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지식총서 예술-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권용준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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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 이슬람 예술 (전완경 저, 살림지식총서 382)

 

 

 

 Scene #1  아라베스크, 이슬람 미술의 정수     

 

길을 걷다 보면 보도블록을 새로 교체하는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모래와 블록을 까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유심히 보았다면 블록의 모양이 모두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똑같은 모양의 블록을 규칙적으로 배열하면 금방 길거리가 새단장을 한다. 건물의 바닥이나 화장실 안쪽 벽 등도 보도블록과 같이 타일 조각들이 규칙적이면서 빈틈없이, 서로 겹치지 않게 붙어 있다.

 

이처럼 주변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벽이나 바닥 등 평면을 빈틈없이,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규칙적인 배열을 이루는 도형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빈틈없고 겹치지 않게 평면을 덮는 것’을 수학에서는 테셀레이션(Tesselation)이라 한다. 테셀레이션은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퀼트, 옷, 깔개, 가구의 타일, 건축물 등 세계 각 지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왼쪽) 알함브라 궁전의 아라베스크 문양 / (오른쪽) M.C. 에셔  「해방」  1955년

 

 

테셀레이션으로 가장 유명한 곳으로 단연 알함브라 궁전을 꼽을 수 있다. 이곳의 마루, 벽, 천장에 테셀레이션되어 있는 반복적인 문양들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테셀레이션 작품을 남긴 M.C. 에셔에게는 작품의 원천이자 일생을 바친 테마이기도 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가보지 못한 곳. 알함브라 궁전은 1238년 이슬람 나르스 왕조에 의해 세워져서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의 스페인 왕국에 함락될 때까지 250여 년간 황금기의 왕실 영화와 권력을 보여 준다. 22명의 왕들은 치세하는 동안 궁전을 부분적으로 완성해 갔는데 내부에 들어가면 스페인에서의 무어 건축양식 절정기에 조성된 섬세한 이슬람 미술의 기품이 돋보이는 조각과 아기자기한 정원문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화려한 꽃과 식물의 문양이 추상적으로 어우러진 아라베스크(Arabesque)는 디자인의 원조이며 이슬람 미술의 정수다.

 

아라베스크는 양식화된 식물 모티브와 줄기 등을 뜻하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어 아라베스코(arabesco)에서 유래했다. 아라베스크 무늬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중해적 유산이다. 이슬람 예술가들은 자연을 양식화해 표현했다. 무한한 창조력을 가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것은 그 자체의 끊임없는 흐름을 가지며 아라베스크가 이러한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슬람은 코란의 강력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미학적으로 통일된 예술적 문명이다. 이슬람은 신만이 영원하고, 다른 모든 것은 바뀔 수 있으며 덧없고 일시적이고 우연하다고 믿는다. 전능한 신 알라의 창조적 행위 없이는 세상에 어떠한 형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창조 이외에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은 없다. 모방할 수 없는 신의 작업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려는 시도는 불경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모든 창조물 위에 서 있는, 이름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무엇과도 닮지 않은 그러한 초월적이고 무한한 신 앞에서 인간의 자리는 더 이상 커질 수 없으며 예술에서의 표현 또한 지극히 한정적이다.

 

인물과 동물 문양을 금지한 이슬람 미술에서는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표현이 발달했다. 이러한 미학적 감각은 아라베스크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라베스크는 자연에서 가져왔지만 너무나 단순화시켜서 그것이 무엇인지 거의 알아보지 못한다. 장식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현실적 무늬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신의 무한한 완전성에 비해 일시적이고 변하는 삶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장식 무늬의 무형적인 성격은 이슬람 건축에 쓰이는 재료인 치장 벽토, 벽돌, 타일, 마른 진흙과 잘 어울린다. 이로써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드는데, 이런 추상적이고 장식적인 느낌이 든다.

 

 

 

 Scene #2  종교가 빚어낸 화려한 이슬람 예술    

 

이슬람 미술의 역사는 식물의 형상을 기하학적 형상으로 변화시킨 역사다. 기하학적, 수학적 사색을 문양으로 만들었다. 이것을 이슬람의 미학적 가치에 적용해 비율과 형태를 확실히 했다. 무엇을 표현하느냐보다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더 신경을 쓰는 이슬람 문화에서 서체는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려졌다. 글은 신의 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서체를 사용한다. 아랍어와 문자를 예술로 승화시킨 이슬람 서체는 코란의 보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됐고, 서체는 이슬람 미술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슬람 세계의 통치자들은 서체에 조예가 깊었으며, 코란의 필사 작업에 참여한 서예가들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졌다.

 

무슬림도 기독교인만큼이나 자신의 종교에 헌신적이었지만 그들이 이룬 미술은 기독교 교회가 후원자 노릇을 하며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서양미술과는 분명 다르다. 서양미술의 주된 형식은 회화와 조각이었다.

