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제국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 궁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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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곁에 있는 기생충

 

그리스에서 기생(parasitos)이란 단어는 '음식의 곁'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인들은 이 단어를 처음엔 사원의 제사를 돕는 제관'을 지칭할 때 사용했다. 나중에는 귀족들에게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 주거나 자잘한 일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는 '식객'을 부를 때도 썼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인들은 생물학적인 기생 현상을 알고 있었다. 돼지의 혓바닥에 살면서 우박처럼 딱딱한 포낭을 만드는 생명체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이 이를 말해준다. 사전적 의미의 기생충은 다른 동물(숙주)의 몸에서 영양분을 빨아먹고 사는 벌레이다. 그래서 일하지 않고 남에게 빌붙어 사는 사람을 '인간 기생충'이라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 학교에서 단체로 회충약을 먹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 그 시절을 TV 영상으로만 본 나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기생충은 작년에 영화로 개봉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던 ‘연가시’일 것이다. 물론 영화처럼 사람 잡는 변종 연가시는 존재하지 않지만. 하지만 기생충은 점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굳이 숫자로 따져보자면, 14억 명 이상이 장 속에 뱀처럼 생긴 회충을 지니고 있고, 13억 명 정도가 피를 빠는 구충을, 그리고 10억 명이 편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출간한 서민 교수의 <서민의 기생충 열전> 덕분에 다시 한 번 기생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에 영화 때문에 기생충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부터 비롯된 호기심의 시작으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면 이번에는 확실히 다르다. 기생충의 생태 과정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반응이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기생충이 대중 과학의 관심 대상으로 등장하고 부각받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다. 그 때 나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예비 수험생이었다. 마침 나온 기생충 관련 책이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이언스’ 등에 기고하는 과학 칼럼니스트인 칼 짐머가 쓴 <기생충 제국>이었다. 당시 이 책을 완독하지는 못했는데 마침 서민 교수가 쓴 책을 읽어보기 전에 잠시 세월의 흐름 속에 잊고 있었던 짐머의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 은밀하게 신비하게, 기생충이 살아가는 법

 

책 표지는 확대한 기생충의 얼굴 사진이 박혀 있다. 표지와 어울리는 부제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생물의 세계를 탐험하다’ 떡 하니 자신을 바라보는듯한 기생충의 모습에 이 책을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은 독자가 있을 거라 본다. 곤충 사진을 싫어하거나 일종의 공포증을 느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생충을 둘러싼 ‘미지의 세계’는 위험하다기보다 오히려 신비하고 경이롭다. 괴기스러운 생김새와 달리 그들은 섬세하다. 기생충은 숙주의 생식능력을 없애기도 하고, 정신세계를 조절할 수도 있다. 2~3㎝짜리 흡충은 우리의 복잡한 면역계를 조롱하여 자신을 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최종 숙주를 위해 중간 숙주를 조종하는 것은 기본이다. 촌충에 감염된 물고기는 두려움이 없어져 수면 가까이 올라가 물새에게 ‘날 잡 수슈’하고 다닌다. 물론 촌충의 목적은 물새다. 기생충에게 몸을 빌려준 송사리는 멀쩡한 송사리에 비해 새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30배나 높다. 물새가 ‘병든 송사리’를 선호하도록 하는데도 어떤 강력한 힘이 발휘된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가지고 있다는 톡소포자충은 가장 성공한 기생충이다. 임산부나 에이즈환자가 아니라면, 대개 해롭지 않다. 이 유능한 기생충은 원래 고양이가 최종 숙주인데 쥐의 몸 안에서 뇌를 조작, 쥐를 고양이 쫓는 ‘자살특공대’로 만든다. 심리학자들은 톡소포자충으로 인해 인간 숙주의 인격도 바뀌는 것으로 본단다. 남자는 사회의 도덕적 규범을 지키려는 의지가 약해지고 여자는 밖으로 나돌기 좋아하고 인정이 넘친다는 거다. 하기야 촌충의 경우, 4억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동안 지구는 공룡의 소멸 등 4차례의 대량멸종을 겪었지만 촌충은 살아남았다. 바퀴벌레의 영원한 동지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끈끈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 ‘생태계의 파수꾼’ 기생충

 

칼 짐머의 주장은 기생충이 생명의 진화에 '절대적 기여'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생태계의 엑스트라 기생충에게 ‘생태계의 파수꾼’이라는 새 역할을 부여한다. 기생충이 숙주와 경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숙주와 기생충 모두 진화한다는 것. 그 사이 먹이 사슬은 정교해지고 지구 생태계는 탄력을 유지한다.

