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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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추리소설에 있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고, 사랑 받는 작가라면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미야베 미유키 정도가 아닐까 싶다. 뭐 이 둘 외에도 빼어난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도 많지만 대중에겐 이들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지라 해마다 여름이면 정말 무지막지하게 이들의 작품이 쏟아져나온다. 대중적인 소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잡아서 기계처럼 뽑아내는 히가시노 게이고와는 달리, 미야베 미유키는 좀더 깊이 있는 사고를 보여주기에 그녀야말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겸비한 작가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사회파 미스터리에서부터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판타지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군에서 사회파 미스터리와 에도 시대물을 좋아하는 내게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는 살짝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나름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오카타 가족에게 변호사 한 사람이 찾아와 엄마인 오카타 사토코가 미혼일 때 구해준 한 남자가 그녀에게 자그만치 오억 엔을 유증했다고 말한다. 졸지에 오억 엔이라는 큰 돈이 생기자 동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한시도 쉴 새 없이 걸려오는 협박 및 장난 전화, 매스컴의 끈질긴 요청 등으로 이들 가족의 일상이 송두리째 사라진다. 하지만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만 있었다면 그 모든 괴로움을 견딜 수 있었을 텐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간신히 터지지 않고 있었던 신뢰의 둑이 터져버리고 만다. 그저 생명을 구해줬다는 이유만으로 십 년이 훌쩍 넘어 거액을 남겨줬을 리가 없다고 생각해 아내의 과거를 의심하는 아버지, 이미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어머니. 그리고 혹시나 그동안 자신이 아버지라고 믿고 있었던 이가 친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한 아들까지. 오억 엔은 이들 가족을 뒤흔든다. 이에 아들의 친구인 시마자키가 나서서 어머니에게 실제로 있었던 일을 캐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오늘 밤은 잠들 수 없어>는 유머러스한 면에서는 <스탭파더 스탭>과, 일상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누군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어떤 사건의 정교함이나 기발함, 혹은 사회적인 메시지보다는 유머에 치중한 나머지 페이지는 술술 넘어갔지만 읽고 나서 ‘이게 다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홈스와 왓슨과 같은 설정은 어쩐지 어린 시절 읽었던 소년 탐정소설 분위기가 느껴져 재미있었지만, 그에 비해서 셜록 홈스 격이라 할 수 있는 시마자키의 캐릭터 구축이 약해서 아쉬웠다. 셜록 홈스처럼 통찰력 있고, 게다가 어딘가 나이에 맞지 않는 성숙함이 느껴져 '오호, 이 녀석 봐라'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누군가>의 스기무라처럼 친근한 느낌은 덜했고 셜록 홈스와 여타 탐정에 비해서는 자신만의 색깔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이래저래 불만이 많지만, 순전히 애초에 기대했던 바가 달라서 그랬을 뿐 만약 유머러스한 책이라는 점을 알고 봤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간간이 빵빵 터지는 구절들이 있어서 지루하지는 않아서 좋았다. 미미 여사의 여느 책처럼 졸작은 아니지만(암만 못해도 중간은 가는 미미 여사) 범작 혹은 대표작이라고 하기엔 아쉬운 작품. <스탭파더 스탭>이 그랬듯이 추리소설 매니아에겐 아쉬움이 들지 몰라도 대중 코드에는 잘 맞지 않을까 싶다.   

덧) 이전에는 '셜록 홈스'로 계속 등장하는데, p. 149에는 '홈즈 군'이라고 등장함. '홈스 군'으로 바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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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계곡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0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0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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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만나게 된 마이클 코넬리 덕분에 나의 여름밤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시인>과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단 두 작품을 만났을 뿐이었지만 마이클 코넬리는 정말인지 독자를 유혹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다음에 또 언제 코넬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이 없어 야금야금 아껴서 읽어야지 하고 묵혀두고 있던 차에 적어도 <시인의 계곡>만큼은 <시인>을 까먹기 전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느즈막히 읽기 시작했다.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시인>의 후속작이다. <시인>도 워낙 재미있게 읽었지만 마지막이 약간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웠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아예 '시인'을 울궈먹지 않았더라면 좋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8년 전 FBI 요원 레이철의 총을 맞고 계곡으로 떨어진 연쇄살인범 '시인'이 사실은 죽지 않고 살아있었고, 장장 8년 간을 치밀한 계획을 세워 돌아온다는 내용의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하지만 돌아온 '시인'보다는 새로 등장한 '해리 보슈'에 더 관심이 갔다. 전직 경찰으로 날카로운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췄고, 필립 말로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고독과 냉혹함도 갖췄지만, 다섯살 난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따뜻한 면도 가진 해리 보슈. 그는 '시인'보다도 더 매력적이라 차라리 '시인'이 아니라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권을 만났더라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인의 계곡>은 <시인>에 비하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긴장감이 떨어져도 해리 보슈가 있었기에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월요일 출근길에 읽기 시작하며 '아아, 내가 이걸 왜 월요일 아침에 읽고 있기 시작한 것인가!'라는 무언의 절규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주말에 읽었더라면 정말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치우고 미련 없이 훌훌 털었을 텐데. 

