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몽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2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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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건, 영화건 영상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다시 텍스트로 읽는 일은 사실 조금은 심심한 일이다. 여느 소설이라면 원작과 영상물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겠지만, 추리물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추리물의 핵심은 '트릭'에 있는데 이미 트릭을 알고 있는 사건은 그 매력이 반감하기 때문이다. <갈릴레오>라는 드라마로 먼저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도 그 때문에 조금 심심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유가와와 구사나기가 또 한 번 등장하는 <예지몽>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다보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술술 넘어가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면이 느껴져 정신없이 읽었다.

  총 5편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모두 드라마 <갈릴레오>에서 접한 이야기라 색다를 것은 없었지만 몇몇 설정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비교하며 볼 수 있었다. 특히 창 밖에 서 있는 여자를 본 시각 그 여자가 다른 장소에서 살해를 당했다는 설정의 '영을 보다'의 경우에는 드라마와는 세부 설정이 크게 달라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비과학적으로 여겨졌던 사건을 물리학 교수인 유가와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밝혀낸다는 설정이지만, 그런 것에 비해서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부분 영상으로 만들어지면서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을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탐정 갈릴레오>와 <예지몽>을 읽으면서는 되려 드라마가 원작을 더 재미있게 각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갈릴레오>를 재미있게 본 독자라면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를, 딱히 드라마를 먼저 접하지 않았어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찾는 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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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7-1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케이블에서 몇편 봤는데 언제 끝났는지 당최 찾을길이 없더군요^^

이매지 2010-07-15 22:52   좋아요 0 | URL
ㅎㅎ끝난지는 꽤 됐죠.
드라마가 일본에서 히트하니까 그 여파로 <용의자 X의 헌신>이 영화화됐었죠.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존 딕슨 카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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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그동안 다른 작가들이 셜록 홈즈를 부활시켜 쓴 작품들을 몇 편 읽어봤지만, 어딘가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만 빌려온 이야기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 실망감 때문에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을 구입해놓고 꽤 오랜 시간 책장에 꽂아만 둔 채 묵혀놨었다. 그러다 마땅히 읽을 만한 추리소설이 눈에 띠지 않아 뭐 그냥 읽고 치우자라는 생각으로 집어들었는데, 이게 대박. 셜록 홈즈 시리즈를 만든 아서 코난 도일의 막내 아들인 에이드리언 코난과 코난 도일의 평전을 쓴 바 있는 존 딕슨 카가 함께 써내려간 작품이라 그런지 그 어떤 작품보다 셜록 홈즈와 왓슨의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 속에는 기존에 소개된 작품에서 얼버무려 말하고 넘어간 사건들을 담고 있다. 각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어떤 에피소드에서 언급되었는지를 보여줬는데, 이런 구성 때문에 누군가 새로 쓴 셜록 홈즈 시리즈라는 느낌보다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총 12개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잘 구현된 캐릭터에 비해서 사건 자체는 좀 아쉬움이 남았다. 셜록 홈즈 플러스 알파를 바랐던 독자라면 셜록 홈즈 시리즈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에 조금은 아쉽지 않을까. 얼룩끈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소개되는가 하면, 다른 몇몇 사건도 원작의 트릭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셜록 홈즈다움과 새로운 셜록 홈즈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내린 선택이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셜록 홈즈의 팬이라면 탐정에서 물러나 양봉으로 소일하는 셜록 홈즈나 피비린내나는 사건을 해결하는 셜록 홈즈보다는 이 책에 더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원전에 충실한 것이 장점이자 아쉬움이지만 일단은 지금까지 나온 셜록 홈즈 외전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되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원전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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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7-12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읽었답니다^^ 정말 살아돌아온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7퍼센트용액 어쩌구를 봤는데요....쫌 거시기합니다..
물론 홈즈가 완벽하길 바라는 제 욕심때문이지만요~

이매지 2010-07-12 18:39   좋아요 0 | URL
전 <셜록 홈즈의 유언장>과 <셜록 홈즈, 마지막 날들>, <셜록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 이렇게 세 작품을 봤는데요, 개중에 <셜록홈즈 이탈리아인 비서관>이 젤 나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더 좋았어요 :)

pjy 2010-07-13 19:22   좋아요 0 | URL
잘난척해도 홈즈만큼만 잘났으면 다 용서하고 사귀어줄 수 있는데요^^ 괜히 장바구니만 무거워지네요~

이매지 2010-07-14 14:32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는 기꺼이 왓슨이 되어줄 텐데 말이죠~

pjy 2010-07-14 16:04   좋아요 0 | URL
종종 느끼지만 사실 홈즈보단 왓슨이 더 데리고 살긴 편한 남자예요~~ 그쵸??