 

따지고 보면 둘의 관계가 빼앗기고 착취하는 일방통행만은 아니다. 상생과 보완의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몇몇 기생충은 숙주의 면역체계를 보호한다. 아프리카 빅토리아 호수의 세차원들은 주혈흡충증에 자주 감염되는데 흡충은 흡충과 에이즈에 동시에 감염된 사람들보다 흡충에만 감염된 깨끗한 숙주에 더 많이 알을 낳는 것으로 조사됐다. 숙주가 면역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흡충이 나서 도와야 하는 이유다. 한번 주혈흡충에 감염된 사람은 새로 흡충에 감염되기 어렵다는 연구도 있다. 선배 흡충이 숙주의 면역계를 도와 나중에 도착하는 흡충을 공격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숙주 내 흡충의 숫자를 조절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만 생존에 유리한 한도 내에서이긴 하지만 기생충은 다양한 방식으로 숙주를 보호하고 있는 셈이다.

 

 

 

 ♣ 기생충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

 

징그러워 얌체 같아서 외면해오던 기생충. 하지만 태양과 물만으로 자생하는 식물이 아닌 다음에야 지구 위 어느 생물이 기생충의 혐의를 벗을 수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기생충인지 모른다. 저자는 인간이야말로 지구라는 숙주에 붙어사는 고등 기생충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목적에 맞춰 생명체의 생리를 전혀 새롭게 바꿨고,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스스로 파멸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경고와 함께. '자제할 줄 모르는 기생충은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자신의 숙주마저도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만다'는 기생충 사회의 평범한 진리를 인간은 곧잘 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기생충보다 나은 존재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인간이 제대로 된 기생충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훌륭한 선배들에게 한참 더 배워야 한다.

 

그는 “우리가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위로한다. “인류는 처음부터 기생충이었지만 지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생명체로 자리해 모든 변화를 이끌 역량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먹이 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앉은 기생충을 아는 건 그래서 지구를 알고 우리를 아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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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 예고가 현실로

 

에펠탑,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세계를 대표하는 명소 세 곳의 공통점은? 명소를 보려고 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살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자살자의 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339번째 자살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사복을 입은 순찰대원이 증원되고 높은 난간이 설치됐다고 한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1937년 건설된 이래 자살자가 500명을 넘어서자 다리 주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찰이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양되지 못한 시신들을 감안하면 실제 자살자수는 2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자살자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 한강에 뛰어내리는 자살자수가 많다. 경찰이 순찰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심심찮게 투신 소식이나 자살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서울 마포대교에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재기 대표는 하루 전날 자신이 대표로 있는 남성연대 운영 자금을 모으겠다며 “한강 24개 다리 중 경찰, 소방관 분들에게 폐 끼치지 않을 다리를 선택해서 기습적으로 투신하겠다"고 예고했다. 성 대표가 투신 장소로 택한 다리는 마포대교. ‘자살 다리’라는 오명이 붙어 있는 곳이다. 그는 오후에 자신의 트위터에 “정말 부끄러운 짓입니다. 죄송합니다. 평생 반성하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다리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성 대표의 모습이 있는 사진이었다. 전날 트위터에 예고한대로 한강에 뛰어내리고 만 것이다.

 

‘남성연대’가 뭐길래 성 대표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남성 인권 향상을 위해 2008년에 발족되었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다. 병역의무, 부양의무, 생물학적 성 관점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대한민국 남성들이 온전히 짊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성연대는 정부의 보조금 없이 회원들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 대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운영하고 있는 단체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 한 몸을 바치는 자살을 예고한 것이다.

 

전날 성 대표의 자실예고가 SNS상에서 확산되자 누리꾼들은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는 꼼수라며 비판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성 대표는 남성연대의 열악한 재정 사정은 물론 한국 남성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기 위해 투신하는 것이라며 ‘자살 소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 대한민국 남성을 대표하는 미시마 유키오가 되고 싶었던 성재기

 

성 대표가 정말로 자살할 생각으로 뛰어들었는지 아니면 자살 소동을 염두하고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으나 정말 의도치 않게 실현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후자일거라 생각한다. 성 대표의 한강 투신 이후 남성연대가 불고기 파티를 예정했던 걸로 봐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한 퍼포먼스의 일환일 가능성이 있다. 현재 마포대교 주위에 경찰과 소방당국이 헬기까지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란다.

