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계곡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0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0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히 만나게 된 마이클 코넬리 덕분에 나의 여름밤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시인>과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 단 두 작품을 만났을 뿐이었지만 마이클 코넬리는 정말인지 독자를 유혹하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다음에 또 언제 코넬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기약이 없어 야금야금 아껴서 읽어야지 하고 묵혀두고 있던 차에 적어도 <시인의 계곡>만큼은 <시인>을 까먹기 전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느즈막히 읽기 시작했다.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시인>의 후속작이다. <시인>도 워낙 재미있게 읽었지만 마지막이 약간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 아쉬웠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아예 '시인'을 울궈먹지 않았더라면 좋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8년 전 FBI 요원 레이철의 총을 맞고 계곡으로 떨어진 연쇄살인범 '시인'이 사실은 죽지 않고 살아있었고, 장장 8년 간을 치밀한 계획을 세워 돌아온다는 내용의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하지만 돌아온 '시인'보다는 새로 등장한 '해리 보슈'에 더 관심이 갔다. 전직 경찰으로 날카로운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췄고, 필립 말로 같은 하드보일드 탐정의 고독과 냉혹함도 갖췄지만, 다섯살 난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따뜻한 면도 가진 해리 보슈. 그는 '시인'보다도 더 매력적이라 차라리 '시인'이 아니라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권을 만났더라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시인의 계곡>은 <시인>에 비하면 긴장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긴장감이 떨어져도 해리 보슈가 있었기에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월요일 출근길에 읽기 시작하며 '아아, 내가 이걸 왜 월요일 아침에 읽고 있기 시작한 것인가!'라는 무언의 절규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주말에 읽었더라면 정말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치우고 미련 없이 훌훌 털었을 텐데. 

  1992년 첫 출간되어 2009년 총 15권이 출간된 해리 보슈 시리즈의 열번째 작품이라 그간 해리 보슈에게 있었던 일들이나 그의 캐릭터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시리즈물은 단순히 사건 하나만의 재미가 아니라 캐릭터가 변해가는 모습이나 캐릭터에 대한 이해로 사건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기에 기왕이면 해리 보슈 시리즈를 차례대로 만났더라면 <시인의 계곡>도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았다. 

  시인과 해리 보슈에 대해서만 언급했지만, 전작인 <시인>에 나왔던 FBI 요원 레이철 월링이 <시인의 계곡>에도 등장한다. 사실 레이철 월링이라는 캐릭터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시인>에서도 그랬지만, <시인의 계곡>에서도 그녀는 사건의 보조자 역할을 하면서 주요 사건 관계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다. 뭐 그렇다고 딱히 매력적이라거나 능력이 출중한 것도 아니라 어쩐지 어정쩡한 느낌. 8년 동안 시골에 있는 지부에 유배되어 있다가 '시인'의 귀환으로 함께 FBI 중앙으로 돌아왔지만 어떤 냉철함보다는 시인을 잡겠다는 의지만 충만해 감히 시인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불쌍하기까지 했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지금까지 읽은 세 작품 중에서 가장 아쉬웠지만, 그래도 해리 보슈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책. 기존에 코넬리의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이나 내용들이 등장해 다른 작품과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 신선했다. 이 책 속에서 제3자의 입으로만 만났던 테리 매컬렙을 만나기 위해 조만간 <블러드 워크>를 읽어봐야겠다. 작품으로 또 다른 작품을 읽게 만들지만 그것이 영악하다는 생각보다는 기꺼이 그 떡밥에 낚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코넬리의 저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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