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노동자들이 범법자인가?…정의 없는 나라 필히 망한다"

제가 오늘 언론에서 쌍용차 사태에 대한 보도에서 '경찰이 출입문을 확보했다'는 식의 보도를 접하면서 그냥 경악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확보'라니, 마치 적군과 전쟁하는 아군에 대해서 보도를 하는 모양인 셈이지요.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거점 하나 하나씩 확보해서 결국 진압, 박멸해야 할 '범법자' 집단인가요? 잔인한 어법, 잔인한 사고이기도 하지만, 이 잔인성 이외에 커다란 문제는, 여기에서 거의 1천 명이 되는 노동자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정의' 그 자체가 짓밟힌다는 것입니다.

정의가 짓밟히는 현장

그리고 아무리 - 애당초의 이명박씨의 비과학적 소설 격인 공약대로 - 연간 7%씩 성장한다 해도 정의 없는 나라는 결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부동산 버블이 터져 마이너스 7% 성장이나 안됐으면 좋겠지만, 성장이 되든 말든 인간들의 한 집단으로서는 정의는 먼저입니다.

정의의 개념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과실에 대한 책임'과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즉, 대표적인 약자 집단인 피고용자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비록 책임의 일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일단은 강자 (자본/국가)는 최대한 그들의 이해관계를 배려하는 것은 롤즈와 같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정의이지요.

그런데 이 쌍용차의 경우에는 해고라는 이름의 사회적 사형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아예 이렇다 할만한 책임질 과실은 전혀 보이지도 않아요. 세계 자동차 업계의 위기부터 정부가 허용, 추진한 상하이차에의 매각까지, 노동자들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상황이거나 정부 직무유기의 과실입니다.

즉, 약자에 대한 배려의 의무를 지는데다 과실(불량 자본에의 졸속 매각 등)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정부로서는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해고를 막는 길 이외에 정의롭게 행동할 도리란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도리를 행하는 대신에 공권력, 즉 합법의 탈을 쓰는 폭력을 행할 경우에는 과연 '국가'란 무엇이 될 것인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일찌기 '정의 없는 국가'를 뭐라고 불렀나요? 맞아요, 강도 조직이라고 불렀지요. 강도 조직이 통치(점령?)하는 영토 안에서 태생적으로 살게 되신 여러 분, 탈주라도 꿈꾸지 않으시겠어요?

국민통합의 여러 모습

이건 정말로 큰일입니다. 쌍용차 노동자에게도 일생의 대불행, 잘못하면 인생의 파괴지만, 나라 전체로서도 도덕적 파탄으로의 길이지요. 사실 국가란 원래 그 국민을 통합시킬 만한 중심축 같은 게 필요해요.

예컨대 우리가 잘 아는 일본의 경우에는 근대 국가의 국민적 통합의 중심축은 천황이라는 신화이었는데,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쉬운 신화인 만큼 이와 같은 형식의 통합은 큰 불행을 자초했어요. '중화 민족 웅비'를 중심축으로 하는 오늘날 중국의 인민 통합의 위험성이란 지금 회골(위구르)자치구에서의 피식민 민족에 대한 유혈 탄압을 보면 다들 아실 만도 하지요.

아니면 '조선민족제일주의'와 '육탄이 되어서 불구대천의 원수 미제를 파괴하겠다'는 걸 골수로 하는, 필연적으로 핵 프로젝트 등의 군사주의적 낭비를 필요로 하는 북한 식 인민 통합은 어떤가요? 역시 별로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지요.

이와 대비해서 예컨대 북구 국가들의 국민 통합의 중심축은 '상호 양보, 타협, 그리고 인권 실현'쯤일 거에요. 이와 같은 세팅에서 노동계급이 진정한 사회주의를 포기한 게 문제지만, 어쨌든 적어도 국민 집단 안에서의 계급갈등 시 무력 사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갈등이 있으면 협상과 타협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런 나라들의 국체라면 국체입니다.

미래 지향으로서의 공산 사회 건설을 포기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어쨌든 그 포기를 대가로 해서 얻은 이와 같은 기본 설정은 그나마 현존하는 사회적 체제로서는 가장 '덜 나쁜' 것이겠지요. 대한민국도 살만 한 곳이 되자면 이쪽으로 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터인데, 지금은 우리가 아주 정반대 쪽으로 행진합니다.

남한식 국민통합의 위험성

1990년대까지는 남한의 국민 집단 통합 이데올로기란 반공주의와 개발주의(잘 살아보세!), 그리고 혈통주의적 민족주의(우리는 다 단군의 자손!)의 중첩이었어요. 일부 농촌지역에서 국제 결혼이 전체 결혼의 40%나 되는 이 시점에서는 단군 이야기는 일단 접게 되는 것이고, 부동산 경제의 몰락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는 '부자 되기'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전체 부동산의 65%를 소유하는 최고상류층 1%나 그 주변 집단을 제외하면 이 나라에서 이렇다 할만한 경제적 희망이 있는 사람이란 극히 예외적이지요. 그러면 후자의 두 개 요소를 빼면 남은 게 뭐에요? 맞아요, 반공주의, 즉 뉴라이트 식의 반북, 멸북, 북한 붕괴론 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군사주의적 국민주의에요.

그러니까 우리 국민 통합의 기초로 우리가 상생, 타협, 인권, 비폭력을 삼지 않는 이상, 여전히 이 국민 집단을 하나로 묶는 기초 구조란 '대한민국의 아들'이라면 누구나 가야 할, 북한이라는 '적'을 상대로 할 군대일 것입니다.

우리가 정부의 책임과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적 정의를 골자로 하는 온건 좌파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유일하게 남은 게 이스라엘, 터키, 싱가포르 식의 군국형 국민 통합과 특히 이스라엘 식의 영속 전시 상태입니다.

물론 한국의 지배자들도 대북 전면전을 전혀 원하지도 않지만, 불장난하다가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날는지 전지전능하신 하늘만 아실 것이고요. 그러니까 쌍용차 노동자를 짓밟는 것은 결국 우리가 자멸적인 군사주의적 통합의 길을 걷는다는 징조지요. 차라리 망조라고나 할까요?

정의 없는, 강도 조직 수준의 나라는 필히 재앙을 맞게 돼 있고 그 궁극에 가서 망국을 맞게 돼 있습니다. 근대 일본의 예언자이자 함석헌의 스승 우찌무라 간조가 군국 일제보고 하던 소리인데, 지금 대한민국보고 해야 할 이야기인 듯합니다...  

