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좌파적 스타일은 대중적 소구력을 잃었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좌파운동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 선배들에게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와 현실의 무게를 혼자 짊어진 듯한 비장한 표정, 한마디 한마디가 천근만근인 지사적인 말투, 500m 전방에서도 식별되는 무채색의 옷차림. 그러나 그런 모습은 오늘 대중들에게 부담스럽기만 하다. 좌파들은 ‘유연한 좌파’ ‘쿨한 좌파’ ‘상식적인 좌파’가 되어야 한다는 충고를 듣는다.

좌파의 일원으로서 나는 그 충고를 달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런 충고가 잃어버린 대중적 소구력을 회복하기 위한 스타일의 변화를 넘어 좌파의 정체성을 흐트러뜨리는 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한다. 안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극우파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우파 세력을 좌파라고 지칭해대면서(“좌파에게 잃어버린 10년”이란다, 빌어먹을!) 좌파의 정체성은 한껏 모호해진 상태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극우파들이 귀환하면서 좌파는 자유주의 우파가 맡았어야 할 싸움, 즉 이명박과의 싸움에 몰두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현실에서 좌파의 정체성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도 변할 수 없는 좌파의 출발점, 즉 계급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자유주의 우파는 먹고살 만한 양식 있는 시민들을 대변하지만, 좌파는 시민이라 불리면서도 시민으로서 인간적 사회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대다수 인민들을 대변한다.

좌파가 이명박과의 싸움은 제쳐두고 앵무새처럼 ‘신자유주의 반대’만 외쳐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명박과 싸우되 함께 싸우는 자유주의 우파 역시 신자유주의 세력의 일부라는 걸 똑똑히 기억하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극우 분파와 싸운답시고 신자유주의 자유주의 분파의 2중대가 되어 그들의 정치에 이용당하진 말자는 것이다. 자유주의 우파에게 이명박과 싸움은 목적이지만 좌파에게 이명박과 싸움은 기본일 뿐이라는 걸 분별하자는 것이다.

그런 분별을 잃을 때 좌파는 ‘좌파 당적을 가진 자유주의자’로 추락한다. 좌파를 견제하는 제도 미디어는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대표적인 좌파 논객’이라 호명하며, 대중성에 목마른 진보정당은 그들을 상전처럼 받들어 모신다. 그들을 따라 입당한 사람들은 아예 ‘계급을 폐기하자’고 외친다.(계급이 디지털 사회에선 걸맞지 않은 개념이라는 소리가 유행이지만, 신자유주의의 본질이 ‘계급 지배의 강화’라는 것은 오늘 국제성을 가진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래서 좌파의 정체성은 더욱 심각하게 훼손되고 좌파가 대변해야 할 인민들의 현실은 좀더 말끔하게 배제된다.

예나 지금이나 좌파의 존재적 모순은 대개의 좌파들이 자신이 대변하는 계급 자체가 아니라는 것, 그 계급의 인민들의 현실 속에서 실제로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좌파는 늘 그 모순에 긴장해야 한다. 먹고사는 일을 고민하지 않는 좌파 인텔리의 관념 속에서 그 현실은 잠시 미루어지거나 생략될 수 있다. 싸우다 지치면 잠시 휴가를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에게 그 현실은 미루어질 수도 생략될 수도 없다. 그들의 현실엔 휴가가 없다.

