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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 호미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적극적인 생태주의자도 환경론자도 아니다. 다만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모든 영혼이 깃든 사물들의 조화로움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라 여기고 있다. 그런 삶의 실천적 인물이었던 니어링 부부의 "덜 갖되 충실한 삶" 혹은 "조화로운 삶"을 나름 삶의 모토로 삼고자 한다. 물론 실천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지만.
작가는 스스로를 생태주의자라 말한다. 산업화 이후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과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들이 은연중에 잃어버리는 삶의 한 단면을 이야기한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낙오자로 낙인 찍히는 세태 속에서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그 미학의 중심에 자연이 있다.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남겨져야 할 자연이 있다.
인간이 걷는 속도는 시속 4키로이다. 봄꽃들이 북상하는 속도도, 가을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도 인간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 대지를 버티고 선 두 다리로 땅을 딛고 걸어본 이는 느낄수 있다. 그 길 위에서 인간이라는 한 영혼이 소유할 수 있는 삶의 무게와 범위와 속도를 느낄 수 있다. 무한 질주의 도로 위에서 영혼은 풍경속으로 편입되지 못한다. 오직 길 위에서만, 자연이 허락한 그 속도에서만, 주어진 삶의 무게만큼 짊어질 때에만 인간의 삶도 풍경이 될 수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수많은 잃어버린 것들중 가장 가슴에 와닿는 것은 "발효의 시간"이다. 발효는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서 머리에 이르는 가장 먼 거리, 편지의 봉합과 개봉 사이에 깃든 손 떨리는 기다림의 시간, 당신과 나 사이의 바람이 춤추는 거리... 그 사이사이에 깃든 숨 막히는 감정의 떨림과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발효의 시간"이다.
올 가을에는 단풍이 남하하는 속도로 걸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