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누구에게 예속되는 삶보다 자신만의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유를 박탈당했을 때는 용감하게 이에 맞설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부당한 세상에 용감하게 붓으로 맞선 이가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화가 중 하나가 오노레 도미에(1808~1879)였다. 그는 시사만화가로 출발했으니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도미에는 오늘로 치면 만평에 해당하는 풍자적인 석판화를 무려 4000여 점 시사 잡지에 기고했는데, 지금 보아도 재미있고 촌철살인인 것들이 많다. 그의 작품들에는 탐욕스러운 정치가들, 비싼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폼 잡고 싶어 하는 소시민, 옆에 선 남성을 튕겨낼 정도로 부풀린 드레스를 입은 부르주아 여성 등 다양한 인물군상이 풍자의 대상으로 등장하곤 한다.

 

 

 

 

오노레 도미에  『가르강튀아』 1831년

 

 

그 중에서도 도미에가 즐겨 그린 것은 당시의 국왕 루이 필립이다. 필립을 희화화한 대표적인 풍자만화 작품이 『가르강튀아』이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소설에 나오는 거대한 거인 가르강튀아로 그려진 인물은 바로 당시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립이다. 그림 오른쪽부터 보면 백성들이 힘겹게 모은 돈을 통에 넣고 있다. 이렇게 모아진 백성들의 재산을 국왕이 자신의 긴 혀를 통해 꿀꺽꿀꺽 삼키고 있다. 그리고 필립의 의자 밑으로는 그의 배설물이 상장과 훈장으로 비유되고 있다.

 

이 그림 때문에 도미에는 감옥까지 갔다 왔다. 사실 루이 필립은 스스로가 혁명으로 왕위에 옹립된 만큼 처음에는 언론 출판의 자유에 우호적인 정책을 폈고 자신에 대한 풍자에도 관대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도미에의 풍자화만큼은 그를 격분케 했다는데, 그를 너무 뚱뚱하게 묘사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도미에를 고발했고, 도미에는 6개월 징역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도미에는 끄떡없이 신랄한 시사만화를 계속해서 그렸다. 이는 당시 사회 지배 계급의 부정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당시 1830년 7월 혁명 이후 샤를 10세가 타도되어 왕좌에서 물러나고 루이 필립이 등극했으나 그 또한 자유주의 정책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귀족과 노동자 계층 간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마침내 1848년 2월에 다시 혁명이 일어났다. 루이 필립은 영국으로 망명했고 보통선거 제도가 도입돼 노동자와 농민 계층의 남성도 선거권을 가지게 됐다.

 

도미에의 풍자만화는 무지한 시민 계층들을 격분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해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시사만평은 권위를 조롱하며 결국 공권력을 움직여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큰 기여했던 것이다. 만약 도미에와 같이 국왕의 행세를 공공연히 비판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 프랑스의 자유민주주의 시대는 늦게 열렸을 지도 모른다. 한 사회에 발전과 개혁이 있으려면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자유롭게 민중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서 모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선진사회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 현재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에 관해서는 방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나 몰라라’하는 태도는 국가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수의 정치인들만 정치에 참여하는 사회는 부패되기 십상이다.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 힘쓰기는커녕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며 왜곡된 진실을 전달하고 있는 행태를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정치인들은 배려심을 기르고 관용을 베풀며 사회적 약자와 소외세력들을 보호해야 하고 시민들은 국가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좀 더 크게 낼 필요가 있다. 오노레가 풍자만화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여 사회적 개혁을 가져왔듯이 우리 모두 나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좀 더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때론 칭찬도 하고 비판도 하며 한 마음 한 뜻으로 공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
김현미 지음 / 돌베개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cene #1  다문화사회의 허상


결혼이주이든 노동이주이든 국제 이주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사회도 더욱 개방되고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다문화사회의 등장이다. 최근 대두된 다문화사회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다문화에 대한 요란한 구호가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한국문화의 입장에서 다른 문화를 보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여튼 서로 다른 문화, 도덕, 신념, 관습,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다문화사회를 이루면서 함께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장일단이 있기 마련이다.


