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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ㅣ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의 계곡>으로 처음 만난 해리 보슈는 이미 경찰에서 은퇴한 뒤의 모습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고독하고 냉혹하지만 다섯 살 난 딸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따뜻한 면도 지닌 탐정이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경찰로 재직중이던 때의 이야기인 <유골의 도시> 속의 해리 보슈는 <시인의 계곡>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전직 의사가 자신의 개가 아이의 뼈를 물어왔다는 신고를 하고, 이에 해리 보슈가 출동한다. 험한 산 속에 묻혀져 있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 아이의 뼈는 지속적인 학대의 흔적을 안고 있었다. 아이의 신원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하던 중, 근처에 살고 있는 성범죄자가 물망에 오르고, 그는 심문을 받고 자살을 택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사건이라 윗선에서는 자살한 성범죄자를 범인으로 확정하고 사건을 마무리 짓고 싶어하지만, 해리 보슈는 이 사건의 범인이 성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윗선을 설득해 수사를 계속해 한 통의 제보 전화로 아이의 신원을 밝혀내는 데 이른다. 과연 아이에게는, 그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 생명이 더 중요하고, 어느 사건이 더 잔인하겠냐만, 유독 아이가 피해자인 사건을 접하면 이 책 속의 해리 보슈처럼 불편함과 함께 꼭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긴다. 물론 이 사건을 불편해하는 해리 보슈에게는 뭔가 숨겨진 사연이 더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쉽게도 아직 전작을 만날 수 없으니 그저 위탁 가정을 전전했다는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 그 비밀이 있을 것 같다는 지레짐작을 해보는 수밖에. 어쨌거나, 아이의 유골이 발견되며 모두의 기억에서 잊고 싶었던, 지우고 싶었던 일들이 하나둘 씩 떠오르고, 그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전개가 진행되며 긴장을 더해간다.
대개의 시리즈가 그렇듯이, 시리즈의 묘미는 물론 흥미로운 사건 자체에도 있겠지만, 그 사건을 풀어가며 얼핏얼핏 드러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번 이야기 속에서는 얼핏얼핏 해리 보슈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베트남에 참전했을 때의 이야기, 그리고 어떻게 보면 <유골의 도시> 이전과 이후를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초반에는 유골이 과연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 주목을 했다면, 유골의 정체가 드러나고, 과거의 이야기가 하나둘 꺼내지면서는 과연 해리 보슈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갈 것인가에 집중하게 됐다. 해리 보슈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수식어답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나 아동 학대라는 문제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보여주는 점이 돋보였다. 결국 폭력은 또 하나의 폭력을 낳고, 마치 나비 효과처럼 조금씩 그를 둘러싼 환경을 파괴해가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 즈음,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권인 <블랙 에코>가 출간되었다. 이왕이면 시리즈 순서대로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들지만,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해리 보슈 시리즈를 앞으로 모두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니, 조급한 마음을 붙잡고 느긋히 기다려봐야겠다. 해리 보슈를 조금씩 알아가며 그의 매력에 자꾸만 점점 빠지는 것만 같다. 이어질 시리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