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베토벤인가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귓속에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여러분! 귓속에 바이러스가 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귀에 기생하는 음악 바이러스



귀 벌레(earworm)는 음악 바이러스의 매개체다. 귀 벌레는 사람들이 즐겨 듣는 노래에 달라붙어 있다. 달팽이관으로 들어간 귀 벌레는 음악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음악 바이러스가 뇌를 침투하면 머릿속에 멜로디가 계속 맴도는 증상이 일어난다.








음악은 다양하고, 지금도 계속 확장되고 있다. 그런 만큼 음악 바이러스의 종류도 많으며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가장 유명한 음악 바이러스는 베토벤 바이러스(Beethoven Virus)이다. 2000년에 처음 나온 클래식 음악 바이러스로,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8비창’> 3악장의 변이체(변주곡)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많이 나타나는 곳은 오락실이다펌프라는 이름이 더 유명한 댄스 리듬 게임 <Pump It Up>을 하면 베토벤 바이러스를 들을 수 있다.


멜로디가 뇌에 잘 꽂히는 사람은 음악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다. 멜로디가 반복해서 들리면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다. 우리를 괴롭히는 단점 하나만 빼면 음악 바이러스에 좋은 점이 훨씬 많다.


영국의 클래식 음악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바이러스보균자. 그는 말러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썼으며, 2010년에 쓴 왜 말러인가?: 한 남자와 그가 쓴 열 편의 교향곡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Why Mahler?, 이석호 옮김, 모요사, 2010년)가 국내에 번역되었다.


2020년은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었다. 세계의 모든 음악인이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해야 할 그해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를 집어삼켰다연주회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음악인들의 악기는 침묵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습격에 쓰러진 음악인들의 부고까지 들려오자, 레브레히트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마음이 약해진 그를 다독여준 것은 베토벤의 음악, 베토벤 바이러스였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받아들인 레브레히트는 말러에 이어서 베토벤의 삶과 음악을 톺아본다왜 베토벤인가(Why Beethoven)는 전 세계 음악인들의 귓속에 살고 있는 불멸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소개한 책이다이 책은 100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마다 베토벤의 곡들과 그 곡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베토벤의 대표작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범작들과 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나온다. 저자는 젊은 시절에 클래식 음반을 수집했다. 명반(名盤)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베토벤 연주곡 음반들뿐만 아니라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들어줄 만한 음반들을 소개한다오랫동안 귓속에 베토벤 바이러스를 달고 살아온 클래식 음악광과 베토벤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싶은 입문자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다.


위인전에 갇힌 베토벤은 음악 천재. ‘위인 베토벤은 어린 독자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지 않는다. 결국 어린 독자들은 그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아닌 음악인으로서 힘들게 살아온 과정을 읽는다. 위인전에 베토벤의 작품들, 그중 가장 유명한 대표작들의 제목만 언급된다. 그러나 작품들은 작곡가의 천재적인 능력만 돋보여주는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따라서 위인전은 베토벤의 생애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간혹 사실과 다른 내용을 덧붙여서 쓰는 위인전 지은이도 있다.


왜 베토벤인가는 베토벤 전기(傳記)저자가 다시 만난 베토벤은 천재 베토벤이 아니다.음악 바보 베토벤이다평생 음악만 바라보면서 살아온 베토벤. 음악과 동거한 베토벤의 방은 지저분했다. 음악을 껴안은 베토벤은 소변이 가득한 요강을 비우는 것을 잊었다베토벤은 반권위주의자. 그는 귀족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베토벤은 반전통주의자. 그는 오랫동안 유행한 작곡 형식을 거부했다. 베토벤은 기존의 형식에 벗어난 멜로디를 만들었다전통적인 멜로디에 익숙한 당대의 음악인들은 베토벤의 곡이 귓속을 거칠게 문지르는 소음으로 느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엘리제를 위하여>, <월광>, <비창>)을 제외한 베토벤의 음악은 감상자뿐만 아니라 연주자들도 대단히 어려워한다


레브레히트는 독자와 감상자들을 위해 베토벤의 음악이 어려운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한다왜 베토벤의 음악은 어려운가? 베토벤은 혼돈의 음악을 제대로 만들려고 했다. ‘조화로운 음악은 대부분 화려하고, 감상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와 정반대인 혼돈의 음악은 거칠다연주 중간에 나와서는 안 되는 악기의 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올 때가 있다감상자는 다음에 어떤 멜로디가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인들이 사랑하는 음악 바이러스다연주자들의 숙원은 베토벤의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이다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는 베토벤이 만든 9개의 교향곡을 피아노 독주곡으로 편곡했다. 바흐(J. S. Bach)<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로 천재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한 글렌 굴드(Glenn Gould)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을 카라얀(Karajan)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마력은 문학과 미술에도 뻗어 있다음악 바이러스는 작가들의 펜에 침투하여 한 편의 문학으로 다시 태어난다. 톨스토이(Tolstoy)는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 영감을 얻어 동명의 소설을 썼다.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는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교향곡 9번 합창’> 피날레 환희의 송가를 끔찍한 폭력의 송가로 만들었다.