 

이 둘은 예배에 필요한 종교적 이미지를 창조했다. 그러나 이슬람 미술에는 거창한 그림이나 조각이 거의 없다. 대신 서양 미술에서 부차적이고 장식적인 것, 예를 들어 책이나 직물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책에는 아름답고 섬세한 그림이 삽화로 들어갔다. 직물은 종이, 그림이 폭 넓게 사용되기 이전에 이미 예술적 감각을 전파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슬람 미술은 이슬람 세계의 변화도 반영한다. 이슬람 건축의 전통은 모스크가 출발점이다. 모스크는 무하마드가 무슬림 공동체의 중심이자 기도실로 지었다는 집에서 유래한다. 모스크에는 예루살렘의 바위 돔, 이스파한의 마스지디 샤 등이 있고 궁전들은 대부분 파괴되어 문헌에 존재하나 그라나다의 알람브라궁전, 세빌의 알-카자르 궁전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이슬람 건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아그라에 위치한 타지마할은 무굴제국 5대 황제인 샤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무덤 궁전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한 이야기다. 그러나 국가 재정이 기울어질 만큼 공사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어마어마하고 많은 사람이 공사 도중에 숨을 거둔 아픈 사연도 담고 있다. 공사에는 매일 2만 명이 넘는 일꾼들이 동원되었고, 마침내 22년 만에 무덤이 완성되었다. 네 귀퉁이에는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40m 높이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신기하게도 각각 약 7도 정도 바깥으로 기울어져 있다. 탑을 일부러 기울이게 만든 이유는 강가의 약한 지반 때문에 건물이 내려앉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Scene #3  공존의 문화가 깃든 이슬람 예술   

 

아직까지도 이슬람 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듯하다. 중동 건설 붐과 석유자원, ‘세계의 화약고’로 대변되는 정세불안 등 경제·정치적 측면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뒀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로 이슬람 세계를 조명하는 책들이 나오긴 했지만 종교나 사회, 국제정치 분야 등으로 한정됐다.

 

그러나 널리 분포된 이슬람 미술은 이슬람교의 포용성으로 인해 조화와 균형을 기본으로 하되 토착민족의 전통과 융화되어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를 창출해 냈으며 기독교 문화와도 교호하며 공존하였다. 그래서 이슬람 문명이 거대한 문명의 용광로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슬람 예술』은 매우 신선하게 다가오는 귀한 책이다. 제목과 달리 미술 분야뿐 아니라 이슬람의 예술 전반, 나아가 건축, 음악까지도 두루 소개된다. 아라베스크 무늬로 대표되는 기하학적 장식문양부터, 종교와 예술이 어우러진 웅장한 모스크 건축, 이슬람 예술의 독창성을 대변하는 서예, 유럽 중세 음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수준 높은 음악 등이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예술을 발전시켰고, 동서양 문화예술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 이슬람 세계의 또 다른 면이 잘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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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  「자화상」  1969년

 

 

20세기 최대의 중심 이슈는 인간이었다. 인류는 신과 자연에 대해 탐구하고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전을 위해 마치 기차가 달리듯 역사의 레일 위를 열심히 달려왔으나 어느 날 갑자기 방향을 잃고 자기 혼돈에 빠졌다. 인간은 자기 외적 요소에서 해답을 구할 수 없고 끝내 문제는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베케트의 소설에서처럼 인간은 고도를 기다리며 “지금 어디인가? 지금 누구인가? 지금 언제인가?”라고 묻는 절망적인 존재가 되어있었다.

 

 

 

 

 

 

 

 

 

 

 

 

 

 

 

 

미술에서 이런 전후의 절망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인물이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그는 경마훈련사인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제도권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성(性)에 대해서도 아주 부끄러운 기억의 성장배경을 갖고 있었다. 베이컨은 미술과 철학 그리고 법학에도 뛰어났던 그는 동성애자였기에 남자와의 관계를 혐오스럽게 여긴 부모님으로부터 쫓겨났으며, 프랑스, 영국, 유럽을 돌아다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후원자를 만나 명성을 얻게 된다.

 

16세에 집을 떠나 베를린과 파리를 방황하며 실내장식공으로 생계를 꾸려나간 그에게 파리에서 본 피카소 전시회는 생을 바꾸어 놓아 1929년 런던에서 스스로 배운 화가의 길을 걸어 나갔다.30세를 넘어서야 수줍음벽을 겨우 이겨낼 수 있었지만 도박과 음주벽은 그의 일생을 늘 따라 다녔다.

 

 

 

 

루시안 프로이트  「세폭화, 조지 다이어를 애도하며」  1971년

 

 

파리에서 전시회 전, 동성 연인인 조지 다이어의 자살로 인해 그의 모습과 죽음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그려나간다. 소리 없는 사물의 목소리를 느끼고 그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죽음의 상태에서 깨어나게 하여 아름다운 즐거움과 쾌락을 포기한 억제된 욕망의 댓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자극하고 각성시키려 한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특히 영화가 시작되는 맨 앞에 베이컨의 그림 두 점이 등장한다. 그 두 점의 그림이 각각 한 번씩, 그리고 세 번째 쇼트에는 두 그림을 동시에 나란히 등장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이사벨 로손의 초상화를 위한 연구」  1964년

 

 

절규하는 듯한 노랑색 벽과 맑은 초록색 바닥, 그 위의 도발적인 오렌지색 매트리스에 길게 누워있는 남자와 등받이가 있는 어두운 녹색조의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또 한 남자. 두 사람 모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뭉개져 있다. 그것은 그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던 화가,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과 「이사벨 로손의 초상화를 위한 연구」였는데 모두 1964년작이다.

