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편의 사랑 소네트
파블로 네루다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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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정형시들이 있다. 우리에게 시조가 있듯 중국에는 한시가 있고 일본에는 하이쿠가 있으며 유럽에는 이탈리아에서 발원한 소네트가 있다. 소네트는 14행(4.4.3.3행)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대개는 ‘사랑’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네루다는 스무살 때, 슬픈 사랑의 시, 버림받은 남자의 노래인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를 썼다. 그로부터 30년 지난 뒤에 쓴 <사랑의 소네트>. 네루다 초기의 육감적이고 열정적인 사랑과는 달리 짙은 향기가 아련히 숨 쉬는 사랑을 찬미했다.

 

1904년 칠레에서 태어나 솟구쳐 오르는 격정과 폭발적인 상상력으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꿈과 현실을 그려 노벨문학상을 탔다. 가난하게 살았고 매우 서민적인 분위기에서 사춘기를 보냈으며 어른이 되어 도시의 비인간화를 뼛속 깊이 체험한 그의 감각과 감성의 뿌리가 민중에 내리뻗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랑의 대상은 그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조국이나, 민중, 대자연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100편의 사랑 소네트를 읽다 보면 웬만한 시가 눈에 안 들어온다. 스케일 면에서나 상상력과 감성의 크기가 신적인 것과 연결된 것만 같다. 거대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그의 시. 숭엄한 삶과 사랑 앞에 인간의 기품이나 품위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아주 깊은 혼의 골짜기에서 길어 올린 듯이 기품 있는 영혼의 시. 언제나 열렬히 압도해온다.

 

 

당신이 소금 장미나 황옥이었다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

불이 뿜어내는 카네이션의 화살이었대도.

어떤 숨겨진 게 사랑받을 만큼 당신을 사랑한다,

은밀히, 그늘과 영혼 사이에서.

 

꽃은 피지 않지만 그 속에 숨겨진 꽃의 빛을

지니고 있는 식물처럼 당신을 사랑해;

땅에서 올라와 내 몸에 은밀히 살고 있는

어떤 순수한 향기, 당신의 사랑이 고마워.

 

(소네트 17번 중에서, 29쪽)

 

 

소네트 17번에서 “꽃은 피지 않지만 그 속에 숨겨진 꽃의 빛을 지니고 있는 식물처럼 사랑하는 것”이란 문장은 사랑의 핵심으로 보인다. 다 알면 뻔하고 심드렁해진다. 연막탄이 터져 연기가 다 사라지기 전 아련한 상태까지 사랑의 신비가 아닐까. 솔직하게 사랑하되 다 보여주지 말 것. 사랑하되 매력을 잃지 말 것. 이렇게 사랑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것처럼 보이는 자가 실전에 약할 수 있다. 이도 저도 머리가 아프다 싶으면 자기 생긴 대로 사랑하면 된다. 다른 방법으로 사랑할 줄 모르므로.

 

사랑은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일어서게 하며 어기차게 한다. 나를 매만져 세상 사랑하며 살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벼리이다. 사랑의 묘력(妙力)은 경이로운 ‘변화’이고 놀라운 ‘치유력’이 되기도 한다.

 

 

빛을 위한 불, 빵을 위한 한 많은 달,

그 멍든 비밀 둘레에 바르는 자스민:

그러자 겁나는 사랑으로부터, 부드럽고 흰 손이

내 눈에 평화를, 내 오관에 태양을 퍼부었다.

 

사랑이여, 얼마나 빨리 당신은

상처 있던 자리에 기분 좋은 견고함을 만들어내는가!

당신은 맹금의 발톱을 물리쳤고, 이제

우리는 세계 앞에 하나의 삶으로 서 있다.

 

(중략)

 

그래도 이 땅을 넘어, 그 그늘진 어둠을 넘어

우리 사랑의 광휘는 살아 있으리.

 

 

(소네트 23번 중에서, 37쪽)

 

 

그럼에도 사랑은 시시때때로 모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지 모른다. 이 시집 속의 시인의 사랑법은 ‘양면 긍정’이고 ‘양면 수용’이며 ‘양면 적용’이며 ‘양면 통합’이다. 가령 사랑에는 아름다움만 있지 않다. 추함도 있다. 또 사랑만 있지도 않다. 미움도 있는 것이다. 이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 지혜롭게 건사할 줄 알아야 사랑이다.

 

사랑은 ‘무한’이다. 따라서 생사와 무관하다. 살고 죽음을 넘어서 있다. 생사를 초월하여 생사의 인식 밖에 존재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이유가 도탑고 사랑스러워야 할 것이다. 시인은 사랑의 이유들을 ‘황금의 허리’, ‘이마의 주름살’, ‘투명’과 ‘불투명’ 이런 등등의 것들이 이유라 쓰고 있지만 사실 ‘당신의 모든 것’이라 해도 잘못 풀이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사랑하기 위해’ 즉 ‘사랑 자체’에 있을 것이다. 또한 그래서 양면의 삶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는 역으로 당신의 양면을 모두 긍정하고 이해하며 수용하고 포용하며 사랑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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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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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2 2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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