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서커스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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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16년 '이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1위, 2015 <주간 분슌>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6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2016 서점 대상 노미네이트 등 2년 연속 미스터리 3관왕을 달성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신작 <왕과 서커스>. 사실 앞서 읽었던 <야경>이 재미는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 터라 뭔가 아쉬움이 남았던 터. 그랬기에 장편소설인 <왕과 서커스>가 더 기대됐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2001년 네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왕실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집필된 <왕과 서커스>는 때마침 답사차 네팔에 와 있던 다치아라이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본인 기자가 네팔 왕실 살인 사건에 접근하기란 녹록지 않은 법. 영리한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를 살해당한 정보원 사건에 대한 추적이라는 설정으로 풀어나간다.

  '미스터리' 소설이지만 <왕과 서커스>의 초반부는 '본격 미스터리'라고 보기도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보기도 살짝 애매해서 사실 초반에는 살짝 갸웃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자 숨쉴 새 없이 이야기가 몰아쳤고, 그러면서도 각각의 인물들의 감정도 꽤 꼼꼼하게 그려냈다. 주된 미스터리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것은 '기자'로서의 직업윤리에 대한 다치아라이의 고민이었다. 자신이 발디딘 세계와는 전혀 접점이 없는 세계에 대한, 자극적인 이야깃거리에 목말라 하는 대중. 그런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며 타인의 비극을 파고들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는 기자. 네팔에 가서야 이 경계선에 서게 된 다이차라이의 고뇌가 정보원 살해를 추적하는 일보다 더 깊이 있게 담겨 있었다. 

  네팔의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물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전달해주고, 한 인물이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지켜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던 작품. 간만에 꽤 몰입해서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했던 본격 미스터리 소설과는 살짝 거리가 있었던 터라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어울리는 작가라기보다는 나오키 상과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슬몃 들었다. 읽고 나서 많은 여운이 들었던 작품이지만, 이 정도 작품이면 미스터리 마니아뿐 아니라 대중 소설 독자까지 끌어들이겠다 싶었던 잘 짜여진 오락 소설.

 

* 네팔 정부는 정보를 조금씩 흘리고 있다. 왕궁에서 살인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이 도시의 모두가 알고 있는데, 공식 발표로는 국왕을 포함한 여덟 명의 왕족이 사망했다는 말뿐이다. 그런 점이 애초에 네팔 정부는 왕궁 사건에 대해 아무 발표도 할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제대로 된 설명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부르고 있다. 이런 불신감이 사람들의 불만을 초래하는 게 아닐까? _182쪽

 

* <월간 심층>의 기사는 네팔을 구하지 못한다. 물론 영향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읽겠지. 하지만 제로보다 조금 나은 힘으로 당당하게 구는 것을 성실한 태도라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네팔에 도움이 되니까 말해달라는 접근 방식은 잘못되었다. 내가 라제스와르에게 왕궁 사건의 진상을 듣고, 그것을 일본어 기사로 쓰는 것은 네팔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잠자코 있을 수는 없었다. 앎은 고귀하다고 믿어왔다. 상관없는 일은 알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침묵할 수는 없었다.
"일본어로 쓴 기사가 네팔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긴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말로 써도 진실은 진실, 기록되어야만 합니다."
앎은 손이 닿는 범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비록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지언정 알고자 하는 정신 자체는 옳을 터다. _222쪽

 

* "진실만큼 어이없이 왜곡되는 것도 없지. 그보다 다면적인 것도 없어.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당신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대로 일본인이 네팔에 품는 인상이 돼. 여기서 내가 국왕이 자살했다고 말하면 당신네 나라 사람들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겠지. 나중에 진실이 유포된다 해도 그걸 읽고 첫인상을 바꿀 사람이 얼마나 될까?" _223쪽

 

* "분명 신념을 가진 자는 아름다워. 믿는 길에 몸을 던지는 이의 삶은 처연하지. 하지만 도둑에게는 도둑의 신념이, 사기꾼에게는 사기꾼의 신념이 있다. 신념을 갖는 것과 그것이 옳고 그름은 별개야." _225쪽

 

* "자기가 처할 일 없는 참극은 더없이 자극적인 오락이야.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끔찍한 영상을 보거나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말하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런 오락인 거야." _228쪽

 