 

그것들은 앞으로 전개될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에 더없이 적절한 그림이다. 이 영화는 1973년 개봉 때 정면누드와 왜곡된 섹스행위로 상영금지가 되어 15년 뒤에나 해금이 된, 한국에서는 24년 뒤에야 비로소 개봉되었다. 그러나 정작은 외설적이지도 그다지 에로틱하지도 않은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고독이 압도한 영화였다. 쟌느의 총에 맞아 쓰러져가면서도 베란다 구석에 씹던 껌을 붙여두고 죽어가는 말론 브란도의 얼굴은 영락없는 베이컨의 초상을 연상하게 된다.

 

 

 

 

 

프랜시스 베이컨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  1966년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도 그가 즐겨 다루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인간의 살아 있는 현실'을 다루는 화가이다. 그의 주제는 영국 예술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금기사항을 위반하고 있으며 인간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직시하는 철학만 같다.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에는 그의 유년이 보인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성장배경이란 어떤 식으로든 작품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의 부모는 정착하지 않고 영국과 아일랜드를 오가며 살았고 끊임없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거나, 아니면 각각의 나라 안에서도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외할머니의 집 같은 어떤 특정한 장소들에 늘 애착을 갖고 있었는데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피리에 있는 그 집에서 살았다. 그 집은 정원을 마주보고 있는 모든 방들이 둥글게 구부러져 있었는데 꽤 큰 집이었다고 한다. 그가 그린 여러 그림들에는 곡선 모양의 배경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유년의 그 방들을 떠올린 것이었다.

 

이 그림의 천정에 걸려 있는 전구의 움직이는 술 장식만 보아도 초상의 공간 배경이 나선형이다. 이것들이 극도로 단순, 간결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물은 그와 반대로 더욱 거친 형상이 부각되어 보인다.

 

「말하고 있는 조지 다이어의 초상」은 마치 빌로드천 같은 자주색 바닥과 보랏빛 벽, 그리고 갈색 천정과 원근법에 따라 처리된 남보랏빛 문을 배경으로 무언가 말을 하며 앉아 있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베이컨 자신의 말이 그 답변은 아닐까. 분명히 우리는 육신이다. 우리는 미래의 시체인 셈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고통과 외로움, 절망, 절규 그리고 공포의 감정들을 이성을 배제한 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해낸다. 그는 초상화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야만적이면서 격렬하고도 왜곡된 모습으로 진화시킴으로 고립된 형태를 나타낸다. 그는 비극적인 현실과 혐오스러운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나이프를 사용하고, 유리에 비치는 반사광을 이용, 실제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사진과 다양한 사진 수집을 이용하여 내면의 초상을 그리는 기법 등으로 인간에 대한 충격적이고 비관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연출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누워있는 인물」  1959년

 

 

「누워 있는 인물」은 방에 갇혀 있는 절망의 한 인간을 뒤틀린 모습으로, 절규하듯, 쓰러지듯, 자포자기하듯, 아니면 튀어나가서 거역하려는 듯한 여러 이미지로 그려놓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절대적 상황아래 놓인 외로운 홀로의 존재라는 인간 실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그림 속의 인물은 공간에 의해 보호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갇혀져 있는 느낌이다. 그가 누워 있는 듯한 침대는 다만 윤곽만 드러내고 밑으로 길게 깔린 초록의 카펫만이 그곳이 공간으로 둘러싸인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검게 칠해져 있어 밤을 방불케 하고 있는데 우측의 수직과 하단의 대각선으로 난 가느다란 선만이 그곳이 막혀 있는 듯한 상황임을 시사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십자가형」  1965년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사실적이면서 대단히 암시적으로 감각의 이면을 들춰내고 싶었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런 게 아닌가?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이 그린 수많은 초상화들은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뜨린다. 신체를 구성하는 살도 뼈로부터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을 통해서 감각이 실제 신체의 뼈와 살에 달라붙은 표면의 형상을 말하고자 했다. 고통에서 고함으로! 얼굴에서 머리로! 이것이 들뢰즈가 베이컨의 그림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감각의 논리이다.

 

 

 

 

 

 

 

 

 

 

 

 

 

 

 

 

들뢰즈는 신체는 형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형상은 구상이나 추상과 다른 의미를 갖는다. 구상은 신체를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며 추상은 신체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대신 형상은 신체가 반응하는 감각을 그대로 표현한다. 고통의 감각은 고함에서 나오는 것이며, 얼굴의 감각은 머리와 고기라는 신체 표면에서 나오는 것이다.

 

베이컨의 입체적 회화는 경악에 가깝다. 육체와 영혼. 베이컨은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꺼이 그 가죽을 벗기는 연쇄살인마와 같다. 다만 그가 실제 살인마와 다른 것은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상관관계를 다룬다는 것이다. 고깃덩어리는 그의 예술적 질료였다.