‘유연한 좌파’ ‘쿨한 좌파’ ‘상식적인 좌파’ 다 좌파에겐 약이 되는 말들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이 좌파를 더이상 좌파가 아니게 하는 것이라면 그 말들은 좌파에게 독일 뿐이다. 오늘 이 ‘개념 없는’ 세상에서 여전히 자신을 좌파라 말하는 사람들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좌파란 무엇인가? 대체 나는 누구인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622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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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안보 문제들이 최근 주목받게 되면서 노르웨이 언론에서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보통 기자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는 ‘이유’를 묻는다. 기자들에게 본인의 생각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개미국 새 행정부의 관심 끌기와 삼대 권력 세습 과정에서 내부 통합용”이라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북한 대외 정책의 장기적 목표는 대미관계 정상화와 세계 자본 시스템으로 편입인데, 여기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미국의 북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보장”의 역할과 함께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핵심 카드” 구실을 해왔다. 그리고 세종대왕함의 진수 등이 한국에서 국가주의 (“대한민국주의”) 정서를 부추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군사주의 열풍은 관제 내부 통합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전국을 병영화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북한은 한국을 훨씬 능가하지만 군사주의적 근대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양쪽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북한의 최근 대외 노선 강경화를 단순히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햇볕정책 포기와 일련의 강경책이 북한을 자극해 강경 일변도의 노선으로 밀어내는 데에 큰 몫을 한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북한을 언급할 때마다 “위협”과 같은 용어들이 당장 등장하지만, 사실 북한은 동북아의 최약체국일 뿐이다. 남한과 비교해도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32배 더 적고 무역총액은 167배 더 적지만,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거인과는 비교라도 가능하겠는가?

북한의 마지막 카드는 “군사”지만, 그 군비지출도 세계 11위 군비 지출국인 남한의 약 20%에 불과할 뿐이다. 이 상황에서 1991년 소련 붕괴로 옛 후원자를 잃은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후원자를 얻는 것은 절실한 과제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도 본의 아니게 “왕따”를 당하는 북한이 1999년 이후부터 남한의 햇볕정책을 크게 환영해 남북 협력 증진에 열성을 보인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남한이 1970년에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마산 등지에 설치한 수출자유지역과 격이 비슷한 개성공단을 만들어주는 것은 여태까지 남한을 “가난한 미제 식민지”로 이야기해온 북한으로서 자존심을 접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기적으로 남한이야말로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로 편입하는 데 “매개체”가 될 줄로 믿고 남한 자본의 진출을 유도했다. 북한 저임금 노동력의 착취 등 문제도 없지 않았지만 햇볕정책에 응해온 지난 10년 동안의 북한 관료집단의 태도로 봐서는 이 정책이 장기적으로 남북한을 하나의 경제 공간으로 묶어 평화적 공존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크게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 지배층도 계속 커져가는 중국 영향력을 상쇄할 또 하나의 힘으로서 남한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이와 같은 커다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이 국내 보수층 결집과 대미 유착관계 강화를 위해 북한과 여태까지 맺어온 협정서 등을 거의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북한 소비시장의 70%를 이미 중국 제품들이 점유하고 있지만, 이제는 북한이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하는 과정이 더욱더 빨라질 것이고, 북한 지배집단 내에서 군부의 목소리는 더욱더 세질 것이고, 통일은커녕 평화 공존 기반의 조성은 예측이 가능한 미래에 불가능해질 것이다. 한 번 속아본 북한이 두 번 속으려 하겠는가? 옛말대로 소탐대실, 자그마한 정치, 경제적 이득을 탐낸 이 정권은 한반도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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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다. 내가 알기로 이 사건은 자연인 정운천, 민동석 씨가 <PD수첩>을 명예 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그런데 정작 이 두 사람은 말이 없고, 엉뚱하게 청와대에서 대신 난리를 친다. 한 나라의 대변인이 구사하는 언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기 그지없다. 뭐, <PD수첩>이 '흉기'라나 뭐라나? 듣기에도 음산하고 스산하다. <PD수첩>이 흉기라면, 청와대는 흉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한나라당에서 다시 연극 <환생 경제>를 공연하면, 이동관 대변인이 과거 주성영 의원이 맡았던 역을 맡는 게 좋겠다.

