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보 문제들이 최근 주목받게 되면서 노르웨이 언론에서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보통 기자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에 매달리는 ‘이유’를 묻는다. 기자들에게 본인의 생각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개미국 새 행정부의 관심 끌기와 삼대 권력 세습 과정에서 내부 통합용”이라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북한 대외 정책의 장기적 목표는 대미관계 정상화와 세계 자본 시스템으로 편입인데, 여기에서 대량살상무기 개발은 미국의 북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보장”의 역할과 함께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핵심 카드” 구실을 해왔다. 그리고 세종대왕함의 진수 등이 한국에서 국가주의 (“대한민국주의”) 정서를 부추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군사주의 열풍은 관제 내부 통합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전국을 병영화시키는 데에 있어서는 북한은 한국을 훨씬 능가하지만 군사주의적 근대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양쪽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북한의 최근 대외 노선 강경화를 단순히 위에서 이야기한 두 가지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햇볕정책 포기와 일련의 강경책이 북한을 자극해 강경 일변도의 노선으로 밀어내는 데에 큰 몫을 한 것이다.

서방세계에서 북한을 언급할 때마다 “위협”과 같은 용어들이 당장 등장하지만, 사실 북한은 동북아의 최약체국일 뿐이다. 남한과 비교해도 북한의 국민총소득은 32배 더 적고 무역총액은 167배 더 적지만,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거인과는 비교라도 가능하겠는가?

북한의 마지막 카드는 “군사”지만, 그 군비지출도 세계 11위 군비 지출국인 남한의 약 20%에 불과할 뿐이다. 이 상황에서 1991년 소련 붕괴로 옛 후원자를 잃은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후원자를 얻는 것은 절실한 과제다.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도 본의 아니게 “왕따”를 당하는 북한이 1999년 이후부터 남한의 햇볕정책을 크게 환영해 남북 협력 증진에 열성을 보인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남한이 1970년에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마산 등지에 설치한 수출자유지역과 격이 비슷한 개성공단을 만들어주는 것은 여태까지 남한을 “가난한 미제 식민지”로 이야기해온 북한으로서 자존심을 접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장기적으로 남한이야말로 북한이 세계 자본주의로 편입하는 데 “매개체”가 될 줄로 믿고 남한 자본의 진출을 유도했다. 북한 저임금 노동력의 착취 등 문제도 없지 않았지만 햇볕정책에 응해온 지난 10년 동안의 북한 관료집단의 태도로 봐서는 이 정책이 장기적으로 남북한을 하나의 경제 공간으로 묶어 평화적 공존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크게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북한 지배층도 계속 커져가는 중국 영향력을 상쇄할 또 하나의 힘으로서 남한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볕정책의 이와 같은 커다란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이 국내 보수층 결집과 대미 유착관계 강화를 위해 북한과 여태까지 맺어온 협정서 등을 거의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북한 소비시장의 70%를 이미 중국 제품들이 점유하고 있지만, 이제는 북한이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하는 과정이 더욱더 빨라질 것이고, 북한 지배집단 내에서 군부의 목소리는 더욱더 세질 것이고, 통일은커녕 평화 공존 기반의 조성은 예측이 가능한 미래에 불가능해질 것이다. 한 번 속아본 북한이 두 번 속으려 하겠는가? 옛말대로 소탐대실, 자그마한 정치, 경제적 이득을 탐낸 이 정권은 한반도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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