  1992년 첫 출간되어 2009년 총 15권이 출간된 해리 보슈 시리즈의 열번째 작품이라 그간 해리 보슈에게 있었던 일들이나 그의 캐릭터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시리즈물은 단순히 사건 하나만의 재미가 아니라 캐릭터가 변해가는 모습이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로 사건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기에 기왕이면 해리 보슈 시리즈를 차례대로 만났더라면 <시인의 계곡>도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았다. 

  시인과 해리 보슈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전작인 <시인>에 나왔던 FBI 요원 레이철 월링이 <시인의 계곡>에도 등장한다. 사실 레이철 월링이라는 캐릭터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시인>에서도 그랬지만, <시인의 계곡>에서도 그녀는 사건의 보조자 역할을 하면서 주요 사건 관계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다. 뭐 그렇다고 딱히 매력적이라거나 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라 어쩐지 어정쩡한 느낌. 8년 동안 시골에 있는 지부에 유배되어 있다가 '시인'의 귀환으로 함께 FBI 중앙으로 돌아왔지만 어떤 냉철함보다는 시인을 잡겠다는 의지만 충만해 감히 시인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지금까지 읽은 세 작품 중에서 가장 아쉬웠지만, 그래도 해리 보슈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책. 기존에 코넬리의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이나 내용들이 등장해 다른 작품과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 신선했다. 이 책 속에서 제3자의 입으로만 만났던 테리 매컬렙을 만나기 위해 조만간 <블러드 워크>를 읽어봐야겠다. 작품으로 또 다른 작품을 읽게 만들지만 그것이 영악하다는 생각보다는 기꺼이 그 떡밥에 낚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코넬리의 저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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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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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서점 대상을 수상한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해를 넘겨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를 갓 마치고 읽은 터라 서점 대상에 갖가지 수상 경력이 붙은 책이니 재미있겠지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다. 

  학교에서 자신의 딸 마나미를 잃은 유코. 경찰에서는 마나미의 죽음을 사고사로 결론 지었지만, 유코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이 다름 아닌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임을 알게 된다. 보통의 부모라면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겠지만, 어차피 소년법에 의해 가해학생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유코는 학교를 그만두며 학생들 앞에서 마나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훌쩍 떠나버린 유코.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갈까? 
 
  <고백>의 중심은 우선 '소년법'에 있다. 애초에 미성년자의 범죄를 정당하게 처벌했더라면, 유코는 그토록 잔인한 복수를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도 자체의 모순을 지적하기에 이 책은 너무 가볍다. 일단 페이지를 술술 넘어갔지만, 책을 덮고 나니 유코의 복수가 정당하다고, 그렇다고 소년법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아닌 어정쩡함이 남았다. 오히려 평소에는 가볍다고 생각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 쪽이 소설적인 재미와 소년법이라는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잘 담아낸 것 같다.

  소년법과 관계 없이 그저 '복수극'이라고만 봐도 뭔가 극단적인 복수라기보다는 치졸한 복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딸을 잃은 슬픔이란 물론 십분 이해가 가지만,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복수를 행하는 유코는 어쩐지 비겁하게까지 느껴졌다. 한 사람의 인생을 서서히 옥죄는 것, 거기까지는 소설을 읽는 이의 입장에서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그녀의 복수는 거기까지일 뿐, 읽고 나서 그녀의 행동이 정당하다거나 그녀의 행동에 동정이 가지는 않았다. 특히나 마지막 장에서 유코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그동안의 복수에 대해 궁색하게 늘어놓는 변명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중반까지 꽤 흥미로웠던 작품은 가해 학생들의 이야기에 시선이 옮겨가며 그 재미가 시들해졌다. 어릴 때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아서 비뚤어진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데, 행동의 개연성이 떨어져서 읽으면서도 어쩐지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아예 악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면 이렇게 어정쩡한 캐릭터가 아니라 사이코패스가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많이 실망했던 책. 대중적인 재미나 독자를 끄는 매력은 있지만 데뷔작이라서 그런지, 아직은 작가의 역량이 부족한 듯. 혹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군더더기를 친 좀더 정제된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초반에는 연초부터 별 다섯 아니야, 라는 깨방정도 살짝 떨었는데, 중반 고개를 넘어 슬슬 점수가 깎이더니 결국 별 셋. 그냥그냥 무난한 시작이 되어버렸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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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10-01-10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동감동감 대동감!!!
어쨰 호평 일색이라 기대갖고 봤었는데, 저도 내내 고백을 하고싶은건가, 변명을 하고싶은건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뒤로 갈수록 그 변명도 설득력이 없고요...
왜 이렇게 호평 일색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특히 후반부는 오버가 너무 심해요. 살인자 소년들의 얘기는 어이없고요. 저도 차라리 살인에 맛들린 애들이라는 설정이면 그게 더 설득력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매지 2010-01-10 09:01   좋아요 0 | URL
재미는 있는데 궁색하기 짝이 없더군요 -_-;
정말 차라리 그냥 싫어서 죽였다가 더 설득력이 있을 정도.
가해 학생들의 이야기도 좀 어이가 없었지만, 마지막에 교사가 등장하는 반전(?)은 없는 게 더 나을 것 같았구요.