* 기자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이 중립이라고 주장할 때, 기자는 덫에 빠진다. 모든 사건에서 모든 이들의 주장을 제한 없이 다루기란 불가능하고, 그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기자는 항상 취사선택을 한다. 누군가의 주장을 글로 씀으로써 다른 누군가의 주장을 무시한다. 그 과정이 지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선택으로 기자의 견식이 드러난다. 주관으로 선택하면서 중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_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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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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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케 하는 제목을 본 순간부터 '이 책은 읽어야 해!' 하고 강한 지름신이 왔던 나쓰키 시즈코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 국내에는 이미 몇 권의 책이 출간된 작가인데, 묘하게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번 기회에 제대로 만났다.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를 연상케하는 <W의 비극>이나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떠오르게 하는 <제3의 여인> 등 고전 미스터리를 맛깔나게 변형하는 작가인 듯하다는 인상이었는데,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를 읽으니 그런 인상이 영 잘못된 건 아니었던 듯했다. 아무튼 언제나 믿고 보는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잘 알려졌다시피 고립된 섬으로 초대된 사람들이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라는 노래 가사에 맞춰 한 명씩 살해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의 배경도 이와 마찬가지로 항해중인 선상으로 설정된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무죄로 판결받았지만(혹은 유죄로 의심받지도 않지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살인으로 몰고간) 사람들을 한 명씩 단죄한다는 설정 또한 두 작품 모두 동일하다. 제목이나 대강의 얼개뿐 아니라 디테일 면에서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그리고 누군가 사라졌다>는 닮은꼴이다. 인디언 섬은 인디아나 호로, 하나씩 사라지는 인디언 인형은 등장인물의 띠와 동일한 십이지 인형으로 변형되는 식이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클로즈드 서클, 그러니까 폐쇄된 공간에서의 살인이라는 장치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 모두 나름의 솜씨를 뽐낸다. '다음엔 내가 살해당할지도 몰라' '대체 범인은 누구지?' 하는 식의 의문을 끊임없이, 최후의 2인이 남을 때까지, 아니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도 그런 긴장과 불안은 유지된다.

 

  까딱하다가는 오마주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아류로 남을 것 같았던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는 의외의 전개를 통해 영리하게 유사 설정작이 가질 수 있는 덫을 피해간다. 아니, 오히려 꾸준히 독자에게 '이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프레임'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몇몇 다른 설정을 간과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독자의 뒷통수를 친다. 단순한 오마주, 패러디가 아니라 원작의 똑똑한 재해석이라는 보기 드문 기교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뿐 아니라 뒷부분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또다른 걸작을 결합시킴으로써 <그리고 누군가 없어졌다>의 단죄는 얼얼하게 끝이 난다. 마지막 몇 페이지의 사족과도 같은 마무리만 아니었더라면 더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쓰키 시즈코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엔 충분한 마무리였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이긴 했지만,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솜씨도 꽤 볼만했던 작품. 애거사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그녀의 작품과 비교하며 읽는 맛이 있을 테고, 미스터리 초심자에게는 미스터리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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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5-03-19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해두었는데 이것도 어서 읽어 봐야겠습니다. ^^

이매지 2015-03-21 09:58   좋아요 0 | URL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더라구요. ㅎㅎㅎ
 
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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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홀레 시리즈의 중간 권에 해당하는 <스노우맨>으로 해리 홀레 시리즈를 처음 접했던 터라 <스노우맨>을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었다. 자세한 과거사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사연이 있는 이 남자. 고독하지만 고립되지는 않는, 끊임없이 알코올의 유혹에 시달리는 이 남자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스노우맨>의 흥행 덕분인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역주행하듯 출간되기 시작했고, 그 덕에 시리즈의 첫 권인 <박쥐>를 손에 잡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북유럽의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이야기가 그려지리라 기대했지만, 의외로 <박쥐>는 무더운 계절의 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그려진다.


  한 노르웨이인 여성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에 수사를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간 해리 홀레. <스노우맨>에서는 반장님이었지만, <박쥐>에서는 아직 혈기왕성한 풋내기 형사일 뿐이다. 처음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경찰과 형식적으로 공조 조사를 시작하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수사일 뿐 누구도 해리 홀레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런 증거도, 그 어떤 증인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범인의 검거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며 주변인 조사 정도를 마치고 돌아가라고 하지만, 탐문 과정에서 한두 가지 의심스러운 점이 눈에 들어오면서 해리 홀레는 사건에 점점 발을 들이게 된다.