 

부풀리고 뒤틀린 인간은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상처 입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면 야수 같은 모습은 인간이 지닌 동물적 파괴성을 드러낸다. 베이컨의 그림은 또한 생명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면서도 동시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이율배반적 속성을 폭로한다. 베이컨은 우리 내면에 깊숙이 숨겨진 육체와 정신의 부끄러운 본질을 빠끔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 그 형태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심연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의 미적 쾌감을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우리 주변에는 이미 그것의 원초적 적대감을 듬뿍 담고 있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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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살림지식총서 176
권용준 지음 / 살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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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우리는 왜 그림을 보는 것인가 

 

어떤 그림을 명화라고 하자. 그런데 왜 우리는 이 그림을 보는 것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계적인 명화라는 데 이견을 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이 어떤 기준으로 명화가 됐으며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도록 만드는 그 매력이 무엇인지 설명하라면 명쾌하게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술 교과서는 모든 것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한번쯤 궁금하게 여길 법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찾을 수 없다. 미술의 역사적 흐름과 장르를 설명하는 데는 과잉 친절을 베풀지만 그것이 나타나게 된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미술을 어렵게 느꼈던 걸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 사이에선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전설처럼 내려왔다. 마치 대학 교재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의 제목과 판형 그리고 분량은 독자의 기를 죽인다. 그러나 어쩌랴. 일생에 한 번은 읽거나 최소한 집에 두고 가끔 제목이라도 감상해야 할 책이거늘.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 모든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원형이자 뿌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을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미술에 입문하는 초보자에게는 곰브리치의 책은 잠을 오게 만드는 유용한 베개가 되고 만다. 저자의 서문 이상을 읽어나가 것이 쉽지만 않다.

 

그러한 독자를 위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살림지식총서세트 176번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이다. 서양미술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 이 얇은 책 속에 들어있다. 서양 미술과 그 역사 그리고 그 조류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만약 미술을 위해서 한 권의 책밖에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런 가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서양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는 연대기적 서술 양식을 지양한다. 저자는 그림 속에 숨겨진 테마, 그동안 그림을 보면서 발견해내지 못한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Scene #2  서양미술을 움직인 다섯가지 테마

 

여기서 저자가 소개하는 서양미술의 테마는 크게 다섯 가지다.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美)’, ‘신(神)’, ‘죽음’, ‘향락’, ‘감성’이다. 좀 더 쉽게, 즉 서양미술사의 연대기적 개념으로 이 다섯 가지 테마를 풀이하자면 고대 그리스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 중세, 바니타스(Vanitas) 미술, 로코코 미술, 낭만주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미술사조를 대표하는 명화도 소개하고 있어서 서양미술의 주요 테마를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첫째는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 회화의 기원설은 여러 가지 내용이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이 문제를 두고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서로 자기들이 먼저라고 아옹다옹해댔다. 로마의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그 유명한 그림자 모사설을 주장한다. 도공의 과년한 딸이 코린트의 한 청년을 사랑했는데 그가 전쟁에 나가게 돼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그가 저세상 사람이 되더라도 영원히 추억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애타는 갈구가 통했던 것일까. 그녀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만남의 날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벽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목탄으로 그렸다. 플리니우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녀의 추억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항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회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봤다.

 

 

 

라스코 동굴 벽화

 

 

그러나 서양인들이 수천 년 동안 철석같이 믿었던 ‘회화는 그림자의 윤곽을 그린 데서 탄생했다’는 설은 20세기에 들어와 폐기 처분의 운명을 맞는다. ‘그림자 모사설’의 종말을 가속화한 것은 원시 동굴 벽화의 발견이었다.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의 벽에 그려진 수많은 야생동물은 코린트 도공의 솜씨를 무색하게 했다. 그 생생한 묘사를 낳은 저변에는 많은 사냥물을 포획하고자 하는 원시인들의 욕망과 종족 번성의 기원이 담겨 있다. 이제 곰브리치의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술 입문서는 그림의 기원을 더 이상 그림자 모사설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자를 따라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자연을 모방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미메시스(Mimesis)’라는 어원이 등장했다. 플라톤이 현실을 모방한 미술은 가치가 없는 허구라고 비판했지만 미술의 진보는 멈출 수 없었다.

 

그리스 미술은 종교과 결부되어 주문에 따라 신과 영웅의 상들을 창조하였는데 종교상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순수한 인간적인 것에다 뿌리를 내리고 자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다. 그 창작의 산물이 인체비례법과 조각의 제1원리인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이다. 콘트라포스토는 무게 중심을 실어 땅바닥에 내디딘 다리와 그 반대편의 발걸음을 옮기는 다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 하면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말한다. 우리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같은 쪽 어깨를 위로 들어 올리고 반대편 어깨는 아래로 낮추듯이 말이다. 콘트라포스토는 움직이는 신체가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균형의 미학이다. (그리스 미술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살림지식총서 114번 『그리스 미술 이야기』를 참고하면 된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6년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이성으로 발휘하고 느낄 수 있는 선(善)의 관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스 미술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이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미적 이상은 14~16세기 르네상스에 다시 활짝 꽃을 피게 된다. 이 중심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미술 역시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적으로 해석했다. 르네상스는 한동안 잊혔던 인간을 미술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기 중간에 위치한 미술은 어땠을까? 누군가는 서양사 또는 서양미술의 역사를 중세 이전과 이후를 나누기도 한다. 중세 이전은 마지막으로 화려한 창작의 열매를 맺었던 헬레니즘 문화의 로마 제국을, 중세 이후를 르네상스로 보고 있다.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수식어가 따라올 정도로 중세 이전의 고대 그리스 미술과 헬레니즘 미술과는 확연한 차이의 특징이 있다.