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말을 유인촌 장관에게 돌려드릴 때가 됐다. 문화부의 말죽거리 잔혹사를 막으려면, 이전 정권이든, 지금 정권이든, 정치색을 가진 문화부 장관은 물러나는 게 자연스럽다. 다른 정권에서라면 벌써 낙마했을 게다. 하지만 능력이나 자질보다 충성심을 보는 각하의 철학 덕분에, 그는 "7월초로 예상되는 개각에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단다. ('실세들은 문화부를 좋아해', 내일신문 2009/06/10) 

다른 한편, 최근 한나라당 쇄신특위에서는 쇄신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건의하기로 했단다. 쇄신안의 골자는 "총리를 포함한 개각 및 청와대 참모진의 전면적 인적쇄신"이라고 한다. 과연 누가 쇄신의 대상이 될까? 위원장 원희룡 의원은, 

'인적 쇄신' 대상과 관련해 구체적인 이름은 거명하지 않았으나 "국회나 국민들을 무시하는 모욕적이고 불손하고 부적절한 언사들을 아주 그냥 자랑스럽게 쓰는 인사들"이라고 설명했다. ('원희룡 불손하고 부적절한 언사 상습범들 인적 쇄신해야' 프레시안 2009/07/03) 

"구체적인 이름"은 거명하지 않아 쇄신대상은 국민퀴즈로 남는다. "특위 안팎에서는 청와대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해 이동관 대변인, 외교통상부 유명환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다"고 한다. 쇄신이 이루어진다면, 1순위는 누굴까? "국회나 국민들을 무시하는 (...) 부적절한 언사들을 자랑스럽게 쓰는 인사"라는 게 힌트가 될지 모르겠다.  

유인촌 장관의 주옥같은 어록 

그 동안 유인촌 장관은 주옥같은 언행으로 신문지면을 꽃처럼 수놓곤 했다. 작년 청와대에서 열린 올림픽 선수단 초청 만찬에서,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문대성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께서 만들어 주신 거야." ('유인촌, 그 입의 가벼움이 결국' 미디어오늘 2008/10/07)  

독재자 모시고 살아가는 제3세계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풍경이다. 아무한테 반말 지껄이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황당한 것은 IOC 위원 된 공적마저 기어이 각하께 돌리는 저 투철함. 이승만 시절인가?

 

"학부모를 누가 이렇게 세뇌를 시켰을까" "서사창작과? 그게 잘못된 과거든" 6월 3일, 한예종 문제 관련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학부모에게 막말을 해 물의를 빚고 있는 유인촌 장관

국민들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문화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학부모를 향해 "세뇌 당하셨네요"라고 말하는 장면. 사실 문화부에서 '세뇌'라는 말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촛불정국에 문화부 홍보지원국 직원 12명의 '정책 커뮤니케이션 교육' 강의자료로 사용된 문건에는 이미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하다는 구절이 등장한다. ('대중은 멍청, 인터넷 매체 몇 푼 쥐어주면 돼' 미디어오늘 2008/05/28) 

어록의 압권은 역시 작년에 국회에서 퍼부었던 폭언. 자신을 'MB의 졸개'라 부르는 야당 의원의 발언에 유장관은 "성질이 뻗쳐서" 애먼 사진기자들을 향해 예의 반말을 지껄였다. "찍지 마! 찍지 마!" 그 뒤로는  들어주기 남세스런 상스러운 표현도 이어졌다. 황당하게도,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유장관은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을 새 정부 문화정책의 모토로 내세운 바 있다. ('柳문화, 품격 있는 문화국가 만들겠다' 연합뉴스 2008/09/03)   

부족한 교양이 낳은 이 우발적 사건들이 동시에 MB 문화부의 본질을 보여준다. 가령 (1) "대통령께서 만들어주신 거야." MB 정권 아래서 문화부는 실제로 정권의 치적을 홍보하는 기능을 맡았던 3공 시절의 문화공보부로 전락했다. (2) "세뇌 당하신 거예요." MB 문화부는 실제로 3공 시절처럼 국민을 계몽과 홍보, 심지어 세뇌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3) "성질이 뻗쳐서." 국회에서, 그것도 카메라 앞에서 장관이 드러낸 이 야성. 그가 지난 1년 반 동안 문화계에서 행해진 이념테러 역시 그 못지않게 거칠었다. 

문화부, 3공화국 문공부로 돌아가다  

왜 문화부가 졸지에 문공부로 전락한 걸까?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제도적 원인. 국정홍보처를 문화부에 통합시켜버리다 보니, 문화부 장관이 꼴사납게 정권홍보를 주업무로 삼게 된 것이다. 둘째는 이념적 원인. 3공 시절에 갇힌 MB의 상상력은 문화를 국정홍보의 수단 정도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셋째는 인격적 원인. MB는 유장관의 영웅이다. 의식적으로 MB를 닮으려 하니("오랫동안 옆에서 봤기 때문에 내가 닮아간 것" 한겨레 2009/07/03) 문화부가  MB의 친위대처럼 될 수밖에.  

3공 시절에나 보던 현상이 다시 나타나는 건 그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3공화국 정부는 종종 유명가수를 정권의 홍보에 동원하곤 했다. 또 그 시절 가수들은 음반의 끝에 반드시 애국심을 고취하는 '건전가요'를 끼어 넣어야 했다. MB 정권의 복고 취향은 이 해괴한 관행을 오늘에 되살려낸다.  

청와대는 전문가에 의뢰해 일명 '힘내라! 대한민국' 등의 랩송 등을 제작한 뒤 인기그룹 '빅뱅'을 비롯한 여러 유명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부르게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라사랑 랩송은 경제위기 극복에도 적잖이 도움이 될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국민적 단합이 절실한 상황에서 (...) 애국심 고양 및 국민통합에도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靑, '나라사랑 랩송 만든다' 연합뉴스 2009/02/15) 

나라사랑 랩보다 우스운 것은, 그게 "애국심 고양 및 국민통합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청와대의 믿음이다. 대중은 거국적 비난으로 이 야무진 믿음을 사정없이 비웃었다. ('랩으로 애국심 고양? 유치하다' 헤럴드 생생뉴스 2009/02/17) 저런 식으로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게 정권의 문화감각이다. 문화를 담당하는 주무부서는 좀 나을까? 그 밥에 그 나물, 촌사마의 감각도 다르지 않다. (이게 다) "젊은 층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 아니겠냐." ('여론의 된서리 맞은 나라사랑 랩송' weekly경향 2009/03/05)  

문화부의 감각이 이 지경이니 '대한 늬우스' 소동은 예정된 사고였던 셈이다. 국민의 혈세 2억을 잡아가며 야심차게 추진한 이 계획 역시 네티즌들의 거센 비난에 부딪혔다. 그러자 문화부에서 부랴부랴 다음 아고라에 해명 글을 올렸다. 

'대한늬우스'라는 단어는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함을 주기 위한 광고기법 차원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 문화부는 광고 상영에 앞서 영화관 주수요층을 대상으로 반응조사를 한 바 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재미있다, 이해하기 쉽다고 답했으며, 또한 내용 표현방식에 대해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문화부, '광고는 광고일 뿐 오해하지 말자' 2009/06/25) 

이런 광고를 보고 "재미있다, 이해하기 쉽다"며 "좋은 반응을 보였"다는 "영화관 주(主)수요층"은 도대체 어디에 가면 볼 수 있을까? (문화부에서는 멍청한 대중만 따로 추려 반응 조사용 마루타로 관리하나 보다.) 문화부만 아는 '주'수요층 말고, 대부분의 국민으로 이루어진 '부'수요층의 반응을 보자. 