재미있는 일이다. 명예 훼손을 당했다는 이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제3자에 불과한 청와대 비서관이 대신 나서서 입에 거품을 문다. 이로써 그는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폭로했다. 애초에 이 사건은 정운천, 민동석이라는 자연인의 명예에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분에 불과했고, 이 수사가 MB의 정책을 비판하는 <PD수첩>에 대한 정치 보복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임을 청와대가 요란하게 나서서 스스로 입증해 준 것이다. 광기에 가까운 청와대의 오버액션은 이 수사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정운천, 민동석 씨가 <PD수첩>을 고소한 것이 자그마치 지난 3월 3일. 수사가 시작된 지 반 년도 넘은 후의 일이다. 어떻게든 기소는 하고 싶은데 명분은 없고, 그래서 부랴부랴 사후적으로 법적 명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방송을 아무리 봐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만 있을 뿐, 정운천, 민동석 개인에 대한 관심이나 비방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공공기관이 수행하는 정책에 대한 비판을 공직자 개인의 명예 훼손으로 거는 것 자체가 엽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나 나올 만한 일이다.

법원으로 갈 것도 없이, 애초에 검찰도 자체적으로 기소는 무리라 판단했던 사안이었다. 작년 12월말 <PD수첩>을 수사하던 임수빈 부장검사가 사표를 던졌다. 그는 이 수사에 관해 "명예 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맞다. 이번 수사는 검찰 권력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PD수첩> 수사 임수빈 부장검사 사의', <한겨레> 2009년 12월 29일) 직접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가 도대체 '거리'가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을, 수사를 담당하지 않은 윗분들이 억지로 '거리'로 만들어 내라고 주문한 셈이다.

사실 정권의 입장에서 정운천, 민동석 씨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관심사가 아니다. 정권의 목적은 <PD수첩>의 보도가 온통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다. 한 마디로 혼네(비판 언론 탄압하기)와 다테마에(두 자연인의 명예 회복)가 따로 놀고 있는 셈이다. 후자를 내걸어 전자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MB 정권의 속셈이다. 이렇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없었던 법적 목표를 억지로 만들어내다 보니, 당연히 논리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검찰에서도 '거리'가 안 된다고 봤던 사안을 들고 법정에 가봐야, 얼마나 승산이 있겠는가? 검찰이 승소하기 위해 넘어야 할 벽을 보자.

제작진을 명예 훼손죄로 처벌하려면 <PD수첩>의 보도와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 실추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검찰이 확증해야 한다. (…) 또 검찰은 <PD수첩>의 보도 내용이 허위이며, 이를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왜곡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해야 한다. 제작진이 정 전 장관과 협상팀의 명예를 실추시킬 뚜렷한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방송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는 뜻이다. (…) 법원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한 보도에서 다소 과장이나 실수가 있더라도 취재진이 보도할 당시 사실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하고 있다. 때문에 번역 상 오류나 일부 과잉 편집을 곧바로 허위 사실로 연결하긴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PD수첩> 일파만파. 형사상 명예훼손 입증될까', <서울신문> 2009년 6월 20일)

이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법정에서 무죄 판결이 나버리면 검찰의 처지가 아주 곤란해진다. 곧바로 정치 보복을 무리한 기획 수사였다는 역풍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동원한 꼼수가 뒤지고 뒤져서 찾아낸 프리랜서 작가의 사적 메일을 깐 것이다. 검찰은 메일을 공개한 동기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검찰 관계자는 이메일 공개와 관련, "제작진을 기소하면서 범죄 성립의 주요 요소인 악의가 있느냐 또는 현저히 공평성을 잃은 게 맞느냐는 판단을 할 때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고 판단했고 국민에게 이를 충분히 설득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에 강한 반감이 있는 작가의 정치 성향이 프로그램에 영향을 끼쳐 왜곡 보도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檢,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연합뉴스> 2009년 6월 18일)

이 모두가 결국 보도의 공익성을 부정하고 보도에 악의성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꼼수다. "국민에게 이를 충분히 설득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메일의 공개가 '법정 안의 재판'이 아니라 '법정 밖의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 순진하게 자백한다. 이렇게 기소를 위해 무리하게 불법까지 자행하는 데서, 역설적으로 검찰이 지금 법리적으로 얼마나 궁색한 처지에 놓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프리랜서 작가 한 사람의 사사로운 감정이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만드는 프로그램 전체의 논조를 규정할 수 있겠는가? 이 가공할 논리적 비약에서는 어떤 처절함마저 느껴진다.

