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사랑 소네트
파블로 네루다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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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정형시들이 있다. 우리에게 시조가 있듯 중국에는 한시가 있고 일본에는 하이쿠가 있으며 유럽에는 이탈리아에서 발원한 소네트가 있다. 소네트는 14행(4.4.3.3행)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대개는 ‘사랑’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네루다는 스무살 때, 슬픈 사랑의 시, 버림받은 남자의 노래인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를 썼다. 그로부터 30년 지난 뒤에 쓴 <사랑의 소네트>. 네루다 초기의 육감적이고 열정적인 사랑과는 달리 짙은 향기가 아련히 숨 쉬는 사랑을 찬미했다.

 

1904년 칠레에서 태어나 솟구쳐 오르는 격정과 폭발적인 상상력으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꿈과 현실을 그려 노벨문학상을 탔다. 가난하게 살았고 매우 서민적인 분위기에서 사춘기를 보냈으며 어른이 되어 도시의 비인간화를 뼛속 깊이 체험한 그의 감각과 감성의 뿌리가 민중에 내리뻗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랑의 대상은 그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조국이나, 민중, 대자연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100편의 사랑 소네트를 읽다 보면 웬만한 시가 눈에 안 들어온다. 스케일 면에서나 상상력과 감성의 크기가 신적인 것과 연결된 것만 같다. 거대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그의 시. 숭엄한 삶과 사랑 앞에 인간의 기품이나 품위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주 깊은 혼의 골짜기에서 길어 올린 듯이 기품 있는 영혼의 시. 언제나 열렬히 압도해온다.

 

 

당신이 소금 장미나 황옥이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

불이 뿜어내는 카네이션의 화살이었대도.

어떤 숨겨진 게 사랑받을 만큼 당신을 사랑한다,

은밀히, 그늘과 영혼 사이에서.

 

꽃은 피지 않지만 그 속에 숨겨진 꽃의 빛을

지니고 있는 식물처럼 당신을 사랑해;

땅에서 올라와 내 몸에 은밀히 살고 있는

어떤 순수한 향기, 당신의 사랑이 고마워.

 

(소네트 17번 중에서, 29쪽)

 

 

소네트 17번에서 “꽃은 피지 않지만 그 속에 숨겨진 꽃의 빛을 지니고 있는 식물처럼 사랑하는 것”이란 문장은 사랑의 핵심으로 보인다. 다 알면 뻔하고 심드렁해진다. 연막탄이 터져 연기가 다 사라지기 전 아련한 상태까지 사랑의 신비가 아닐까. 솔직하게 사랑하되 다 보여주지 말 것. 사랑하되 매력을 잃지 말 것. 이렇게 사랑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것처럼 보이는 자가 실전에 약할 수 있다. 이도 저도 머리가 아프다 싶으면 자기 생긴 대로 사랑하면 된다. 다른 방법으로 사랑할 줄 모르므로.

 

사랑은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일어서게 하며 어기차게 한다. 나를 매만져 세상 사랑하며 살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벼리이다. 사랑의 묘력(妙力)은 경이로운 ‘변화’이고 놀라운 ‘치유력’이 되기도 한다.

 

 

빛을 위한 불, 빵을 위한 한 많은 달,

그 멍든 비밀 둘레에 바르는 자스민:

그러자 겁나는 사랑으로부터, 부드럽고 흰 손이

내 눈에 평화를, 내 오관에 태양을 퍼부었다.

 

사랑이여, 얼마나 빨리 당신은

상처 있던 자리에 기분 좋은 견고함을 만들어내는가!

당신은 맹금의 발톱을 물리쳤고, 이제

우리는 세계 앞에 하나의 삶으로 서 있다.

 

(중략)

 

그래도 이 땅을 넘어, 그 그늘진 어둠을 넘어

우리 사랑의 광휘는 살아 있으리.

 

 

(소네트 23번 중에서, 37쪽)

 

 

그럼에도 사랑은 시시때때로 모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지 모른다. 이 시집 속의 시인의 사랑법은 ‘양면 긍정’이고 ‘양면 수용’이며 ‘양면 적용’이며 ‘양면 통합’이다. 가령 사랑에는 아름다움만 있지 않다. 추함도 있다. 또 사랑만 있지도 않다. 미움도 있는 것이다. 이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 지혜롭게 건사할 줄 알아야 사랑이다.

