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살림지식총서 176
권용준 지음 / 살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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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우리는 왜 그림을 보는 것인가 

 

어떤 그림을 명화라고 하자. 그런데 왜 우리는 이 그림을 보는 것인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세계적인 명화라는 데 이견을 표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이 어떤 기준으로 명화가 됐으며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도록 만드는 그 매력이 무엇인지 설명하라면 명쾌하게 답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술 교과서는 모든 것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우리가 그림을 보면서 한번쯤 궁금하게 여길 법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찾을 수 없다. 미술의 역사적 흐름과 장르를 설명하는 데는 과잉 친절을 베풀지만 그것이 나타나게 된 사회, 경제, 문화적 배경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미술을 어렵게 느꼈던 걸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 사이에선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전설처럼 내려왔다. 마치 대학 교재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의 제목과 판형 그리고 분량은 독자의 기를 죽인다. 그러나 어쩌랴. 일생에 한 번은 읽거나 최소한 집에 두고 가끔 제목이라도 감상해야 할 책이거늘.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 모든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원형이자 뿌리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영감을 받았을 것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서양미술에 입문하는 초보자에게는 곰브리치의 책은 잠을 오게 만드는 유용한 베개가 되고 만다. 저자의 서문 이상을 읽어나가 것이 쉽지만 않다.

 

그러한 독자를 위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 살림지식총서세트 176번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이다. 서양미술을 이해하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내용이 이 얇은 책 속에 들어있다. 서양 미술과 그 역사 그리고 그 조류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만약 미술을 위해서 한 권의 책밖에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그런 가치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서양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는 연대기적 서술 양식을 지양한다. 저자는 그림 속에 숨겨진 테마, 그동안 그림을 보면서 발견해내지 못한 상징적 의미를 중심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Scene #2  서양미술을 움직인 다섯가지 테마

 

여기서 저자가 소개하는 서양미술의 테마는 크게 다섯 가지다.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美)’, ‘신(神)’, ‘죽음’, ‘향락’, ‘감성’이다. 좀 더 쉽게, 즉 서양미술사의 연대기적 개념으로 이 다섯 가지 테마를 풀이하자면 고대 그리스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 중세, 바니타스(Vanitas) 미술, 로코코 미술, 낭만주의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미술사조를 대표하는 명화도 소개하고 있어서 서양미술의 주요 테마를 쉽게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첫째는 인간의 발견과 절대미. 회화의 기원설은 여러 가지 내용이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이 문제를 두고 이집트인들과 그리스인들은 서로 자기들이 먼저라고 아옹다옹해댔다. 로마의 학자인 플리니우스는 그 유명한 그림자 모사설을 주장한다. 도공의 과년한 딸이 코린트의 한 청년을 사랑했는데 그가 전쟁에 나가게 돼 미래를 기약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그가 저세상 사람이 되더라도 영원히 추억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애타는 갈구가 통했던 것일까. 그녀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만남의 날 청년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해 벽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목탄으로 그렸다. 플리니우스와 그의 동시대인들은 그녀의 추억하고자 하는 욕망,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항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회화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봤다.

 

 

 

라스코 동굴 벽화

 

 

그러나 서양인들이 수천 년 동안 철석같이 믿었던 ‘회화는 그림자의 윤곽을 그린 데서 탄생했다’는 설은 20세기에 들어와 폐기 처분의 운명을 맞는다. ‘그림자 모사설’의 종말을 가속화한 것은 원시 동굴 벽화의 발견이었다. 알타미라, 라스코 동굴의 벽에 그려진 수많은 야생동물은 코린트 도공의 솜씨를 무색하게 했다. 그 생생한 묘사를 낳은 저변에는 많은 사냥물을 포획하고자 하는 원시인들의 욕망과 종족 번성의 기원이 담겨 있다. 이제 곰브리치의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술 입문서는 그림의 기원을 더 이상 그림자 모사설에서 찾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자를 따라 그림을 그리는 대신 자연을 모방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미메시스(Mimesis)’라는 어원이 등장했다. 플라톤이 현실을 모방한 미술은 가치가 없는 허구라고 비판했지만 미술의 진보는 멈출 수 없었다.