 

 

 

 

치마부에  「옥좌 위의 성모」 13세기경

 

 

그리스 미술이 인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인간중심적이라면 중세 미술은 인간의 관념 그리고 신성(神性)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중세는 신 중심 사회다. 로마 제국 멸망을 시점으로 서양문화는 헤브라이즘(Hebraism)의 종교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세 미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말씀, 즉 성서의 내용이나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 비스듬한 위치에서 바라본 두개골의 모습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이러한 관념적인 경향은 16세기에 다시 발현된다. 르네상스 때까지만 해도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을 찬사하는데 아끼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 앞에서 부질없는 인간의 존재, 그 허무함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때 등장해서 유행했던 미술이 바로 바니타스(Vanitas) 미술이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의미의 바니타스는 인간의 허영심과 세속적인 욕망을 경계한다. 바니타스 미술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죽음 또는 유한성을 의미한다. 해골, 불이 꺼진 촛불, 멈출 수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모래시계, 시든 꽃, 금방 건들면 터지고 마는 비눗방울. 바니타스 그림은 회화적으로 죽음이라는 관념을 상기시켜 준다.

 

 

 

 

프리고나르  「그네」  1766년

 

 

어둡고 엄숙한 바니타스 미술의 시대가 지나가고 18세기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은 귀족 문화가 성립된다. 귀족들만의 풍요와 향락이 느껴지는 로코코(Rococo) 시대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하여 장식이 지나치게 화려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그래서 세련된 아름다움은 귀족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느낌이 난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년

 

 

로코코 이후에 르네상스처럼 고귀한 인간의 속성을 표현하려는 신고전주의 미술이 등장했으나 그 유행의 틈 사이에 앵그르를 필두로 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꽃이 피었다. 예술가들은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사랑, 환희, 죽음, 고통 등)에서 영웅주의의 광기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들을 그려냈다.

 

 

 

  Scene #3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모든 미술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고, 미술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한다. 서양미술을 발전하게 만든 테마에는 당시 예술가들의 목적의식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제 미술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이제 와서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관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으로만 봐서는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는 미술은 시각적인 만족을 채워줄 뿐이다. 머리로 읽는 미술은 우리가 그림 앞에서 머뭇거리게 만든 지적 호기심을 풀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미술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기본 지식이 없다면 예술가의 회화적 목적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식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한 시대의 흐름마저도 조망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술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은 선사시대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역사를 개관한 것이 아니다. 문고본의 한정된 분량상 헬레니즘 미술과 신고전주의 미술을 표피적으로 언급하고 (서양미술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상주의 미술과 관련된 테마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방대한 서양미술의 기본 테마를 쉽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제 막 서양미술사를 입문한 독자라면 이 책으로 간단하게 워밍업으로 굳어진 머리를 유연하게 만든 상태에서 곰브리치의 미술사라는 커다란 산봉우리에 오르면 좋을 것이다. 무턱대고 서양미술사의 산봉우리에 오르다가 중간에 지쳐 졸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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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예술-인간 정신의 위대한 발현 세트 - 전5권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살림지식총서
권용준 외 지음 / 살림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 플라톤 아카데미 행복한 책날개 선정도서 -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권용준 저, 살림지식총서 176)

 

 

 

 Scene #1  우리는 왜 그림을 보는 것인가 

 

어떤 그림을 명화라고 하자. 그런데 왜 우리는 이 그림을 보는 것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계적인 명화라는 데 이견을 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이 어떤 기준으로 명화가 됐으며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도록 만드는 그 매력이 무엇인지 설명하라면 명쾌하게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술 교과서는 모든 것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한번쯤 궁금하게 여길 법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찾을 수 없다. 미술의 역사적 흐름과 장르를 설명하는 데는 과잉 친절을 베풀지만 그것이 나타나게 된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미술을 어렵게 느꼈던 걸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 사이에선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전설처럼 내려왔다. 마치 대학 교재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의 제목과 판형 그리고 분량은 독자의 기를 죽인다. 그러나 어쩌랴. 일생에 한 번은 읽거나 최소한 집에 두고 가끔 제목이라도 감상해야 할 책이거늘.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 모든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원형이자 뿌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을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미술에 입문하는 초보자에게는 곰브리치의 책은 잠을 오게 만드는 유용한 베개가 되고 만다. 저자의 서문 이상을 읽어나가 것이 쉽지만 않다.

 

그러한 독자를 위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살림지식총서세트 176번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이다. 서양미술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 이 얇은 책 속에 들어있다. 서양 미술과 그 역사 그리고 그 조류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만약 미술을 위해서 한 권의 책밖에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런 가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서양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는 연대기적 서술 양식을 지양한다. 저자는 그림 속에 숨겨진 테마, 그동안 그림을 보면서 발견해내지 못한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Scene #2  서양미술을 움직인 다섯가지 테마

 

여기서 저자가 소개하는 서양미술의 테마는 크게 다섯 가지다.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美)’, ‘신(神)’, ‘죽음’, ‘향락’, ‘감성’이다. 좀 더 쉽게, 즉 서양미술사의 연대기적 개념으로 이 다섯 가지 테마를 풀이하자면 고대 그리스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 중세, 바니타스(Vanitas) 미술, 로코코 미술, 낭만주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미술사조를 대표하는 명화도 소개하고 있어서 서양미술의 주요 테마를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첫째는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 회화의 기원설은 여러 가지 내용이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이 문제를 두고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서로 자기들이 먼저라고 아옹다옹해댔다. 로마의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그 유명한 그림자 모사설을 주장한다. 도공의 과년한 딸이 코린트의 한 청년을 사랑했는데 그가 전쟁에 나가게 돼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그가 저세상 사람이 되더라도 영원히 추억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애타는 갈구가 통했던 것일까. 그녀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만남의 날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벽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목탄으로 그렸다. 플리니우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녀의 추억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항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회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봤다.