다문화 사회를 긍정하는 사람은 다문화사회가 단일문화사회였던 한국사회에 자비로운 혜택을 줄 거라고 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한국사회의 자산으로 보면서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편협한 자문화중심주의에서 벗어난다면 우리의 문화유산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다문화사회가 한국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가령 다문화 배경을 지닌 애플의 스티브 잡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같은 인물을 한국이 낳을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기도 한다.


다문화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애써 목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이들은 다문화사회가 사회통합을 위태롭게 하고 사회경제발전을 돕기는커녕 방해한다고 한다. 문화적 다양성과 문화적 차이를 사회 내부의 적(敵)으로 본다. 이주자들이 다문화사회에 살고 있을지라도 자신이 원래 속한 공동체성원이라는 감정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B국으로 이주한 A국인이 여전히 A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을 B국 시민으로 보지 않으면서 B국 사회에 고립돼 살고 있다.

 

 

 

 Scene #2  그들이 집을 떠나게 만드는 세상  


유엔은 12개월 이상 특정 국가에 체류한 사람을 '이주자'라고 분류한다. 한국은 유엔의 분류에 따라 지난 20년 동안 외국인 이주자 유입이 가장 많이 증가한 나라 중 하나로, 현재 이주자 비율은 전체 국민의 3%에 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이주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다뤄진 적이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불과 몇 십 년 만에 한국은 이주자 송출국에서 이주자 유입국으로 변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 정책적으로 제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했다. 당시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길 수 없거나 임금 상승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제조업체는 더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다.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을 받아들인 것도 한국내 이주민이 증가한 큰 이유다. 가족중심인 한국은 언제부턴가 저출산과 인구고령화, 결혼시장의 성비 불균형 등으로 지속적인 가족 관계망 형성이 어려워졌다. 이처럼 인구학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한국사회가 이를 외부수혈로 대체하는 과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2003년 무용수로 한국에 왔다가 성매매를 강요당한 러시아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이주자 연구를 처음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10년 동안 이주자들을 인터뷰하며 한국인의 '상식' 이나 '관습'에 익숙한 자신이 다른 상식과 관습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이해의 장을 만들어갔다고 토로한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이주자의 현실은 참담 그 자체다. 한국인 남편들은 베트남 부인 집에 송금하는 것을 결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잣대로 이용하거나 자신의 자원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아내의 배반행위로 본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불법'에 대한 비용을 긴 노동시간, 열악한 근로환경, 폭력, 인간적인 배신감 등으로 치러야 하고, 조선족은 한국과 중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글로벌 이산민처럼 떠돈다.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누구나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집을 떠나 이주자 신분이 될 수 있는 게 그들의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주민 2세들은 한국에서의 지위를 인정하며 꿈을 조정해야 하는 슬픈 현실에 직면한다. 노동력 부족,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스스로 이주자를 필요로 하게 된 한국 사회는 이주자의 당연한 권리는 부정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Scene #3  우리로부터의 다문화주의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 


물론 외국인을 무조건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장기체류와 정착이 가져올 사회적 부담과 갈등을 강조하는 점이나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외국인을 대하는 정책과 의식에는 자성할 점이 많다. 외국인을 노동시장 교란 주범이라거나 기초생활보호대상자라는 시각에서 과장되게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 그리고 범죄자 이미지가 외국인에 대한 적대 원인이 아닌가에 대해서도 검토를 해야만 한다.


그것은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 본질 문화와 가짜 문화라는 이중기준에 기초한 인종차별과 민족차별의 잣대와 같은 논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들은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수직적 질서를 당연시해 왔다. 우리들에게 내재된 그런 사고방식과 행동들이 결혼이주자와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가족들을 배제하는 논리와 편견의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닌지 자성할 때다.


