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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2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카라'를 두고 흔히들 '생계형 아이돌'이라 칭한다. 뭐 간단히 말하자면 숙소에 TV도 없이 지내던 아이들이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아득바득 근성을 갖고 일한다는 의미로 그런 별명이 붙었다는데, 뜬금 없이 <렛미인>을 보며 '생계형 뱀파이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뱀파이어 소설이라면 대개 비정상적인 존재인 뱀파이어가 정상인을 혼돈과 공포 속에 빠트리고, 영웅적인 주인공이 뱀파이어를 무찌른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런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뱀파이어를 그들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그려낸다.
매일매일 학교에서 지독한 괴롭힘을 당하는 소년 오스카르. 지옥 같은 현실을 소소한 좀도둑질과 나무를 찌르는 일을 통해 겨우겨우 견뎌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오스카르가 살고 있는 블라케베리와 머지 않은 벨링뷔에서 한 소년이 목이 따인 채 거꾸로 매달려 피가 남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다. 이에 경찰은 제의적 살인자를 잡기 위해 애쓰지만 괴상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편, 오스카르는 옆집에 이사온 엘리는 비밀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왕따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 두 주인공은 철저히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오스카르가 욘니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전교생이 모두 알고 있지만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생님, 심지어 부모 조차도 오스카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누구와도 친해질 수 없는 오스카르에게 옆집에 이사온 미소녀 엘리는 구원이나 다름 없었다. 엘리도 고독하기는 마찬가지. 자신을 추종하는 호칸을 이용해 피를 공급받고 있기는 하나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살아온다. 그런 엘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과 함께 놀아주는 오스카르는 운명이었다. 하지만 오스카르는 엘리가 뱀파이어임을 알게 되고, 둘의 우정은 무너질 뻔하나, 자신이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일 수 밖에 없다는 엘리의 말에, 너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누군가를 죽이지 않겠냐는 엘리의 말에 오스카르는 엘리를 이해하게 된다. 단순히 쾌락을 위한 살인(혹은 흡혈)이 아닌, '생존'을 위한 흡혈이라는 말을 들으며 뱀파이어의 본질적인 번뇌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남을 죽이고, 남의 피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엘리의 모습은 어쩌면 자신의 성공을 위해, 혹은 자신의 쾌락을 위해 타인을 괴롭히고 밟고 올라가는 인간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기 위해 '고기'를 먹는다는 1차원적인 대립은 논외로 하더라도.)
초반에는 낯선 지명과 이름 때문에 느릿느릿 읽어갔는데, 뒤로 갈수록 오스카르와 엘리, 호칸, 톰미 등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톰미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의 비중이 적어서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이야기지만 그런 어둠을 절망스럽지 않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가는 저자의 따스함과 재치에 반했다. 이제 원작을 봤으니 영화로는 오스카르와 엘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갔을지 원작과 비교하면서 봐야겠다. 저자가 다음 작품인 <언데드 다루는 법>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 지 기대된다. 그때까지 <렛미인>의 여운을 곱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