"백 투 더 퓨쳐"(뷰스앤뉴스 2009/06/24),
"히틀러 라디오에 히틀러 늬우스"(프레시안 2009/06/24),
"국민 바보로 아는 대한늬우스"(한겨레 2009/06/24),
"역사의 시계 거꾸로 돌린 블랙코미디"(오마이뉴스 2009/06/25),
"시대착오적, 강압적" (노컷뉴스 2009/06/25)
"눈물이 날지언정 크게 한번 웃자"(업코리아 2009/06/25),
"이제 하다하다 별걸 다해" (폴리뉴스 2009/06/25)
"정부가 왜 욕을 얻어먹는가 했더니" (국민일보 2009/06/26)
"유인촌의 실패한 촌티 전략"(미디어스 2009/06/26),
"대한늬우스, 또 다른 소통부재"(헤럴드경제 2009/06/26)
"대한늬우스는 또 뭔가"(중앙일보 2009/06/26)
대한 늬우스, 과거로의 회귀 (경향신문 2009/07/02)  

정권의 퇴행적 감성은 사사건건 대중의 세련된 감성과 충돌하며 국민적 반감을 사고 있다. 이 문화지체(cultural lag)가 어디 청와대나 문화부만의 문제일까? 최근 국정원에서도 이에 질세라 노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빈티지 프로젝트를 내놓았다. 이로 보아 이 퇴행적 취향은 얼빠진 한 두 개인 혹은 넋 나간 한 두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MB 정권 전체에 공유되는 일반적이며 보편적 감성인 듯하다. 

'안보신권' 이벤트가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고 있다. (....) '안보신권 필살기를 연마하라' 코너에는 5명의 간첩을 찾는 게임이 등장한다. (...) 이를 접한 한 네티즌들은 "유치원생들 그림 맞추기를 한다고 안보의식이 생기겠느냐"며 "저런 문제를 내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합성사진인줄 알았는데 국정원이 실제 실시하고 있는 행사라니 놀랍다"며 "조만간 남한판 '5호 담당제'가 시행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국정원 이벤트 안보신권, 네티즌 질타' 노컷뉴스 2009/06/24)

6, 70대 노인들이 가진 70년대 콘텐츠를 억지로 2,30대 디지털 세대의 표현형식에 담다 보니, 거기서 해괴하기 짝이 없는 문화적 에얼리언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나라사랑 랩, 대한늬우스, 안보신권. 다음에는 또 어떤 괴물이 탄생할까 ?

이 관제 하이브리드 문화를 유장관은 "젊은 층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라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MB정권도 "젊은 층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절실히 원한다. 문제는 방향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젊은 세대를 향해 '미래'로 가는 게 아니라, 젊은 세대를 자신들이 있는 '과거'로 끌어당긴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문제는 이 미션 임파서블에 국민의 혈세가 들어간다는 데에 있다.  

문화부의 '정책 커뮤니케이션' 거참 희한하네  

국민을 홍보와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6~70년대 산업화 초기의 습속이다. 당시 국민의 대다수는 농민이었고, 교육수준도 높지 않았기에 계몽과 홍보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국민의 대다수가 정보 프롤레타리아이고, (MB도 한탄하듯이) 고졸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가는 과잉교육의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낡은 산업혁명의 자식들이 디지털 혁명의 자식들을 가르치겠단다. 이건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진화의 문제. 한 마디로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에게 문명을 가르치려 드는 격이다.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한 '대한늬우스'를 놓고, 문화부 제2차관은 "어쨌거나 이슈화되지 않았냐", "광고를 잘한 것"이라 말했단다. ('문화부 4대강 대한늬우스 자화자찬 파문' 미디어오늘 2009/07/02) 내친 김에 '대한늬우스' 2탄도 극장에 걸 작정이란다. ('대한늬우스 2탄, 이 달 25일부터 상영' 조선일보 2009/07/01) 반발을 하든 말든, 그냥 가겠다는 얘기다. 황당한 것은 문화부에서는 이런 짓을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이 증세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앞으로도 정부 정책을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 방안을 강구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대한 늬우스 15년만 부활…문화부 "대화가 필요해"' 서울신문 2009/06/24)

이 문화부의 처방을 뒤집으면, '그 동안 국민과 소통이 안 된 것은 정부 정책이 너무 어려워 국민이 편하게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진단을 얻게 된다. 한 마디로 국민들이 우매하다는 얘기다. 그 문건이 생각나지 않는가? "멍청한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 이거야말로 문화부에서 개그맨을 동원해 대한늬우스를 찍는 동기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게 아닐까? 

최근 문화부의 행태는 문화부 홍보지원국 직원들의 강의자료로 쓰인 그 문건을 연상시킨다. 문건의 내용은 괴벨스의 뺨을 친다. 위에 인용한 기사('대중은 멍청, 인터넷 매체 몇 푼 쥐어주면 돼' 미디어오늘 2008/05/28)에 그 문건의 전문이 실려 있다. 링크를 걸어 놓을 테니, 일독해 보시기를. 그 수준의 저열함, 그 수법의 야비함, 그 어법의 천박함이 우리를 경악시키고 남음이 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책임진 공무원들이 국민의 혈세를 들여 고작 이런 강의나 듣고 있어야 하나?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8797 

문건의 작성자가 제안하는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보자. "대중은 조작과 영합의 대상", "이해찬 세대는 부리기에 유리한 집단", "인터넷게시판은 가난한 이들의 한풀이 공간", "비판적 미디어비평 기자들 엉겨주면 뿌듯해해", "복잡한 방송판 기생집단 활용해 관리". 거의 환생 마키아벨리다. "주둥아리로 출세하는 방법"이라는 항목이 눈길을 끈다. 배워서 출세 좀 할까 들여다봤다가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이게 문화부의 인터넷 낭인 채용규정(?)인가?

가급적 사람들이 잘 아는 '센 놈' 하나를 골라 밟아야 잘 뜬다. 몸값이나 Media 역량이 안 되면 뭉쳐서 떠든다. 정부 위원회, 자문그룹에 마지못한 척 낀다. 조금밖에 몰라도, 떠들다 보면 남들이 전문가라고 하고 정보도 생김. 무작정 / 좌우간 한쪽 편을 골라서 떠든다. 사냥개는 생각이 필요 없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생각은 불러서 쓰는 놈도 헷갈려. 진영논리에 충실해야 낙전이라도 주워 먹는다.(박찬희 '공공갈등과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역할' 2008년 2008년 5월)

최근 권력의 사냥개가 되어 천방지축 날뛰는 자들의 인생철학이 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밤하늘에 별이 스치우듯, 문득 머릿속으로 얼굴 하나가 스치운다. 덕분에 재수가 부재하는 밤, 지는 잎새에 잠시 괴로워하다가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 

문화부의 MB식 예술관 

문화부의 주업무인 예술정책으로 넘어가 보자. 정치적 수구는 문화적으로도 수구여야 하나? 정치적 입장과 문화적 감성 사이에도 모종의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한겨레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유인촌 장관은 한예종의 학생을 물리친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준다. 결국 '예술학교에서 왜 이론을 가르치냐'고 하던 무식한 문화판 뉴라이트 논리의 반복이다.

최근 만난 무용원 학생이 '통섭은 트렌드이고 앞으로의 예술 방향인데, 왜 못하게 하느냐.'고 하길래 '발걸음 걷는 연습부터 해라. 명인들이 평생 발 올리는 연습을 한다.'고 말해줬다. 기량을 먼저 익혀야 한다. ("연극인 시국선언 땐 딱 관두고 싶더라" 한겨레신문 2009/07/02) 

MB의 낡은 산업화의 관념이 유장관의 입을 통해 예술론으로 환생했다. 기량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량만으로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서커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뒤샹이 변기에 사인을 하고, 폴록이 화폭에 물감을 흘리고, 뉴먼이 화폭을 롤러로 밀고, 폰타나가 캔버스를 송곳으로 뚫고, 미니멀리스트가 철공소에 전화를 걸고, 워홀이 직원에게 작품을 만들라고 지시하고, 케이지가 4분33초 동안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데에 과연 얼마나 많은 기량이 필요했을까? 