 

 

 

 

 

 

 

 

 

 

 

 

 

 

 

 

 

 

성 대표가 남성연대 회생과 여성 인권에 억눌리고 있다는 남성 인권의 부활을 위해서 남성연대 대표, 아니 대한민국 남성의 대표로써 정말 한강에 뛰어내렸다면 그의 의도와 선택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의 최후는 흡사 일본의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를 보는 것 같다.

 

 

 

 

 

 

 미시마 유키오(1925~1970)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문학계에서도 독특한 작가다. 그는 애국심과 군국주의에 매혹돼 전후의 일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서구 문화에도 조예가 깊었지만 ‘일본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전통 무술인 가라테와 검도를 연마하고, 천황제를 수호하겠다며 사병대를 만들기도 했다. 1970년 11월, 도쿄 육상자위대 동부총감 사령관실 본부를 점거하고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로의 회귀를 외쳤다. 한물 간 군국주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안 미시마는 사무라이 같은 죽음을 택했다. 할복자살이었다. 미시마의 할복사건은 전후 일본 사회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군국주의의 촉수를 건드려 구심점을 잃고 있던 보수우익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성 대표는 ‘남성 인권 부활’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인물이다. 그의 주장은 반 페미니즘에 가깝다. 그를 옹호하는 남성들도 존재하지만 여성 인권에 대한 도발적인 발언이 문제를 일으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한강 투신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남성연대 사이트를 통한 후원모금이 최근 이틀 사이 크게 늘었던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전 날까지만 해도 하루에 후원 한 건 있을까 말까한 남성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이 이틀 새 후원하겠다는 글로 새까맣게 뒤덮일 정도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자살(또는 퍼포먼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마지막 트윗이 의미심장하다.

 

‘믿고 싶다. 남성을 일으킬 수 있다니.. 허허’

 

그렇다면 성 대표가 이 세상과 마지막 작별 행동을 사진으로 촬영하면서까지 트위터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에펠탑에서 투신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곳에서 일어난 자살사건이 보도된 신문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자살을 연극적 행위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관객 또는 뉴스의 시청자를 향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의 책임은 당신들에게도 있다”고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미시마는 세계대전 패퇴 이후 무기력한 일본을 지탄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을 일본 사회로 돌린 것이다. 성 대표도 기 눌린 채 살아가면서도 저항하려는 마음 한 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성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무작정 비난하고 반대하는 여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연극적 심리가 있었지 않았을까? 자신의 원대한 꿈을 펼치고 싶었으니 거대한 사회의 벽을 넘지 못해 비장미가 느껴지는 최후를 선택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어제, 오늘 우리 모두는 제노비스였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성 대표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 짓을 한 사람은 성 대표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 방관했던 우리들이다. 오늘 성 대표의 자살 장면을 목격하고 촬영한 사람들은 자살방조죄 혐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 대표가 투신할 당시 남성연대 관계자들과 KBS 카메라 기자, 시민 등 최소 4명. 자살 방조 논란이 이어지자 KBS는 구조신고를 두 번 했으며 현장 취재에 나선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가 추락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든 간에 (성 대표가 자살로 판명된다면) 자살 방조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살 방조 논란에 대한 비난 여론의 불을 지피기 전에 전날 성 대표의 자살 예고를 방지했던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도발적으로 남성 인권을 옹호하는 글을 남기는 트위터라인에 집중하고 지금도 그의 트위터를 검색하고 있는 우리들 말이다. 어제, 오늘 우리 모두는 제노비스가 되고 말았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미국 뉴욕 주택 골목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한 여성이 귀갓길에 괴한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여인은 괴한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하였기 때문에 살인극은 30분가량 이어졌고 비명에 놀란 이웃주민 38명이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창가에서 범행 현장을 지켜만 볼뿐, 아무도 위기에 처한 제노비스를 돕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괴한에 의해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 다른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할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범죄심리학에서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 한다.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행동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데 흔히 '방관자 효과' 또는 '구경꾼 효과'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SNS 세계에서도 제노비스 신드롬의 영향력은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작은 무관심과 방관은 의도치 않게 한 남자의 자살 쇼를 기획하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비극

 

 

 

 

 

 

 

 

 

 

 

 

 

 

 

 

나는 편협되고 잘못된 여성의 심리에서 기인한 불합리한 남성 인권의 실태에 분노한다. 다만 성 대표의 반페미니즘 사상과 상대방을 언어의 힘으로 제압하려는 공격적인 발언 태도는 옹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무모한 행동이 안타깝다. 자살 예고 트위터 전에 우울증 앓는 아내가 자살하겠다고 집을 나간 사건 때문에 새까맣게 속을 태운 그였다. 남성연대의 운명이 사랑하는 아내보다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미망인이 될 수 있는 성 대표의 아내가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이 심히 걱정된다.

