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 예고가 현실로

 

에펠탑,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세계를 대표하는 명소 세 곳의 공통점은? 명소를 보려고 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살자들도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자살자의 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339번째 자살사건이 일어난 후에야 사복을 입은 순찰대원이 증원되고 높은 난간이 설치됐다고 한다.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도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1937년 건설된 이래 자살자가 500명을 넘어서자 다리 주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찰이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양되지 못한 시신들을 감안하면 실제 자살자수는 2천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자살자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 한강에 뛰어내리는 자살자수가 많다. 경찰이 순찰을 강화했다고 하지만 심심찮게 투신 소식이나 자살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오늘 남성연대 성재기 대표가 서울 마포대교에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재기 대표는 하루 전날 자신이 대표로 있는 남성연대 운영 자금을 모으겠다며 “한강 24개 다리 중 경찰, 소방관 분들에게 폐 끼치지 않을 다리를 선택해서 기습적으로 투신하겠다"고 예고했다. 성 대표가 투신 장소로 택한 다리는 마포대교. ‘자살 다리’라는 오명이 붙어 있는 곳이다. 그는 오후에 자신의 트위터에 “정말 부끄러운 짓입니다. 죄송합니다. 평생 반성하겠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다리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성 대표의 모습이 있는 사진이었다. 전날 트위터에 예고한대로 한강에 뛰어내리고 만 것이다.

 

‘남성연대’가 뭐길래 성 대표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남성 인권 향상을 위해 2008년에 발족되었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다. 병역의무, 부양의무, 생물학적 성 관점에서 여성을 보호하고 배려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대한민국 남성들이 온전히 짊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남성연대는 정부의 보조금 없이 회원들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 대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운영하고 있는 단체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 한 몸을 바치는 자살을 예고한 것이다.

 

전날 성 대표의 자실예고가 SNS상에서 확산되자 누리꾼들은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는 꼼수라며 비판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성 대표는 남성연대의 열악한 재정 사정은 물론 한국 남성 인권의 현주소를 고발하기 위해 투신하는 것이라며 ‘자살 소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 대한민국 남성을 대표하는 미시마 유키오가 되고 싶었던 성재기

 

성 대표가 정말로 자살할 생각으로 뛰어들었는지 아니면 자살 소동을 염두하고 다리 아래로 뛰어내렸으나 정말 의도치 않게 실현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후자일거라 생각한다. 성 대표의 한강 투신 이후 남성연대가 불고기 파티를 예정했던 걸로 봐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위한 퍼포먼스의 일환일 가능성이 있다. 현재 마포대교 주위에 경찰과 소방당국이 헬기까지 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중이란다.

 

 

 

 

 

 

 

 

 

 

 

 

 

 

 

 

 

 

성 대표가 남성연대 회생과 여성 인권에 억눌리고 있다는 남성 인권의 부활을 위해서 남성연대 대표, 아니 대한민국 남성의 대표로써 정말 한강에 뛰어내렸다면 그의 의도와 선택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의 최후는 흡사 일본의 극우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를 보는 것 같다.

 

 

 

 

 

 

 미시마 유키오(1925~1970)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문학계에서도 독특한 작가다. 그는 애국심과 군국주의에 매혹돼 전후의 일본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서구 문화에도 조예가 깊었지만 ‘일본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전통 무술인 가라테와 검도를 연마하고, 천황제를 수호하겠다며 사병대를 만들기도 했다. 1970년 11월, 도쿄 육상자위대 동부총감 사령관실 본부를 점거하고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로의 회귀를 외쳤다. 한물 간 군국주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안 미시마는 사무라이 같은 죽음을 택했다. 할복자살이었다. 미시마의 할복사건은 전후 일본 사회의 저변에 가라앉아 있던 군국주의의 촉수를 건드려 구심점을 잃고 있던 보수우익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성 대표는 ‘남성 인권 부활’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인물이다. 그의 주장은 반 페미니즘에 가깝다. 그를 옹호하는 남성들도 존재하지만 여성 인권에 대한 도발적인 발언이 문제를 일으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한강 투신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가운데 남성연대 사이트를 통한 후원모금이 최근 이틀 사이 크게 늘었던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전 날까지만 해도 하루에 후원 한 건 있을까 말까한 남성연대 홈페이지 게시판이 이틀 새 후원하겠다는 글로 새까맣게 뒤덮일 정도다. 자신이 의도한대로 자살(또는 퍼포먼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마지막 트윗이 의미심장하다.

