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 [할인행사]
박찬옥 감독, 문성근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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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53쪽) -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이다. 이 때 시인이 말하는 ‘질투’는 부질없는 짝사랑이요, ‘나의 힘’이란 헛된 열망을 품은 어리석은 용기이다.

 

결국 사랑을 잃은 시인은 사랑을 ‘빈집’에 가두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떠나보낸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의 주인공 역시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를 되뇌며 부질없는 열망을 떠나보낸다. 간혹 제목만 보고 ‘질투는 내 삶의 원동력이겠거니’ 생각하면 영화 내내 열없이 구는 주인공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영화는 간단하게 말해 한 남자에게 두 명의 여자를 빼앗긴 다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영화 속 청년 이원상(박해일 분)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냉소적이고 냉담하다. 원상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 여자가 계속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해보라고 다그친다. 그에게는 정말 이미 끝난 일인데 말이다. 미련은 오히려 그를 떠난 여자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한때 사랑했던 여자들이 걸어온 전화에 대고 그는 방 닦고 있다고 무심하게 대답할 뿐이다. 그는 순수해서 상처받기 쉬운 타입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상처를 받는 건 그의 여자들이다. 되는대로 말하고 연애를 저지르는 것 같은 일견 무책임해 보이는 중년의 편집장 한윤식(문성근 역)이 오히려 원상과 비교하면 성실하고 친절하다. 타인에게나 자기 스스로에게나...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은 듯한 여자 박성연(배종옥 역)의 매력에 영화를 보면서 새삼 눈이 크게 떠졌다. 그녀는 길거리 리어카에서 어묵을 베어 물며, “우리 여관 가요.”라고 말한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욕구도 묻어 있지 않다. 분방한 것 같지만 사실 제일 삶에 성실하고 솔직한 사람이 그 여자이다.

 

 

 

 

 

 

에드바르트 뭉크  「질투 I」 1907년

 

 

미국의 어느 한 심리학자는 남녀가 질투를 표출하는 대상이 다르다고 말한다. 남자들이 여자의 성적 배신에 분노하는 반면 여성들은 남자의 감정적 배신에 더 분노한다는 것이다. 이는 남녀의 짝짓기 전략에서 나오는 특징인데, 남자는 여자가 다른 정자를 받아들일 가능성을 최소화 해 자신의 종족 번식력을 높이려고 하고 여자는 남자를 오래 붙들어 놓아 아이의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원상의 명대사, ‘누나, 그 사람이랑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를 보면 문득 남자의 짝짓기 본능이 느껴진다.

 

원상은 ‘누나, 그 사람 사랑하지 마요’ 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자가 낯선 남자의 정자를 품는 게 두려웠던 걸까. 원상은 성연과 윤식의 동침이 내내 불편하다. 그에 반해 원상이 실수로 관계를 맺는 하숙집 딸 혜옥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원상에게 차라리 돈으로 보상하라며 악다구니를 쓴다. 자신과 자신이 품었을 그의 아이를 원상이 거두어들이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원상은 한윤식과의 정자 경쟁에서 백기를 들고 나온다.“아내한테도 잘 하고 애인한테도 잘 하면 되지. 마누라한테도 못 하고 바람도 못 피는 인간들보다 백배 낫다”는 한윤식의 말에 원상은 ‘명쾌하다’고 화답한다.

 

상당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이 할렘의 소유주가 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전통사회에서처럼 원상은 윤식이 일부다처제 마냥 여성을 독식하는 데 대해 반기를 들지 않는다. 어차피 게임이 되지 않는다고 뇌까릴 뿐이다. 지배욕의 다른 표현인 질투는 어느 사이 순종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선망으로 변한다. 결국은 삼각관계의 세 변에서 한 축이었던 성연은 사라지고 두 남자 사이의 수직관계만 남게 된다.

 

영화는 ‘질투’라고 하는 위험하고 열정적인 감정을 밋밋하고 심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일상에 불쑥불쑥 침투하는 ‘질투’라는 감정이 거칠고 광포한 것만은 아니다. 때론 강자에게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주인공의 질투처럼 지루하고 치사하고 싱겁기까지 하다. 영화 첫 장면에 난데없이 흘러나오는 ‘마카레나’노래처럼 유행이 사그라졌을 때 생각해보면 왠지 객쩍은 느낌이 드는 것이 이성을 되찾은 질투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상, 윤식, 성연 세 인물들의 불완전한 삼각관계를 통해 우리 일상의 지리멸렬한 모습을 투영한다. 세상은, 인간관계는 그리 명확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누가 누구를 책임지고, 사랑하고, 질투하기엔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거센 물결을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등장인물들은 그 물결에 부딪히며 조약돌처럼 서로를 닮아간다. 영화 속에서 질투와 좌절이라는 내용의 암울한 터널 같은 청년 시절을 볼 수도 있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 중년의 속물적 삶에서 냉혹한 현실을 볼 수도 있다. 나이와 권력의 높고 낮음이 사랑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관찰기로도 읽을 수 있다. 누구의 삶을 골라보든 그 삶은 역설적이고 모순투성이다. 하지만 누구도 밉살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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