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이 글에서 말하는 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지금 마우스 위에 올려 있는 검지손가락으로 이전 웹 페이지로 이동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이 페이퍼를 안 읽었으면 좋겠다.

 * 오르한 파묵의 신작 <순수박물관>을 아직 읽지 않았다
 * <순수박물관>을 읽고 있는데 아직 1권 혹은 2권을 읽고 있는 중이다
 * <순수박물관>을 읽고 있는데 내용이 너무 많아서 미칠 것만 같다.

    더 이상 끝까지 못 읽어나가겠다 
 * 그의 신작을 읽지 않았지만 작가가 실제로 ‘순수박물관’을 세운다는  

    뉴스는 들어봤다  

 * 작가가 세운 순수박물관에 관람하고 싶지만 여행 비용이 부담스럽다

<순수박물관>을 도서관에서 빌린 지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예전에 그의 전작인
<내 이름은 빨강> 두 권짜리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떨쳐버리고
신작 <순수박물관> 두 권짜리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깐 무언가 아쉬움이 있었다. 독자가 순수박물관에  

찾아갈 수 있도록 약도를 그려 넣은 것은 좋다. 그런데 도록이 없다.  

박물관이라고 하면 도록은 빠질 수가 없다.
2권 마지막에 소설 속 등장인물의 목록이 있고 순수박물관의 전시물 도록이 없었다.
2권을 너무 빨리 읽다보니 케말이 모은 물건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작 생각난 것이 처음 박물관 전시 1호 물건인 퓌순의 귀고리 한 짝이 유일하다.
그래서 이 훌륭한 작품을 그냥 읽기에는 허전함이 남았다. 케말이 퓌순의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서 박물관을 세웠듯이 나도 오르한 파묵의 신간을 읽은 기념으로  

내 나름대로 도록 같지 않은 도록을 작성하였다. 
 

참고로 순수박물관의 도록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낳게 한 아이디어의 근원은
최근에 읽은 사이토 다케시의 <독서력>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읽었던 책을 더욱 기억하기 위한 방법으로 ‘매핑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기록 방식을 추천하고 있다. 쓰는 방식과 주제는 자유롭다.  

자신이 읽었던 책의 내용에 대해 자신만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읽었던 책들을 소개한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을 예로 들자.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을 것이다. 읽고 난 뒤, 책 속에 소개된 법정 스님의 책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그렇게 되면 책 내용에 관한 기억이 확실히 나게 되며, 자연스럽게 법정 스님의 책들도  

읽게 된다. 매핑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은 읽은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할 수 있으며  

창의적인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방식을 착안하여 좀 더  

<순수박물관>을 읽은 경험을 기억하기 위해 도록을 작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그 두 권짜리를 또 읽었다. 사실 적지 않은 양의 두 권을 또 읽어야한다는 점이
고통스러웠지만 막상 시작해보니깐 어느 새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두 번째 완독 끝에 두 권에 등장하는 모든 순수박물관의 전시 물품들을 일일이 작성하였다. 

전보다 빠른 속도로 읽어서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빠뜨릴 수가 있겠다.
하지만 굳이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또 한 번 두 권을 완독하는 것도 힘들며
나름 재미 삼아 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하지만 직접 터키에 있는 순수박물관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케말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사랑의 증거들을 책에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다.

다시 한 번 말하겠지만, <순수박물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더 이상 밑의 글을 읽지 말고, 직접 책을 읽고 나서 도록을 확인해주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보면 이 글이 스포일러성으로 될 수도 있고, 괜히 허접한 글 때문에

독자 분들에게 기대감을 떨어뜨리게 만들게 하고 싶지도 않다.

혹시 읽어본 독자 분들 위해서 1, 2권 따로 정리했으며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페이지 수도 기록하였다.  
 

  

 

1권 

퓌순은 내가 박물관의 첫 번째 물건으로 전시할 귀걸이 한쪽을 빼서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p 59) 
 


그날 퓌순의 가방에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접어 놓은 그녀의  

꽃무늬 손수건을 여기 전시한다. 이후 퓌순이 담배를 피우면서 책상 위에서  

만지작거렸던 어머니의 크리스털 잉크병 필기도구 세트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연약한 온정의 징표가 되었으면 한다     (p 61~62) 
 


그 당시 터키에서 가장 사랑받고, 가장 이상하고, 가장 용감했던 칼럼니스트
제랄 살리크(여기에 그의 칼럼 한 편을 전시한다)의 부드러운 손을 진심 어린 존경을  

다해 맞잡았다     (p 212) 
 


퓌순이 오늘 안 올 거라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이던 그 십 분에서 십오 분을 내가 어떻게  

보냈는지는 여기에 전시한 시계, 성냥개비와 성냥 더미로 잘 설명될 것이다
(p 239~240) 
 


시벨과 누르지한이 읽던 프랑스 정원과 주택 관련 잡지에서 영감을 얻고 거기에 전통적인  

느낌을 접목해 꾸렸던 피크닉 바구니, 차가 가득 든 보온병, 플라스틱 상자 안에  

든 돌마 모형, 계란, 멜템 사이다 병, 자임의 외할머니가 쓰던 멋진 덮개를 전시한다 

(p 249) 

  

 

