새 2007-04-0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마노아님,고양이님/ 이런, 제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다른 싸이트에서 누군가 소개글에 써있길래 가져온것인데....흠, 이것도 출처를 밝혀야하나요? @,.@

비로그인 2007-04-09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과장님,
그 정도면 출처 안 밝히셔도 될 거 같아요.
참 기발하고 좋은데요 :)

icaru 2007-04-1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써먹어야지!

잉크냄새 2007-04-10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아하, 그렇군요. 누군지 기발하죠?
이카루님/어디에 써먹으려고 하시는지...ㅎㅎ

stella.K 2007-04-1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또 어디서 퍼오셨나용? ㅎㅎㅎ

은비뫼 2007-04-1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핫. 저 사과나무란 동화책 얼마 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띄어쓰기 중요합니다. 흐흐흐. 잉크냄 새님. :)

잉크냄새 2007-04-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조~오기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터넷 어느 분의 소개글에 있더군요.^^
은비뫼님 / 저의 아이디는 잉크 냄새 이렇게 띄워써주세요.

비로그인 2007-04-13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럼 저는 잉과장님이라고 부르면 실례되는 거였어요? ㅎㅎ

잉크냄새 2007-04-16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잉 띄우고 과장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ㅎㅎ
 

직장생활 관련된 드라마를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실질적으로 저런 분위기가 형성된 회사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놀라움이다. 업무적으로 깨지거나 동료사이의 묘한 경쟁심리같은 것들은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그것이 인간적인 모멸로 이어지거나 도를 넘어버리면 문뜩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대부분이 그런 부분에서는 넘지 말아야할 선을 암묵적으로 지키고 사는것 같다.

그런 분위기중 하나가 호칭의 문제이다. 이것이 우리회사만의 특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퇴사하고 다른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 대부분이 현재 이곳의 분위기가 상당히 인간적이라고 말하곤 한다. 흔히 호칭은 성 뒤에 직책을 붙여 부른다. 김대리, 박과장, 정차장... 이런식이다. 물론 이곳도 그런 호칭의 방식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것은 이름 뒤에 직책을 붙이는 것이다. 동건 대리, 혁 과장, 달룡 차장님... 이런 식의 호칭은 상당히 친근하게 다가온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호형호제 하는 방식이다. 직책을 떠나 동건아, 혁아, 달룡이 형...주로 20~30대에 주류를 이루지만 40~50넘은 분들에게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우리 팀장도 밖에 나가면 형이다. 입사 초기에는 다소 어색한 면도 있었던 부분이지만 이 또한 상당히 친근한 방식인것 같다. 나머지 하나는 별명을 부르는 방식이다. 별명이라는 것이 친근감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수도 있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개똥 과장, 머리 과장, 진갓 대리...이런식의 방식이다.

회사내에서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는 별명 몇가지 열거해봐야겠다.

1.주님 ( 특정 종교에 대한 비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 상당히 높은 양반. 상당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나 언행불일치, 안하무인, 공포정치, 독재정치, 족벌체제, 낙하산부대 등등 부조리의 온상. 지적 능력 높이 만큼의 이성과 감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잘못된 교육 방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진시황이고 사원들을 만리장성 축조에 동원된 주민 정도로 생각한다. 주님이 목청껏 외치는 "글로벌"이라는 구호가  "구라빨"로 변모되고 있다. 모든 사원이 목소리 높여 외친다. " 주님, 뜻대로 하소서". 그래서 그는 주님이라 불린다. 

2.정사공지
  : 회사 전체에 공지되는 것을 "전사공지" 라 한다. 그러나 전사공지보다 더 신속한 정보가 있으니 정모 대리이다. 별도 공지가 필요없이 그를 통하면 되니 이른바 "정사공지" 이다.