이매지 2010-07-14 16:37   좋아요 0 | URL
홈즈는 애인으로 두면 좋을 지 몰라도, 남편으로는 꽝!
왓슨은 그에 비해 무척 애처가일 것 같아요.
물론 친구 따라 사건 조사한답시고 나돌아다니긴 하지만요 ㅎㅎ
 
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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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제프리 디버의 소설을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어느 순간 링컨 라임 시리즈가 나오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한 권 두 권 쌓이던 차에 서점에서 <잠자는 인형>을 발견하곤, 다시 화르르 불이 지펴졌다. 어쩐지 '이건 읽어야 해!'라는 속삭임. 링컨 라임 시리즈였다면 아직 읽지 못한 이야기까지 읽어야 할 판이었지만, 다행히 링컨 라임 시리즈가 아니라 새로운 캐릭터인 캐트린 댄스 시리즈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맨슨의 아들이라 불리는 다니엘 펠을 다룬 신문기사에서 시작된다. 자신만의 패밀리를 만들어 좀도둑질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생활하던 펠이 어느 날 소프트웨어회사 회장의 집을 습격해 그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체포된다. 그를 도운 혐의로 함께 체포된 세 명의 여자 패밀리.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난 그녀들과 달리 펠은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할 상황에 처한다. 하지만 펠은 치밀한 계획 끝에 탈옥을 감행, 성공한다. 펠이 탈옥하기 직전 심문을 진행했던 CBI의 수사관 캐트린 댄스는 펠의 도주 경로와 공범자, 그리고 그의 탈옥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일가족 살인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일명 '잠자는 인형' 테레사를 비롯해 한때 펠과 함께 시간을 보낸 여성 패밀리 등의 인물과 접촉한다. 과연 댄스는 펠을 저지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사건에 들어가면 펠이 조직한 일명 패밀리와 펠이 중심이 된다. 상대방의 취약점을 파악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패밀리로 포섭할 수 있는 수완과 매력을 갖춘 펠. 펠은 그렇게 자신에게 충성하는 여자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인물이다. 자신의 가족 혹은 주위 사람에게는 얻을 수 없었던 것을 펠을 통해 채운 여성들은 그것을 사랑이라 믿고 큰 거부감없이 맹목적으로 펠에게 충성한다. 그런 여성들을 통해 크고 작은 악행을 도모하는 펠. 그 어떤 범죄자보다 영리한 그의 도주는 치밀했고, 끊임없는 변장과 거짓 정보를 흘리며 혼선을 주며 결코 쉽게 추적당하지 않는다. 그런 펠을 쫓는 댄스의 숨 막히는 추적. 그 과정에서 과거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과거의 여인들의 입을 통해 펠도 조금씩 파악되어 간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 당하는 자 사이의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지배-복종 관계가 결국 누군가에 의한 '상처'에 있음을 알게 되며 어쩐지 씁쓸했다. 그것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이의 영악함(혹은 사악함)에는 어쩐지 치가 떨렸다.

  캐트린 댄스 시리즈의 첫 권답게 이 책에서는 댄스가 어떤 인물인지 조금씩 구체화해간다. FBI 요원이었던, 하지만 사고로 목숨을 잃은 남편 사이에 두 아이를 둔 그녀는 작은 행동이나 말투 등을 통해 상대방의 거짓말을 간파해내는 동작학 전문가다. '인간 거짓말탐지기'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수사관이지만, 여느 부모처럼 아이들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이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진 전문직 여성이라는 점에서 법의관으로 활약중인 스카페타가 떠오르기도 했으나, 스카페타보다는 좀 더 밝은 면이 있는 캐릭터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댄스'라는 자신의 독특한 이름을 농담으로 사용하는 모습에 매력 게이지 상승.

  사건이 어느 정도 종료된 뒤에도 어느 정도 페이지가 남아 있어 '이제 뭔가 마무린가' 했는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제프리 디버는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하게 했다. 우마 서먼에 의해 영화화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딱히 영화화가 진행중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어도 이 작품은 눈앞에서 영상이 스쳐지나갈 정도로 꽤 생동감 있었다. 치밀한 심리 싸움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니만큼 작은 행동, 작은 말투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작품.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숨을 참으며 읽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역시 명불허전 제프리 디버. 앞으로 이어질 캐트린 댄스의 활약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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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7-0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건 읽어야 해' 이런 비논리적 사고가 뒤통수를 때릴 때가 있죠.
그런 책은 읽어 줘야죠. ㅎㅎㅎ
제프리 디버... 명불허전이란 말이죠? 기억해 둘게요.
근데, 숨은 참지 마시고 읽으세요. 혈압에 안좋습니다. ^^

이매지 2010-07-07 13:27   좋아요 0 | URL
확 땡길 때 읽어야지 안 그러면 정말 세월아 네월아 ㅎㅎ
제프리 디버는 명불허전입니다 :)