한 사회의 경제수준과 예술의 상태 사이에는 묘한 평행이 존재한다. 가령 70년대 한국은 기능 올림픽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휩쓸곤 했다. 그렇다고 당시 한국의 기술이 세계 최고였던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 몸을 굴려 기량을 연마할 때, 선진국 사람들은 정신을 굴리며 컨셉트를 잡고 있었다. 한국의 예술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 가령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한국의 예술가들을 보라. 대부분 연주자나 무용수와 같은 퍼포머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쓰는 창작자는 극히 드물다. 

훌륭한 퍼포머도 그저 기량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거기에도 풍부한 교양과 섬세한 정신이 필요하다. 가령 외국에 유학을 간 한국의 학생들은 시험곡은 능숙한 기량으로 소화해내지만, 정작 다른 작품을 해석하라고 하면 당황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예술적 상황은 묘하게도 기술의 상태와 조응한다. 가령 한국의 기술은 (메모리를 비롯한 몇몇 분야를 제외하면) 아직 창의적 기술이 아니라 모방적 기술에 머물러 있다.

MB의 예술철학(?)은 더 직접적인 형태를 띄기도 한다. MB의 머릿속에 삽 한 자루만 들어 있다 보니, 문화도 삽질을 하는 걸까? 중앙일보 기자가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는데 이명박 정부는 문화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고 말하자, 촌사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청계천 복구도 문화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 물론 건설이지만 그렇게 환경을 바꿔주면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거 아닌가요. 광화문 네거리에 건널목을 만든 거나 서울광장 등 그게 다 문화정책이죠. (...) 4대 강 정비도 마찬가지죠. 수질이 좋아지고 환경이 나아지면 자전거 도로가 생기고 크루즈도 뜨고 국토환경이 바뀌는 건데 (...) 문화정책이 없다는 건 난센스입니다."('파워인터뷰-취임1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앙일보 2009/04/28)

한 마디로, 삽질이 곧 문화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뭐 하러 문화부를 따로 두는가? '작은 정부'의 모토에 따라 그냥 국토해양부에 통합시킬 것이지. 

문화부의 홍인종 사냥 

이런 수준의 교양으로 이 나라의 문화예술을 이끈단다. '예술에 왜 이론이 필요하냐'고 묻는 머리들 속의 비전이 오죽 하겠는가. 그리하여 지난 1년간 문화부에서 역점을 두고 진행한 사업이 고작 좌파척결. 전봇대 뽑는 저돌성으로 문화판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역시 박힌 사람 뽑는 것뿐이다. 이는 그 자신도 인정한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들을 내보낸 겁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난 1년간은 이걸 정비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어요." (중앙일보 2009/04/28)

지난 1년 간 "모든 역량"을 쏟아서 한 일이 고작 좌파척결. 그런 이런 기사도 있다.  부산일보 사설이다. 그 일을 하고도 자체적으로 이런 평가를 내렸단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유인촌 장관의 지난 1년간의 업무 평점이 'A' 수준을 상회한다고 자평하고 있다.('문화정책 예산지원도 지방홀대 심하다니' 부산일보 200/02/28)

'A' 수준을 상회한다니, 장관님 점수 매기기 위해 A 앞에 알파벳 문자를 새로 만들어 드려야 할 판이다. 물론 문화부 밖의 평가는 이와 사뭇 다르다. 사설은 이렇게 이어진다. 

하지만 인적 청산 작업 말고는 뚜렷이 부각되는 것도 없다는 게 중론이다. (위의 사설)

문화부 안에서는 A+를 받았으나, 문화부 바깥의 중론은 사람 잡는 일 외에 생각나는 업적이 없다는 것. 한겨레신문의 인터뷰에는 재미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기자가 "보수 인터넷 매체들의 한예종 공격과 감사 내용 등이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지적하자, 유장관은 이렇게 대꾸한다.  

"학교에서 그런 얘길 많이 하더라. 변희재씨가 공격을 주도하던데, 황 전 총장의 서울대 미학과 후배더라.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싶다." (위의 기사)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가? '백남준이 독일문화와 무슨 관계가 있으며, 벤야민이 문화비평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묻는 처참한 교양의 소유자다. 어차피 수준이 비슷해 보이니 만나면 말도 아주 잘 통할 게다. 게다가 평소에 즐겨 하는 일도 비슷하지 않은가. MB 정권이 적어도 한 명의 국민(?)과는 대화가 통할 수 있다는 것. 이는 이 소통부재의 시절에 참으로 귀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완장과 명찰의 정치 어떻게 봐야 할까 

좌파적출의 메스는 감사. 감사라고 변변할까? 감사의 수준이 거의 개그 콘서트다. '회의실 의자가 열다섯 개인데 왜 세 개를 더 샀냐'(방만한 예산집행), '총장실에 왜 북한 우표책이 있냐'(남북교류협력법 위반), '국회에서 기다리는 시간에 왜 한강 둔치에 나가 사진을 찍었냐'(근무지 이탈). 그래도 한예종 감사는 양반이다. 영화판에서는 "연간 1000만원 남짓 지원하는 조그만 영화제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다." ('유인촌은 MB가 아니라 우리가 내친다' 시사IN 2009/06/22) 

문화부의 이런 조폭적 행태는 당연히 문화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문화행정은 실종된 대신, 감찰활동은 독재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원에 인색하고 간섭에 능하며, 심지어 공포를 주는 문화부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문화예술의 자율성을 위기에 빠뜨린 유인촌 장관은 스스로 물러나야 합니다." ('상상력에 자유를!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 성명' 오마이뉴스 2009/06/12)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들도 나섰다. 

낡은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어 단죄하고 처형하는 작태는, 마치 바우하우스의 예술가들에게 공산주의자 딱지를 붙이며 독재의 기반을 다지던 과거 독일의 나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 완장 찬 사람들이, 미운 놈이면 아무한테나 명찰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완장과 명찰의 정치를 예술과 학문의 영역에까지 끌어들이지 마십시오. 예술과 학문은 정권의 전리품이 아닙니다. ('한예종 사태를 염려하는 영화감독 100인 선언 전문' 스타뉴스 2009/06/18) 

영화계에 이어 유장관의 옛 '나와바리'에서도 성명을 발표했다. 

연극 연출가와 배우 등 연극인 1천37명이 25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연극인들은 시민들과 연대해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신명을 바칠 것을 엄숙하게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문화와 예술의 환경조차 관치로써 재단하는 퇴행적 행태는 문화대중 및 예술인의 자존심과 정신적 생명권을 참담한 지경으로 유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현 정부에 대해 (...) 구시대적, 반예술적 문화정책 중단 등을 요구했다. ('연극인 1천여명 시국선언 동참' 연합뉴스 2009/06/25) 

연극계에서조차 자신에 대한 비판이 나오자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연극인 시국선언 때는 딱 관두고 싶더라. 명단을 일일이 다 봤다. 그 가운데 내가 가르친 애, 유씨어터에 있던 애도 있었다. 그래서 너무너무 깜짝 놀랐다. ("연극인 시국선언 땐 딱 관두고 싶더라" 한겨레신문 2009/07/02) 

심지어 자기가 가르친 제자까지도 자기에게 반기를 드는 상황. 그는 이 상황을 마음속으로 어떻게 정당화하고 있을까? 어쨌든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참상이 촌사마께서 단 1년 반 만에 이룩한 업적이라는 점이다. 불도저 같은 그 추진력 하나는 높이 사줄만 하다.