글로벌화는 필연적으로 다문화 시대를 초래한다. 다문화에는 서로 다른 언어, 기억, 가치, 관행 등의 존재와 그에 대한 저항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습, 편견, 무지가 뒤섞여 충돌과 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주자를 한국 가족과 사회 내에 편입시키기 위해 빠른 동화를 통한 한국화라는 목적에 얽매이다 보니 다문화주의 논의는 ‘다문화 가족’ 정책으로 환원되었고 여전히 정체돼 있다. 이 같은 정책은 다문화 가족 전체를 취약계층과 동일시하면서 영구적인 주변부 계급으로 고착화하는 문화적 폭력까지 만들어냈다.


다문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상대방에 대한 동질성 강요가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강조한다. 바람직한 다문화 정책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배려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확장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가 요구된다. 이주자 고유의 정서와 가치관에 관심을 기울이는 공존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주자가 기본 권리를 누리고 유지하는 것이 한국 국민의 권리를 뺏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출발선을 만들어 주고 같은 과정을 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특혜’라고 말할 수 없다. 아직 다문화가정 자녀는 소수자이고 소수자를 돕는 일은 늘 더 많은 투자와 배려가 필요한 일이다. 이제 외국인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일상화되어 가는 현실에서 우리가 대비하고 선택하는 방법에는 인간존중과 국민으로서의 외국인주민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 독서모임 인터넷 카페 '달의 궁전'(http://cafe.naver.com/darlgung) 서평이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 류시화 ‘소금인형’ -  

 

 

 

                

 

 

 

새들처럼 지저귄다. 오늘도 사진만 남아있는 남의 책을 뒤적거려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이 사람과 접속하고 저 친구와 문자를 날리면서도 마음속은 늘 공허하다. 내적인 허탈감에서 벗어나려고 또 다른 새들과 만나고 무리지어 다니며 능력과 세를 과시해 본다. 요란하기만 한 빈 수레를 끌고 다니며 얹힌 내용물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신을 붙잡아 앉히고 인생의 의미에 진지해지기를 두려워한다. 끝없이 할 일을 만들고 쓰러지듯이 피로해야 만족한다. 너도나도 내다버린 우리의 소중한 가치는 무게를 지니지 못하고 가벼워져 둥둥 떠다닌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독을 멀리하고 싶어 한다.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외부 세상으로부터 멀미를 느껴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에 머무르려는 사람들도 더러 생겨난다. 이 불안한 느낌은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배급된다.

 

차라리 혼자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내 삶이 소금인형처럼 녹아버릴까 봐 두려운 자, 사랑을 얻기 위한 절규에서 벗어나고픈 자들의 자해행위이자 도피행위이다. 나 홀로의 삶은 자유롭다. 그러나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낭만적이거나 세련된 삶인 것만은 아니다. 독립적인 삶은 스스로를 무장하고 훈련할 수 있는 자만이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자신에게 침잠하여 얻어지는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즐겨 보려는 것이,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이들의 노력이다. 자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용기 있게 뛰어든 소금인형은 바다로 내려가 흔적도 없이 자신을 녹여 버린다. 당신의 핏속으로 뛰어들어 미련 없이 녹아버린, 류시화의 시에 안치환의 목소리를 입힌 노래가 가슴에 녹아내리는 오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 불행해졌는지조차 잊어버린 사람이 있다. 그는 버려진 것 같은 자신의 삶을 예수와 비교한다. 시골길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며 예수를 생각한다. 따뜻한 곳에 살았으며 십자가에 일찍 못 박힐 수 있었던 예수를 부러워한다. 살아갈 이유와 버틸 힘이 없음에도 목을 맬 노끈 하나 갖고 있지 않은 인생길에서 그가 하는 일은 한가지다. 바로 기다리는 것이다. 무엇을? 그는 고도를 기다린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서사는 오직 ‘기다림’뿐이다.