나도 비슷한 것을 어렸을 때 사용했고, 어쩌면 그래서 퓌순에게 선물했던 학생용 자
우리 박물관의 첫 번째 진짜 물건이다. 그녀를 연상시키고, 그녀의 삶에서 고통으로
얻게 된 물건 (생략)     (p 267) 
 


여기에, 그 시절 안간힘을 써서 떠올리고 파악하려고 했던 새 니샨티쉬 지도를 전시한다
(p 270)
*** 카멜의 집이자 박물관인 멜하메트 아파트가 있는 지역의 지도. 지역 주위에
카멜과 퓌순이 함께 걸었던 길이나 퓌순과 관련된 장소가 표시되어 있음 
 


아파트에 들어가서는 찻잔, 잊어버리고 간 머리핀, 자, 빗, 지우개, 볼펜 같은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는 듯한 즐거움을 주는 물건을 만지거나.....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나의 수집품을 늘려 나갔다.     (p 294) 
 


여기에 전시한 편지는 나의 수집품을 처음 모으기 시작했던 그 중요한 시절에 쓴 것이다
(p 295)      *** 케말이 퓌순에게 보내기 위해 쓴 편지 
 


이제 관람객들이 내 사랑의 고통에 질려 버렸다는 걸 알기에 신문에서 오린 멋진 기사를 

전시한다. 퓌순과 미인 대화에 같이 출전했던 친구 제이다의 대회용 사진과 삶의 목표가  

‘이상적인 남성’과 행복한 결혼하는 것이라고 했던 그녀의 인터뷰 (하략)     (p 296) 
 


잠시 후 조금이나마 고통을 잊고 잠에 빠져들었다. 아버지가 그날 입었던 파자마의  

칼라 항상 나를 우울하게 했던 슬피러 한 짝을 여기에 전시한다     (p 300) 
 


관람객들이 나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가장 특별하고 중요한  

물건들의 작은 사진을 순서대로 여기에 전시한다     (p 312~313) 
 


오십 년 후에 나의 이야기와 사건에 관심을 보일 새로운 세계의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
그 당시 담배 가게에서 팔았던 테두리가 꺼끌꺼끌한 전화 토큰을 여기에 전시한다
(p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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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안해요 Mr. Pamuk 
 

2006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이 <눈>을 발표한 지 7년 만에  

신작이 나왔다. 더군다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로 소설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작가의 유명세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은 최근에 나온 <순수박물관>이 처음이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오르한 파묵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한  <내 이름은 빨강>을 읽어보기는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 당시  

워낙 유명했던지라 동네 공공 도서관에 대출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이 빌려가곤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예약자가 많아서 예약 기회도 없었다. 꼭 읽어야겠지  

하고 벼르다가 이 책을 알게 된 지 두 달 만에 드디어 그의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두 달이라는 인고(忍苦)의 시간동안 느꼈던 책에 대한 기대감이  

첫 페이지를 넘길수록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를
알리게 한 이 책의 독특한 역순행적 구성과 16세기 말의 터키를 배경으로 한 이국적인  

색채의 문장에 기대감만큼 흥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 작품의 장르가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 읽었건만 추리소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몰입과 긴박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뭐야, 이게 추리소설이라고? 그냥 터키에서 유명한 추리작가의 작품이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1권의 절반도 채 읽지 못한 채 다음 날 도서관에 반납을 하였다.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풋내기 독서력이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다. 2년 뒤, 터키에서 유명한 추리작가는 세계적인 문학상의 No.1인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오르한 파묵을 저평가했던 과거의  

망상이 떠오르는 동시에 나의 유치했던 독서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의 노벨상 수상 이후로 대형 서점에는 그의 책들이 진열되어있는 코너가 마련되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는 추리작가가  

아니었다.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작품은 추리적 요소가 가미된 장편소설이었던  

것이다. 또 한 번 나의 무지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미안해요. Mr. Pamuk. 당신의 진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그리고 작가 앞에서는 염치없겠지만 노벨상 수상 이후의 작품이라는 광고에 혹하여
<순수박물관>을 읽게 되었다. 이번에는 망설임없이 직접 2권을 공공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하여 두 권 모두 완독을 하였다. 
 

 

 그녀를 찾습니다

이번 작품은 2권이며 합친 분량만 따지면 900쪽이 넘는 대작이다. 그리고 파묵은  

작가 생활을 하면서 펴낸 전작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어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간략하다.  

케말이라는 남자가 미모가 출중한 퓌순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녀는 돌연  

말없이 사라지게 되어버린다. 사랑의 열병을 앓게 만들어버린 퓌순을 찾기 위해  

케말은 그녀를 찾기 위해 방황의 시간 속을 헤매다가 결국 퓌순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퓌순은 이미 결혼한 사이였다. 케말은 포기하지 않고 구애 끝에 퓌순과  

재결합하게 되지만 결과는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인생의 절반을 퓌순에게  

사로잡혔던 시간동안에 간절한 그리움의 고통을 잊어버리기 위해 그녀가 사용한  

물건들을 멜하메트 아파트에 모아둔다. 퓌순과의 사랑에 대한 추억이 담긴 수집품들은  

결국 책 제목처럼 ‘순수박물관’을 세우게  되면서 30여년에 걸친 그의 사랑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사랑에 빠져버린 우리들의 모습 
 

제목과 내용만 봐도 사랑에 관련된 한 남자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인거 같은데.....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케말과 같은 사람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면 ‘화성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그 사람이 주었거나 혹은 관련된 물건을 

버리기 마련이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을 지워버리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케말은 

정 반대이다. 퓌순은 케말이 약혼녀 시벨과 결혼하게 된 시점부터 돌연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케말은 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불문하고 단지 퓌순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그녀의 

갑작스런 이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에 대한 결핍과 부재가 낳은 케말의 고독감은  

그녀의 손길을 스쳐간 물건들을 멜하메트 아파트 방에 가득 채워 넣는다.  

