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불화대전'이 열렸다. 불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명 '물방울 관음'이라 불리는 <수월관음도>가 전시된다고 해서 일부러 <수월관음도>의 전시일인 전시 마지막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찾은 전시회에서 <수월관음도>의 아름다움보다 나를 잡아 끈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왕도>였다. 흔히 그림을 두고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말하지만, 불화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상태로 갔던 터라 그림에 담긴 의미나 그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었다. 부족한 대로 전시장에 붙어 있는 설명을 읽고 있는 내게 같이 간 남자친구가 네이버 카툰에 연재중인 <신과 함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핏 들어보니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신과 함께>를 정주행하려는 찰나 이렇게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신과 함께>는 우리 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평생 남한테 싫은 소리도 한 번 못하고 살다가 노총각으로 죽은 김자홍이란 인물을 통해 죽음 이후 저승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49재, 저승사자, 노잣돈, 삼도천 등 우리가 저승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에 대해 풀어나간다. 아무래도 내용 자체가 김자홍이 저승에서 7명의 시왕을 상대로 재판을 벌이는 것이 주가 되기 때문인지 시왕에 대한 부분만큼은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배울 수 있었다. 진광대왕의 칼로 이루어진 산인 도산지옥에서부터 펄펄 끓는 거대한 무쇠솥이 랜드마크인 초강대왕의 화탕지옥, 얼음감옥인 송제대왕의 한빙지옥, 잎사귀가 칼인 숲속에 있는 오관대왕의 검수지옥, 입으로 지은 죄를 심판하는 염라대왕의 발설지옥, 강력범죄 전문 심판관인 변성대왕의 독사지옥, 상법 전문 심판관인 태산대왕의 거해지옥. 일주일에 한 명의 재판관(시왕)을 만나기 때문에 49재가 생기는 것. 이 심판 결과에 따라 지옥에 떨어지느냐, 가축 또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느냐가 결정된다고 하는데, 차근차근 재판을 받는 모습을 보면 정말 죄 짓고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극히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고루하게 풀어가지 않는다. 중간중간 잘 녹아들어간 유머가 저승에 대한 지식 외에도 재미만 봐도 여느 만화에 뒤지지 않았다.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요소들을 대사에 녹여내기도 하고("페이퍼 타올이 여기 있네") 다양한 패러디(헬벅스, Joogle, 호텔 헬리포니아 등)와 유머가 <신과 함께>에는 담겨 있다. 이야기 서술 방식도 하나의 이야기만 다뤘다면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텐데 두 가지 이야기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변화를 준 점도 좋았다. 죽도록 일하다가 술병 때문에 죽은 김자홍이 저승삼차사의 손에 이끌려 초군문 행 기차를 타고 저승에 입국해 진기한 변호사와 함께 재판을 받는 이야기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년병장 유성연이 말년 휴가를 하루 앞두고 사고로 총에 맞아 죽은 뒤 원귀과 되어 저승삼차사의 추적을 받는 이야기. 전혀 다른 삶과 전혀 다른 두 개의 이야기가 그려지지만 거기에 담긴 '죽음'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메시지는 읽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다.
저마다 목표하는 바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답게 살고 싶어한다.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무엇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요소인지. <신과 함께>를 통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고 나니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절로 신중해졌다. 새해부터 네이버 웹툰에 <신과 함께-이승편>도 새롭게 연재되기 시작했다. 이승편에서는 초반에 가택신들이 등장하던데,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펼쳐갈 지 궁금해진다.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내년까지 이어질 <신과 함께> 3부작을 통해 우리 문화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