 

자살의 역사에 관해 기술한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투신 자살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람보다 장소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사회적 불명예를 감내하기 어려웠던 것인지, 죽은 자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비극이라는 점만은 분명할 듯싶다.

 

싸움에 패한 사무라이는 할복자살을 가장 고귀한 의무로 생각했다. 사무라이처럼 자살은 아침햇살을 받고 벚꽃이 떨어지듯 화려한 미학이 아니다. 아무런 동요 없이 존재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자유로움은 더욱 아니다. 자신에 대한 무책임이요 창조주에 대한 반역이다. 세계 어느 문화권이든 자살은 윤리적 관습이 금기하는 행위이다. 사회는 인간에게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로운 권리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자살은 염세주의자에게 허용된 ‘최후의 만찬’이 될지 모르지만 최악의 자해행위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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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7-2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기뻐해야할까요,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요....

cyrus 2013-07-27 23:51   좋아요 0 | URL
성재기를 싫어했던 페미니즘에게는 기쁨을, 그를 옹호했던 남자들은 슬퍼하겠죠? 본인이 의도한대로 그에 대한 남자들의 애도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과연 포스트 성재기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반짝 관심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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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누구나 역사를 이야기하는 세상이다. 정치가들은 역사에 물어보라거나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반인들은 역사를 알아야 교양이 있어 보인다고도 한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 분노하고, 또 우리 ‘역사’를 너무 모르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기도 한다. 대통령은 역사 과목을 필수로 공부할 수 있는 교육 과정으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언급되는 ‘역사’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한 논란 가운데 정작 ‘역사’가 무엇이며, 왜 ‘역사’를 이야기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단순한 역사학에 대한 이론서가 아닌 저자 자신의 역사관을 명확하게 밝힌 책이다. 카는 기존 랑케 중심의 실증사학을 비판하면서 남겨진 사실은 과거에 해당하나, 이를 발굴하여 연구하고 서술하는 역사학자는 현재의 존재이기에 그 해석과 평가의 기존은 현재에 있는 것이라 하였다. 즉 현재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과거를 살펴보고, 이러한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에 대한 교훈을 찾아내기 위함이 역사의 존재이유라는 것이다. 여기서 과거는 ‘역사가’ 없이는 역사로 탄생될 수 없으며, 역사가 또한 과거 없이 역사를 쓸 수가 없다. 결국 역사는 역사학자와 과거 사실 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재생산되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즉 그가 이야기하는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재구성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쓴 역사학자를 이해하여야 한다고 카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역사가는 신(神)이 아니다. 역사가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관’ 역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정치, 사회적 경제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역사 가운데 카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카는 ‘사회와 개인’ 부분에서 “우리는 자신의 시대보다 훨씬 앞서 갔기 때문에 그 이후의 세대에 의해서만 그 위대함이 인정되었던 위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위인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자 대리인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사유를 변화시키는 사회적 힘의 대변자이자 창조자인 탁월한 개인’이었다. 그러하기에 역사는 사회적인 과정이며, 개인은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존재로서 참여한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하였던 그 과정은 추상적이고 고립적인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역사의 기능은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키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역사의 과학성’ 부분에서 그는 근대학문이 자연과학의 발달에 영향을 받았기에 역사학에서도 과학적인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가 과거 남겨진 특수한 개별사실들과 일반적인 사실들 간의 관계성을 파악하고자 하기에 ‘과학’이라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그는 역사학에서 연구의 대상을 ‘원인’에 관한 것이라 하였다.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부분을 보면, 모든 사실에는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개인적 원인 및 장기적 원인과 단기적 원인 등 다양하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역사학자는 역사적 중요성이란 측면에서 다양한 원인 중 궁극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다른 원인들 간의 선택과 배열의 결정을 해석을 통해 행한다고 하였다. 이를 행하는 것이 역사가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과거와 미래를 동일한 시간대의 일부이며, 과거에 대한 관심과 미래에 대한 관심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 하였다. 이는 역사학자는 ‘왜’라는 질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어디로?’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어디로 역사가 전개될 것인가를 다룬 부분이 ‘진보로서의 역사’이다. ‘진보로서의 역사’ 부분에서 그는 역사는 신학처럼 종말을 강조하거나 현실 밖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획득된 자산의 전승과 연결된 미래의 진보를 제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물론 그는 역사의 흐름에 퇴보의 시기도 있을 것이고, 또 ‘진보’가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인간의 잠재력의 부단한 발전에 대한 강력한 신념으로서 ‘진보’를 설정하고 있다. 나아가 이는 역사과정을 통해 생성된 것이며, 과거를 다루는 역사가는 미래의 이해에 다가설 때에만 객관성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 하였다. 이를 통해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표현을 진전시켜,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역사의 본질은 운동이며, 곧 ‘진보’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즉 그는 진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미래사회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도 역사가의 임무라고 제시하고 있다.