멜하메트 아파트는 케말과 퓌순만을 위한 사랑의 공간이며 유토피아(Utopia)이다. 

하지만 그의 ‘화성인’다운 행동에 대해서 이상하게 본다거나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지 마시라. 케말의 행동은 결국 사랑에 빠져버린 우리들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되어 연인이 되면 꼭 하는 일이 있다.
그들만의 사랑의 징표라고 알릴 수 있는 커플링을 끼고 다니거나,
만난 지 22일이 된 날을 ‘투투데이’, 100일이 되면 그 날에 기념을 하고 선물을  

주고 받는다. 커플들의 이런 행동들은 자신들 간 사랑을 더욱 더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며 서로 간의 사랑의 유대감을 강하게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곁에 없지만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공간에 그녀의  

물건들을 수집하면서 케말은 퓌순과의 사랑을 자신의 인생에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념하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끝끝내 버리지 않는다. 그녀의 부재 속에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수집 행동이 오랜 시간동안 그녀를 찾아다니는
끝에 재결합을 이룰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만남은 곧 헤어짐의 시작이라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에도 이별이 있는 법이다. 케말에게는 시벨이라는 약혼녀가 존재하고 있어서  

사실 처음부터 퓌순과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한 번의 이별을 겪고  

다시 한 번 퓌순과 재결합하게 되지만 교통사로로 그녀가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운명조차도 이들의 행복한 사랑을 오래가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케말의 퓌순에 대한  

사랑은 이상적인 사랑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도 한 번 사랑에 빠지게 되면 오래갈  

것이라고 행복감에 도취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상적인 생각이다. 

더욱이 그런 행복감에 지나치게 빠지다보면 이별 후의 후유증이 오래 남게 된다.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이성과 헤어지게 되면 아직까지도 상대방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후유증의 영향은 이별 이후에도 그녀가 준 물건들에 대해 더욱 더 애착이  

가게 된다. 그녀에 대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면서 이별을 선택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기도 하며 심지어 다시 재결합하기를 바라면서 상대방에게 애걸복걸  

매달리기도 한다. 어쩌면 케말도 퓌순을 사랑했던 기간 동안 지나치게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다. 퓌순이 사라진 뒤에도 그녀의 물건을 수집하는 행동은
이별 뒤에 찾아오는 사랑의 후유증을 보여주고 있다. 
 

 

 순결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케말과 퓌순의 사랑이 유토피아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작품 속 삼각 갈등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 ‘순결’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갈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는 시벨과 퓌순이다.  

하지만 이들의 가치관은 다르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은 서구 문화가 들어오고 있는  

70년대 터키의 여성상을 말해주고 있다. 시벨은 전통적인 여자이다.  

그녀는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케말의 이중적인 사랑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
반면에 퓌순은 예전에 미스코리아 대화에 나가본 경험이 있는 서구적인 여성이다.
케말이 약혼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그녀 역시 그에 대한 사랑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여
멜하메트 아파트에서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사랑에 대해서는 개방적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케말은 여성이란 결혼 전에는 순결을 지켜야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퓌순과의 사랑은 순결만 따져서는 안 되는 특별한 사랑으로 치부한다.
케말은 시벨과의 말다툼에서 자신의 사랑 관념을 드러나고 있다.

 "순결이 아직도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그렇게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척하는 거야?
  최소한 좀 솔직해졌으면 해.” 
 “모두들 이 문제에 대해선 정직해..... 너의 관점으로 다른 사람을 본다는 게  

  너의 문제야.
  어쩌면 너나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리 유럽적이고 현대적이라 할지라도, 이 문제는 이 나라에서  

  그리고 한 여자에게는 중요해.” 
                                                                                             - 2권 p 234 -

남성들 입장에서는 순결은 참으로 모호하고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워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남성들끼리 암묵적으로 금기시하기도 한다. 케말처럼 남성들도  

순결 앞에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과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과 사귀기 전에 과거의 남자를 사귀었던 경험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괜히 민감해진다. 그리고 자신과 사귀고 있는 여성이 ‘순결 여(女)’임을 바라는 

남성도 있다. 여성이 과거에 남성과 사귄 경험이 많다고 하면 우리들은 그녀를 안 좋게    

바라보곤 한다. 남성의 심리는 여성은 순결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남성들은 자신들에 대한 순결은 생각해보지 않는다. 남성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어발식 연애를 즐기는 남성도 있으며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여자 친구 몰래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 남성도 있다.
그리고 자신이 여성과 성적 관계를 맺는 행동에 대해서 동족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자랑하고 다닌다. 무엇보다도 남성들 사이에서는 숫총각을 ‘천연기념물’이라고
비유하여 은근히 성적 비하를 하기도 한다.
결국 남성들이 생각하는 사랑의 관점은 남성 지배적인 사고가 자리 잡혀 있다.
그리고 남성이 여성에게 순결을 지킬 것임을 강조하는 사랑 방식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사랑이며 잘못된 것이다. 
 