3.선발진 : 우리팀의 주당들
  : 아무래도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과음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다음날 출근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우리 팀내에 발생하는 그런 경우를 야구에 빗대어 선발투수진이라 부른다. 
선발투수 - 술먹은 다음날 지각하는 동료
완투펀치 - 5명의 선택받은 선발투수중 일이등을 다투는 전설적인 동료들
구원투수 - 선발에서 제외되었으나 가끔 그들의 어깨를 달래주기 위해 깜짝 지각하는 동료
완봉승 - 하루를 제껴버리는 강심장의 소유자
완투승 - 오전만 제끼는 동료
구원승 - 오후만 제끼는 동료
더블헤더 - 이틀 연속 지각하는 동료

4.최강라인 : 다른팀의 주당들
 : 우리팀의 완투펀치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 최모 과장과 강모 과장으로 형성된 경영부문 막강의 라인.
그 두명을 일컬어 최강라인 이라 칭한다.

5.곽전사와 진갓 : 또 다른팀의 주당들
 : 곽전사 - 곽모 과장. 한때 술독을 짊어지고 다닐 정도의 거침없는 모습으로 전사(Warrior)의 칭호를 얻었으나 그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는 못하는지 얼마전 만난 술자리에서는 전사(Warrior)의 모습이 아닌 전사자(dead man)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동음이의어의 교묘한 방식으로 아직 곽전사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 진갓 -  진모 대리. 흔히 최고의 위치를 신이라 부른다. 김삿갓의 갓이 아닌 물건너 온 갓(God)으로 아마 동양의 주선에 해당하는 위치라 할수 있다. 그 또한 곽전사와 더불어 저물어가고 있지만. 그의 기념비적인 발차취를 흠모하여 아직 그를 진갓의 위치에서 끌어내리지는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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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05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핫! 재밌어요 잉크냄새님
전 아직까지는 만취해도 다음날 지각하는 일 없이 칼출근 하는데 쿡쿡...
그럼 갓까지는 아닌거 같구 워리어라고 불려도 되나요? :)
주님, 이 표현도 한번 써먹음 좋겠군요
주여-! ^^

잉크냄새 2007-04-05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Warrior와 dead man중 선택하시죠. ^^

비로그인 2007-04-05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까지는 워리어라고 우길래요 ㅋㅋ~
어쩜좋아 사무실인데 웃음보 터졌어요, 하하-

잉크냄새 2007-04-0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곽전사만큼의 위용을 자랑하는 체전사가 되시려면 주당 3~4회 / 1회당 소주3병에 해당하는 분량의 술을 마셔줘야 합니다. 워리어의 아성에 도전하다 실패하고 그 좌절감에 내면의 폭력성이 발휘되어 일명 "파이트 클럽"의 칭호를 얻은 부류들도 있답니다.

비로그인 2007-04-0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그럼 워리어는 도저히 안되겠군요(제가 보기에 그수준은 마태님도 안될듯)
파이트클럽... 이건 어케좀 안될까요? ㅎㅎ

잉크냄새 2007-04-05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파이트클럽은 뭔가 남성적인 냄새가 너무 나네요. 졸리양도 기념할겸 라라 크로포트에 필적할만한 술 크로포트 클럽을 창설하시죠. 적극 후원합니다.^^ 19%만 지켜주면 맘을 열수있듯이 회원 19명만 넘으면 소주 판촉용 전단을 보내드립니다.

비로그인 2007-04-05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자... 술 크로포트 클럽 전단지 보내주세요 :)

춤추는인생. 2007-04-0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님이라는 표현부터 시작해서 진갓까지 뒤로넘어가게 웃었네요.^^
그런데 잉과장님의 별명은 무엇일까요? 정말 잉과장님은 아닐테고. 혹시 술드시면
완봉승이시던가요?ㅎㅎ

icaru 2007-04-0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사(Warrior)의 모습이 아닌 전사자(dead man) ㅋㅋ
글게요~ 잉과장님의 별명은.. 혹시 잉과장님 팀에 갓이 둘 계신거 아녜요~ 진갓 대리와 잉갓 과장

잉크냄새 2007-04-0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 / 님의 서재에 전단지 뿌렸습니다.ㅎㅎ
춤추는인생님 / 뒤로 넘어가기까지 하시다니요...전 저희팀의 별명을 두루 섭렵하고 지금은 은퇴한 상태입니다.^^
이카루님 / 동음이의어, 무섭죠? ㅎㅎ 전 솔직히 만오천 이랍니다. 맥주 만오천을 마실수 있기에 한동안 그렇게 불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