 

한 그루의 나무 밑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와 블라디미르는 낡은 옷과 해진 중절모 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닳아가는 신발은 작아 불편하다. 낡은 넥타이는 생에 대한 마지막 격식과 예의인 듯 끝까지 풀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일이 없는 이들은 세상 위에 내던져진 인간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이들의 말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목적이나 대상이 없기에 이들의 말은 하나의 축으로 집결되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나 사방에 흩어진다. 고독한 인간의 말은 맺히는 곳 없이 허무하게 사라진다. 이들의 대화는 질문과 답의 구조를 취하나 시종일관 소통이 불가능하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그럼에도 엉뚱한 대답만을 이어간다. 소통의 부재는 이들만의 특징이 아니다. 극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포조와 럭키 역시 자신의 말만을 뱉어내기에 바쁘다. 말을 하지 않던 럭키는 어느 순간 입을 연다. 그의 말은 해괴한 극의 상황을 패닉상태로 몰아넣는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힘으로 말리기 전까지 쏟아져 나온다. 결국 이들에게 완벽한 소통이란 불가능하며 더불어 자신과의 소통도 이루지 못한다.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고 꿈과 현실을 혼동한다.

 

고립되어 있는 고독한 인간이 세상과의 부조화 속에서 버티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뱉어낸다. 그 말은 무의미하고 그 무의미를 통해 의미를 이뤄나간다. 무의미와 의미는 끝까지 충돌한다.

 

이들이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끊임없이 기다리는 고도란 과연 무엇일까? 고도가 누구인지, 오기는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구원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한 가닥의 실마리가 있으나 그것 또한 확실치 않다. 독자(혹은 연극을 보는 관객)은 그들과 함께 고도를 기다린다. 그러나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가 끝나도 고도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고도를 기다릴까?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구원해줄 무언가, 이를테면 고도 같은 것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 이들의 기다림은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그러니 기다림의 시간과 장소가 확실한지조차 알 수 없다. 습관이 되어버린 지루한 기다림 속에서 반복하는 '말놀이'는 고도가 실제로 온다면 끝날 터이다.

 

그러나 고도가 내일 올 것이라는 전갈을 알리는 소년만이 등장한다. 소년의 등장으로 1막이 끝나면 새로운 기다림이 시작되고, 2막의 마지막 역시 유예되는 기다림을 알리는 소년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소년 또한 현실의 인물인지 환상속의 기대가 만들어낸 허상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어쩌면 소년은 기다림의 절망 속에서 고도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찾기 위한 블라미디르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게 중요한 것은 기다림 자체가 아니라 기다리는 태도인 것이다. 이들은 어제를 잊고 꿈을 잊고 현실을 잊으면서도 자신들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은 놓치지 않는다. 목을 매고 싶을 지라도 한 가닥의 희망을 안고 고도를 기다리는 것, 그것은 삶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대변한다.

 

어긋나는 이들의 대화와 망각은 관객들을 허무하게 만들면서도 웃음을 이끌어낸다.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그래도 알쏭달쏭하게 느껴지는 허소(虛笑). 그 웃음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 알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든다. 희망이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결국 우리의 문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절망을 우회적으로 표현함으로서 고도를 기다리는 독자나 관객들에게 그 기다림이 계속될 것이라는 무서운 메시지를 남긴다. 독자는 오지도 않는 고도를 기다리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책을 붙들고 기다린다. 관객들은 극장을 나오고서도 고도를 기다린다.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도 그것을 모른다. 알고 있었다면 작품 속에 써 넣었을 것이다.” 작품을 매년 한번씩 또 읽어도 나는 고도를 모른다. 고도는 과연 올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올 것인지. 때로 기다림은 기다림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기도 한다. 전망도 없고 기대도 없는 상황에서 기다림은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지만 기다리지 않으면 절대 오지 않을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오기를 바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게 만드는 작업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무하다고 해서 삶을 놓아서는 안 된다. 삶이 부조리하고 무의미할수록 삶은 발견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그들이 ‘말장난’이라는 유희를 발견하듯 말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자 2014-05-05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7번째 단락에서 '디디의 판타지일지도 모른다'의 디디는 무엇을 말하는것인가요?!

cyrus 2014-05-05 09:31   좋아요 0 | URL
디디가 <고도를 기다리며> 우리나라 연극 버전의 블라디미르의 이름입니다. 예전에 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공연의 감상까지 곁들이다보니 이름을 잘못 썼군요.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안나푸르나 2014-11-29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한동안 고도를 그렸던 기억이 있네요
아니 고도를 기다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요?

cyrus 2014-11-29 09:1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읽을 때마다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그장소] 2015-01-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그 디디..!!
 