 

사랑은 ‘무한’이다. 따라서 생사와 무관하다. 살고 죽음을 넘어서 있다. 생사를 초월하여 생사의 인식 밖에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이유가 도탑고 사랑스러워야 할 것이다. 시인은 사랑의 이유들을 ‘황금의 허리’, ‘이마의 주름살’, ‘투명’과 ‘불투명’ 이런 등등의 것들이 이유라 쓰고 있지만 사실 ‘당신의 모든 것’이라 해도 잘못 풀이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사랑하기 위해’ 즉 ‘사랑 자체’에 있을 것이다. 또한 그래서 양면의 삶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는 역으로 당신의 양면을 모두 긍정하고 이해하며 수용하고 포용하며 사랑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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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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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 민음사입니다.

 

민음사 신간 <청춘 파산> 이 출간되었습니다.

 

 

 

파산 시대의 청춘을 대변하는 신예 작가의 출현!

 

20대에 신용 불량자, 30대에 개인 파산자가 되어 버린 인주

 

막다른 청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눈부신 젊음의 분투기

 

 

제 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김의경 장편소설 <청춘 파산>

 

 

 

부모님의 사업이 망하고 빚을 안게 된 30대 초반의 백인주. 개인파산, 면책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교묘한 방법으로 돈을 받아내려는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린다. 주인공은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상가 수첩 배포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는 곳마다 과거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과 함께 걸려있는 추억을 떠올린다. 인주는 자신이 살았던 괴로웠던 삶에 대해 긍정하고 사랑과 꿈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다.

 

 

청춘 파산‘2014, 아르바이트생 구보 씨의 일일로 읽힌다. 서울특별시 곳곳의 동네 이름으로 짠 목차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주인공은 매일 봉고차를 타고 다양한 거리에서 상가수첩을 돌린다. 분초를 다투며 상가수첩을 나눠 주는 현재의 날렵함과 각 동네에 얽힌 지난날 아르바이트의 추억담이 교묘하게 겹쳐 울림을 만든다. 빚더미에 앉은 주인공에게 날아드는 공문서들을 고스란히 제시하면서, 프리터의 삶이 결코 즐거운 낭만이 아니라 힘겨운 현실임을 상기시킨 대목도 좋았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폭죽처럼 등장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잘 만드는 작가, 그 장면들을 맵시 있게 엮어 삶의 기쁨과 슬픔을 치열하게 담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평에서 은희경(소설가) 장은수(문학평론가) 김탁환(소설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2-30대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4.03.10 ~2014.03.17 (7일간)
★ 추첨 인원: 20명
★ 서평단 발표: 2014.03.18 (화) 오후
★ 서평 기간: 2014.03.20~2014.03.27 (7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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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민음인입니다.


국내에서 유명한 프랑스 대표 정신과 전문의 이자 심리 치료사인 크리스토프 앙드레의 신간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서평단 이벤트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면 어쩌지?”



학교, 직장, 데이트에서


완벽해 보이느라 지친 당신을 위한 책!



발표 차례가 다가올 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아야 할 때,

형편없는 서비스에 항의하고 싶을 때, 말도 못하고 심장 박동만 빨라지지는 않는가?

많은 이들이 ‘관계에 대한 불안’으로 남을 의식하고 눈치만 살핀다.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20년간 불안 장애를 치료해 온 두 저자는 무

대 공포증부터 수줍음, 사회 공포증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불안의 정체를

파헤치고, 당당하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백만 프랑스인의 마음 주치의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전하는 두려움 없이 관계 맺는 법!


“ 모두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 마라.”


“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진짜 나를 보여줘라.”



프랑스 대표 마음 주치의 크리스토프 앙드레의 신간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서평단 모집 신청


서둘러주세요!



▶줄거리_ 


“당신 차례입니다.”