MB 코드로 볼 때에 

어차피 MB 정권에 교양까지 기대할 수는 없으니, 문화예술은 그렇다 치자. 정권 자체의 기준으로 본 유장관의 직무수행은 어땠을까? 문화부에선 A+라 자평했지만, 정부의 평가는 다른 모양이다. 거기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가 2008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에서 92개 공공기관 중 최하위인 E등급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 이번 평가 결과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을 적지 않게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더욱 당혹하게 하는 대목은 경영평가 결과에서 '경고' 조치를 받은 17개 기관 중 무려 23%에 해당하는 4개 기관(방송광고공사ㆍ체육진흥공단ㆍ국제방송교류재단ㆍ예술의전당)이 문화부 산하 공공기관이란 점. (...) 평소에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던 예술의전당 등 상징적인 단체들이 대거 경고 조치를 받음에 따라 (....) ('잘하고 있다더니, 유인촌 장관의 굴욕' 2009/06/19)  

'작은 정부'를 위해 MB는 국정홍보처를 폐지했다. 관제홍보에 국민의 혈세를 쓸 필요 없다는 문제의식만큼은 지극히 정당하다. 그렇다면 국정홍보처의 기능을 넘겨받은 문화부에서는 홍보예산을 얼마나 절감했을까? 

'관제홍보는 않겠다'며 국정홍보처를 폐지했던 이명박 정부가 집권 1년 만에 (...) '국정홍보 체제' 강화에 나섰다. (...) 2008년 90억8천만 원이던 예산은 2009년 189억8천만 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137억 원보다 53억 늘어난 액수다. (...) '관제홍보' 논란도 심해졌다. 문화부는 설 연휴 때 방송법과 '4대강 정비사업' 홍보책자를 수십만 부씩 찍어 귀성객에게 나눠줬다. 한나라당의 언론법 홍보전단 배포에만 (...) 5억3천여만 원을 썼다. 올해 초 대통령실은 '2008 이명박 대통령 어록-위기를 기회로'를 222쪽 전면 컬러로 5천부 찍어 공공기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귀막은 MB정부 홍보예산 2배로' 한겨레신문 1009/03/16)

어처구니없는 자가당착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간단하다. 소통=홍보라는 70년대 관념 때문이다. 70년대의 이상에 갇힌 머리가 메시아적 사명감에 넘쳐 자신을 민족의 선지자로 착각한다. 국민은 그저 대붕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참새일 뿐. 이들을 설득하려면 당연히 홍보가 필요하다. 마침 모두들 입을 모아 소통이 부족하다지 않는가? '뭐 해? 홍보예산 대폭 늘려.' 

"앞으로도 정부 정책을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 방안을 강구하여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대한 늬우스 15년만 부활…문화부 "대화가 필요해"' 서울신문 2009/06/24)

그들에게 국민과의 소통은 "다양한 홍보방안"을 문제일 뿐이다. 2009년 홍보예산 189억. 그 돈은 귀 닫고 입만으로 소통하려 드는 MB의 독특한 버릇에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이다.

돈키호테의 꿈?

외부로부터 인풋을 차단하고, 내적 동질성을 강화하며, 밖을 향해 공세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폐쇄적인 정치체제다. MB 정권의 상태도 이와 비슷하다. 가령 "파격적"이라 평가되는 유장관의 기용은 MB식 인사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것은 '코드 정치'와는 애초에 차원이 다르다. 코드는 서로 맞춰보기라도 해야지. MB는 코드를 맞추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냥 자신의 분신을 원한다. 

유인촌 장관을 만나면서는 왜 그가 이명박 대통령과 그렇게 가까운지 궁금했다. (...)  MB는 서울시장이 되자마자 서울문화재단을 만들어 유인촌에게 대표를 시켰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장관으로 데려갔다. 파격적이다. 도대체 유 장관의 어디가 그렇게 맘에 들어서? 인터뷰를 하고 나선 나름대로 답을 얻었다. 내가 보기엔 유 장관과 이 대통령은 기질이 같은 사람들이다. ('파워인터뷰-취임1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중앙일보 2009/04/28)

기질이 같아서 그런지, 정치를 모르는 MB와 똑같이 유인촌 장관도정치적으로 매끄럽지 않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았다. (위의 기사)

이렇게 단점을 장점으로 믿어 버리는 사람 앞에서 국민은 대책이 안 선다. 그 뿐인가? 유인촌이 본 MB의 느낌이란다.  

나도 지독한데 '참 나보다 더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위의 기사)

심지어 지독하기까지 하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표 한 번 잘못 던진 죄로 이 두 사람의 독기를 겪고 있는 게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운명이다.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려면 주관적 환상의 힘을 믿어야 한다. 저 홀로 과거로 돌아가 주관적 로망 속에서 시대착오적 영웅문학을 한다는 의미에서 언젠가 MB를 돈키호테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런데 현실은 비유를 그냥 비유로 남겨두는 문학적 여유도 없나 보다. '명박호테'를 사모하는 유인촌 장관의 고백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을 잡는다'는 구절이죠. 돈키호테와 제가 성향이 비슷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꿈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어쩌면 집착일지도 모르지만 예술이 결국 꿈 아닌가요.(위의 기사)

저 달콤한 로망은 MB와 둘이서만 즐기면 딱 좋을 터. 불행히도 "지독한" 그 두 사람의 손엔 권력이 쥐어져 있기에 그들의 '예술'은 국민의 짜증이 되고, 그들의 '꿈'은 국민의 악몽이 된다.

출처 : 'MB분신' 유인촌 장관의 좌충우돌 - 오마이뉴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이] 2009-07-0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기사 봤음 ㅋㅋ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요소들이 전세계에서 한꺼번에 분출했다. 비정규직이나 외국인 노동자 해고가 줄을 잇고 있다. 투자홰사나 은행 경영자를 향해야 할 정당한 분노는 ‘직장마저 빼앗긴 외국인’에 대한 분노로 바꿔치기됐다. 바로 ‘파시즘 전야’가 아닌가.   

 

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63804.htm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소유욕' 버린 인간이 되는 과정…"우린 멀어도 아주 멀었다" 

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 

 아이고, '영구적 혁명' 주문을 한 번 외웠다고 해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은, 결국 인간이 되는 과정이지요. <도덕경>적 의미의 정상적 인간, 뭘 가지려 하지도 않고 내세우려 하지도 않는 인간이야말로 공산주의자의 원형일 것입니다. 그러한 견지로 본다면 우리야 다들 멀어도 아주 멀었어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이] 2009-07-0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어요!!ㅋ

바이런 2009-07-0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잡설이고..게다가 박노자를 저 또한 좋아하지만.. 왠지 저 표지사진의 박노자는.. 히틀러를 닮게나왔어요-ㅅ-;; (박노자씨 미안요ㅜㅜ)

머큐리 2009-07-03 20:36   좋아요 0 | URL
박노자를 히틀러에 대비하시다니...정말 박노자 쓰러지겠어요...ㅎㅎ

turk182s 2009-07-0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본결과 히틀러 정말 비슷합니다..
 