하이드 2010-01-10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 책 재미만 있고 별로던데, 재미라도 있으니 다행인건지 -_-;
제가 볼 때 '알사탕 뛰우기 -> 베스트셀러 -> 술술 넘어가고 -> 짧은 이야기' 뭐 이런 저런 요소들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매지 2010-01-10 09:02   좋아요 0 | URL
저도 알사탕 띄우기와 이벤트에 힘입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 뒤로는 뭐 남들이 재밌다고 하니까라는 식의 호평 일색이 된 듯. 정말 재미'만' 있더군요.

보석 2010-01-1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흐음..그렇군요.
그닥 끌리지 않아 보관함에만 담아놓고 있었는데 리뷰와 댓글 읽고 슬그머니 삭제했습니다.ㅎㅎ;

이매지 2010-01-11 12:43   좋아요 0 | URL
어쨌거나 술술 읽힌다는 미덕(?)은 있으나, 딱 거기까지예요.ㅎㅎ
 
밤 산책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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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여름이면 찾아오는 긴다이치 코스케. 때문에 당연히 내년 여름은 되야 다시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춥디 추운 겨울에 그가 돌아왔다. 슬며시 웃음을 짓고 있는, 뱀과 어우려진 여자의 모습처럼 이 책은 기괴하면서도 오싹한 분위기를 전해줬다. 최고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2위(1위는 <옥문도>라고)를 차지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꽤 탄탄한 구성과 호기심을 끄는 소재가 어우러진 작품.

  삼류 추리소설가 야시로. 그런 야시로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면서도 늘 온갖 모욕을 안겨주는 친구 나오키. 적당히 이용관계에 의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나오키가 자신의 집에 와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나오키의 부탁으로 그의 집에 간 야시로는 그곳에서 꼽추화가 하치야, 그리고 그의 정혼자 야치요. 하치야와 마찬가지로 꼽추인 야치요의 오빠 모리에를 만난다. 빼어난 미모의 여인을 가운데 둔 두 꼽추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 하지만 이 신경전은 목이 잘린 꼽추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깨진다. 허벅지의 총상으로 미뤄볼 때 야치요로 추정되는 시체. 하지만 또 다른 꼽추인 모리에의 흔적이 묘연해지고 뒤늦게 모리에의 유모가 등장해 모리에에게도 하치야와 같은 위치에 총상 흔적이 있다는 증언이 나오며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리고 잇달아 일어나는 사건의 2막.

  기존에 긴다이치 코스케의 작품을 만나기 전에 영화나 드라마로 먼저 접했기 때문에 개략적인 스토리를 알고 책을 읽어서 책과 영화(혹은 드라마)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번에 소개된 <밤 산책>은 영상보다 책으로 먼저 만나게 됐다. 책을 다 읽고 작품해설을 읽어보니 긴다이치 코스케의 다른 시리즈에 비해 영상으로 많이 옮겨지지 않은 작품이라고 한다(단 두 번 드라마화 됐다고).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2위라면서 영상으로도 많이 안 만들어졌다니 하며 전혀 의외라 생각하며 갸웃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이 작품의 참맛은 영상으로 보여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어떤 유능한 감독(혹은 각본가)이라도 영상으로 이 작품의 느낌을 온전히 살리긴 어려울 것 같다. 적어도 이 책만큼은 텍스트를 벗어나는 순간 재미가 반감될 것이 뻔했다.

  머리 없는 시체, 몽유병, 꼽추, 성격 파탄의 등장인물 등 이 책은 시종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집안 내력인지 손자인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나 방어율은 썩 높은 편이 아니라 가는 곳마다 사람이 죽어나는데, 적어도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긴다이치 코스케는 희생자 수를 줄이는 데 성공한다.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와 달리 <밤 산책>에서 긴다이치 코스케는 소설 속에서 사건의 제삼자인 서술자처럼 어디까지 제삼자로 등장한다. 그 때문에 그가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어서 아쉽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어리숙해보이고 영 믿음이 가지 않아 은근슬쩍 사건 관계자들에게 무시를 당하던 그가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어쩐지 유쾌, 통쾌한 느낌까지 들었다. (특히나 방심하고 있던 범인에게 한 방을 먹일 때는 더욱 더!) 

