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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 ㅣ 테드북스 TED Books 3
해나 프라이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테드 강연을 책으로 만날 수 있는 테드북스. 얇은 두께에 비해서 내용은 꽤 알차서 론칭 때부터 한 권씩 챙겨 읽고 있다. 독특한 건축물의 사진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미래의 건축>이나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가해자 가족의 관점에서 테러리스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테러리스트의 아들>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테드북스 세번째 이야기인 <우리가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은 제목부터 구미가 당겼다. '사람'이 아닌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이라니, 대체 '수학'으로 어떻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거지?
삼십대 이후, 미혼 친구들과 모이는 자리에서는 이 책의 띠지 문안과 같은 멘트, 그러니까 "괜찮은 남자는 다 어디로 간 걸까?"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뭐 거기에 곁들여서 '내가 만난 찌질남' 사연도 끊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번 생에 연애는 글렀나봐 …' 하며 자포자기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난제 앞에 무너지고 있는 수많은 미혼들을 위한 '궁극의 사랑 방정식'을 만나고자 책을 폈다.
내 나이 이제 삼십대에 접어들고 보니, 실제로 연애 시장에 남아 있는 아름답고 지적인 싱글 여성의 수와 잘생기고 괜찮은 싱글 남성의 수 사이에는 상당한 불균형이 있는 듯하다.이 점을 깨달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며, “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라는 한탄은 이제 뉴욕뿐만 아니라 런던이나 상하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은 도저히 수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양쪽의 숫자가 같아야 하지 않을까? _107쪽
이 지구상에 있는 70억 명의 사람 중에서, 아니 한국에 사는 5천만 명의 사람 중에서 내 짝은 어디 있는 걸까. 저자는 '배커스의 공식'을 통해 우리가 연애 상대를 찾을 확률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한다. 배커스라는 수학자가 사용한 공식에 따르면 그가 데이트하고 싶어할 여성은(여성의 의견은 일단 배제하고) 전 세계에 단 26명(!!!)이라고 한다. 아니 전 세계에 70억 명이나 사람이 있는데 그중에서 단 26명이라니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해나 프라이 또한 배커스의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고 하면서 좀 더 너그러운 태도로 이 공식을 적용하자고, 데이트 상대를 고를 때 온갖 종류의 필수 조건과 절대 불가 조건을 내세우면서 확률을 줄이지 말자고 하며 계속해서 논지를 전개해간다.
나는 수학자로서 인간 행동의 패턴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수학을 통해 거의 모든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사랑처럼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대상까지도. _7쪽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해나 프라이는 사랑의 영역 또한 다른 생활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패턴'이 지배함을 보여주지만,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팁을 제시해주기도 하는 등 은근 실용적이었다. 아무래도 '데이터' 측면에서 연구자에게 유용할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대한 예시가 자주 등장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양한 소개팅앱이 인기인 만큼 유용하게 써먹을 팁도 많을 듯하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최대한 외모가 비슷하지만 아주 살짝 덜 매력적인 친구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비칠 것이라고, 어떤 경우든 누군가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다가가는 편이 낫다고, 외모의 단점(그러니까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나 대머리처럼)을 가리려고 하기보다는 설령 누군가는 싫어하더라도 드러냄으로 자신을 차별화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식이다. 어찌 보면 당연히 보이는 말이지만 이런 얘기를 수학적 근거를 들어 보여주니 괜히 더 믿음이 간달까.
다행히도 인생의 수많은 다른 일들처럼, 평생 성관계를 맺은 상대의 수에서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데이트 상대를 선택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사랑에서도 무수히 많은 패턴이 발견된다. 이러한 패턴은 사랑의 속성처럼 제멋대로 휘어지거나 방향을 바꾸는가 하면 뒤틀리거나 진화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패턴을 특유의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수학이다. _9쪽
어떤 상대를 만날 것인지부터 어떤 상대와 결혼을 결심할 것인지, 그리고 성공적으로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가 삐걱일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사랑의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수학을 통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다루면서 수학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매력적인 책. 제 짝을 찾아 헤매고 있는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지만 빅데이터나 응용수학에 관심 있는 분들도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