 

 

▲ MB는 '국가적 재앙'? MB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보수층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소설가 복거일, 자유선진당 총재 이회창, 한나라당 전 윤리위원장 인명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좌파의 선물이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시론: 우파(右派)의 답례품' <조선일보> 2009년 6월 14일 자)  

소설가 복거일의 말이란다. 이 블랙유머에는 MB라는 암담한 '현상'을 바라보는 보수우익의 민망함이 담겨 있다. 결국 '너희도 노무현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 대충 비기자'는 거다. 하지만 '500만 조문 인파'를 '떡 돌리는 분위기'와 등가 교환하자는 제안은, 그가 좋아하는 시장경제의 논리에 비추어 봐도 악덕상혼인 듯싶다. 아무튼, 자기들이 봐도 MB가 재앙은 재앙인가보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된 뒤 쓰레기보다 못한 짓"

복거일에게는 MB가 좌파에게만 골라서 재앙이면 좋겠지만, 분위기를 보건대 지금 그는 좌우를 초월한 국가적 재앙으로 등극한 듯하다. 왜냐하면, 그를 성토하는 목소리는 외려 보수층에서 더 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우에 와 있다면 최소한 우쪽에 있는 사람들은 환영하고 좋아해야 할 텐데 지금 우쪽에 있는 사람들도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회창.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24일 자) 

MB 정권을 지지하거나 지원했던 이들도 그동안 드러난 'MB 본색'에 많이 당혹한 모양이다. 한때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냈던 인명진 목사의 말이다.  


"이 대통령이 아니라고 해도 많은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분명 민주주의가 후퇴했는데 후퇴하지 않았다고만 하니 국민들이 말이 안 통하는 절벽을 마주한 것처럼 답답해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정권 쥐고 1년 반…사회통합 못 한 건 대통령 책임' <한겨레> 2009년 6월 19일 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를 '악(惡)'이라고까지 불렀던 가톨릭 원로 정의채 몬시뇰. 그는 MB 정권이 출범했을 때에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몬시뇰 역시 MB에 대해서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 후 이 대통령이 귀국하면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 봤지만 개각도 하지 않고 국정 기조도 바꾸지 않는다고 측근들이 전하니 의외(다). … 왜 이렇게 민심이 떠났는지 겸손한 마음으로 생각해보고 일대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2009년 6월 20일)

한나라당 쇄신위에서는 급기야 MB의 측근들을 '쓰레기'라 부르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나왔다. 파문을 우려한 원희룡 위원장이 부랴부랴 비보도를 요청했지만, 무슨 일인지 <조선일보>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자기들이 봐도 분위기가 심상찮은 모양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를 해 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5%를 (이 대통령이) 혼자 얘기한다. 이 대통령은 듣지를 않는다. … MB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아니고 그 어떤 프렌들리도 아닌 단지 '캠프 프렌들리'(다).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된 뒤 쓰레기보다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문제(다)." ('권영준, MB 정권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돼'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지지율과 리더십, 두 다리 모두 풀린 '명바라기' 여당" 

 정부가 그릇된 길을 가면 국회가 견제해야 하나, MB라는 제왕 앞에서 여당의원들은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여당'의원이기 이전에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정부에서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쓰레기보다 못한 짓"을 한다면, 국회에서는 '찌꺼기 같은 사람들'이 '찌꺼기보다 못한 짓'을 한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지지층 사이에 걱정과 냉소의 분위기가 퍼지고 있단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전하는 민심이다.

"(유권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 간에, 한나라당이 있든 없든 지금보다 더 나빠지기 어렵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지지층 사이에서도 걱정과 냉소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걱정스럽다." ('정몽준 , 한나라, 정당도 아니라는 비판 많아' <연합뉴스> 2009년 6월 22일 자)
 

정부야 막 나간다 하더라도, 여당은 유권자의 민심을 대리하고 대의해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민심을 등지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명바라기'가 되었다. 대통령이 조종하는 '마리오네트'(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 같은 정당에 정치적 존재감이 생길 리 없다. 지난 22일 한나라당 쇄신특위에서 급기야 여당이 '두 다리가 풀렸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한나라당의 지지기반 약화는 지난해 총선 이후 실시된 보궐선거, 교육감 선거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 한나라당의 현 상태는 두 다리 즉, 지지기반과 리더십이란 두 다리가 모두 풀리고 있는 국면이다." ('한나라당은 지지율과 리더십의 두 다리가 모두 풀린 권투선수다' <국민일보> 2009년 6월 22일 자) 

이 상태가 계속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마저 패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선거는 공교롭게도 노무현 서거 1주기와 겹치지 않는가? 지방선거에서 패하면, MB는 즉시 레임덕에 빠진다. 이 시나리오가 두려웠나 보다. 마침내 <조선일보>에서 MB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정치적 고려 없이 결정한 조각(組閣)이 민심 이반의 출발점이었다. 광우병 사태와 촛불시위는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대통령 정치의 기본을 소홀히 한 탓이었다. … 지금 정계 밖 시중 여론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의 전망을 대단히 어둡게 보고 있다." ('사설: 대통령의 본업은 정치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측근형'과 '돌파형'... "대통령 주변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조선일보>는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 자리가 모두 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면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는 '측근형'으로,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와 강희락 경찰청장은 '돌파형'으로 분류했다. 사진 왼쪽부터 원세훈, 백용호, 천성관, 강희락. 

여기에 올린 첫 번째 글에서 정부운영과 기업운영의 본질적 차이를 지적하며, '대통령이 국가를 기업으로 착각하다 보니 정치가 사라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조선일보>에서 같은 진단을 내렸다. 

"이 대통령의 '정치 혐오증'이야말로 국정을 헝클어뜨린 근본 원인이었다. … 이 대통령의 참모들에 따르면 "대통령은 자신은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치는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 그러나 언뜻 비효율적이라고 보이는 정치야말로 각종 이해와 욕구를 수렴해 국민 통합을 이뤄가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위의 사설) 
 

웬일일까? <동아일보>에서도 '정치가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읽어 보니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논다. 의미의 파괴를 시도하는 다다이스트의 아방가르드 실험이다. '정치가 없다'는 말을 <동아>는 이렇게 이해한다.

"현대사회에서 갈등은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현상이다. 정치는 이런 갈등이 공동체의 균열을 초래하지 않도록 관리 조정 해결할 책무가 있다. …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을 포기하고 오히려 갈등을 부채질하면서 정략적으로 이용하기에 급급하다. 민주당은 일방적 요구사항을 담은 이른바 5대 선결조건을 내세워 국회 개회를 가로막고 있다. … 정치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든 야당들의 횡포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독재이다. ('사설: 정치가 없다' <동아일보> 2009년 6월 22일 자)

그냥 막 가라는 주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과 <동아>의 수준차를 본다. 아무튼 MB의 행보를 놓고, 보수층에서도 이렇게 견해가 갈린다. MB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까? 사고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대답은 분명할 것이나, MB가 어디 정상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던가? 그가 내놓은 인적쇄신안을 보자. 
 

