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아틀리에
실비 제르맹 지음, 박재연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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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렘브란트(Rembrandt), 페르메이르(Vermeer),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그들 이름에 항상 따라오는 꾸밈말이 있다. 빛의 화가. 이 세 사람은 그림을 그릴 때마다 세 개의 팔레트를 사용했다. 화가들의 손에 여러 색깔 물감으로 수놓은 수채화용 팔레트가 있다. 나머지 두 개의 팔레트는 눈이다. 빛의 화가는 물감이 정해준 색보다는 빛이 빠르게 움직이면서(빛의 속도는 1초에 지구 둘레의 일곱 바퀴 반을 돌 정도로 엄청 빠르다) 생기는 찰나의 색을 좋아한다. 신비한 빛의 효과가 만든 색은 물감에 없는 색이다. 아주 특별한 색을 발견한 빛의 화가는 두 눈에 물감을 풀어 빛과 섞는다. 작고 동그란 팔레트에서 화가 본인만 느낀 빛 색이 태어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학문과 예술의 신은 총 아홉 명이다. 제우스(Zeus)기억의 신 므네모시네(Mnemosyne) 사이에 태어난 아홉 자매다. 학문과 예술을 사랑하는 아홉 자매를 무사이(Mousai)라고 부른다. 무사이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를 가리키는 뮤즈(Muse)’의 어원이다. 재미있게도 아홉 자매 중에 그림을 그리는 신이 단 한 명도 없다. 따라서 화가의 뮤즈라는 표현은 어색하다빛은 투명한 뮤즈. 빛은 무한해서 투명하다. 빛은 실체가 기묘해서 투명하다. 빛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입자와 파동 형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만약에 화가들의 재능을 보호하는 뮤즈가 있다면, 그녀는 바로 이다. 뮤즈가 된 빛은 얼굴이 두 개여야 한다.


예술의 신이 되지 못한 빛은 화가들이 즐겨 쓰는 화구(畵具)로 전락했다. 화구의 주인은 화가다. 빛은 그림을 그릴 때 쓰는 천연 도구가 아니다. 빛은 무한한 아틀리에(작업실)’프랑스 작가 실비 제르맹(Sylvie Germain)은 위대한 화가들을 숭배하기 위해 쓰는 표현인 빛의 거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빛의 거장이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빛은 인류보다 제일 먼저 태어났다. 빛은 여전히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하다. 최초의 화가가 나타나기 전에 빛의 아틀리에가 생겼다빛의 주인은 화가가 아니다. 반대로 되어야 한다. 화가의 주인은 빛이다


실비 제르맹의 빛의 아틀리에미술 감상문 또는 예술 에세이에 가깝다. 그녀가 만난 세 명의 화가 모두 빛의 거장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페르메이르,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아차, 실수했다! ‘빛의 거장이 아니라 빛의 아틀리에를 빌려 쓴 거장이다실비 제르맹은 모든 화가가 빛의 제자라고 말한다


프란체스카, 페르메이르, 라 투르는 빛을 경배한 동방박사. 그들은 밤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빛을 만나기 위해 빛의 아틀리에로 향했다. 세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을 빛에 바친다. 빛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일상으로 돌아갔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꿈>

1466년경



 

프란체스카는 수학자. 그가 빛에 바친 선물은 기하학이다. 그는 기하학을 이용해 빛과 형상, 공간을 정교하게 배치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천문학자>

1668년경



 

페르메이르가 가져온 선물은 철학이다. 페르메이르는 수수께끼로 남은 화가다. 그가 남긴 그림들도 수수께끼로 칠해져 있다. 그가 동시대에 활동한 철학자들이 쓴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없다. 실비 제르맹은 페르메이르의 작품인 <지리학자> <천문학자>를 감상하면서 진리를 사랑하는 페르메이르를 상상한다.

   






조르주 라 투르

<타오르는 불꽃의 마리아 막달레나>

1640년경



라 투르는 까다로운 선물을 가지고 왔다. 이 선물의 정체는 어둠이다. 라 투르의 어둠은 빛을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암흑이 아니다.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희미한 빛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라 투르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지휘봉이 된 붓으로 어둠에 지시한다. “여기 빛의 아틀리에에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주1] 빛을 위해서 양보하라.” 빛의 아틀리에에 들어온 어둠은 겸손하다. 마침내 조화를 이룬 빛과 어둠은 캔버스 앞에서 지휘하는 라 투르의 붓에 맞춰 야상곡을 연주한다. 라 투르의 그림은 눈으로 느끼는 야상곡이다.


모든 화가가 빛의 아틀리에를 이용한 시간을 (작업실 대여비)으로 환산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의 경매가를 웃도는 수준이다. 화가들은 빛의 아틀리에를 무료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빛의 아틀리에를 돈 주고 사용하면 화가들은 빚쟁이가 된다. 빛은 화가들을 위해 아낌없이 아틀리에를 빌려준다. 빛을 빌려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위대한 빛쟁이.





[주1] 패러디한 문장의 원문은 단테(Dante)신곡지옥 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내 앞에는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 37~9, 35,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2022)





* 65쪽 각주





마르셀 프루스트, 갇힌 여인 [주2]



[2] 갇힌 여인7로 이루어진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5부 제목이다.





* 72

 




 블랑쇼<죽음>에서 비범함은 내가 죽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라고 썼다.[3]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가시적인 세계, 빛과 색의 끝, 즉 보이지 않는 세계와 밤의 가장자리에서 멈춘다.



[3]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죽음>죽음의 선고(고재정 옮김, 그린비, 2011)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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