그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손이 축축해져 반들거리는 회의 테이블 위로 땀자국이 생겼다. 주변 사람들이 그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아챘을까? 그렇다, 방금 정면에 앉아 있던 사람이 그를 쳐다보다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지금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몇 분만 지나면 그의 차례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매우 선명했던 생각들이 지금은 불분명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몸을 떨고 말을 더듬으며 발표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목이 메고 입이 점점 말라 왔다. 회의실에는 물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 어쨌든 무언가를 잡으려 시도하면 그의 떨리는 손을 남들이 보게 될 것이다. 더욱이 그가 불편해 하는 것을 모두가 보았을 게 틀림없다. “내가 이런 상태가 되다니 어처구니없군. 아무리 그래 봤자 사람들이 날 잡아먹진 않을 거야. 난 그저 연말 보고만 하면 돼. 내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빌어먹을.” 그는 가슴이 답답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기침했을 때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몇몇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태연한 척하려 애썼다. “당신 차례입니다. 뒤보아 씨” 하고 총책임자가 그에게 말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며 힘이 빠졌다. 뭔가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대부분 이런 상황을 언젠가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언하거나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사랑을 고백할 때, 더 흔하게는 누군가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러 갈 때 누구나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그 모든 불안 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 의 동류인 인간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1) 이 두려움은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그룹의 시선, 평가에 노출될 때 생겨난다. 그 형태는 다양하다. 그룹 앞에서 말하거나 손님들이 꽉 들어찬 카페 테라스 앞을 지나갈 때, 혹은 식당에서 주문한 요리를 바꾸기 위해 종업원을 부를 때와 같은 평범한 사회적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의사와 심리학자는 타인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을 두고 ‘사회 불안’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때로 질환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하거나 고통스러운 형태를 띠기도 한다. ‘사회 공포증 ’이 그런 경우다. 사회 공포증 환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공포를 느낀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자신이 먹고 있을 때 남이 쳐다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차라리 먹지 않는 쪽을 택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회피성 인격장애’라고 부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을까 끊임없이 두려워한다. 이 때문에 회피하거나 몸을 도사리고 접촉을 피한다.



왜 우리는 남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 출현에 책임 있는 기제들은 다양하고 흥미롭다. 유전 요인, 생물학적 과정, 교육 방식, 문화적 압력, 개인적인 삶의 조건 등 많은 요소가 사회 불안의 발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관계나 상호 작용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더 상세히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사회적 두려움이라는 흥미로운 세계를 탐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회 불안의 원인과 구조를 설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모든 개인이 타인과 잘 어울리고 잘 살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_

★ 응모 방법 :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 완료.
★ 응모 기간: 2014.03.06 ~2014.03.16 (11일간)
★ 추첨 인원: 20명
★ 서평단 발표: 2014.03.19(금) 오후
★ 서평 기간: 2014.03.21~2014.03.31 (11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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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은행나무 그늘 속의 침묵

 

 

 

 

 

 

 

 

 

 

 

 

 

 

모든 일에는 흑백을 가를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마련이라, 100퍼센트의 악도, 100퍼센트의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침묵의 거리에서』1권, ‘작가의 말’ 중에서, 7쪽)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침묵의 거리에서』를 읽다 보면 가면 뒤에 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들킨 것처럼 뜨끔한 경우가 있다.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결정적인 순간에 직면하면 겉과 속의 경계선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그것이 독자의 내면으로까지 파고들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는 책 표지에 광고 등을 위해 덧붙이는 띠지에 “오쿠다 히데오의 새로운 최고 걸작, 탄생”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글쎄. 사실 히데오의 대표작 『공중 그네』를 포함해서 그가 쓴 소설들을 읽지 않아서 이번 신작이 걸작의 수준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띠지가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야기의 무게감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요란스럽게 느껴진다. 그래도 ‘종횡무진하는 이야기’는 작가의 말처럼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모든 정황에 대해서 흑백을 가를 수 없게 만든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중학생의 왕따’ 문제를 소재로 했지만, 비극적인 색채를 띠는 일반적인 학교 왕따를 소재로 한 소설과는 달리 가해자와 피해자를 확실히 구분하지 않는다.