"청와대 주변에선 1순위가 '측근형', 2순위가 '돌파형'이란 말이 나온다. 원세훈 국정원장과 백 국세청장 내정자는 … 이 대통령의 친위부대로 분류된다. … 천 검찰총장 내정자와 강희락 경찰청장은 …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로 분류된다. 천 내정자는 용산참사·PD수첩 사건 수사 등을 지휘하면서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고, 강 청장은 최근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인한 '조문 정국' 수습 과정에서의 역할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일을 해보면서 권력기관일수록 자신의 생각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여기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권력기관장 빅4(국정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 MB 뜻 읽는 사람들' <조선일보> 2009년 6월 23일 자) 
 

한마디로, 이번 인사의 메시지는 공안라인을 더 강화하겠다는 얘기. 이를 두고 '기수'를 파괴하는 혁신이라 자화자찬하나, 어차피 MB는 조직 내의 기수서열에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다. 그의 이해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상황을 '돌파'해내는 돌쇠들을 '측근' 자리에 앉히는 데에 있다. 기수 파괴의 '혁신'이라는 화장발 아래 숨은 '쌩얼'은 친정체제로 인한 문제를 친정체제의 강화로 돌파한다는 어이없는 역행이다. 
 

청와대가 내놓은 또 하나의 대책은 이른바 '중도실용론'이라는 것. 이는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슬쩍 다른 데로 돌리려는 꼼수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이를 제대로 꼬집는다. 
 

"이를 근원적 쇄신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방향이 잘못됐다. … 국정혼란의 원인은 대통령이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지금 대통령이 중도에 있지 않고 우에 와 있기 때문이 아니다." ('昌, 대통령 주변 정신 빠진 사람 많다' <연합뉴스> 2009년 6월 24일 자) 

이 총재의 말대로, "대통령 주변에 정신 빠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주변'만이 아니라 '중심'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박정희와 김일성 모델 추종하는 MB의 국정철학

 MB는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문제는 그의 측근들이 잘 이해한다는 그의 "국정철학"에 있다. 정확하게 그의 '국정철학'은 1970년대 박정희 모델에 사로잡혀 있다. 동시에 그것은 남한에 앞서 산업화를 이룩한 김일성 모델이기도 하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개 '근대화'에 대한 관념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나타나 국민을 대상으로 카리스마 정치를 펴는 경향이 있다. 이 권위주의적 통치는 물론 아직 자연의 속도에 묶여 있는 농민의 전근대적 신체를 신속하게, 그러다 보니 강제로, 기계의 속도에 맞추기 위한 것이다. 

남한에서는 그 엘리트 역할을 불행히도 박정희가 이끄는 군인집단이 맡았다. 국민 대다수가 농민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그나마 군대는 현대전을 치러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의 신체는 이미 소총과 기관총, 대포와 함포, 전차와 항공기 등 근대적 기계와 결합되어 있었다. 산업화 역시 결국 인간의 신체를 강제로 기계에 뜯어 맞추는 과정이기에, 그 시절에는 군인적 신체가 산업적 신체를 찍어내는 주형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척결해야 할 퇴물 취급을 받은 '군사문화'라는 것이 한때는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었다. 

남조선의 박정희와 북조선의 김일성. 남북한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두 인물의 특징은 '현장정치'를 좋아했다는 것. 박정희는 농촌이나 산업현장 시찰을 좋아했고, 김일성 역시 현장을 돌아다니며 시시콜콜한 것에까지 교시를 내리곤 했다. 대통령이 모내기해야 농가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수령님이 교시를 내려야 생산성이 오르는 것도 아닐 게다. 그것은 '가장 높은 권위가 가장 낮은 곳에 임한다'는 강림 드라마로 인민을 감동시켜 생산에 동원하는 일종의 선무활동이다. 

노 전 대통령은 강림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현장에 내려가 생색을 내봤자, 괜히 폐만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사단장 방문을 앞둔 부대 분위기는 다들 경험해 봤을 게다. 실제로 한 일주일간 아무 일도 못한다.) 반면 MB는 유난히 '현장정치'를 좋아한다. 현장감독 출신이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제 정치적 이상을 박정희라는 '산업화 영웅'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가 제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듯이, MB도 제 형상대로 공공기관장을 찍어내는 모양이다. 기사를 보자.   
 

"종합해보면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충족하지 못한 기관장들이 상당한 감점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년에 100건에 이르는 직원과의 만남을 가진 CEO, 100번 정도 현장을 돌아다닌 도공 사장' 등이 우수 사례로 꼽힌 점을 고려하면 이번 평가의 방향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현장과 수치를 강조하는 '이명박 스타일'이다." ('공공기관장평가=충성도 평가?' <아이뉴스> 2009년 6월 19일 자)

누군가 책상에 앉아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하자. MB는 아마 그를 보고 '놀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반면, 누군가 현장에 내려가 부하직원들 귀찮게 한다 하자. MB는 아마 그를 보고 '일 잘한다' 할 것이다. 이게 다 외국에서 만든 수입기계에 맞추느라 신체를 빨리빨리 움직여야 했던 시절의 잔재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진다. 이번 위기를 맞아 청와대에서 서민 행보를 강화하겠단다. 기사의 부제가 재미있다. "가슴 뭉클 서민 행보 부각."
 

"현장 행보를 집중 부각시키는 '감성 코드'는 청와대가 준비하는 또 다른 소프트웨어다. 청와대 직원들은 지난해 '이 대통령의 가락시장행과 박부자 할머니의 눈물'을 국정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이 같은 가슴 뭉클한 현장 행보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법치-서민 투트랙에 감성 접목' <헤럴드경제> 2009년 6월 23일 자)

 

2008년 12월 4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노점에서 우거지 파는 할머니를 안아주며 위로하는 모습(왼쪽)과 "이명박 김일성 히틀러 그들의 공통점"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오른쪽). 

청와대 직원들이 "국정 최고의 감동적인 장면"으로 꼽은 그 장면은 박정희와 김일성이 즐겨 연출하던 장면이기도 하다. 가령 남한 가락시장의 사진과 북한 군부대의 그림을 비교해 보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또 다른 소프트웨어"는 "가슴 뭉클한" 북한식 "감성 코드"였다. 청와대의 마인드가 산업화 초기에 꽂혀 있다 보니, 정서와 취향 역시 복고풍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MB의 "국정 철학"이 도대체 어느 시대에 고착되어 있는지 볼 수 있다. 

MB가 보여준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민주주의 후퇴'

MB는 박정희를 꿈꾸나, 그는 절대로 박정희가 될 수 없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로 경제가 돌아가던 시대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처럼 근대화의 영웅이 되고 싶은가? 그러면 대한민국에 있을 게 아니라, 서둘러 소말리아나 짐바브웨 국적을 취득할 일이다. MB는 자신이 박정희 비슷한 계몽군주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온 사회가 디지털로 이행을 완료했는데, 그는 저 홀로 산업화 영웅의 소설을 쓰고 있다. 그는 돌아올 수 없는 산업화의 로망(浪漫) 속에 사는 디지털시대의 돈키호테다.  