 

 

라스코 동굴 벽화

 

 

그러나 서양인들이 수천 년 동안 철석같이 믿었던 ‘회화는 그림자의 윤곽을 그린 데서 탄생했다’는 설은 20세기에 들어와 폐기 처분의 운명을 맞는다. ‘그림자 모사설’의 종말을 가속화한 것은 원시 동굴 벽화의 발견이었다.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의 벽에 그려진 수많은 야생동물은 코린트 도공의 솜씨를 무색하게 했다. 그 생생한 묘사를 낳은 저변에는 많은 사냥물을 포획하고자 하는 원시인들의 욕망과 종족 번성의 기원이 담겨 있다. 이제 곰브리치의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술 입문서는 그림의 기원을 더 이상 그림자 모사설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자를 따라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자연을 모방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미메시스(Mimesis)’라는 어원이 등장했다. 플라톤이 현실을 모방한 미술은 가치가 없는 허구라고 비판했지만 미술의 진보는 멈출 수 없었다.

 

그리스 미술은 종교과 결부되어 주문에 따라 신과 영웅의 상들을 창조하였는데 종교상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순수한 인간적인 것에다 뿌리를 내리고 자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다. 그 창작의 산물이 인체비례법과 조각의 제1원리인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이다. 콘트라포스토는 무게 중심을 실어 땅바닥에 내디딘 다리와 그 반대편의 발걸음을 옮기는 다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 하면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말한다. 우리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같은 쪽 어깨를 위로 들어 올리고 반대편 어깨는 아래로 낮추듯이 말이다. 콘트라포스토는 움직이는 신체가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균형의 미학이다. (그리스 미술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살림지식총서 114번 『그리스 미술 이야기』를 참고하면 된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6년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이성으로 발휘하고 느낄 수 있는 선(善)의 관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스 미술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이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미적 이상은 14~16세기 르네상스에 다시 활짝 꽃을 피게 된다. 이 중심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미술 역시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적으로 해석했다. 르네상스는 한동안 잊혔던 인간을 미술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기 중간에 위치한 미술은 어땠을까? 누군가는 서양사 또는 서양미술의 역사를 중세 이전과 이후를 나누기도 한다. 중세 이전은 마지막으로 화려한 창작의 열매를 맺었던 헬레니즘 문화의 로마 제국을, 중세 이후를 르네상스로 보고 있다.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수식어가 따라올 정도로 중세 이전의 고대 그리스 미술과 헬레니즘 미술과는 확연한 차이의 특징이 있다.

 

 

 

 

치마부에  「옥좌 위의 성모」 13세기경

 

 

그리스 미술이 인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인간중심적이라면 중세 미술은 인간의 관념 그리고 신성(神性)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중세는 신 중심 사회다. 로마 제국 멸망을 시점으로 서양문화는 헤브라이즘(Hebraism)의 종교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세 미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말씀, 즉 성서의 내용이나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 비스듬한 위치에서 바라본 두개골의 모습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이러한 관념적인 경향은 16세기에 다시 발현된다. 르네상스 때까지만 해도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을 찬사하는데 아끼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 앞에서 부질없는 인간의 존재, 그 허무함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때 등장해서 유행했던 미술이 바로 바니타스(Vanitas) 미술이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의미의 바니타스는 인간의 허영심과 세속적인 욕망을 경계한다. 바니타스 미술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죽음 또는 유한성을 의미한다. 해골, 불이 꺼진 촛불, 멈출 수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모래시계, 시든 꽃, 금방 건들면 터지고 마는 비눗방울. 바니타스 그림은 회화적으로 죽음이라는 관념을 상기시켜 준다.

 

 

 

 

프리고나르  「그네」  1766년

 

 

어둡고 엄숙한 바니타스 미술의 시대가 지나가고 18세기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은 귀족 문화가 성립된다. 귀족들만의 풍요와 향락이 느껴지는 로코코(Rococo) 시대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하여 장식이 지나치게 화려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그래서 세련된 아름다움은 귀족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느낌이 난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년

 

 

로코코 이후에 르네상스처럼 고귀한 인간의 속성을 표현하려는 신고전주의 미술이 등장했으나 그 유행의 틈 사이에 앵그르를 필두로 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꽃이 피었다. 예술가들은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사랑, 환희, 죽음, 고통 등)에서 영웅주의의 광기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들을 그려냈다.