 

물론 카의 역사인식이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여러 문제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책이 출간된 1960년대 초반보다 현실의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 불투명하며, 빈부격차나 종교, 혹은 이념간의 갈등도 더 심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의 역사인식이 효용성을 갖는 것은 이러한 진보과정으로서의 역사에 대한 통찰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의 실천적 역사관에서 제시하고 있는 ‘진보’의 개념에 오늘의 위기상황을 접목시켜 이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는 역사관의 생산을 위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 대안을 위해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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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3-07-25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대학 때 리포트 때문에 대충 읽고 말았던 책이군요.
언젠가 한번은 제대로 다시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시루스님께서 잘 정리해주신 덕분에 다시 안 읽어도 될 것 같은데요. ^^

'실천적 역사관', '역사에 대한 통찰' 이런 것들이 꼭 필요한 시기죠!
뉴라이트나 딴나라당 애들이 대학 때 이 책만 제대로 읽었어도 나라 꼴이 이 모양은 아닐텐데요.

cyrus 2013-07-26 22:22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읽기 시작했을 때 내용이 어려워서 읽다가 포기한 적이 많았습니다. 저도 은빛님처럼 리포트 때문에 읽었다면 정말 마음 속으로 짜증날 정도로 혐오감이 들 수 있는 책이었을 겁니다. ㅎㅎㅎ 그래도 완독하니까 왜 이 책이 대학생 필독 도서인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 - 일상을 깨우는 바로 그 순간의 기록들
조던 매터 지음, 이선혜.김은주 옮김 / 시공아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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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려면 먼저 공간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춤에서의 공간 개념이란 한 마디로 단순하게 설명되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일차적으로는 공간의 한 지점 안에서 신체 모든 부분들이 어떤 각도로 조화를 이루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시간성과도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똑같은 포즈로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느리게 회전하는 움직임의 경우에 어떤 각도로 보이게 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지를 인식하고 그런 다음에 회전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객석의 관객이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다운 각도에 시간을 보다 많이 배려하는 것, 말하자면 지극히 단순한 한 동작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선택한다.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더 많이 깨어 있어야만 더 많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깊이 인식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에 의한 조화의 결과는 비단 춤만 있는 건 아니다. 사진은 언제 어디서든 조화의 느낌을 눈으로 볼 수 있다. 과거처럼 특정 부류만 비밀스럽게 향유하는 게 아니라 셔터를 누를 힘만 있으면 누구나 사진을 만들고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언어와 마찬가지로 사진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거친 욕’이 되기도,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되기도 한다. 사진 한 장은 ‘이미지’로 기능하기보다 의미를 주고받는 ‘언어’로 작동한다. 이미지를 넘어 의도를 담지(擔持)한 기호인 것이다.



“인간이 거기에 있기에 나는 셔터를 눌렀다.” 故 최민식은 자신의 작품세계를 그렇게 요약한다. 그는 인생의 반세기동안 인간을 찍었다. 인간은 최민식 사진의 영원한 주제였고 의미가 함축된 하나의 언어로 봤다. 지금까지 펴낸 12권의 작품집 제목이 모두 ‘인간’이었다. 반면 조던 매터는 삶이 거기에 있기에 셔터를 눌렀다. 그가 포착한 것은 단순히 인간의 활동적인 모습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표정이며 인간의 그늘이고 인간의 현재다.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삶이라는 하나의 결합체로 사진을 통해 구성된다.



삶은 늘 반복의 연속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하루하루는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간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어느 날 문득,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오고 그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과 행복을 발견하기도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어쩌면 쉽게 지나쳤기 때문에 소중한 줄 몰랐던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무용수들의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지상에 묶여 있는 인간이 중력의 법칙에서 해방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파인더에 담아낸다. 도시 곳곳에서 이들은 마음껏 춤의 본능을 발산한다. 무용수들의 애크로바틱한 동작은 트램펄린이나 와이어를 이용하지 않았다. 무용수들의 포즈 역시 디지털 보정을 거치지 않았다. 맞다. 여기에 뽀샵질은 없다. 사진은 오직 무용수들의 100% 리얼한 동작에 의존했다. 조던 매터는 무용수가 점프해 허공에 떠 있는 장면을 담기 위해 셔터 속도를 1/320로 맞추고, 각각 점프마다 단 한 컷의 사진만 촬영했다. 무용수들의 결정적인 순간을 예측해서 한 번에 승부를 걸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들과 같이 움직이고자 몸이 들썩거린다. 그렇게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보는 이의 심장을 바운스(Bounce)하게 만드는 생(生)춤이다.