 

 남성들이여, 케말을 본받자

개방적인 서구식 문화가 유입되면서 남녀 간의 사랑 관념도 변하고 있다.  

특히 사랑에 대한 여성들의 가치관은 천차만별이다. 한 번 사랑한 남자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끝까지 정절을 지키는 춘향이식 사랑은 옛 말이다. 2년이라는 세월동안  

군대에서 국방의 의무를 하고 오면 군 입대 전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했던 곰신은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도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며  

원 나잇 스탠드도 이성 관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다양해진 만큼 타인의 눈으로 이들의 행동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예민한 성격을 가지다보니 이성의 부재 시 느끼는 고독감을  

더욱 느낄 수밖에 없다. 2년이라는 기간. 누구에게는 짧은 기간이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긴 시간일 수가 있다. 군에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가가 정신적으로 힘들다보니 다른  

이성과 눈 맞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자유연애를 즐기는 것에 대해 자신들이 만족함을 

느낀다면야 주위 사람들이 그녀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 또 젊음은 질풍노도라는 말이  

있듯이 한창 혈기왕성할 시기에 이성에 대해 사랑을 느끼고 연애를 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의 본능이며 젊을 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하지만 많은 사랑의 경험은 하되 올바른 방식의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본능적인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고 연애를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버리듯이 한 달에  

수십 번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사랑을 하지 말자. 짧아도 100일이라도 좋다.   

왠만하면 오랜 기간동안 연애를 하자. 자신의 잣대를 벗어나
상대방의 마음을 조금 더 너그러이 이해하고, 케말처럼 ‘너 없으면 못 살 거 같다’는 식으로 

상대방에게 뜨겁게 사랑을 표현해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케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물건을 집착적으로 모으지 말자.  

다만 상대방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을 해서 준 물건들은 무시하지 말자. 세월이 흘러  

그 사람과 헤어져 있다거나 아니면 오랫동안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면 가끔  

그 물건들을 보면서 ‘아! 나도 예전에 이런 사랑을 했었구나’하고 즐거웠던 추억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있는 남성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기념일은 잊지 말자는 것이다.
남성들은 기념일 외우는 것이 귀찮고 날짜 자체에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여성은 

다르다. 여성은 기념일로 하여금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랑을 더욱 더 특별하게  

여기고 싶어 한다. 또 한편으로는 기념일을 계기로 이성 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으며  

이 사랑이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심리도 가지고 있다. 여자 친구와 오래 사귀고 싶다면  

여자 친구에게 애정 표현을 자주 하고 이런 기념일도 챙겨주면서 여자 친구와의 사랑을  

돈독히 하자. 그럼 언젠가는 오랜 열애의 끝에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리뷰를 끝맺음을 안도현 님의 시로 장식하겠다. 케말도 이 시에 나오는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도 케말처럼, 아니 이 시에 나오는 연탄재와 같은
사랑을 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는 것이 어떨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따뜻한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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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백과사전 - 광수의 뿔난 생각
박광수 글.그림 / 홍익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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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상적인 모든 것들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독자들의 고정된 두뇌도 비틀어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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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 + 모더니즘 + 제국주의 + 몬스터 + 종교 다섯 가지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잡탕 축구 팀?

대망의 월드컵 결승 팀이 결정지을 4강전이 내일 펼쳐진다. 4강전을 치를 네 나라들은  

모두 수십 년 만에 준결승 문턱까지 진출한 터라 이번 경기의 결과에 따라 희비가 교차될  

것이다. 아프리카 첫 월드컵의  우승팀이 누가 될 것인지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4강에 진출한 국가 중에서 전차군단 독일이 강력한 월드컵 우승  

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 8강전에 또 하나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를  

4골이나 넣으면 완승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독일 국민들은 이번 독일의 월드컵
우승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월드컵 우승을 달갑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독일 극우파 네티즌들은 독일 축구팀이 

다문화 팀이라고 말하면서 비(非) 독일적이라는 이유로 4강전에서 탈락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국가 축구팀을 ‘잡탕’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독일 축구팀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외국계 선수가 무려 11명이나 된다.
축구계의 모차르트 포돌스키와 독일 최고의 골잡이 클로제는 폴란드 태생이다.  

메수트 외칠은 터키, 보아텡은 가나, 사미 케드라는 튀니지, 카카우는 브라질계이다.  

극우파 네티즌들의 독일 대표팀 비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계 축구  

선수들이 골을 넣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순수 혈통 독일 선수들이 골을 넣어 월드컵에서 

우승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독일의 이번 월드컵 성적을 살펴보면  

클로제는 4골이나 넣었고, 다른 외국계 독일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외국계 선수들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독일 내에서의 극우파들의 비난은
이번 월드컵이 처음이 아니다. 4년 전, 자국에서 펼쳐진 월드컵에서 독일은 조별 예선에서
폴란드와 맞붙게 되었다. 경기 결과는 1:0으로 독일이 우승하였다. 경기가 끝나면 우승  

국가의 선수들이 우승의 기쁨을 만끽하여 기분 좋게 웃으면서 패배한 상태 팀의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클로제와 포돌스키만은 우승의 기쁨에 대한 웃음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클로제는 담담하게 그라운드를 떠났으며 포돌스키의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하였다. 비록 지금은 독일 국적이지만 태생은 폴란드였기 때문이다.  