검찰은 30가지 왜곡을 발견했다 하나, 읽어보면 거의 문창과 습작 수준. 만약 내게 그 수사결과를 갖다 주면, 누구 말대로 '곱하기 2'해서 60가지 오류로 되돌려줄 자신이 있다. ('법대교수·의학전문가들, 검찰 <PD수첩> 수사 논리 반박', <노컷뉴스> 2009년 6월 19일) 검찰 발표는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므로, 왜곡 여부에 대한 판단은 반대편, 즉 <PD수첩>과 변호인 측의 목소리까지 들은 후에 내려도 늦지 않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에도 언론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줄줄이 흘린다. 검찰, 나이가 몇 살인데 왜 칠칠맞게 피의 사실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걸까?

그것은 물론 보수 언론의 입들 위로 내려주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검찰이 피의 사실을 흘리면 보수 언론은 그것을 졸지에 기정 사실로 바꾸어 놓는다. 도대체 이 검ㆍ언 유착에는 당연히 목적이 있다. 사실 법원이 미치지 않은 이상, 이 사안에 유죄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일단 기소를 해놓고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면, 시간이 많이 흘러 나중에 무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정치적으로 필요한 기간만큼은 <PD수첩>에 사실상 유죄 판결을 내려둘 수 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뭔가 뜨겁게 달아오른 것을 잠재우는 효과는 낼 수 있다.

법정에서 내려질 판결에 관계없이, 오직 기소만으로도 그들은 많은 일을 도모할 수 있다. 가령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그 특유의 오버액션으로 MB 정권의 은밀한 욕망을, 청와대의 정치적 리비도를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영국이나 일본 같으면 경영진이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일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현업에 있는 이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 보자.

이근행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철저히 계산된 발언이며, 미디어법 국면이라든가 방문진 이사선임 시기까지 임박했으니 이런 것들을 고려해 내놓은 발언일 것"이라며 "<PD수첩>의 기소와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오자마자 청와대가 받아서 취재진을 비난한데다 오늘은 이런 식으로 공영방송의 경영진 진퇴를 협박하듯이 거론한 것은 MBC 장악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문진 이사, 총사퇴할 사람은 이동관·청와대', <미디어오늘> 2009년 6월 19일)

듣자 하니 이 대변인은 그는 <PD수첩>의 보도가 "심하게 비유하면 음주 운전하는 사람에게 차를 맡긴 것이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의 공식 입장을 말하는 대변인이 이 사용하기에는 별로 적절해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국민의 공감을 살 것 같지도 않은 썰렁한 독설이다. 그 말을 듣고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어, 검색창에 '음주'와 '이동관'을 넣고 엔터키를 눌렀더니 기사가 하나 뜬다. 이번 브리핑은 멀쩡한 정신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그(=자유선진당 박현하 부대변인)는 또 "이 대변인은 정부가 쇠고기 고시를 관보에 게재하던 지난 26일 출입기자들에게 '음주 브리핑'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며 "이 대변인의 거듭된 일탈은 청와대 2기 인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권력의 측근으로서 누리는 호가호위인가 객기인가"라고 반문했다. ('촛불집회 쓰지 말라? 이동관, 월권 넘어 언론 통제', <노컷뉴스> 2008년 6월 30일)

한나라당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PD수첩>'의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치부를 감출 의사가 전혀 없다는 의미에서, 이 정도면 거의 '바바리맨'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확정되지 않은 피의 사실에서 초강력 발언으로 날아가는 비약에는 매우 수상한 구석이 있다. 사생활 침해의 비난을 감수해가면서까지 사적 이메일을 공개하는 기동 역시 해괴하기 이를 데 없다.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들은 정작 정운천과 민동석의 명예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한나라당-보수 언론이 연출하는 저 오버액션은, 시국 선언이 이어지는 이 찬란한 6월에 국민의 대다수의 반대에 부딪힌 6월 '미디어법'의 운명을 요란하게 걱정하는 방식이 아닐까?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620215859&section=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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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6-2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와대는 그냥 "흉"한거임.