 

  <박쥐>의 중심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인 애버리진이 놓인다. "애버리진은 다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잘 안 가서요"라는 목격자의 증언에서 엿볼 수 있듯이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서 애버리진은 원래 이 땅에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당한 이들이다. 해리 홀레와 콤비로 수사에 나서는 앤드류 형사 역시 애버리진이라 홀레에게 호주 원주민의 비극적인 역사나 왈라-무라-버버로 이어지는 애버리진의 전설, 그들의 애환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이야기를 건넨다. 해리 홀레라는 캐릭터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자연에, 애버리진이라는 집단에 압도당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박쥐>에서 애버리진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애버리진에 대한 국가 정책. 가난한 부모에게서 떼어내 더 나는 조건에서 양육하겠다는 명목으로 원주민의 부모에게서 아이를 강제로 빼앗아 백인 가정에 보내게 한 정책 등은 놀랍다 못해 무서울 정도였다. 사건 자체의 치밀함보다는 그들의 검은 피부처럼 어둡게 그림자를 드리운 애버리진에 대한 이야기에 더 눈이 갔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첫 권이기 때문에 <박쥐>에는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요 네스뵈의 작가로서의 데뷔작이기도 해서일까. 다소 아쉽기도 했다. 작가는 이 작품이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라 유일하게 반복해서 읽는다지만, 서술의 얼개를 생각한다면 <스노우맨>보다는 미흡하다. "뭔가 잘못됐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은 독자를 끌어들였지만, 이후 전개에서 해리 홀레가 본인의 입으로 너무 친절히 자신에 대해 소개해준다랄까. <스노우맨>의 해리 홀레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그에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지 그의 사연에 몰입을 해서가 아니었다. 물론 그가 겪은 일련의 사고와 그후의 행로에는 눈길이 갔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겪는 사건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해진 했지만 말이다. 작가도, 캐릭터도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시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요 네스뵈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 엿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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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T 2014-12-16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은 게눈감추듯 읽어치웠는데, 「박쥐」는 뭔가 꾸역꾸역 읽어나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때문에 바로 「레드 브레스트」로 건너뛰어버렸었죠ㅎㅎ 결과적으로 해리 홀레시리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문체나 분위기나 너무 제 타입에 쏙 맞는 작가더라구요.

이매지 2014-12-24 11:26   좋아요 0 | URL
저도 <박쥐>는 이상하게 잘 안 읽히더라구요. ㅎㅎㅎ
<레드 브레스트>는 조금 괜찮은가봐요. 저도 얼른 해리 홀레 시리즈에 다시 빠져봐야겠어요~ ㅎㅎ
 
파계 재판 - 사람이 아닌 자의 이야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2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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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한때 연극배우였지만 내연녀와 그의 남편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법정에 선 무라타라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내연녀를 위해 사체유기를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자백하지만 그 외 혐의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한다. 하지만 과거 공금을 유용하고, 친구에게 사기를 치는 등 '정직'과는 거리가 먼, 어두운 삶을 살아온 무라타에게 상황은 불리하게 흘러간다. 모두가 무라타의 유죄를 확신하는 가운데, 그의 담당 변호사 햐쿠타니만은 그를 믿고 거침없는 변론을 시작한다. 과연 무라타는 자신의 주장처럼 살인자가 아닌 것일까?

 

  <파계 재판>은 전체 이야기가 법정에서 진행되는 독특한 소설이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인 법정 기자의 관점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객관성 또한 유지한다. 당사자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지만 외부인 가운데 누구보다 사건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화자를 앞세움으로써 작가는 독자를 순식간에 법정의 방청석으로 불러들인다. 마치 신문에 실린 재판 관련 기사를 읽듯 구경하듯 들여다봤다가 팽팽하게 진행되는 공방에 이내 자리를 뜰 수 없게 된다. 겉으로는 너무나 빤해 보여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는 사건.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사건은 더이상 흔히 일어나는 치정 사건을 넘어서 사회와 사투를 벌인 한 인간의 드라마로 나아간다.