 

 Scene #1  예술, 미적 상실의 시대

 

 

 

 

 

 

 

 

 

 

 

 

 

 

 

 

1962년, 앤디 워홀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화랑에서 캠벨 수프 깡통을 실크 스크린 방식으로 그린 작품을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길 건너 경쟁 갤러리는 실제 깡통을 쌓아놓고 “우리는 진짜를 단돈 29센트에 판다”는 문구로 그를 비웃었다.

 

그러나 아서 단토는 워홀의 깡통 그림을 웃으면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비누상자인 브릴로 상자를 똑같이 만들어 전시한 워홀에 대해 아서 단토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철학적 지성을 가졌다고 말했으니까.

 

 

        

 

 

앤디 워홀  「캠벨 수프 깡통」 1962년 / 「브릴로 상자」 1964년

 

 

진품과 똑같이 여러 개 그린 캠벨 수프 깡통과 브릴로 상자의 모사본을 높이 쌓아서 슈퍼마켓의 창고처럼 전시한 브릴로 상자는 워홀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예술품이다. 그렇다면 왜 공장 사람들이 만든 캠벨 수프와 브릴로 상자는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단토는 ‘창작자의 의도’를 작품의 한 근거로서 제시한다. 예술가가 제목을 달아 작품으로 전시함으로써 어떤 물리적 대상에 ‘예술의 지위’를 부여하는 동시에 ‘의미론적 기능’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주관적 의도나 의미가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 주관적 의도가 객관적인 맥락 속에서 수용돼야 한다는 점을 단토는 강조한다. 그 ‘객관적 맥락’으로 단토가 지목하는 것이 예술계(예술가, 예술비평가 등), 예술사, 예술이론이다. 그것이 이해될 때, 수프 깡통 같은 평범한 사물이 예술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토는 예술은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가 왔기 때문에 예술의 영역과 정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을 의미한다. 해방된 예술가들은 이제는 자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예술이 끝났다는 의미보다는 예술의 목적이 상실된 것이다. 어떤 양식이 어떤 양식보다 미적으로 낫다는 판단이 무의미해진다. 예술가 자신이 스스로 미술을 시각의 문제가 아닌 철학의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화가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에 담는다. 자신의 소박성과 고뇌, 철학을 조형언어인 그림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화가들 스스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느꼈던 행복의 20세기는 지났다. 워홀의 선구적인 작업 때문에 이제 무엇이든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 그동안 고고한 예술의 산정에서만 놀던 예술이 일상생활로 하산한 격이다. 기존의 영역에서만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치기에는 한계가 왔을 뿐더러, 예술과 상품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가 됐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파괴된다.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로, 무엇이든 작품 대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Scene #2  예술은 죽었다

 

 

 

 

 

프랜시스 베이컨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1969년

 

 

영국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루시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가 작년 5월 12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4240만 달러(1528억)에 낙찰됐다. 이 낙찰가는 2012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 1990만 달러(1200억)에 팔린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의 가격을 갱신한 것이라 한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 들려오는 미술시장의 뉴스는 보통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든다. 과연 무엇이 이토록 가격을 폭등시키는 것일까? 영국의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인 매튜 키이란은 그의 저서 <예술과 그 가치>에서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예술작품이 실현할 수 있는 가치는 단일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치들이 미묘하고 복잡한 상호관계를 이루며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원본성, 일품성, 상상력, 독창성, 진실성, 도덕성 따위의 요인들이 예술의 가치를 만드는 다양한 요인들이며 결과적으로 인문학 이론에 정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가 인문학의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런던이나 뉴욕에서 전해오는 작품가격의 고공행진 소식을 제대로 납득하기는 힘들다. 오늘날 예술의 가치는 인문학적 혹은 미학적 가치만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된 것처럼 오늘날 현대미술의 현장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과 경제의 메커니즘이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경매장에 올라온 작품이 비싼 것은 상업적 메커니즘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경매회사라는 거대자본업체의 시스템은 작품에 아우라를 만들어 내는 강력한 장치가 된다.