2009-06-22 2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왜 인권침해와 인간고통은 계속될까? 영국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조효제 옮김, 창비, 2009)이라는 책을 썼다. ‘왜 국가와 사회는 인권침해를 부인하는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주로 ‘부인의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나는 언론학도로서 언론의 문제를 다룬 제7장에 눈길이 갔다. 코언은 이렇게 말한다.

“문화적 부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미디어라는 야수가 무엇을 선별하고 가공하고 보도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대단히 포착하기 힘든 과정이다. 미디어의 여과장치가 문화적 부인 그 자체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개인 차원의 ‘부인의 심리학’은 대중매체의 매개 과정을 거치면서 집단 차원의 ‘부인의 경제학’으로 바뀌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한국을 사례로 삼아 살펴보자. 나는 한동안 <한겨레>를 구독할 만한 사람이 구독을 하지 않을 때엔 꼭 그 이유를 캐물었는데, 답은 거의 한결같았다. 비판 일변도로 너무 어두워 불편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비판의 내용엔 동의한다는 점이다. 어떤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의 논리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한 건 잘 알고 있지만, 불의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빠져 지내다간 자기 한몸 지키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대중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느라 이미 충분히 피곤한데다 지쳐 있다. 쉬고 싶어 한다. 위로받고 싶어 한다. 아니면 좀더 나은 경제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애쓴다. 모두 다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언론을 포함한 모든 대중매체를 이용할 때에 갖는 첫째 동기가 바로 그런 오락·위로·자기발전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적 삶의 영역을 떠나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의 선택 이유가 그런 만큼 세상의 불의에 대한 부인이 집단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외 모든 대중매체 상품이나 관련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보라. 오락·위로·자기발전 이외에 ‘양심에의 호소’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는가? 물론 늘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판 자체를 뒤엎진 못한다. 오늘날 한겨레가 보수신문들에 양적으로 밀리는 이유는 자본력이 약해서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인권’이 ‘경제’에 포섭되고 ‘개인 심리’가 ‘시장 논리’에 압도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매년 2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하지만, 이미 이런 자살은 뉴스 가치를 잃은 지 오래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잘 살아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녀의 입시전쟁 매니저로 맹활약하고 있다. 우리는 ‘재개발’의 잔인성을 평소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개발로 지어진 아파트를 거부하진 않는다. 우리가 사회적 사건으로 충격을 받거나 분노하거나 비탄에 잠기는 건 모든 대중매체가 집중적으로 매달리는 예외적 사건에 국한된다. 즉, 인권과 고통도 대중매체 이벤트가 될 때에 비로소 감지될 뿐이다.

모든 게 대중매체 하기에 달렸다는 ‘대중매체 결정론’이나 아예 경쟁을 없애자는 근본주의 처방을 역설하려는 게 아니다. 우선 실천 가능한 차원에서 대중매체 개혁의 의제를 다시 점검해보자는 뜻이다. 좀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오락·위로·자기발전이 잘 팔리는 상품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과, 그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인권과 고통의 문제와 연결해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매우 크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저널리즘의 문법은 여전히 반세기 전의 것이다. 그때와는 세상이 크게 달라진 만큼 새로운 문법의 창출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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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문화계 극우단체 향해 ‘칼’ 뽑아 든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이제 칼을 뽑을 때가 됐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46)가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그는 누구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는 것일까. 인터뷰하기 위해 6월 10일 만난 진 교수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는 “이 싸움을 위해 진보신당도 탈당했다”고 말했다. 이유는 “당에 누가 될까 염려해서”다.