 

 

 

 Scene #3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모든 미술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고, 미술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한다. 서양미술을 발전하게 만든 테마에는 당시 예술가들의 목적의식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제 미술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이제 와서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관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으로만 봐서는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는 미술은 시각적인 만족을 채워줄 뿐이다. 머리로 읽는 미술은 우리가 그림 앞에서 머뭇거리게 만든 지적 호기심을 풀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미술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기본 지식이 없다면 예술가의 회화적 목적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식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한 시대의 흐름마저도 조망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술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은 선사시대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역사를 개관한 것이 아니다. 문고본의 한정된 분량상 헬레니즘 미술과 신고전주의 미술을 표피적으로 언급하고 (서양미술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상주의 미술과 관련된 테마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방대한 서양미술의 기본 테마를 쉽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제 막 서양미술사를 입문한 독자라면 이 책으로 간단하게 워밍업으로 굳어진 머리를 유연하게 만든 상태에서 곰브리치의 미술사라는 커다란 산봉우리에 오르면 좋을 것이다. 무턱대고 서양미술사의 산봉우리에 오르다가 중간에 지쳐 졸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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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에 주어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토록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같은 유언을 남기고 법정 스님이 입적한 지 4년이 지났다. 스님 입적 후 맑고향기롭게는 출판사와 스님의 저서를 절판키로 합의했다. 2011년 1월 이후 스님의 책은 일체 유통 판매가 중지되었다. 스님의 입적 소식에 평소 스님이 세상에 전하고자 한 이야기를 다시 듣고 보려한 사람들이 스님의 저서에 몰려들었다. 법정 스님이 세상을 떠난 직후부터 그가 자신의 책들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말이 흘러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독자들과의 인연을 잘라내려는 싸늘한 칼날에 상처 받은 느낌이었다. 이제 서점에서 법정 스님의 책이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마침 그가 쓴 책들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책을 사러 서점으로 가곤 한다. 전국의 크고 작은 서점들은 고인이 쓴 책들을 모아 특별 코너를 만들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책을 고르며 추모의 마음을 서로 나누게 된다. 나도 여기에 동참하고 싶었다. 스님의 입적 소식이 들었을 때 서점에 가서 스님의 대표작 『무소유』를 구입하고 싶었지만, 당장 살 수가 없었다. 그 때 군 복무 중이라서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스님이 입적한 날이 2010년 3월 11일. 병장 3호봉(3개월째)이었는데 2011년 1월까지 스님의 책을 구입할 수 있어서 5월에 전역할 때 구입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구에 있는 대형서점이라 할 수 있는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땐 책을 못 구해서 크게 아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스님의 글을 중학생 때부터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서 참 좋아했지만, 직접 구입해서 읽어본 적은 없었다. 갑자기 스님의 유언 소식을 듣고 책을 찾는데 혈안이 된 내 모습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마치 평소에 거들떠보지 않았던 하찮은 물건이 갑자기 사라진다거나 혹은 경제적 가치가 높아질 때 갖고 싶은 일종의 속물근성. 읽기 위해서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지기 위해서 책을 사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후자의 독자였다.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 정신을 위배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끼리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무소유’, 27쪽)

 

육신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스님의 책을 향한 소유 관념을 버림으로써 나는 아무것도 갖지 않은 빈손의 독자가 되었다. 언젠가는 스님의 책, 아니 스님의 글이 다시 독자들이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인간의 역사가 소유사(所有史)인 것처럼 마찬가지 우리 삶도 우리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는 소유사인 것은 분명하다. 절판 소식 이후에 온라인 서점이나 헌책방에 가면 스님의 책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가격이 상식을 넘어선다. 새 책 이나 다름없는 깨끗한 상태의『무소유』의 가격만 해도 1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스님이 저자의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가 절판된 책들도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다. 인지도 높은 저자가 쓴 책이 절판본이 되면 서점에서 다시는 판매되지 않고, 쉽게 구할 수 없다. 그 가치로 환산한다면 판매자는 가격을 정가보다 높게 책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부는 너무 터무니없이 가격을 높게 책정한다. 알라딘 중고샵을 검색하면 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으나 대부분 약간의 낙서나 사용한 흔적이 있는 ‘중’ 상태의 품질이다.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故 김수환 추기경)

 

김 추기경의 말씀처럼 아이러니하게도 가격이 비싸더라도 『무소유』을 포함한 스님의 책들은 소유하고 싶은 게 독자의 마음일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정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스님의 책을 구입한 적은 없지만,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스님의 책을 헌책방이나 알라딘 중고샵 매장에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다.

 

 

 

 

 

 

 

 

 

 

 

 

 

 

 

 

 

사실 스님의 책을 다시 한 번 구입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그 때 스님이 번역한 고대의 불교 법전 『숫타니파타』를 반값할인으로 교보문고 매장에서, 『오두막 편지』는 동네에 있는 공공도서관에서 진행된 세일 행사에서 운 좋게도 딱 한 권 남아있는 것을 구입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소유』마저 구입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까지 스님의 책을 구한 것만 해도 정말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고 본다. 살면서 여복(女福)은 지지리도 없지만, 책복(冊福)만큼은 좋은 것 같다. 재미있게도 이 저자의 책만큼은 꼭 구하고 싶은 마음 혹은 소유욕이 들면 기가 막히게도 그 책이 내 눈앞에서 발견된다.