 18974, 구스타프 말러가 빈 국립 오페라단에 입성한 그 주에 구스타프 클림트는 반항적인 예술가들을 모아 빈 분리파 운동을 시작했다. 5년 뒤에 클림트는 황금 지붕을 얹은 분리파 건물을 지어 전시회를 열었다.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 조각상(영웅적이고 옷을 거의 다 벗은 모습)이 중앙 홀에 놓였고, 벽 위쪽에 그려진 벽화에는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보이는데 용모가 영락없는 말러다.

 

(301)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는 베토벤 사망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02년에 벽화 <베토벤 프리즈>(The Beethoven Frieze)를 그렸다.


감상자를 압도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독재자를 미화하거나 찬양하는 곡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대중은 베토벤의 음악을 오해했고, 베토벤의 반권위적인 참모습을 알지 못했다. 왜 베토벤인가는 독자와 음악광들을 향해 대단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베토벤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그 답은 이 책 속에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절대로 해롭지 않다

음악 바이러스는 잘못이 없다

음악을 곡해하는 나쁜 귀(bad ear)가 달린 사악한 인간, 

악귀(bad ear)가 달린 악귀(惡鬼)가 음악을 오염시킨다

그들의 귓속에 음악은 없다. 귓속에 ()이 들어 있다.







<cyrus가 만든 주석>








초판 1쇄 발행 2025328[1]



[1]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날짜는 326일이다.





* 37





 마르셀 프루스트는 할머니가 연주하는 <비창>을 듣더니 이 곡을 베토벤 소나타의 스테이크와 감자라고 했다. [주2]


[주2] <비창>이 언급된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글은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책 참깨와 백합서문, <독서에 관하여>. <독서에 관하여>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유정화 · 이봉지 옮김, 민음사, 2018)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유예진 옮김, 은행나무, 2014)에 수록되어 있다.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제대로 할 줄 모르는군요.” 감자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기 때문에 도리어 매우 어려운 이 요리는 요리 경연의 이상적인 주제로요리의 비창」 소나타이며[생략]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중에서, 138)


 “박식한 요리사일지는 몰라도, 그녀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는 할 줄 모르네요.” 사과를 곁들인 비프스테이크! 단순하다는 자체로 어려운 이 요리는 바로 그 때문에 요리대회 경연에 이상적인 음식이고, 요리 분야의 <비창 소나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며, [생략]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중에서13)



스테이크와 감자의 프랑스어 원문은 ‘Le bifteck aux pommes’. 두 책의 번역문이 다르다. ‘pomme’는 사과와 감자를 뜻하는 단어.






* 58




 

 체코에서 태어나 크로아티아에서 자란 알프레트 브렌델은 1951년 빈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크리스마스트리 모음곡>으로 음반 데뷔를 했다[주3] 미국 음반사 복스-턴어바웃이 빈 필하모닉을 가짜 이름을 내세워 고용하고는 브렌델을 데리고 베토벤의 피아노곡 전곡 녹음에 나섰다.


[주3] 이 책에 언급되지 않은 한 가지 사실. 복스-턴어바웃(Vox turnabout)에 고용된 알프레트 브렌델(Alfred Brendel)이 첫 번째로 녹음한 곡은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피아노 협주곡 5G장조 op. 55>이다. 이 곡은 브렌델의 첫 음반이 발매되기 일 년 전인 1950에 녹음되었다.






* 160~161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책들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매독으로 고생했다는 임상적 증거나 부검 증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최근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주4]






[주4] 이미 반증되었고, 근거가 빈약하지만 베토벤이 매독에 걸렸다고 주장하는 학자의 견해를 비교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참고문헌: 데버러 헤이든, 이종길 옮김, 매독(길산, 2004)





* 286




 

 제러미 덴크[주5]농담이 섞인 진지한 작품이 아니라 () 곡 전체가 웃음바다이며 웃음이 곡의 핵심이라고 느꼈다.






[주5] 제러미 덴크(Jeremy Denk)는 미국의 피아니스트다. 작년에 그가 쓴 책 이 레슨이 끝나지 않기를: 피아니스트 제러미 덴크의 음악 노트(장호연 옮김, 에포크)가 출간되었다이 책의 부록은 제러미 덴크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 목록이다. 이 목록에도 베토벤의 명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 451




 

 베토벤은 아르놀트 쇤베르크처럼 숫자에 신경 쓰지 않았다. [주6]


[주6] 쇤베르크(Arnold Schonberg)는 불길한 숫자로 알려진 13을 무척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13일에 태어난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13 공포증이 심한 쇤베르크는 악보에 쪽수를 적을 때 13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쇤베르크는 713일 금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 482





 웨일스 시인 딜런 토머스가 말한 빛의 스러짐” [주7]


[주7] 빛의 스러짐(The dying of the light)’이 나오는 딜런 토머스(Dylan Thomas)의 시는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