 

한여름, 학교에서 벌어진 한 소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인간 군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단순한 사고사나 자살인 줄 알았던 죽음에 잔혹한 학교 폭력이 결부됐을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학교, 유가족, 가해 학생, 경찰, 법조계, 언론이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중학교에서 열세 살 학생이 죽음을 맞는다. 2층 높이의 운동부실 지붕에서 학교의 자랑인 커다란 은행나무 그늘 속 도랑에 떨어져 사망한 나구라 유이치.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 당황한 어머니의 전화 한 통에 아이를 찾아 나선 교사가 소년의 죽음을 처음으로 목격한다. 최초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단순한 실족 사고인지 사춘기 소년의 자살인지 아니면 훨씬 무거운 비밀이 숨어 있는 사건인지 수사에 나선 경찰과 학생을 보호하려는 학교의 의견이 갈린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유가족, 학교 폭력 주도자로 지목된 자녀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는 가해자 가족, 끝내 비밀을 밝히지 않으려 애쓰는 중학생들, 전대미문의 스캔들에 당황하는 교사들, 흉악한 소년 범죄를 밝혀내려는 말단 형사, 처음으로 만난 호외 앞에서 기자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신참 기자, 잠을 줄이면서 사건의 본질을 파헤치려는 젊은 검사, 그리고 소문을 퍼뜨리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입을 다무는 마을 주민까지. 말없이 죽은 소년의 시신 앞에서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페이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는 가운데 어른도 아이도 결국 가장 중요한 이야기에는 굳게 입을 다문다. 모든 진실은 소년의 죽음을 지켜본 교정의 은행나무 그늘 속에 침묵할 뿐이다.

 

 

 

 Scene #2  ‘폭력에 침묵하는 학교’, 학생들도 교사도 두렵다

 

 

 

 

 

 

 

 

 

 

 

 

 

 

초동(初動). 맨 처음에 하는 행동이다. 어떤 지역에 지진이 일어날 때, 큰 진동에 앞서 나타나는 작은 진동을 뜻하기도 한다. 작은 것부터 살피지 못하면 크게 터진 후 대책은 온전하게 받아낸 재앙에 대한 피해 수습뿐이다. 그 여파가 한 도시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면 복원 시간도, 후유증도 길고 암울하다.

 

폭력 왕따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교는 가해자, 피해자, 침묵자만이 있을 뿐 친구도 교사도 구세주가 돼주지 못한다. 자살하고 정신치료를 받는 끔찍한 일들이 사랑과 우정, 우리를 배워야 하는 그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히데오의 소설에 나오는 ‘침묵의 학교’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학교는 오래전부터 아파왔다. 또 정해진 시간대로 돌아가는 공장의 톱니바퀴처럼 학교의 일상은 무척 분주하다. 학생들은 학교폭력, 왕따, 성적 경쟁에 시달리며 아프고, 교사들은 공문 폭탄에 치여 학생들 한 명 한 명에 관심을 가질 여유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다. 봄이 왔지만 봄을 느끼고 음미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학교는 지금 '침묵의 봄'이다.

 

이런 기막힌 현실 속에서도 남몰래 아픔을 겪고 있는 학생들과 무척 바쁜 교사들은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고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아니 심각한 갈등 속에 방황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숨 돌릴 틈 없이 갈등 관계가 이어진다. 이러한 일상 중에 오랫동안 내부에서 조용히 곪고 있던 왕따, 폭력 문제가 터진다면 학교 전체가 사건의 여파를 감당하지 못하고 된다.

 

교사들은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말하며, 사건이 발생하면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구나’라고 먼저 생각한다고 말한다. (엄기호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87쪽)

 

그렇다고 교사들이 이런 심각한 문제를 알면서도 모른 쇠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를 뿐이다. 교사가 몸이 열 개가 아닌 이상 수많은 학생을 일일이 관리하고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부담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교사가 학생들 간의 왕따, 폭력 사건의 조짐을 알고 있다고 해도 가해자,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 학생들까지 끝가지 침묵을 지키려고 한다면 교사 입장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세우고 싶어도 해결하기가 난감해진다. 학교 폭력 문제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커지고 그동안 묵인되었던 전체적 상황이 알려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책을 세운다. 그야말로 교사는 학생들이 조립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따, 학교 폭력 문제가 일파만파 학교 외부까지 알려지게 되면 사건에 휘말린 폭력의 가해자, 피해자, 방관자 학생뿐만 아니라 이들을 담당하는 교사도 괴롭다. 아니, 누구에게 쉽게 말하기 힘들 정도로 무력감을 느낀다. 가해 학생만 학교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가 이전에 나온 학교 폭력, 왕따를 다룬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입시제도 같은 구조적 억압이 작동되어 스트레스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가득한 학교현장을 묘사하지 않은 것이다. 폭력 사건의 중심이나 주변에 있는 학생들이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를 직접적으로 표출했을 법한데 놀랍게도 그런 묘사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히데오가 입시위주 교육경쟁에서 벗어난 현실과 동떨어진 학교를 애초부터 설정하고 싶은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히데오가 묘사한 학교 폭력은 학생들, 특히 어른처럼 행동하고 싶고 자신보다 약한 학생 앞에서 ‘힘’으로 우위에 서고 싶은 남학생들의 분별력 없는 감정적 표출이다.