우리가 이들의 몸짓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 것은 몸이라는 언어가 그만큼 생동감과 소통의 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꿈과 사랑, 일, 인생 등의 주제를 표현하는 감정이 우리에게도 똑같이 전해진다. 그들이 높은 점프를 하고 고난도의 포즈를 취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연기가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야구 선수로 활동하다가 사진가의 삶을 살게 된 조던 매터의 진솔한 이야기가 만나면서 오랜 순간의 여운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가 세상을 감지하는 방식은 너무나도 제한적인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가끔 영화를 통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차원을 맛보기도 한다. 사실 영상 매체야 말로 확대된 시간과 공간을 가장 쉽게 보여주는 과학적 산물이지만. 사진이라는 것이 기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정서와 감정과 감동을 불어놓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사진의 기적이다. 이것은 마치 시인이 무생물인 언어에 호흡을 넣어 생명의 말을 만들 듯이 조던 매터는 무생물인 카메라에 호흡을 불어넣어 일상적인 삶을 새롭게 잉태하고 있다.



무용수가 시간과 공간에 대해 더 많이 깨어 있을수록 더욱 풍부한 춤 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듯이 더 많이 깨어 있는 관객일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보다 둔감한 관객이라면 시공 에너지의 섬세한 부분들의 아름다움을 상대적으로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조던 매터의 사진을 보는 우리 독자 또한 그렇다. 우리가 일상에서 놓쳐 버리고 있는 공간이나 스쳐 지나는 시간에 대한 감지력이 지금보다 더욱 예민해지게 된다면 우리는 현재와는 또 다른 차원의 삶을 누리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좀 더 깊이 시간과 공간을 확대해서 감지할 수 있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놓쳐 버리는 ‘찰나’라는 시간 속에서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너무나 평범하고 미미하다고 여겼던 일상적인 것들이 값지고 위대한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세상과 화해하고 삶을 사랑하고 감사하게 된다. 우리가 스쳐 지났던 모든 것, 우리가 지금 스쳐 지나가려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움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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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주명철 지음 / 소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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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혁명, 제대로 알고 있을까?

 

<레 미제라블>은 우리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집필 당시 제목은 ‘레 미제레(Les Miseres, 비참함)’였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 수레바퀴에 깔린 인간 군상들을 세세히 그려낸 대서사시다. 노도와 같은 역사 속에 개인의 삶은 휩쓸려갔지만 ‘인간애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사상이 작품을 관통한다. 대선의 열기가 남아 있는 불씨가 사라지지 않을 무렵에 동명 원작의 뮤지컬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영화가 2012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에게 표를 준 시민들에게 일종의 ‘힐링 무비’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점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이 영화가 2012년의 대선에서 야권을 지지했던 48%의 유권자들이 느낀 상실과 좌절감에 위안이 되기에 적절하다는 것이다. 역사의 발전에는 수많은 고통과 좌절이 점철되어 있다. 사회의 진보에는 수많은 퇴행과 반동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지금 이 현실에서의 실패와 좌절의 상처는 충분히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위안.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함께 부르는 노래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는 “오늘 우리가 죽으면 다른 이들이 일어서리. 이 땅에 자유가 찾아올 때까지”라는 가사와 합창의 장엄한 감동으로의 어우러진다. 이러한 시각이 나름의 근거를 연상케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힐링'이란 말 그대로 몸이나 마음의 상처를 회복 또는 치유한다는 말이다. 즉 '힐링'은 이미 상처와 아픔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상처와 아픔의 원인과 정도, 위치 그리고 그것의 진행과 현실적 구성은 온데간데없고 치유된 상태, 회복된 상태, 건강한 정상만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에 가장 근접한 용어는 '힐링'이 아니라 '환상'이다. 환상은 보이는 현실에 눈을 감아 버리고 가상의 실재에 주체를 옮겨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환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상을 만들어 내야만 작동한다. 이러한 환상의 연쇄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철저한 자기인식과 반성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프랑스 혁명을 제대로 안다고 볼 수 없다. 역사적 사건 속에 피어난 로맨스에 치우친 뮤지컬 영화만으로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진의와 교훈을 되짚어 보기에는 부족하다. 사실 <레 미제라블>은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이전 격랑의 시기를 주요 무대로 한다. 프랑스 혁명의 유산이 남아 있긴 하지만 장기간의 격변으로 이루어진 사건의 스케일을 생각한다면 영화에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그려진 그 ‘프랑스 혁명’을 기억하고 있다면 이것 또한 당찮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적 담론을 우리 사회나 개인의 사회적 삶에 대한 차분한 분석이나 이론적 검토를 통해서 형성되어온 적은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언어들은 방송과 상업적 광고를 통해서 제시되고 유통이 되며 이것이 마치 시대의 정신이나 사회문화적 담론이나 되는 양 재생산될 뿐이다.