Kitty 2010-07-0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눈에 띈건데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모중석씨가 누구에요? 스릴러 작가인가요?
뭔가 포쓰가 느껴지는 이름 ㄷㄷ

이매지 2010-07-07 23:23   좋아요 0 | URL
모중석씨는 출판기획자 겸 소설가라고 하는데 본명은 아니라고 하네요.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608050024
이 기사 참고하시면 좋을 듯^^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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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우타노 쇼고의 다음 작품을 기대했을 터. 일본 추리소설이 다양하게 소개되는 상황에서도 우타노 쇼고의 작품은 출간되지 않아 아쉬웠는데, 올 여름에서야 잇달아 두 권의 작품이 출간됐다. 에도가와 란포 분위기라는 <시체를 사는 남자>와 밀실 트릭을 다룬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가 그것. 둘 중 어떤 걸 먼저 읽을까 하다가 나름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인 우타노 쇼고를 이해하기엔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가 더 괜찮을 듯해서 일단 이 책을 선택.

  표제작인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를 비롯해 <생존자, 1명>과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 등 이 책에 수록된 단편은 모두 밀실 살인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 배경이 눈으로 둘러싸인 별장이냐,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무인도냐, 외딴 곳에 위치한 관이냐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제한된 영역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 세 작품은 닮았다. 하지만 자세히 그 안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우선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의 경우에는 얼마 전에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탐정의 규칙>을 연상케 했다. 탐정이라는 존재, 추리소설이라는 것을 마음껏 비틀면서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부분이 꽤 닮은 듯했다. 대체 왜 죽어가는 사람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 왜 항상 고립되기만 하면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인지. 추리소설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이런 아이러니함을 두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까발리고, 뒤틀어 웃음을 선사한다. <명탐정의 규칙>이 추리소설의 패턴을 하나씩 보여주는 쪽이라면,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패턴보다는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집중한다. 일단 이야기 속의 명탐정 자체가 공명심이나 정의에 의해 움직이는 타입이 아니라 현실적인 면(그러니까 금전)에 의해 움직이고, 여자가 없다고, 자신이 좀체 유명세를 타지 못한다고 조수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궁상맞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사건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해결(그냥 범인을 지목하고 증거를 찾는 부분은 경찰에게 떠넘긴다)한다는 사실. 그 점 때문에 명탐정이 묵게 된 별장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은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금전적 보답이 없는 상황에서 명탐정이 움직일 리는 만무하니, 어쩔 수 없이 조수가 사건을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반전.

  신흥종교의 일원으로 테러를 감행한 뒤 무인도로 잠시 몸을 숨긴다는 설정의 <생존자, 1명>은 일단 섬이라는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떠올랐다. 섬이라는 배경만 가지고 본다면야 <외딴섬 퍼즐>이나 <옥문도> 등 일본 추리소설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생존자, 1명>은 '범인은 과연 누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무인도, 그것도 잠시만 머물면 된다고 생각해서 제 발로 걸어들어간 섬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된 이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뒷 부분에는 기사를 인용해 교차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부분을 통해 반전이 드러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지막 작품인 <관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제목만 봐도 <십각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같은 관 시리즈가 저절로 떠올랐다. 특히나 구조상의 부분이 가장 핵심이라는 점에서 <시계관의 살인>과 닮은 듯. 대학 시절 탐정소설 연구회로 함께 활동한 이들을 다시 불러모아 추리극을 펼치는 모습은 소설 속의 주인공의 말처럼 추리소설 마니아의 궁극적인 꿈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사건, 그리고 그것을 재현할 저택을 만들어내고, 그곳에서 처벌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것. 추리소설의 팬으로 어쩐지 상상만 해도 마구마구 즐거워졌다. (물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논외로 하고.)

  단편집이지만 각 단편의 분량이 짧지 않은 편이고, 장편 못지 않은 완결성을 갖고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읽어갔다. "눈 오는 산장, 외딴 섬, 서양식 저택 세 가지 밀실에서 펼쳐지는 반전과 트릭의 화려한 향연!"이라는 뒷표지의 문구처럼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우타노 쇼고의 밀실 살인 3종 세트는 입맛대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만찬이 아닐까 싶었다. 그동안 추리소설을 읽는다고 그런 건 애들이나 읽는 거 아니냐고 주위의 비웃음(?)을 받았던 모든 추리소설의 팬들에게 위로와 웃음, 반전, 그리고 가슴 아릿함을 안겨줄 작품. 우타노 쇼고가 궁금했던 이라면, 추리소설(특히 신본격 미스터리)의 팬이라면 필독해야 할 책. 간만에 정신없이 즐기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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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0-07-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제목이 딱 읽고 픈 책이네요 바닷가 놀러가서 비스듬히 누워서요