 

나구라 유이치는 한눈에도 왕따를 당할 만한 아이였다. 몸집도 작은 데다, 부잣집 아들에 성격도 내성적이었다. (『침묵의 거리에서』1권 57쪽)

 

나구라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성품이 너무나도 유약한데다가 고지식할 정도로 답답해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친구들의 심한 폭력에 시달리면 허약하게 보이면서도 또래 여자나 1학년 후배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이중적인 면도 있다. 특히 테니스 능력이 한참 부족한데도 테니스부 훈련에 매일 꼬박꼬박 나오면 무조건 값비싼 테니스 라켓을 챙겨온다. 또래친구들이나 테니스부 1학년 후배, 3학년 선배 그리고 항상 약한 친구를 괴롭히고 부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일진들의 눈에는 나구라의 모습이 유난히 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생들은 나구라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구라가 반 아이들의 증오를 한몸에 받는 왕따가 된 것은 불쌍하지만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음을 넌지시 드러낸다. “장례식 때 분위기에 휩쓸려 눈물을 흘린 일부 여학생들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침묵의 거리에서』2권 292쪽) 나구라는 내성적이면서도 착한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구라가 매일 왕따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정도였다. 주변 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폭력의 방관자가 되고 만 것이다.

 

이에 반해 가해자로 지목된 네 명 가운데 단짝인 사카이와 이치카와는 또래는 물론 교사들로부터도 신망이 두터운 학생들이다. 심지어 사카이는 3학년 일진들에게서 나구라를 지켜주려고까지 했다. 열세 살의 중학생은 왕따, 폭력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막상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면 옮고 나쁨을 구분하는 사리분별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처음에 나구라를 지켜준 사카이와 이치카와는 또래집단 내에서 일상이 되어버린 왕따, 폭력 분위기에 동조한 것이다.

 

학교 입시제도에 의한 분노만이 학교폭력의 원인이 아니다. 또래집단에서 공통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감정적 분노도 무시할 수 없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왕따, 폭력이 단순히 가벼운 장난처럼 여길 수도 있어도 아직은 판단력이 미숙하고, 폭력에 무덤덤하다. 자신보다 약하고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 학생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나무라는 착한지 나쁜지 알 수 없는 독특한 인물이다. 교사에게는 나무라 같은 학생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조용하고 ‘착한 학생’일 것이다. 그러나 엄기호의 표현을 빌리자면 ‘착한 학생’ 나무라는 어떤 학생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텅 빈 기표’이며 투명인간과 같은 ‘노바디’(Nobody)다. 학생들에게도 대면하고 싶지 않은 ‘노바디’이고, 교사들의 눈에도 띄지 않는 조용한 ‘노바디’인 것이다. 이런 학교의 ‘노바디’는 학교의 적극적인 관리 대상이 되는 순간,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두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구라는 학교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보잘 것 없는’(Nobody) 학생이었다. 그냥 학생들 사이에서 괴롭히고, 놀리는데 적합한 관심 대상이었다. 이 ‘텅 빈 기표’는 죽어서도 ‘노바디’였다. 학교 폭력에 대한 기나긴 침묵 때문에 비밀 속에 묻힐 뻔한 죽음의 진상이 완전히 드러내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몇 사람 아니 전교생의 침묵이 사건 결과 하나에 촉각을 곤두서는 학교와 가해 학생 부모, 나구라의 부모 사이에 서로 불신만 더욱 키우고 말았다.