“한예종 사태는 진보인사 축출이 목적”
진 교수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집중 감사에 이은 황지우 전 총장 사퇴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학교 구조 개편 요구에는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즉 한예종을 ‘좌파엘리트의 본산’으로 규정한 보수세력이 MB정권과 코드가 다른 황지우 총장을 비롯해 심광현 영상원 교수, 이동연 전통예술원 교수, 진중권 객원교수 등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 인사들을 축출하기 위해 권력을 적극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 19일 통보한 종합감사처분요구서에서 주력사업이던 통섭교육(학제 간 융합교육)의 중단, 관련 교수 중징계, 이론 관련학과 축소, 서사창작과 폐지 등을 요구했다. 또 공금 유용 등의 이유를 들어 황 총장을 중징계 처분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한 데 이어, 5월 30일 황 총장이 표적감사에 대한 항거의 의미로 낸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심광현·이동연·진중권 교수는 실기 전공과 인문·과학 기술 융합교육을 위해 추진한 통섭교육 사업에 참여해온 인물들이다. 공교롭게도 황지우 총장이 평교수로 돌아갈 서사창작과를 비롯해 이들이 몸담고 있는 곳은 모두 이론과다.

진 교수는 이 모든 것이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 보수 인사들의 단체인 문화미래포럼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은 지난해 9월 심포지엄을 열고, 한예종 6개원 해체 및 축소 등을 요구했다. 올들어서는 ‘미디어워치’ ‘빅뉴스’ 등 인터넷 보수매체들이 통섭 과정 부실, 진보 인사의 교수 임용 등을 문제삼는 기사를 일제히 내보냈다. 그후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착착 진행됐다. 진 교수는 “당해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자살했는지 이해되더라”고 말했다.

“한예종을 빌미로 저를 구속하거나 도덕적 타격을 주려고 한 게 분명해요. 인터넷 보수매체의 대표가 제가 감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고, 그 매체들의 보도대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이루어졌어요. 또 처분 결과도 상당 부분 해당 매체들이 예견한 대로에요. 제대로 된 감사가 아니라 인터넷 보수매체들이 나를 포함한 한예종 내 몇몇 인사에 가하는 공격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이루어진 거예요. 당해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왜 자살했는지 이해되더라고요. 노 전 대통령도 이런 식으로 당했겠구나 싶었어요. 문화체육관광부와 인터넷 보수매체는 감사 내용을 실명을 거론하면서 흘리는 식으로 인격살인과 여론재판을 진행했잖아요. 책잡힐 일을 하진 않았지만 미네르바는 뭐 죄가 있어서 구속됐나요?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어요. 반격하겠다고 결심했죠.”

그는 자신이 칼을 겨누고 있는 상대는 유인촌 장관과 신재민 차관으로 상징되는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문화미래포럼으로 대표되는 문화계 일부 우익단체라고 했다. 이들이 한예종 해체와 이른바 ‘좌파 척결’의 시나리오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에 비해 ‘빅뉴스’ 등을 통해 줄기차게 진 교수를 공격하는 변희재씨는 ‘꼬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빅뉴스’ 대표 변희재씨는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6월 9일 진 교수를 고소했다. 한예종의 부실운영 실태를 정당하게 취재해 의혹을 제기했는데, 진 교수가 이를 현 정권과 공모해 이뤄진 것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이유다.)

진 교수는 “그들에게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게 할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리고 그 대가란 “그들이 한 행위를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넓은 차원에서 보면 권력을 사유화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명박 정부는 공정해야 할 국가기관을 오직 정권 유지 수단으로만 이용하고 있잖아요. (촛불재판과 관련한) 사법부 파동에 이어 (노 전 대통령 서거 여파로) 검찰총장이 물러나고,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표적 세무조사를 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은 미국으로 도피했어요. 경찰도 다르지 않아요. 저는 현 정권 하에서 한예종 사태를 비롯해 문화계에서 벌어진 이 야만적인 일들을 역사에 기록으로 새겨둘 거예요. 그들이 조폭과 같은 이런 짓들을 하고도 버젓이 살아가면 안 되는 거거든요.”