 

혁명에 의한 반동과 좌절을 상징하는 장면이 연출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영화의 결말, 즉 이미 알고 있는 혁명의 결과만 우리는 기억하게 된다. 학창 시절 프랑스 혁명을 공부하게 되면 세부적인 과정보다는 혁명의 결과 및 의미만 달달 외워서 기억하듯이.

 

 

 

 ♣ 사회가 곯고 있는 사이에 피어난 혁명의 작은 불씨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전부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까지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시에예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28쪽)

 

 

 

'태양왕' 루이 14세의 무리한 대외 전쟁으로 프랑스의 경제는 상승세가 꺾였다. 루이 15세는 영국과 전쟁을 하다 북미와 인도 식민지를 전부 상실하는 참담한 패배를 당하면서 경제 문제는 회복 불능으로 치달았다. 사실 이 때부터 프랑스 혁명이 일으킬 조짐이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경제 불능 속에서도 소수의 귀족은 재산을 불렸고, 상당수 가난한 평민들은 굶주림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미 조금씩 불만의 불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거기에 기름을 부었던 결정적 시기가 바로 루이 16세 시절이다. 루이 16세 때 미국독립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는 영국에 북미 식민지를 모두 빼앗겼던 복수를 하기 위해 미국을 전심전력으로 원조했다. 재무대신 네케르는 이대로 가면 프랑스는 파산한다고 경고하였으나 그는 되레 해임되었다.

 

그러나 네케르의 예언은 적중했다. 그의 말대로 국고가 비어버리고 만 것이다. 궁지에 몰린 루이 16세는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삼부회를 소집한다. 여기서 ‘삼부회’는 일본 말을 그대로 빌려 쓴 말이라 우리나라 말로 순화한다면 ‘전국 신분회’로 쓰는 것이 낫다. 전국 신분회는 제1신분(성직자), 제2신분(귀족), 제3신분(평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중들은 왕이 전국 신분회를 통해 자신들의 고초를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건다. 하지만 국왕은 대놓고 제3신분을 차별했다. 복장은 물론이고 개별적으로 국왕을 알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전국 신분회는 민중들의 고초를 다독이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제1신분, 제2신분, 제3신분이 모두 같은 수인데 제1신분과 제2신분은 이해관계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평민 출신 재무 장관 네케르는 제3신분 의원 수를 두 배로 늘릴 것을 요청한다. 왕은 제3신분에게 세금을 부담시키기 위해 그 요청을 들어준다. 그러나 부회별 투표 방식을 머릿수 투표 방식으로 바꾸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전국 신분회가 심의하는 것으로 넘긴다.

 

 

 

 

 

자크 루이 다비드  『죄드폼의 맹세』1791년

 

 

결국 제3신분은 ‘국민의회’를 선언한다. 놀란 귀족들이 회의장을 폐쇄하자 죄드폼(Jeu de Paume)에 모여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겠다’고 서약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테니스 코트의 서약’이다. 죄드폼이란 테니스의 일종으로 그 놀이를 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이다.

 

1789년 베르사유 궁전에서 몰려나와 테니스 코트에 집결한 격앙된 표정의 사람들. 프랑스 대혁명의 불씨를 댕긴 죄드폼에서의 서약은 당대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붓을 타고 1791년 화폭으로 옮겨왔다. 혁명, 그때 그 순간의 열기를 생생하게 포착해낸 작품이다.

 

루이 16세는 독일과 스위스 용병을 파리에 배치하면서 국민의회를 압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파리 민중들은 분노한다. 독일 용병과의 충돌을 계기로 시민들은 무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바스티유로 향한다.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전투 끝에 바스티유는 함락된다. 봉건제가 폐지되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이 발표된다. 그러나 루이 16세는 여전히 ‘프랑스 혁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베르사유 궁에서 플랑드르 연대가 혁명의 상징인 삼색모장을 짓밟자 파리의 부녀자들이 베르사유로 행진한다. 국왕이 파리 부녀자들의 포로가 되면서 프랑스 혁명은 1막을 내린다.