 

‘믿고 싶다. 남성을 일으킬 수 있다니.. 허허’

 

그렇다면 성 대표가 이 세상과 마지막 작별 행동을 사진으로 촬영하면서까지 트위터에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에펠탑에서 투신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곳에서 일어난 자살사건이 보도된 신문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공장소에서의 자살을 연극적 행위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관객 또는 뉴스의 시청자를 향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의 책임은 당신들에게도 있다”고 선언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미시마는 세계대전 패퇴 이후 무기력한 일본을 지탄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했다.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을 일본 사회로 돌린 것이다. 성 대표도 기 눌린 채 살아가면서도 저항하려는 마음 한 점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성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무작정 비난하고 반대하는 여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연극적 심리가 있었지 않았을까? 자신의 원대한 꿈을 펼치고 싶었으니 거대한 사회의 벽을 넘지 못해 비장미가 느껴지는 최후를 선택하는 영웅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어제, 오늘 우리 모두는 제노비스였다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남성들의 영웅이 되고 싶어했던 성 대표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정말 부끄러운 짓을 한 사람은 성 대표 그리고 그를 지켜보고, 방관했던 우리들이다. 오늘 성 대표의 자살 장면을 목격하고 촬영한 사람들은 자살방조죄 혐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 대표가 투신할 당시 남성연대 관계자들과 KBS 카메라 기자, 시민 등 최소 4명. 자살 방조 논란이 이어지자 KBS는 구조신고를 두 번 했으며 현장 취재에 나선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가 추락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든 간에 (성 대표가 자살로 판명된다면) 자살 방조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살 방조 논란에 대한 비난 여론의 불을 지피기 전에 전날 성 대표의 자살 예고를 방지했던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도발적으로 남성 인권을 옹호하는 글을 남기는 트위터라인에 집중하고 지금도 그의 트위터를 검색하고 있는 우리들 말이다. 어제, 오늘 우리 모두는 제노비스가 되고 말았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미국 뉴욕 주택 골목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한 여성이 귀갓길에 괴한으로부터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여인은 괴한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하였기 때문에 살인극은 30분가량 이어졌고 비명에 놀란 이웃주민 38명이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창가에서 범행 현장을 지켜만 볼뿐, 아무도 위기에 처한 제노비스를 돕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괴한에 의해 그녀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지, 다른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할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범죄심리학에서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 한다.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행동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말하는 데 흔히 '방관자 효과' 또는 '구경꾼 효과'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SNS 세계에서도 제노비스 신드롬의 영향력은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작은 무관심과 방관은 의도치 않게 한 남자의 자살 쇼를 기획하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 비극

 

 

 

 

 

 

 

 

 

 

 

 

 

 

 

 

나는 편협되고 잘못된 여성의 심리에서 기인한 불합리한 남성 인권의 실태에 분노한다. 다만 성 대표의 반페미니즘 사상과 상대방을 언어의 힘으로 제압하려는 공격적인 발언 태도는 옹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무모한 행동이 안타깝다. 자살 예고 트위터 전에 우울증 앓는 아내가 자살하겠다고 집을 나간 사건 때문에 새까맣게 속을 태운 그였다. 남성연대의 운명이 사랑하는 아내보다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미망인이 될 수 있는 성 대표의 아내가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이 심히 걱정된다.

 

자살의 역사에 관해 기술한 마르탱 모네스티에는 투신 자살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람보다 장소 선택에 신중을 기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모든 책임을 지고 떠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사회적 불명예를 감내하기 어려웠던 것인지, 죽은 자의 심정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인간의 삶에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안타까운 비극이라는 점만은 분명할 듯싶다.

 

싸움에 패한 사무라이는 할복자살을 가장 고귀한 의무로 생각했다. 사무라이처럼 자살은 아침햇살을 받고 벚꽃이 떨어지듯 화려한 미학이 아니다. 아무런 동요 없이 존재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자유로움은 더욱 아니다. 자신에 대한 무책임이요 창조주에 대한 반역이다. 세계 어느 문화권이든 자살은 윤리적 관습이 금기하는 행위이다. 사회는 인간에게 스스로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로운 권리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자살은 염세주의자에게 허용된 ‘최후의 만찬’이 될지 모르지만 최악의 자해행위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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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7-2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기뻐해야할까요,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요....

cyrus 2013-07-27 23:51   좋아요 0 | URL
성재기를 싫어했던 페미니즘에게는 기쁨을, 그를 옹호했던 남자들은 슬퍼하겠죠? 본인이 의도한대로 그에 대한 남자들의 애도와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과연 포스트 성재기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반짝 관심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