  다소 자극적인 소재라 호불호가 갈릴 듯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라 그저 반갑고 즐거웠다. <밤 산책> 특유의 기묘하면서도 끈끈한 분위기가 남아 꿈자리가 조금 사납긴 했지만, 그래도 표지도 내용도 만족스러웠던 작품. 긴다이치 코스케의 팬이라면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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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2-29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다이치 시리즈는 안나올듯 하면서도 꾸준히 나오는군요.이매지님 리뷰를 보니 이책도 구매해야할듯 싶네요^^

이매지 2009-12-29 00:15   좋아요 0 | URL
긴다이치는 꾸준히 나와서 좋아요 ㅎㅎㅎ
카스피님도 어여 읽으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12-29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아직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네요.

이매지 2009-12-29 10:48   좋아요 0 | URL
료칸에서 긴다이치를 읽는 것도 재미있을 듯 ㅎㅎㅎ
아아, 저도 료칸 원츄우우~~

보석 2009-12-2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름쯤 나올 거라고 방심했다가 겨울에 나와서 깜짝.^^
재미있긴 했는데 옮긴이의 말에 조금 공감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책이 떠올라서...

이매지 2009-12-29 17:09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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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목부터 스포일러에 화들짝했어요.
책을 미리 읽었으니 망정이지 -_-;;
 
메롱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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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미미여사의 책이라면 그냥 믿고 달렸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약간은 시들해졌다. 그래도 오랫만에 미미여사를 만나고 싶어서 아직 안 읽은 책을 체크. 별로 좋아하지 않는 초능력 판타지물인 <크로스파이어>나 <구적초>, <가모우 저택 사건>을 제외하고 남은 게 <메롱>정도였다. 제목이 다소 장난스러워 보이긴 했고, 두께가 무지막지했지만 그래도 미미여사표 시대물은 꽤 취향에 잘 맞아서 읽기 주저없이 선택! 

  오랫동안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는 시치베에 밑에서 숙수로 성장한 다이치로. 자신의 운명을 시치베에의 손에 맡긴 그에게 시치베에는 젊은 시절부터 바랐던 요릿집을 차리고 싶다는 꿈을 다이치로를 통해 이루려 한다. 이에 괜찮은 점포를 구해 이제 갓 요릿집을 시작한 다이치로네 가족. 하지만 모처럼 개업 준비로 바쁜 때에 이 집의 외동딸 오린은 앓아눕는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난 오린. 그 뒤로 오린의 눈에는 부모님의 가게인 후네야에서 살고 있는 다섯 명의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늘 자신에게 메롱을 하는 오우메, 젊은 무사 겐노스케, 솜씨 좋은 안마사 와라이보, 상냥하고 예쁜 오미쓰, 그리고 후네야가 첫 손님을 맞이했을 때 난동을 부린 덥수룩이까지. 이 다섯 귀신은 삼십 년 전 집 근처에 있었던 고간지 절의 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는 듯한데... 대체 30년 전 고간지 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어린 오린은 다섯 귀신을 성불 시키기 위해 나름의 조사를 시작한다.

  고생이란 모르고 자란 어린아이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의 조사를 시작한다는 점이나 인간이 아닌 존재(귀신 혹은 요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사바케>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바케>의 경우에는 요괴들이 도련님을 돕기 위해서 사방팔방 뛰어다닐 수 있었다면, <메롱>의 귀신들은 후네야 밖으로는 나올 수 없었기에 오린 혼자서 머리를 짜내 정보를 모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달랐다. 아마 미미 여사의 앞선 에도 이야기와 달리 <메롱>이 제목처럼 더 가볍고 익살궂은 느낌이라 <사바케>랑 비슷하게 느껴진 것 같기도 했다. 

  정통 추리소설으로 읽기엔 지나치게 가볍고, 그렇다고 마냥 가볍게만 보기엔 아픈 사연이 있었던 책이었다. 오랫만에 만난 미미 여사는 여전히 미미 여사답게 술술 읽혔지만, 약간은 밋밋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안그래도 착한 캐릭터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여기에 권선징악이라는 뻔한 결말도 재미를 좀 반감시킨 것 같다. 이래저래 불만이 많지만, 그래도 읽는 순간만큼은 꽤 재미있게 읽었던 책. 미미 여사의 새로운 작품들이 오히려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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