비록 팀은 이겼어도 자신들이 자랐던 예전의 나라 사람들 앞에서 기쁨을
표현하기가 불편하였을 것이다. 이를 본 독일 극우파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독일인으로서의 행동답지 않다면서 비난을 하였다. 그리고  

독일에서만 다문화 대표 팀에 대한 비난이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대표 팀도 독일처럼 

대부분 외국인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었던 지네딘  

지단은 알제리계이다. 우리나라 박지성 선수의 소속 팀 절친이자 이번 월드컵 주장을  

맡은 에브라는 세네갈 출신이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을 넘보고 있는 독일과 비교하면  

상황이 좋지만 않다. 1무 2패에다가 고작 1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예선 탈락을 하여  

너무 일찍 고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월드컵 예선 경기 전부터 프랑스 축구 팀 내부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선수들은 감독의 조직 운영에 불만을 품어 반발하여 훈련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프랑스 축구팀의 희망이었던 아넬카는 감독과의 불화로  

인하여 월드컵이 치러지는 도중에 퇴출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런 프랑스  

축구팀의 불협화음에 분노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축구팀이 귀국하는 대로 감독 및  

선수들과의 면담과 청문회를 하기로 하였다. 고국에 돌아와 청문회 자리에서도 감독과  

선수들은 서로 네 탓이다라는 둥 다툼은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 축구팀의 몰락에 대해서 

프랑스 사회평론가들은 대표 팀의 구성원이 다양한 국적의 인종이 모여 있는 만큼  

그들 간의 이기주의와 분파주의가 낳은 대립이 스스로 자멸로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독일 극우파들의 정체 
 

다민족 다문화 국가는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점점 발달되어 가는 통신 및 교통  

기술의 발달과 국경의 벽을 허물고 있는 글로벌 사회인만큼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살거나 아예 새로운 국적을 얻어 살기도 한다. 그래서 유럽  

대륙에서도 미국처럼 다문화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1999년부터 유로화가 통용됨에 따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인 교류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도 증가하였다. 하지만 사회 현상이 다민족 다문화로 변화할수록  

자신들의 민족이 우수하고 타 민족을 무시하는 인종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독일과 같은 경우에는 과거 나치스 정권이 주창한 반 유대주의, 백색인종지상주의  

사상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다. 독일 축구팀을 비판한 극우파들은 네오나치즘과  

일맥상통하다. 이들은 독일인을 위한 독일을 슬로건으로 하며, 독일 민족의  

우위와 국민 공동체의 건설, 전후체제의 비판, 동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반 유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악화되어가는 독일의  

경제 상황의 원흉을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이라고 지목하면서 ‘외국인은 물러가라’,  

독일인을 위한 독일’이라는 구호 아래 살인과 방화를 서슴지 않고 있다. 독일의 통일  

이후에도 더욱 기승을 부려 지금까지도 독일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에도 국가 내 타 민족을 차별하는 현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차별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공교롭게도 월드컵을 치르고 있는 남아공도 과거에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하여 민족차별의 

역사를 경험한 적이 있으며 지금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곳곳에서  

백인이 흑인들을 차별 및 폭력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제국주의의 원인이 남성이라고?

현재 유럽의 사회 현상을 살펴보면 사이토 다카시가 주장하고 있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의 영향을 보고 있는 거 같다. 세계사를 움직이게 한 힘은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표현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힘은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금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여전하다. 세계는 화합과  

존중의 시대를 표방하여 교류를 하고 있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보면 ‘제국주의’라는 구시대적 힘이 아직까지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사에서 전쟁이라는 행위는 필수불가결이다. 인간은 항상 남을 지배하려는 습성이  

있다. 남의 물건이 탐이 나면 빼앗고 싶어지고, 상대방이 자기보다 약하면 우월감을  

가지게 되어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어진다. 특히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존재는
여성보다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이 무척이나 강하다. 그래서 세계사에서 그려지는 전쟁의
영웅들은 모두 다 남성이다. 다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서 역사가들의 평가가 달라지며
심지어 왜곡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학문이다. 사료만 가지고 단순히 남성들은  

전쟁광이다, 남성은 여성보다는 욕망이 가득하고 자신을 위한 일이라면 난폭해진다고  

단정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성들만의 역사 속에서는 여성 지배자들의 기록도 있다.
무적함대 스페인을 무찌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나 자신의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지배자가 된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가 있다. 사이토 다케시는 남성의 야망이
제국주의를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며 이에 대한 근거로 알렉산더와 스파르타 등의  

예를 들어가며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를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죄인으로  

남성이라고 말하기에는 근거가 미약하다. 결국 남성이든 여성이든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남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을 전쟁이라는 대결 행위를 통해  

남을 억압하여 해결하는 존재이다. 
 