 

  "재판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각본도, 연습도 없는 즉흥극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지도 알 수 없다. 나 역시 하나의 사건을 심리하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조명의 방향이 바뀌어 때로는 핵심과는 별 상관없는, 하지만 인간 관찰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실로 흥미로운 문제를 부각시키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 바 있다"라는 말처럼, 본질적으로 <파계 재판>은 '인간 관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흥미로운 작품이다. 사실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법정 서술이 1차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보이는 것' 이면에 숨겨왔던 비밀이 드러날 때 이야기는 (기존의 흐름과는 방향이 틀어질지는 몰라도)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지기 때문이다. 무라타라는 인물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해 증언하는 주변인들, 그를 변호하는 햐쿠타니 등 법정에 서는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이 제3자의 시선에서 꼼꼼히 그려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계 재판>은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와 연관성이 있다. 겉으로 볼 때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사인 우시마쓰. 그는 "설령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백정이라고 고백하지 마라. 한때의 분노나 비애로 이 훈계를 잊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거라 생각해라"라는 아버지의 훈계를 가슴에 새기고 자신이 백정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또 숨기려 한다. 자신이 신평민이라는 것을 망각할 수 있다면,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고뇌에 휩싸이는 <파계>의 주인공 우시마쓰와 <파계 재판>의 무라타는 걸어온 삶의 모습은 다를지 몰라도 결국에는 같은 선상에 놓인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만 하는 삶. 이렇게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비단 이들만이 아닐 것이다. 보이지 않는 편견이라는 시선에 얽매여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 더이상의 신분제가 없다는 사회지만 과연 모두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일까.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치르는 심정으로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공부하고, 매일 재판을 방청하러 다녔다는 작가의 열정 때문일까. <파계 재판>은 비전문가가 쓴 법정물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스스로 법정을 체화했기 때문인지 전혀 겉도는 느낌이 없이 서술된다. 이후 작가가 특별 변호사로 선임되어 실제 법정에도 섰다는 <파계 재판> 이후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만큼 그의 작품이 전문성을 지녔다는 의미이리라. 50년도 지난 작품이지만 세월을 뛰어넘는 메시지를 지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진 책. 법정물이라는 형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편견'에 대한 고찰 또한 인상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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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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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셜록 홈스로 추리소설에 입문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가장 많이 접한 소설가는 코넌 도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넌 도일의 작품은 셜록 홈스 시리즈 외에 출간된 게 없다시피 했고, 셜록 홈스 시리즈마저도 몇 번 읽다보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셜록 홈스에게서 시작된 실타래는 이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나를 길고 긴 미스터리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렇게 닿은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였다. 거의 20년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은 아직도 완독을 못 했지만, 애거사 크리스티는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고향처럼 늘 든든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봄에 나는 없었다>가 뒤늦게 깜짝 선물처럼 찾아왔다. 처음에는 왜 필명으로 발표를 한 걸까 의아했지만 책을 읽으며 조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봄에 나는 없었다>에는 지금까지 '꽤 괜찮은 삶'을 살아온 조앤 스쿠다모어라는 한 중년 여성이 등장한다. 막내딸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바그다드에 갔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조앤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블란치와 마주친다. 천박하고 끔찍하게 늙어버린 블란치는 조앤에게 그녀의 가족에 대한 갸우뚱한 몇 마디를 던지고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라는 알쏭달쏭한 질문을 남긴다. 블란치의 말처럼 며칠 뒤 조앤은 날씨 때문에 사막의 기차역 숙소에 발이 묶이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어진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기억이 파편이 떠올라 조앤을 할퀴고 찌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탈 특급 열차 살인사건> 등으로 대표되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기발한 트릭들이 등장한다. 독자를 속이고, 독자를 즐겁게 하는 그녀의 '기술'은 언제 어떤 작품을 읽어도 평타 이상의 솜씨를 뽐낸다. 하지만 내가 애거사 크리스티에게 매료됐던 것은 그런 '기술' 때문만이 아니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는 기교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고찰이 있었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보면서도 냉소가 아닌 따뜻한(때로는 담담한) 시선을 보내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 이상의 통찰이 담겨 있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여느 추리소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지만 이런 통찰만큼은 여전했다. 

  <봄에 나는 없었다>에는 어떤 잔혹한(또는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도 등장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아니 애써 보려 하지 않는 실체와의 대결만이 있을 뿐이다. '내가 아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철학적인 고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상처받고 두려워하는 한 여자가 등장할 뿐이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 도망치고 싶고, 외면해버리고 싶지만 그것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이기에 <봄에 나는 없었다>는 더 오싹하다. 상대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의 시선만 신경쓰지 않았는가? 새로운 나로 다시 한번 시작해보고 싶지 않은가? 어쩌면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런 식의 숱한 자문 끝에 내린 결론을 <봄에 나는 없었다>로 담아낸 것이 아닐까. 삶이란 어쩌면 조앤이 그러했듯이 마음속 가장 여린 부분을 찔러대는 조각난 상처를 그러모아 애써 살아가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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