 

그리스 미술은 종교과 결부되어 주문에 따라 신과 영웅의 상들을 창조하였는데 종교상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순수한 인간적인 것에다 뿌리를 내리고 자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했다. 그 창작의 산물이 인체비례법과 조각의 제1원리인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이다. 콘트라포스토는 무게 중심을 실어 땅바닥에 내디딘 다리와 그 반대편의 발걸음을 옮기는 다리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 잡으려 하면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말한다. 우리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같은 쪽 어깨를 위로 들어 올리고 반대편 어깨는 아래로 낮추듯이 말이다. 콘트라포스토는 움직이는 신체가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균형의 미학이다. (그리스 미술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독자라면 살림지식총서 114번 『그리스 미술 이야기』를 참고하면 된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4~1486년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이성으로 발휘하고 느낄 수 있는 선(善)의 관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상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스 미술은 다분히 인간중심적이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의 미적 이상은 14~16세기 르네상스에 다시 활짝 꽃을 피게 된다. 이 중심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미술 역시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신화의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인간적으로 해석했다. 르네상스는 한동안 잊혔던 인간을 미술에서 재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시기 중간에 위치한 미술은 어땠을까? 누군가는 서양사 또는 서양미술의 역사를 중세 이전과 이후를 나누기도 한다. 중세 이전은 마지막으로 화려한 창작의 열매를 맺었던 헬레니즘 문화의 로마 제국을, 중세 이후를 르네상스로 보고 있다. 중세는 ‘암흑시대’라는 긍정적이지 못한 수식어가 따라올 정도로 중세 이전의 고대 그리스 미술과 헬레니즘 미술과는 확연한 차이의 특징이 있다.

 

 

 

 

치마부에  「옥좌 위의 성모」 13세기경

 

 

그리스 미술이 인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인간중심적이라면 중세 미술은 인간의 관념 그리고 신성(神性)을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중세는 신 중심 사회다. 로마 제국 멸망을 시점으로 서양문화는 헤브라이즘(Hebraism)의 종교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세 미술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말씀, 즉 성서의 내용이나 교리를 전달하는 것이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 비스듬한 위치에서 바라본 두개골의 모습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이러한 관념적인 경향은 16세기에 다시 발현된다. 르네상스 때까지만 해도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을 찬사하는데 아끼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 앞에서 부질없는 인간의 존재, 그 허무함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때 등장해서 유행했던 미술이 바로 바니타스(Vanitas) 미술이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의미의 바니타스는 인간의 허영심과 세속적인 욕망을 경계한다. 바니타스 미술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죽음 또는 유한성을 의미한다. 해골, 불이 꺼진 촛불, 멈출 수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모래시계, 시든 꽃, 금방 건들면 터지고 마는 비눗방울. 바니타스 그림은 회화적으로 죽음이라는 관념을 상기시켜 준다.

 

 

 

 

프리고나르  「그네」  1766년

 

 

어둡고 엄숙한 바니타스 미술의 시대가 지나가고 18세기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은 귀족 문화가 성립된다. 귀족들만의 풍요와 향락이 느껴지는 로코코(Rococo) 시대가 등장한다. 르네상스의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에 비하여 장식이 지나치게 화려할 정도로 감각적이다. 그래서 세련된 아름다움은 귀족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 정도로 사치스러운 느낌이 난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년

 

 

로코코 이후에 르네상스처럼 고귀한 인간의 속성을 표현하려는 신고전주의 미술이 등장했으나 그 유행의 틈 사이에 앵그르를 필두로 하여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려는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꽃이 피었다. 예술가들은 삶 속에서 느끼게 되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사랑, 환희, 죽음, 고통 등)에서 영웅주의의 광기와 절망에 이르기까지 인간 본성의 여러 측면들을 그려냈다.

 

 

 

  Scene #3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모든 미술 작품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고, 미술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가 부여하는 목적의식을 표현한다. 서양미술을 발전하게 만든 테마에는 당시 예술가들의 목적의식이 들어있다. 그렇다면 이제 미술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그림을 눈으로 보는 것도 힘든데 이제 와서 머리로 보고 읽으라고? 관념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어렵게 느껴지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눈으로만 봐서는 불가능하다. 눈으로 보는 미술은 시각적인 만족을 채워줄 뿐이다. 머리로 읽는 미술은 우리가 그림 앞에서 머뭇거리게 만든 지적 호기심을 풀 수 있도록 한다. 사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을 보면 알 수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미술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니 기본 지식이 없다면 예술가의 회화적 목적뿐만 아니라 그러한 의식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한 시대의 흐름마저도 조망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미술은 그렇게 변하고 있다.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은 선사시대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의 역사를 개관한 것이 아니다. 문고본의 한정된 분량상 헬레니즘 미술과 신고전주의 미술을 표피적으로 언급하고 (서양미술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상주의 미술과 관련된 테마를 설명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방대한 서양미술의 기본 테마를 쉽게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임에 틀림없다. 이제 막 서양미술사를 입문한 독자라면 이 책으로 간단하게 워밍업으로 굳어진 머리를 유연하게 만든 상태에서 곰브리치의 미술사라는 커다란 산봉우리에 오르면 좋을 것이다. 무턱대고 서양미술사의 산봉우리에 오르다가 중간에 지쳐 졸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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