 

 지나친 욕심이 부른 로마 제국의 몰락 
 

상대방을 지배하려면 자신은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우월해야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심리도 가지게 된다.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남이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무시하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핍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배자보다 우월하게 만들거나 아예 그를 쓰러뜨려 역전의  

상황을 만들어야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지배당한 자들은 지배자들에게 당한 억압과  

고통의 기억들을 지우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민족성을 버리지 않으며
그런 민족성을 토대로 같은 민족들끼리 똘똘 뭉쳐 지배자로부터 독립을  

원하기도 한다. 이에 지배자들은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피지배자들이 반역을 하게  

되면 자신에게는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조금씩 그들을 풀어주기도 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카이사르의 

정책이 그 예이다. 로마 제국은 황제만 신으로 생각하는 지배 계층과 다른 신을 믿지  

않는 특징을 가진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의 피지배 계층 간의 충돌이 잦았다. 하지만  

로마는 사회적 내분 속에서도 굳건히 제국으로서의 위용을 떨치게 된다. 

카이사르는 국가 내의 종교에 대해 관용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피지배자들만의  

고유한 민족성과 종교를 인정하는 것이다. 오래 된 로마 제국 시대부터
다 민족 다 문화에 대한 포용성을 보여주고 있던 셈이다. 하지만 나날이 갈수록 로마  

제국의 영토가 커져만 갈수록 지배자들의 욕심도 커져만 갔다. 영토 확장을 통해 다른  

나라의 지배하여 자신들의 부와 노예들을 점차적으로 불려나갔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로마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완충 요소인 포용성이 사라지게 된다. 지배자들의 부를  

증식시키기 위한  방법에는 전쟁 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하는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피지배자들을 전쟁에 참여하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피지배자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야만했고, 지배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생을 부귀영화로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당한 사회에 참을 만큼 참았던 피지배자들은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들의 민족성을 표출하여 자신들의 독립을 주장하게  

된다. 타 민족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이 결국  

로마 제국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프랑스 잡탕 대표팀의 쓸쓸한 결과

로마 제국의 잘못된 사회 시스템도 프랑스 축구팀의 상황과 유사하다.
어떻게 보면 스포츠도 전쟁처럼 이겨야 하는 대립 행위이다. 축구가 다른 스포츠 종목보다 

전 세계를 흥분하게 만들고 미치게 하는 인기 종목이다. 대륙의 축구 최강 팀이
한자리에 모이는 월드컵에서 황금빛 트로피와 우승의 영광을 거머쥐기 위해서 스포츠
전쟁을 벌인다. 남성들이 서로 피 튀기면서 전쟁에서 싸우듯이 월드컵도 남성들이
땀 흘리며 그라운드에 구르면서까지 공 하나 가지고 적의 골대에 골을 넣거나
자기의 골대에 골이 들어가지 않게 막는 치열한 전쟁이다.
전쟁사에서 항상 우승자가 역사의 기록에 남기듯이 월드컵에서 우승하게 되면
영광의 기록이 평생 따라붙게 된다. 사실 프랑스도 이번 월드컵만큼 우승의 기대가  

컸을 것이다. 4년 전 독일 월드컵에서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으니깐.  

축구팀 구성 선수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팀이다. 프랑스 축구팀이 

플레이가 뛰어난 다른 국적의 선수들을 발탁하였고, 프랑스인이 아닌 타 국가 선수를  

주장으로 뛰게 한 것은 잘못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승만을 바란 나머지  

우승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과정을 무시하고 말았다. 축구팀 선수들을 살펴보면 티에리  

앙리, 아넬카, 말루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플레이어들과
기본적으로 탄탄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선수들 간의 팀워크가 잘 이루어져 있으면 한 두 사람의 유능한 공격수가 있는 팀이
부럽지가 않다. 우리나라 대표 팀은 비록 박지성 이외에 세계적으로 유능하다는  

유명 선수는 없다지만 공수 간의 완벽한 조화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의 쾌거를 올렸다.
그러나 감독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과신하였다. 그리고 스타 플레이어들을 위한 축구  

운영으로 월드컵 우승을 노렸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 전부터 치른 평가전에서 기대치에 

떨어지는 경기 운영을 나타내자 축구 팬들은 감독의 능력에 비난을 하였다.  

하지만 감독은 자신의 지휘 능력이 언젠가 월드컵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믿었다.  

팀 내 자기가 다스리는 선수들이 자신의 경기 운영에 불만을 가져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축구팀 전체를 이끌어가는 지배자라는 인식으로 독불장군식으로 

밀고나갔으며 심지어 그에게 반발하는 선수는 다음 경기 출전 명단에 제외시켰다.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는커녕 무시했으며 오히려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선수에게는 
반항에 대한 죄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선수들의 경기 능력에 대한 다양성을  

무시하게 되어 정작 월드컵 무대에서는 과거의 화려한 아트 사커는 실종되어버리고  

결국에는 예선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일찌감치 짐을 싸서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가게 되었다. 
 

 

 외국의 사회 현상은 남 일이 아니다 
 

사이토 다케시가 주장하고 있는 다섯 가지 힘은 앞에서 설명한 욕망과 제국주의뿐만  

아니라 요즘 금값이 상승하는 것도 과거 16세기 유럽의 금본위제 현상과 다를 게 없다.
금을 화폐와 동일시한 금본위제 사회는 당시 상권을 지배하고 있던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를 축적시키기 위해 그들만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 지금도 세계가 경기 불황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를 이용하여 금을 보유하고 있던 부자들이 다시 한 번 과거의  

사례를 답습하듯이 예전에 가치가 하락되었던 금값을 상승하게끔 만들고 있다.  