 

그런데 그림 경매에 나서는 큰손들은 현대미술의 오묘한(?)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사는 것일까? 그림을 자신의 미적 취향을 위한 컬렉션이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 그림을 사들인다. 이들의 미적 기준은 그림 값이 얼마냐 오르느냐 하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예술은 바로 무가치, 무의미, 비의미를 요구하는 것이며 사람들은 이미 무가치한 데도 더욱 열렬하게 무가치를 지향한다. 일종의 반대추론을 이용한 교묘한 속임수다. ‘무가치하다’고 할수록 사람들은 그것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고급스러운 미술관 갤러리의 분위기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포장하는 평론가들이 합세하면 대중은 주눅이 들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마저 갖게 된다. 이를 두고 조직적인 전문가 범죄라고 보드리야르는 일갈한다. 실제로 수백억, 수천억의 돈이 오간다.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뭔가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꽝인 것, 그러나 차마 그렇다고 말할 수 없기에 모호하게 아이러니와 지적 유희를 방패삼아 자기유용성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하고 있는 것, 이것을 보드리야르는 현대 예술의 운명적 귀착점으로 봤다. 종말의 시작을 워홀의 브릴로 박스가 등장한 60년대로 잡고 있다. 브릴로 박스는 캠벨 수프 깡통과 더불어 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본격적으로 무너뜨린 작업이었다. 한마디로 ‘뭐든지 예술이 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신선한 예술은 이제는 일률적으로 돼 버린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워홀과 뒤샹 이후의 현대미술은 모방에 불과할 뿐이며 새롭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을 ‘암세포의 증식’으로 비유함으로서 ‘무가치’로 남게 되는 것이다.

 

“예술이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너무 많아서 예술은 죽는 것이다.” (보드리야르)

 

 

 

 Scene #3  예술가들은 우릴 보고 비웃지

 

 

 

 

 

 

 

 

 

 

 

 

 

 

 

현대미술의 무가치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몰래카메라 실험 하나 소개하겠다. 두 마리의 침팬지가 물감으로 마음대로 그리도록 한다. 침팬지가 마구 그린 그림 두 점을 가지고 부자 동네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 이름은 <제3세계에서 온 미개인전>. 그림의 화가가 침팬지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그림을 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재미있게도 관객들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림을 봤다. 그리고 그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명망 있는 어느 주간지의 미술평론가는 ‘유럽 화가, 특히 말레비치와 미로의 영향을 부인할 수 없지만 나는 만족과 존경심을 가지고 이 그림들을 감상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몰래카메라의 실험 결과를 통해서 우리, 심지어 미술평론가마저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보드리야르의 지적대로 무의미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현대미술에 대해서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미술평론가들의 모습은 마치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나체의 임금님이 착한 사람만 보이는 멋진 옷을 입었다고 말하는 신하와 같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술평론가들은 지금까지 우리들에게 ‘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유머 작가 에프라임 키숀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서 이러한 평론과 알 수 없는 현대 예술들을 두고 통렬한 비판과 풍자를 던진다. 현대미술 비평가들은 천문학적인 작품가격과 알 수 없는 평론으로 관객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평론가들의 권위와 미술품시장에 많은 부분 좌우되는 현대미술의 기만성을 비판한다. 현재에 와서 현대 미술에서는 시선을 끌기 위한 의미 없는 기획들이 재생산될 뿐, 아름다움이란 도무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이전부터 지속된 그의 현대미술 비판들을 통해서 그는 많은 ‘대중’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지지를 받았지만 많은 관련 전문가들로부터 ‘예술 이해능력이 부족’하다거나, ‘예술을 모르는 속물’ 취급을 받아야 했다.