“사립대 교수들 열등감도 한 몫”
진 교수는 “문화미래포럼과 장단을 맞춰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이 한예종 해체 및 축소를 주장하는 것은 열등감과 밥그릇 싸움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2년 전문 예술인 양성을 목표로 설립한 한예종이 그동안 국제 예술 콩쿠르·경연대회 수상자를 다수 배출하며 두각을 나타내자, 사립대 예술계 교수들이 한예종 성장에 위기의식을 가진 것이라는 해석이다.

“문화미래포럼과 같은 뉴라이트 진영에서 주장하는 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잖아요. 그럼 시장경제 이론에 따라 경쟁해야지, 왜 권력을 끼고 들어와 자유경쟁을 못하게 하느냐 말이에요. 실력이 떨어지면 자기들이 경쟁력을 키우든가 퇴출돼야지, 왜 잘 되는 한예종을 밟으려고 할까요? 좋은 학생들이 한예종으로 몰리니까 위기의식을 느끼는 거예요. 한예종은 외국 학생들이 유학올 정도로 국제적인 학교가 됐어요. 좌파를 척결하고자 하는 보수 우익세력과 한예종의 성장에 질투를 느낀 사립 예술대 교수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번 한예종 사태를 몰고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6월 2일 한예종을 방문해 “황지우 총장이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유럽에서는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 총장도 좌파에서 나오고, 우파가 집권하면 우파에서 총장이 나와 정부와 협력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진 교수는 “우파 정권이니까 우파 총장이어야 한다는 발상은 딱 나치 수준”이라며 “재미있는 것은 신 차관은 자신이 한 말이 나치의 말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930년대 독일 국가사회주의자(나치)들은 바우하우스의 일부 교수들을 축출하기 위해 그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1933년 베를린의 비밀경찰국이 바우하우스의 교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로에게 보낸 극비 문서에는 바실리 칸딘스키와 같은 특정 교수들을 지목해 그들이 더 이상 교단에 서지 못하도록 하고, 시행해오던 교육과정도 수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교단은 ‘국가 사회주의 사상의 원칙을 확실히 지지하는 자’들이 차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진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장관의 관계는 이를 테면 히틀러와 독일 나치 선전상이었던 괴벨스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규정했다.

“유인촌 장관과 신재민 차관 둘 다 문화적 마인드가 없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일을 선동과 정권 홍보 수단으로만 인식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파 정권에선 우파 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죠. 몰상식한 거예요. 유인촌 장관이 처음 본 학생들에게 반말하고, 학부모에게는 ‘세뇌당한 것’이라는 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죠. 양촌리 용식이가 완장 찼다고 좋아하는 꼴이에요.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도 정치색이 다른 단체장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었잖요.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사세요’라고밖에 해줄 말이 없어요. 어차피 역사는 MB정부 5년을 한국사에서 퇴보의 시기로 기록할 테니까요. 이제 3년 반 남았잖아요.”

그렇다면 MB정부의 본질을 진 교수는 어떻게 진단할까. 돌아온 말은 “이명박 대통령의 시대정신은 시대착오”라는 것이다. 산업화 초기의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500만 조문객 과소평가 말라”
“산업화 초기 때는 대다수가 농민이었잖아요. 이들의 신체를 기계의 속도에 맞추려니까 강제가 필요했죠. 소위 산업화 엘리트들이 나머지 국민을 계몽해 끌고 가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때는 정치도 일방으로 나타났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이미 정보화시대예요. 누구 한 사람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에요. 촛불집회를 보세요. 각각의 개별 주체들의 창의성이 모여 전체적인 효과를 낸 거예요. 그렇다면 정치도 쌍방향이 되어야 하는데, 산업화 초기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MB정부는 여전히 일방으로만 하려고 하죠. 이 사람은 대중은 누군가의 지도나 명령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러니까 촛불집회를 지도하고 명령한 놈을 찾으라고 지시한 거죠. 그런데 배후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다음엔 초를 무슨 돈으로 샀는지 알아보라고 했다잖아요.”