결국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무형의 힘이 바다 건너 편 유럽에서만 일어난다고 해서 도외시하면 안 된다.  

이런 그릇된 사고는 굳이 세계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무형의 힘은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가 금값이 올라가자 우리나라에서도 금값이 상승하였다. 그리고 IMF 외환 위기 

이후로 눈길 한 번 안 주었던 금이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황금빛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국가의 인종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특히나 한국으로  

귀화하는 외국인의 수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으며 한국 국적을 얻어도 피부색이 다르고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하고 있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맨몸으로 이국땅에 

들어와 어렵게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심하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제국주의에 물들고 있던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과거에 지배당하고 억압받았던
안 좋은 추억들을 지우고 싶어한 것일까?  우리나라는 과거에 일본이 했던 제국주의적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물려받은 것을 그대로 타 국가의 사람들 앞에서 지배자인마냥 

행세를 하고 있다. 역사를 움직이고 있는 무형의 힘이 하나의 국가와 민족에게 미치는
영항이 참으로 무시무시하기만 하다. 단순히 세계사에 흥미가 있어서 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들을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보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질 것이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무서운 극우파…"독일인이지만 독일 우승 안 바라"] 씨앤비뉴스 7월 7일 입력 

http://news.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118939  

 

[도메네크 프랑스 감독, `남 탓'...청문회 출석] 세계일보 7월 1일자 

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Soccer/Article.asp?aid=20100701002504&subctg1=10&subctg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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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푸어 - 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가
NHK <워킹푸어> 촬영팀 지음 / 열음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50만원으로 한 달 살아보기 
 

최근 참여연대가 주최하고 있는 캠페인이 이색적이다.  

‘한 달 동안 최저생계비로 생활하기’라는 캠페인이다.  

일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올해 조사된 최저생계비로 생활하는 것인데
1인 가구는 50만 4000원, 2인 가구 85만 8000원, 3인 가구 110만 919원,
4인 가구 136만 3091원이다. 이번 캠페인의 취지는 최저생계비의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1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50만원이라.....
집에서 대학교로 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학교 근처에 혼자 자취 생활을 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최저생계비 50만원으로 생활하게 된다면  

하루 밥 한 두 끼는 굶어야 할 판이다.
혼자 자취 생활을 하는데 지출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자취방과 생활 방식마다 다르겠지만
학교 근처에 혼자 자취하는 친구의 생활을 예로 들어 분류한 것이다.
전기세를 포함하는 자취방 월세, 하루 식사를 위한 식료품비, 교통비(이 친구의 자취방이
학교 근처라고 하지만 자기 집에서 학교로 걸어가면 40분 걸린다. 그래서 집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 그리고 친구의 고향이 서울인지라 주말이 되면 서울에 가곤 한다.  

KTX 애용자(?)인 그 녀석은 회원 할인 적용을 한다 해도 서울과 대구 KTX 왕복에만 

5만원 이상의 비용이 지출된다), 기타 지출에는 주말에 자기 집이 있는 서울에 오면  

친구들과 논다고 돈이 나간다. 그리고 다시 대구로 돌아와 학교생활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생활비가 조금씩 나간다. 후배들 밥 사주기, 강의가 끝나면 동기, 선후배들과  

함께 술을 마시거나 논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이란 간혹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사고 싶은 욕구를 누르지 못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눈에 띄는 물건이 있으면 안 살 수가  

없다. 그러면 또 생활비가 지출된다. 다행스럽게도 이 친구의 집안이 나름 넉넉해서  

생계비가 부족하면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이 그의 통장에 돈을 넣어준다.  

하지만 가끔 나도 1인 자취 생활을 하고 싶다고 그 친구에게 말하면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취 생활을 하면서 쭉쭉 나가는 생계비를 생각하면
돈이 궁하면 생활하는데 힘들며 자신이 왜 타 지방에서 이런 고생해야하는지 힘들 때도 

있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자기처럼 살고 싶다면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말했다. 친구는 부모님이 자기 자신을 위해 생계비를 보내줄 때가 더욱 마음  

아프고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단다. 만약 50만원 달랑 내 손에 쥐어져 있고, 이 친구처럼  

생활한다고 상상해봐라. 얼마 못 가서 다 쓰고 말 것이다. 
 

 

 일본의 워킹푸어 
 

생계비 때문에 쩔쩔매는 사람들은 비단 이 친구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시민 중 생활고에  

허덕이는 중하층부터 극빈층까지 ‘워킹푸어(working poor)’에 속한다.  

위킹푸어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근로빈곤층’이다.  

즉, 일을 하면서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민 계층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무슨 일을 해도 빈곤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자못 심각하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의 불황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일본 경제를 떠받치며 일본 국민 구성원 대부분 차지하는 중산층이
경제 불황으로 인해 무너졌다는 것이다. 결국 중산층이 무너지면 상류층과의 양극화가  

심화된다. 몰락한 중산층들은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고 가난한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직으로 생활을 영위한다거나 아예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기만 하고 있다.   

몰락한 중산층들은 ‘워킹푸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일본에만 워킹푸어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워킹푸어의 실상을 보다

이 책은 일본 워킹푸어의 실상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구성한 것이다.  