이매지 2010-07-01 18:28   좋아요 0 | URL
오, 바닷가 별장에서 읽는 걸 상상하니 마구마구 좋아지네요 ㅎㅎ
하늘바람님 오늘 첫 출근 하셨나욤? ㅎ

pjy 2010-07-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번달 책은 이미 다 샀단 말이예요--;

이매지 2010-07-01 20:57   좋아요 0 | URL
엇, 이제 7월 1일인데 벌써요? ㅎㅎㅎㅎ
 
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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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계곡>으로 처음 만난 해리 보슈는 이미 경찰에서 은퇴한 뒤의 모습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고독하고 냉혹하지만 다섯 살 난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면도 지닌 탐정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경찰로 재직중이던 때의 이야기인 <유골의 도시> 속의 해리 보슈는 <시인의 계곡>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전직 의사가 자신의 개가 아이의 뼈를 물어왔다는 신고를 하고, 이에 해리 보슈가 출동한다. 험한 산 속에 묻혀져 있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아이의 뼈는 지속적인 학대의 흔적을 안고 있었다. 아이의 신원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하던 중, 근처에 살고 있는 성범죄자가 물망에 오르고, 그는 심문을 받고 자살을 택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사건이라 윗선에서는 자살한 성범죄자를 범인으로 확정하고 사건을 마무리 짓고 싶어하지만, 해리 보슈는 이 사건의 범인이 성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윗선을 설득해 수사를 계속해 한 통의 제보 전화로 아이의 신원을 밝혀내는 데 이른다. 과연 아이에게는, 그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생명이 더 중요하고, 어느 사건이  더 잔인하겠냐만, 유독 아이가 피해자인 사건을 접하면 이 책 속의 해리 보슈처럼 불편함과 함께 꼭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긴다. 물론 이 사건을 불편해하는 해리 보슈에게는 뭔가 숨겨진 사연이 더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쉽게도 아직 전작을 만날 수 없으니 그저 위탁 가정을 전전했다는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 그 비밀이 있을 것 같다는 지레짐작을 해보는 수밖에. 어쨌거나, 아이의 유골이 발견되며 모두의 기억에서 잊고 싶었던, 지우고 싶었던 일들이 하나둘 씩 떠오르고,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전개가 진행되며 긴장을 더해간다.

  대개의 시리즈가 그렇듯이, 시리즈의 묘미는 물론 흥미로운 사건 자체에도 있겠지만, 그 사건을 풀어가며 얼핏얼핏 드러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번 이야기 속에서는 얼핏얼핏 해리 보슈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베트남에 참전했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보면 <유골의 도시> 이전과 이후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초반에는 유골이 과연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주목을 했다면, 유골의 정체가 드러나고, 과거의 이야기가 하나둘 꺼내지면서는 과연 해리 보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갈 것인가에 집중하게 됐다. 해리 보슈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수식어답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나 아동 학대라는 문제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보여주는 점이 돋보였다. 결국 폭력은 또 하나의 폭력을 낳고, 마치 나비 효과처럼 조금씩 그를 둘러싼 환경을 파괴해가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 즈음,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권인 <블랙 에코>가 출간되었다. 이왕이면 시리즈 순서대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지만,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해리 보슈 시리즈를 앞으로 모두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조급한 마음을 붙잡고 느긋히 기다려봐야겠다. 해리 보슈를 조금씩 알아가며 그의 매력에 자꾸만 점점 빠지는 것만 같다. 이어질 시리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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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06-2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매지님 이미지 사진 도날드, 아, 볼수록 매지님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귀엽다는 말 밖엔. 나는 아직도 당신이 코스프레(?)했을 거라 믿고 있어요.ㅋㅋㅋ

이매지 2010-06-28 11: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젠가 주말에 야구장에서 오리갑님을 알현하길 바라고 있을 뿐이예요.
저는 오리갑의 노예 ㅋㅋㅋ

lazydevil 2010-06-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코넬리를 빨리 시작해야 할텐데요...^^;

이매지 2010-06-29 22:59   좋아요 0 | URL
일단 시작하면 끝이 없습니다. ㅎㅎㅎ
찬찬히 시작하세요~

같은하늘 2010-06-3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리즈로 나오는 책인가 보군요. 이왕이면 순서데로 출간해주시지 왜 그랬데요?
근데 제목이 오싹해요.

이매지 2010-06-30 23:5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시리즈 8번째 이야기예요.
아무래도 시리즈를 시작하기엔 부담이 됐던지,
마이클 코넬리의 다른 작품(시리즈가 아닌)부터 낸 다음에
어느 정도 안정이 되니까 시리즈 전권을 출간하기로 결정했나보더라구요.
뭐 결국은 '수요'가 문제인 것이었던 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