진 교수는 지난해 말 출연한 MBC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가리켜 “두뇌 속에 삽 한 자루밖에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발언했다. 진 교수는 “이 역시 이 대통령의 사고가 산업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풍자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MB는 현장감독하면서 경제신화가 됐잖아요. 그런데 그게 바로 그의 한계예요. 유일하게 아는 경제가 토목공사니까요. 그래서 산업화 초기, 산업 인프라를 까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운하를 깔자고 했다가 운하가 안 되니까 강을 파헤치자 이러고 있잖아요. 머릿속에 든 게 삽질밖에 없으니까요.”

노 전 대통령 500만 추모 열기에 대한 현 정부의 안일한 인식에 대해서도 그는 쓴소리를 퍼부었다. 국민들의 마음 밑바닥부터 끓고 있는 분노와 저항의 신호를 현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조문객이 200만 명이었지만 당시는 동원이 많았어요.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동원이 없었잖아요. 그것도 정부가 차린 분향소엔 가지 않고 대다수가 시민이 만든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어요. 500만 국민이 단지 노 전 대통령이 좋아서 혹은 동정심 때문에만 조문을 했을까요? 기저엔 다른 게 깔린 거예요. 이번 선거 결과를 보세요. 여론조사할 때는 한나라당이 10% 이기고 있었는데, 투표 결과는 오히려 한나라당이 10% 뒤진 걸로 나타났어요. 이게 뭘 말해주는 것이겠어요?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투표에 소극적이었지만, 한나라당 지지자가 아닌 이들은 표를 통해 민심을 보여주자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에요. 500만 명의 국민이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반증이에요.”

진 교수는 국민의 이 같은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현 정부를 ‘바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급기야 ‘폭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MB정부는 프로판 가스를 다 막아놓고 불을 때고 있는 형국이에요. 그럼 폭발하잖아요. 폭발은 거리에서 이뤄질 수도 있고 투표장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거예요.”


진 교수의 말발은 고교시절 ‘이빨싸움’이 원천

진중권 교수는 비유에 강하고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젊은 지지층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를 위악과 독설 혹은 막말이라며 싫어하는 이도 적잖다. 한 예로 얼마 전 소설가 황석영씨가 MB정부를 ‘중도실용정부’라며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자 “기억력이 금붕어 수준”이라고 했고, 황 작가를 두둔하며 진 교수에게 “공부 다시 하라”고 주문한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는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미학적 촌티”라고 맞받아쳤다. 5년 전 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 사건을 두고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이나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에 대해 “쪽팔려서 자살했다는 얘긴데 쪽팔린 일을 왜 하냐”고 한 말에 대해선 최근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했다.

정학을 세 번 맞고서야 고교를 졸업했다는 그는 지금의 말발의 원천은 고교 시절 친구들과 한 속칭 ‘이빨싸움’이라고 했다. 상대방이 모욕감을 주면 화를 내지 않고 받아쳐야 하는데 이때 재치있게 받아침으로써 상대를 열받게 하는 게 ‘이빨싸움’의 포인트라고 했다. 노동자문화운동하면서 노동자들을 상대로 말을 하는 훈련을 한 것도 밑천이 됐다. 노동자들에게는 되도록 구어체를 활용해야 하고,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는 “이를 가장 잘 하는 이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라고 말했다. 정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인지, 장바닥 아저씨인지 구분이 안 될만큼 적절한 비유를 섞어 쉽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란다.

진 교수는 속칭 ‘낚시질’의 원조이기도 하다. 1999년 조선일보 독자사이트에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욕하는 제목의 글을 띄우면 누리꾼들이 광클(광분해 클릭)하는데 막상 내용을 열어보면 “파블로프 개(심리학에서 말하는 조건반사 학설 실험의 개) 실험 중입니다”라고 써놓은 것이다. 당시 그의 별명은 ‘조선일보 밤의 주필‘이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검색 기능을 없앴을 정도였다.

그가 사용하는 상당수 용어와 아이디어는 DC인사이드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얻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가장 찌질하면서도 선진적”이라며 “중장년의 기성세대도 젊은이들의 어법을 구사할 줄 알아야 서로 소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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