 

다시 몰래카메라 이야기를 들자면, 침팬지의 그림에 대해 ‘나는 저 그림이 무엇을 그렸는지 전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비평가들이나 미술을 좀 안다는 고고한 사람들에게는 예술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폄하하겠지만, 실상 지극히 당연한 생각인 것이다.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현대예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겁에 질려서 “나는 전혀, 아무것도 모릅니다” 라고 외칠 뿐이다.

 

책의 제목인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피카소가 자신의 유언장에서 이 모든 상황을 비웃었다는 가정에서 나왔다. 키숀에 따르면, 실제로 재능으로 충만했던 피카소는 대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저 뭔가 자극을 원하는 시대와 영합했을 뿐이고, 이 유언장에서 그러한 자신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그들이 나의 익살과 기지에 경탄을 보내면 보낼수록, 그들은 점점 더 나의 익살과 기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중략)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피카소,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중에서)

 

이 모호한 유언장을 피카소의 생애를 통해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쉽게 단언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현재 피카소가 스스로 기대했던 것 그 이상, 혹은 뭔가 다른 것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현대미술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그림값과 이름값으로 재벌과 미술평론가들에 의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Scene #4  예술의 종말이 곧 예술의 민주주의?

 

이들이 공유하는 예술 개념과 예술 이론에 의해 작품이 해석되어지고 예술작품으로 지위를 얻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경계하게 되는 것은, 예술이 부와 고상함, 그리고 학식을 상징하는 차별화에 이용됨으로써 특정 집단, 특정 계급의 전유물로 독점화된 채 머무르는 것이다.

 

 

 

 

 

 

 

 

 

 

 

 

 

 

 

 

서평가 로쟈는 단토의 ‘예술의 종말’을 소개하는 글(‘앤디 워홀의 비누상자’, 한겨레, 2008. 5.27)을 일상적인 사물이 예술작품이 되는 이 종말의 시기를 누구나 예술창작자가 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의미, 곧 예술의 완성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컨템퍼러리 미술이 워홀과 뒤샹 이후로 여전히 일상적인 것들이 예술작품으로 변용되고 있을 정도로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나 현대미술을 여전히 어렵게 생각하는 우리가 예술창작자가 되어서 ‘예술계’의 수용 범위로 진입되기에는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즉 예술의 종말은 예술의 민주주의 그리고 예술의 완성으로 이르지 못했다. 예술가들은 예술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울지 몰라도 관객 또는 예비 예술창작자가 되기 위한 일반인들은 예술계가 만든 그들의 경계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오늘날의 예술은 완성되었다기보다는 예술가, 전문가 그리고 예술을 아는 척하는 엘리트들만 향유하는 반쪽자리에 불과하다.

 

현대예술이 저지르고 있는 최대의 죄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관객을 모독하거나 심지어 경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아름다움으로부터 추방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에 대한 사랑 역시 사라져 버리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아직도 입을 열 엄두를 못하고 있는 이른바 교양을 지닌 식자층이다. (에프라임 키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169쪽)

 

단순히 미술작품만이 아니라 그 어떤 분야의 예술이라도 그것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인간의 삶과 정서를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거나 점점 더 알 수 없다고 느끼며 전문가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은 실로 비극적인 일이다.

 

단지 수십억을 호가하고 저명한 언론으로부터 극찬 받은 작품에 딱히 감동 받지 않더라도 부끄러워하거나 부족한 문화적 소양 탓을 할 필요는 없다. 진짜 부끄러워야 할 사람은 미술에 ‘미’자도 모르면서 돈으로 그림을 사들이는 재벌과 뭣도 모르면서 현학적인 문장만 늘어놓은 전문가들이다. 우리가 동시대의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예술의 종말’이다. 예술이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뻥이라서 예술은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