 

 

 

 Scene #3  신뢰와 우정이 존립 불가능한 텅 빈 폐허     

 

사회는 수업 붕괴와 학교 폭력의 원인을 교사의 무책임과 무능력이라고 말한다. 교직이라는 ‘철 밥그릇’에 안주해 열정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교사들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폭력사건이 터지고 나면 폭력 가해 학생 부모들은 말한다. 학생들이 처한 상황에 교사들이 무감각하고 무책임하다고. 하지만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학교 폭력 문제의 원인을 교사의 책임으로만 전적으로 돌릴 수 없다. 학생들은 교사와 관계 맺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고 지적한다. 학생들에게 다가가려 애를 써도 “당신이라고 꼰대가 아니겠냐?”고 밀쳐낸다. 그리고 히데오의 소설에 나오는 학생들처럼 한 사람이라도 진실을 언급하지 않는 이상 폭력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학교 폭력 사건 이후 학교의 대책에 폭력 가해, 피해 학생 부모 입장에서는 불신만 가득할 뿐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부모는 모임을 조직해 대응에 나서고 나구라의 부모와 친척은 학교를 상대로 진실 규명을 요구한다. 가해 학생 부모 입장에서는 불미스러운 폭력 사건에 귀한 자식이 연루되는 것을 꺼린다. 피해 학생 부모 입장은 학교의 대책 방안을 강구하는 태도를 믿지 못한다. 가해 학생이든 피해 학생이든 이런 부모 중에는 자기 자식만 눈에 보이고,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자식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

 

나구라의 어머니는 죽은 아들이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도 미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는 말처럼, 당연히 아들이 인기가 많을 거라 생각했다.”(『침묵의 거리에서』2권 258쪽)

 

 

 

 

 

 

 

 

 

 

 

 

 

 

 

폭력은 밖으로 향하기도 하지만 안으로도 향한다. 똑같이 실연을 겪었는데 누구는 상대방을 찌르지만 또 누구는 자신을 찌른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밖으로 향하는 폭력뿐이다. 사실, 많은 아이들은 자기 내부를 향해서 폭력을 휘두르고 그것을 혼자 감당하면서 내상을 차곡차곡 쌓아 간다. (중략) 아이들은 이 끔찍한 폭력과 스트레스의 충격을 ‘안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37~38쪽) 

 

학교는 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고통과 상처를 나누기보단 단절하고 대립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심지어 사건의 규모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으려고 학생들의 침묵은 그대로 은폐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폭력의 중심 한가운데에 있는 가해, 피해 학생 그리고 교사는 서로 고립할 수밖에 없다.

 

친구가 죽었는데도 숨죽여야 하는 학교, 제대로 된 애도를 하지 않는 학교, 가해자를 몰아내고 나쁜 기억을 황급히 지우려는 학교의 모습 곳곳에 폭력이 도사린다. 학생들이 죽음으로써 폭로하는 것은 학교 공동체의 침묵에서 기인한 무관심이다. 폭력이 만연하면서도 침묵하는 학교는 신뢰와 우정이 존립 불가능한 텅 빈 폐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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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3-1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 폭력에서 피해 학생 가족들이 제일 힘든 것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쉬쉬하려고 가해학생과 교사 학교 측이 똘똘 뭉치는 경우입니다.그래서 몇 년 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에서도 피해 학부모(이 사람도 현직 교사더군요)는 학교와 담임교사를 고발했지요.그 사건이 일어나고서야 "맞아...교사 자녀들도 왕따되지 말라는 법이 없겠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느꼈지요.

cyrus 2014-03-12 21:39   좋아요 0 | URL
히데오의 소설에서 사건을 은폐하려는 교사나 가해학생 부모 캐릭터는 나오지 않았어요. 다만 고슴도치가 제 새끼 이뻐한다고 가해학생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가해자의 위치로 낙인 찍히지 않으려고 피해 학생 부모와 학교 측과 맞서려는(?) 모습이 있을 것 같아요.
 
질투는 나의 힘 - [할인행사]
박찬옥 감독, 문성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53쪽) -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이다. 이 때 시인이 말하는 ‘질투’는 부질없는 짝사랑이요, ‘나의 힘’이란 헛된 열망을 품은 어리석은 용기이다.