그래서 책 내용 절반은 다양한 일본 워킹푸어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얼마 받지 못하는 임금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젊은이들,  

자식들 부양하느라 등 휘어지게 일을 해도 생계비가 부족하여 곤란해하는 부모들,  

안락한 노후 생활은커녕 늙어 지친 몸을 이끌어 하루하루 연명하는데
힘들어하는 노인들까지. 일본의 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져 왔다. 생활하면서 꾹 억누르고 

있었던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신들만의 걱정거리와 소원을 말하는 워킹푸어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두 아들을 키우는 어느  

어머니의 삶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자식들이 올바르게 교육을 받아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생계비가 부족하여 자식이 학원에 다니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두 아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은 헌책방에서 구입하거나 길거리에서 버려진 것을  

주워오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유사한 사회생활보장 가족으로  

시청에 직접 신청을 시도하였으나 조건 미달이라는 이유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는 않는다. 비록 힘들더라도 두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얻은 생계비를 자식 교육에 사용하겠다고 말한다. 지역과 피부색은 

달라도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모두 다 같으랴. 
 

 

 무엇이 위킹푸어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는가 
 

인터뷰에 참여한 워킹푸어들이 내뱉은 공통적인 불만은  

고용 문제와 정부에 대한 태도였다.
정작 일을 하고 싶어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은
원하지 않는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여 얻은 대가와 비교하면
도토리 키 재기이다. 즉, 무슨 일을 해도 노동의 대가가 쥐꼬리만한 것이다.
그리고 워킹푸어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은 빠지지 않았다.
정부는 일본 국민들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워킹푸어가 시청 관련 직원과의 청문회를 통해서 자신들의 실상들을 알려줘도
오히려 시청 관계자들은 그들이 열심히 일을 안 해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안일한 망언을 하기도 했다. 시청 관계자들이 아직까지 워킹푸어라는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이 책의 원안이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시기가 4년 전임을 감안하면 ‘워킹푸어’라는 용어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때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노력해야 할 정부와 시청이
이들의 생활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고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본의 허술한 사회보장제도도 워킹푸어들을 분노케 하고 있었다.
사회보장제도를 받으려고 신청을 하면 조건 사항들 때문에 국가 제도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개인 소유 땅이 있다거나 가족 인원 수가 부족하다는 등
너무 많은 조건들이 달려 있다. 어이없는 것은 본인은 경제적 능력이 없다지만
한 사람이라도 부양자가 있다면 보장제도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앞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빈곤의 현실에 눈물을 흘리는 워킹푸어들은  

그나마 한 가닥의 희망의 끈을 잡아보려고 사회보장제도를 신청하지만 
이것마저 받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 앞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워킹푸어, 정부가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18~64세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워킹푸어는 2008년 195만 명에서 2009년 상반기 209만 명으로 급증했다.
6개월 사이에 14만 여명이 워킹푸어로 전락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앞으로 워킹푸어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워킹푸어를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발본색원(拔本塞源)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버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해야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당장 손을 써야할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의 얼굴들은 바뀌어도 항상 그 얼굴들이 말하는 이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에게는 귀 따갑도록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선적으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노령화 사회임을 감안하여 노년층도 어느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고용 기회를 늘려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노동 임금도 인상해야 한다.  

최근 내년 최저임금이 인상되었다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비정규직인 워킹푸어가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  

취약근로자에 대한 고용차별이 개선되어야 한다. 빈곤층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도 일본의 제도의 내용과 비교하면  

공통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신청자의 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했을 때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면 지원을 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일본의 제도처럼 부양이  

가능한 가족이 있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이라도 소득이 증가했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싶으면 사회보장제도 대상에서 제외된다.  

장기적으로 빈곤층을 자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 대상자가 되기 위한 조건도 일본만큼 복잡하다.
일정 가격 이상의 집이나 전셋집, 승용차, 땅 등을 소유하고 있으면 수급자 선정에서  

제외된다. 즉, 워킹푸어를 늘리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회보장제도  

수급자 선정 규정을 개선되어야 한다. 다만 정부 지원에만 기대고 일을 하지 않는  

빈곤층을 양산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일본과 닮은 꼴이 많다. 일본이 부동산 버블 이후로
경기 불황으로 중산층이 붕괴되었듯이, 우리나라도 IMF 외환 위기 이후로 중산층이  

무너졌다. 그리고 외환 위기의 최대 희생자인 중산층들은 아직도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처럼 워킹푸어가 증가되고 있다. 워킹푸어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경제가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도 악영향을 준다. 가난은 대물림되어
다음 세대까지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만 대물림되는 것도 아니다.
자식은 부모를 보면서 자란다고 한다. 자식들도 부모가 가지고 있었던
빈곤으로 인한 삶의 고통과 상처들을 보고 자란다.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인용 관련기사 출처 및 링크  

  

[“최저생계비로 한 달 살아보세요” 일반시민 11명 직접 체험] 경향신문 7월 1일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7011810295&code=940702 

 

[워킹푸어, 현실에 무릎 꿇다] 데이터뉴스 4월 8일자 입력 
 http://www.datanews.co.kr/site/datanews/DTWork.asp?itemIDT=1002910&aID=20100408144600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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