 

 

 

 ♣ 왕의 광장에서 혁명 광장으로

 

 

 

 

 

 

'화합의 광장'이라 이름붙인 콩코드르 광장. 1753년에서 1763년에 걸쳐 건축된 이 광장은 당시 ‘루이 15세 광장’이라 이름이 붙여졌지만 국왕 루이 16세의 폭압에 시달리던 프랑스 전 민중이 들고 일어났던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혁명광장'이라고 불려졌다. 루이 15세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목을 자르는 단두대가 그 자리에 설치됐다.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의 목을 프랑스 민중들은 잘라버렸다. 몸뚱어리와 '모가지'를 이등분으로 분리 즉사시킨 것이다.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쳐든 프랑스 민중들은 '프랑스 만세'를 불렀다. 프랑스 민중 개개인의 존엄성과 동등한 인간의 권리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루이 16세의 목을 자른 민중들의 역사행위는 신분제의 철폐와 프랑스 국가공화정치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몇 해 전인 1789년 7월 14일 정치범이 수용되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파괴한 그 날은 혁명 기념일이 되었고 이 날이 바로 프랑스 국경일이다.

 

프랑스 민중들의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난 루이 16세가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다가 국경 근처에서 발각되어 시민군들에 의해 파리로 이송된다. 프랑스인들은 자국민들을 외면하고 적국의 나라로 피신하려던 사람을 자기들의 입헌군주든 절대군주로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당연히 루이 16세의 모가지는 단두대에 베어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앙시앵 레짐(구체제, Ancien Regime)'을 지키려는 특권계층의 기득권에 대한 '향수병' 때문이었다. 구체제 특권층의 기득권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인한 조세개혁의 실패는 국가 재정난을 해결할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았다. 결과적으로 혁명의 불길을 당기는 결정적 씨앗을 제공했다. 특권층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봉건적 신분제와 영주제 폐지, 귀족과 평민의 공평한 과세 등을 담은 '인권선언'을 채택하며 안간힘을 썼지만 혁명의 불길을 잡기에는 이미 늦었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스트리아로 도망치려던 국왕 루이 16세와 구체제의 사수를 위해 기를 썼던 대부분의 특권층은 결국 단두대 올라 목이 잘렸다. 공포정치의 시대가 지나고 나폴레옹 정권이 수립되면서 혁명은 끝났다.

 

어느 시대나 '개혁'을 두려워하는 계층은 있기 마련이다. 보수층이라고 일컬어지는 반 개혁론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구체제나 다름없는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말한다. 기득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의 말로는 '몰락'의 다른 이름이라고. 그래서 역사가는 역사의 결과만 보려고 하지 않는다. 구체제의 모든 면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체에 큰 변혁을 일으킨 전체 모든 과정을 본다. ‘프랑스 혁명이 낳은 구체제가 아니라, 프랑스 혁명을 낳은 구체제를 이해해야 한다.’(36쪽)

 

 

 

 ♣ 너란 '혁명'을 알고 싶어 Hello~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대, 찰스 디킨스는 이 시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였으며 어리석음의 시대이기도 했다. 믿음과 불신이 교차했으며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희망의 봄인 동시에 절망의 겨울이었다.”

 

한쪽으로만 치닫는 극단은 혁명기나 혼란기에도 통용됐다. 몽테유파가 공포정치를 통해 반대 세력을 단두대로 보낸 것도 그만큼 사회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구체제 특권계층을 벌벌 떨게 하던 혁명의 '공포'는 프랑스 내부와 외부의 '적들'을 제압하는 데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변질된다.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는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공포 정치와 독재, 살육이라는 광기에 휩싸였다. 흑백으로만 보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혁명의 진원지에서도 존재했다. 하나의 색으로만 상대방의 죽음으로 몰아가려는 시대착오적 발상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혁명의 로맨스 뒤에는 기억하기 싫은 어둠의 이면이 가려져 있다.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의 역사적 가치를 폄하할 정도로 먼 나라 이야기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극단과 광기의 이면에 의한 역사의 결과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어리석음의 시대, 최악의 시대를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제대로 된 역사를 보고 싶다면 낭만적인 혁명의 로맨스와 결별해야 된다. 영화와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정의의 승리나, 역사의 발전과 같은 판에 박은 당위가 아니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인간 하나 하나의 삶과 사회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정의나 혁명의 승리의 수준을 뛰어넘는 인간의 평생을 다하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얻어지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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