박정희 그룹은 나름대로 선진적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농민이던 시대에 '근대화'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집권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없었으나, 적어도 그들은 '경제적 적합성'은 갖추고 있었다. 그 정권이 정당성의 부재 속에서도 유지됐던 것은 경제적 적합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룩한 고도성장은 결국 그의 무덤이 되고 만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정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관치경제가 시대착오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정당성을 잃은 그의 통치가 경제적 적합성마저 잃는 순간, 그는 부하에게 제거당하고 만다. 

MB는 어떤가? 한국사회는 이미 산업화를 넘어 탈산업 사회로 이행했다. 고졸자의 87%가 대학에 가는 초고학력 사회, 최고의 IT 인프라를 가진 정보사회에서 유일하게 1970년대에 사는 게 바로 MB 그룹이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상상력이 가장 낙후한 세력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되었기에 '정치적 정당성'은 있지만, 산업화 초기의 모델에 갇힌 그들의 통치에는 '경제적 적합성'이 없다. 그럼에도 그가 통치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정당성 때문이다. 그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그러니 '타도'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게 국민의 답답함이다.  

경제는 2~3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경제지표들 여전히 2∼3년 전 수준' <연합뉴스> 2009년 6월 24일 자). '빅딜'은 허망한 망상으로 드러났다. 감세로 괜히 재정만 악화시켜 놓고, 수십 조의 추경을 편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디어법으로 새 일자리 2만6천 개를 만든다 하나, 그 말을 믿으려면 IQ가 유인촌이어야 한다. 미디어는 광고를 먹고 살고, 광고시장은 한정되어 있다. 숟가락 개수를 늘린다고 밥이 느는가?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카드는 '4대강운하' 하나뿐인데, 워낙 시대착오라 실현될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마저 좌초하면 정권은 식물인간이 된다. 

거국적 반대를 뚫고 시대착오적 경제 프로젝트를 강행하려다 보니, 정치도 개도국 수준으로 돌려놔야 하는 것이다. 지난 정권 하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성과를 누렸다. 그러다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닫자 민주를 돈 안 되는 허망한 가치로 여기고 MB에게 표를 던졌다. 그런데 살리라는 경제는 못 살리고, 멀쩡히 누리던 민주적 권리만 빼앗아간다. 그러니 국민은 황당할 수밖에. '가시적' 성과를 좋아하는 MB. 유감스럽게도 그가 보여준 유일한 가시적 성과는 '민주주의 후퇴'뿐이다. 거리에 널린 전경들을 보라. 

디지털의 경쟁력은 참여와 자율의 창발 효과

"이명박 대통령과 회의를 해 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95%를 (이 대통령이) 혼자 얘기한다." ('권영준, MB 정권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임명돼'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사회를 '매스게임'에 비교해 보자. 거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가령 북한의 매스게임을 보자. 그 게임은 한 사람(혹은 몇 사람)이 머릿속으로 기획한 것이다. 매스게임에 참여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누군가 기획한 그 프레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기들 몸을 맞춰야 한다. 이런 매스게임에서는 한 사람이 두뇌가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수족이 된다. 이게 MB가 꿈꾸는 한국 사회의 이상적 모습이리라. 하지만 지도자가 '인풋'한 것을 인민들이 그대로 '아웃풋'해야 하는 사회는 결국 한 개인이 가진 두뇌용량의 한계에 갇히게 된다.  

다른 유형의 매스게임도 있다. 천수만 새떼들의 비행. 새들은 누가 명령하거나 지도하지 않아도 하늘에 변화무쌍한 그림을 그려낸다. 촛불집회가 그것을 닮았다. 지도하거나 명령하는 사람 없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전체적 효과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이를 '창발'(emergence)이라 부른다. 우리 사회에 그런 유형의 집회가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토대에 변화가 생겼다는 신호다. 정보화 사회의 경제는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수많은 머리들의 창발 효과를 통해 발전한다. 디지털의 경쟁력은 바로 개별 주체들의 참여와 자율에서 나온다. 

여기서 MB의 리더십이 얼마나 시대착오인지 보게 된다. 아직도 그는 2주일에 한 번 공중파에 나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혼잣말을 늘어놓는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그는 이를 '국민과의 대화'라 부른다. 솔직히 이런 경쟁력 없는 프로그램은 당연히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되어야 한다. 굳이 해야겠다면 대학로에 소극장 빌려 모노드라마를 하면 되지 않는가. (연출은 유인촌씨가 맡는 게 좋겠다.) '빨간 피터의 고백'의 뒤를 잇는 '파란 명박의 고백'은 국민은 몰라도, 적어도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 정도는 감동시킬 것이다. 

홀로 산업화 초기로 돌아간 MB

MB는 대체 왜 저렇게 뻣뻣하게 굴까? '인간-기계 인터페이스'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인간이 기계 앞에서 일하던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기계가 상수였다. 즉 일단 기계를 만들어 놓고, 그것의 동작과 속도에 인간의 신체를 강제로 뜯어 맞추었다. 그것은 물론 군대식 훈육과 숙련을 요하는 일이었다. 반면, 인간이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이 관계가 역전되어 인간이 상수가 된다. 예를 들어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의 디자인에서는 외려 컴퓨터를 섬세하게 인간의 신체에 맞추는 게 중요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산업화 초기에 남한의 박정희와 북한의 김일성이 공히 '인간개조'라는 낱말을 사용했다. 이렇게 인민을 권력자에 뜯어 맞추는 게 산업화 초기 정치다. 정보화 사회는 물론 다른 종류의 리더십을 요구한다.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국민의 참여와 자율을 강조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MB는 어떤가? 그는 꿋꿋하다. 자신을 상수로 놓고 국민을 변수로 간주한다. 국민이 자기에게 맞춰야지, 자기를 국민에게 맞출 수는 없다는 것. 지금 디지털 국민들은 MB의 산업적 신체에 뜯어 맞춰지느라 생고생을 하고 있다. 

얼빠진 언론이 만들어낸 자수성가 신화에 스스로 도취해 MB는 나 홀로 산업화 초기로 돌아갔다. 하지만 브레이크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맹점을 통해, 그의 개인적 불행은 곧 국가적 불행이 된다. '나의 표상이 너희의 세계다.'  히틀러의 말이 졸지에 현실이 된 것이다. 한국의 경제, 한국의 정치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향수에 사로잡힌 사내의 개인적 로망에 갇혀 버렸다. 2MB. 괄호치고 확장불가. 졸지에 이게 우리가 아직 3년 반 동안 들어 살아야 할 세계의 최대용량이 되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피에쑤) "이명박 대통령은 우파의 답례품이다." 복거일씨, 착불로 반송합니다. 유통기한이 30년이나 지난 걸 보내주시면 어떡합니까?



덧붙이는 글 | 매우 긴 글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네이트'(거기에도 쪽글이 수백에서 수천 개까지 붙었다.), 혹은 블로그와 사이트에서 읽은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사실 이명박 개인을 욕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왜 저러는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그런 그가 왜 대통령으로 뽑혔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이런 불상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내게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 독자들이 있다. 각자 자기가 있는 곳에서 작은 할 일을 찾아보자. 이 글은 카피레프트, 맘껏 퍼가도 좋다. 하루 종일 걸려서 쓴 글이다. 힘들게 쓴 글이니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원고료 대신에 하루에 단 5분이라도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는 작은 실천으로 보답해주셨으면 좋겠다.

출처 : MB는 유통기한 30년 지난 '우파의 답례품' - 오마이뉴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이] 2009-06-27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진짜 재밌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