 

결국 사랑을 잃은 시인은 사랑을 ‘빈집’에 가두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떠나보낸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의 주인공 역시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를 되뇌며 부질없는 열망을 떠나보낸다. 간혹 제목만 보고 ‘질투는 내 삶의 원동력이겠거니’ 생각하면 영화 내내 열없이 구는 주인공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영화는 간단하게 말해 한 남자에게 두 명의 여자를 빼앗긴 다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화 속 청년 이원상(박해일 분)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냉소적이고 냉담하다. 원상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 여자가 계속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해보라고 다그친다. 그에게는 정말 이미 끝난 일인데 말이다. 미련은 오히려 그를 떠난 여자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여자들이 걸어온 전화에 대고 그는 방 닦고 있다고 무심하게 대답할 뿐이다. 그는 순수해서 상처받기 쉬운 타입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상처를 받는 건 그의 여자들이다. 되는대로 말하고 연애를 저지르는 것 같은 일견 무책임해 보이는 중년의 편집장 한윤식(문성근 역)이 오히려 원상과 비교하면 성실하고 친절하다. 타인에게나 자기 스스로에게나...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은 듯한 여자 박성연(배종옥 역)의 매력에 영화를 보면서 새삼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길거리 리어카에서 어묵을 베어 물며, “우리 여관 가요.”라고 말한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욕구도 묻어 있지 않다. 분방한 것 같지만 사실 제일 삶에 성실하고 솔직한 사람이 그 여자이다.

 

 

 

 

 

 

에드바르트 뭉크  「질투 I」 1907년

 

 

미국의 어느 한 심리학자는 남녀가 질투를 표출하는 대상이 다르다고 말한다. 남자들이 여자의 성적 배신에 분노하는 반면 여성들은 남자의 감정적 배신에 더 분노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녀의 짝짓기 전략에서 나오는 특징인데, 남자는 여자가 다른 정자를 받아들일 가능성을 최소화 해 자신의 종족 번식력을 높이려고 하고 여자는 남자를 오래 붙들어 놓아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원상의 명대사, ‘누나, 그 사람이랑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를 보면 문득 남자의 짝짓기 본능이 느껴진다.

 

원상은 ‘누나, 그 사람 사랑하지 마요’ 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가 낯선 남자의 정자를 품는 게 두려웠던 걸까. 원상은 성연과 윤식의 동침이 내내 불편하다. 그에 반해 원상이 실수로 관계를 맺는 하숙집 딸 혜옥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원상에게 차라리 돈으로 보상하라며 악다구니를 쓴다. 자신과 자신이 품었을 그의 아이를 원상이 거두어들이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원상은 한윤식과의 정자 경쟁에서 백기를 들고 나온다.“아내한테도 잘 하고 애인한테도 잘 하면 되지. 마누라한테도 못 하고 바람도 못 피는 인간들보다 백배 낫다”는 한윤식의 말에 원상은 ‘명쾌하다’고 화답한다.

 

상당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할렘의 소유주가 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통사회에서처럼 원상은 윤식이 일부다처제 마냥 여성을 독식하는 데 대해 반기를 들지 않는다. 어차피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뇌까릴 뿐이다. 지배욕의 다른 표현인 질투는 어느 사이 순종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선망으로 변한다. 결국은 삼각관계의 세 변에서 한 축이었던 성연은 사라지고 두 남자 사이의 수직관계만 남게 된다.

 

영화는 ‘질투’라고 하는 위험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밋밋하고 심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에 불쑥불쑥 침투하는 ‘질투’라는 감정이 거칠고 광포한 것만은 아니다. 때론 강자에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주인공의 질투처럼 지루하고 치사하고 싱겁기까지 하다. 영화 첫 장면에 난데없이 흘러나오는 ‘마카레나’노래처럼 유행이 사그라졌을 때 생각해보면 왠지 객쩍은 느낌이 드는 것이 이성을 되찾은 질투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상, 윤식, 성연 세 인물들의 불완전한 삼각관계를 통해 우리 일상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투영한다. 세상은, 인간관계는 그리 명확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누가 누구를 책임지고, 사랑하고, 질투하기엔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거센 물결을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은 그 물결에 부딪히며 조약돌처럼 서로를 닮아간다. 영화 속에서 질투와 좌절이라는 내용의 암울한 터널 같은 청년 시절을 볼 수도 있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중년의 속물적 삶에서 냉혹한 현실을 볼 수도 있다. 나이와 권력의 높고 낮음이 사랑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관찰기로도 읽을 수 있다. 누구의 삶을 골라보든 그 삶은 역설적이고 모순투성이다. 하지만 누구도 밉살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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