 

 

 

 

 

 

 

 

 

 

 

 

 

 

법정 스님의 책을 몇 권 더 구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대구에서도 열린 알라딘 중고샵 매장 덕분이었다. 가끔 스님의 책이 하루에 한 권에서 많게는 세 권 정도 고객이 이곳에 팔곤 한다. (이 글을 통해서 대구 중고샵 매장에 스님의 책을 파는 이름, 얼굴 모르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진리의 말씀, 법구경』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알라딘 중고샵 매장에서 직접 구한 것이다. 『법구경』은 올해 초에 대구시청 근처 헌책방에서 구했다.

 

 

 

 

 

 

 

 

 

 

 

 

 

 

 

알라딘 중고샵 매장을 남들보다 자주 들리는 편이라서 나름 큰 수확(?)을 거두지만, 여러 권 놓치는 경우도 꽤 많았다. 고객이 금방 판 책, 특히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스님의 책은 매장을 찾는 다른 고객들의 눈에 안 띌 수가 없다. 중고샵 매장에서 판매되는 스님의 책은 대부분 A 서가에 꽂혀 있다. ‘종교’ 분야의 책이 진열되는 B 서가나 에세이의 C 서가에 꽂혀 있다면 고객의 눈에 띌 확률은 적다. 그러나 항상 고객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다른 사람이 방금 매장에서 판 책들을 파는 A 서가에 꽂혀 있으면 모 아니면 도다. 검색해서 책이 판매되는 사실을 알고 나서 당장 매장으로 간다 해도 이미 다른 고객이 벌써 구입한 뒤다. 특히 『무소유』는 세 번의 허탕 끝에 중고샵 매장에서 구한 것이다. 다행히 내가 구입한 『무소유』는 A 서가가 아닌 에세이의 B 서가, 특히 고객의 시선이 많이 닿지 않는 가장 제일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무소유』옆에는  『일기일회』도 있었다.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버리고 떠나기』『서 있는 사람들』은 대구가 아닌 울산 알라딘 매장에서 구입했다. 지난 2월 말에 4박 5일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여행의 출발지가 울산이었다. 울산 버스터미널에 그 곳에서 4박 5일 여행에 동행하는 지인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버리는 바람에 약속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울산 알라딘 매장에서 책을 구입하지 않고(!) 책만 읽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웬걸. A 서가에 법정 스님의 책, 그것도 세 권을 발견했다. 4박 5일 일정을 고려해서 여행 개인 경비를 쓰면 안 된다고 마음으로 다짐했건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안 사놓으면 여행가는 내내 후회할 것 같았다. 결국 세 권을 구입했다. 짐이 가득해서 비좁은 큰 배낭에 스님의 책 세 권을 넣은 채 나는 순조롭게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이상하게 짐은 무겁지 않았다.

 

‘무소유’를 소유한다. 그동안 스님의 책을 구입한 이유는 스님의 글이 좋은 것도 있지만 솔직히 소유욕을 버리지 못한, 이 못된 기질도 한 몫 하고 있다. 지금도 스님의 책을 펼치거나 가끔 책장에 따로 꽂혀 있는 스님의 책들을 보면서 일종의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과연 나는 책으로서 갖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로 이 책을 갖고 싶은 것인가? 소유하고 난 뒤에서야 소유욕을 경계하는 마음이 든다.

 

지금도 스님의 책은 어디선가 판매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미 ‘거래’인 동시에 ‘장사’다. 서글픈 아이러니다. 스님은 평생 무소유를 설파했지만, 정작 스님이 떠난 자리는 소유욕으로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스님께서는 버리라 하는데 나는 더욱 더 쥐려한다.

 

사랑이니 무소유니 하는 진리를 말하긴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정 스님은 한평생 자신에게 칼날처럼 엄격하며, 단순하게 검소하게 살기를 원했고,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소유와 관계의 노예가 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얻고자 했다.

 

이 세상 ‘말의 공해’에 일조한 것 같아 조금이나마 말을 거둬들이는 차원에서 절판을 생각했다는 스님, 글과 말의 덧없음을 절판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깨우쳤던 스님. 그러나 중생은 여전히 마지막 길에 자신의 책들을 거두어간 스님이 야속하기만 하다. 『무소유』가 처음으로 중생들 앞에 등장했던 바로 오늘. 다시 한 번 『무소유』를 펼쳐보면서 표지를 쓰다듬어본다.

 

스님은 ‘베풂’보다는 ‘나눔’이란 말을 더 좋아했다. 도움을 주고도 얼굴이나 이름을 알리지 않는 ‘무상보시’ 원칙을 마음속에 새기고 실천하다 조용히 갔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버리고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기원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에서 물질적 소유와 탐욕의 소유양식에서부터 창조하는 기쁨을 나누는 존재양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유와 탐욕을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면 창조하는 기쁨을 통해 삶의 양식을 나누고 싶다. 스님이 떠나간 지 지금, 이 책들 가지고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스님이 풀어놓은 말을 많은 사람들이 같이 읽고, 함께 생각하고, 또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독서의 단상을 쓸 생각이다. 스님이 남긴 좋은 문장을 발췌해서 소개하고, 문장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 쓸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죽을 때까지 스님의 책이 다시 판매되지 않는다면 그 때가지 구입한 책들을 ‘맑고향기롭게’ 재단에 기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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