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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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뮤리얼 스파크(Muriel Spark)의 대표작이 나오게 돼서 무척 반갑다. 1961년에 발표된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The Prime of Miss Jean Brodie)는 이미 오래전에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적이 있다.

 

 

 

 

 

 

 

번역본 제목은 《느릅나무 밑에서의 수업》(마루, 1993)이다. 이 제목을 보면 왜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희곡 《느릅나무 밑의 욕망》이 생각나는 걸까? 아무튼, 1993년에 나온 번역본은 절판됐다가 이번에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새롭게 출간했다.

 

진 브로디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녀는 마샤 블레인 여학교 교사로 일한다. 브로디는 교정에 있는 느릅나무 밑에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을 한다. ‘느릅나무 밑에서의 수업’을 받는 다섯 명의 학생들(샌디 스트레인저, 로즈 스탠리, 유니스 가드너, 제니 그레이, 메리 맥그레거)은 학교 내에서 ‘브로디 무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브로디는 학생들에게 진취적으로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그럴 때마다 브로디는 제자들을 ‘크림 중의 크림(crème de la crème: ‘최고’를 뜻하는 프랑스어)’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감이 가득한 브로디는 아직 자신의 전성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학교 측은 보통 교사와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브로디를 사직시키려는 방안을 생각해보지만, 브로디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브로디가 생각하는 ‘전성기’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교정 느릅나무 밑에서 브로디 무리를 가르치는 일을 의미한다. 브로디는 자신의 뚜렷한 교육관에 신념을 가지고 브로디 무리를 가르친다. 그녀는 주입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여학교의 교육 방식을 비판하고 거부하는데, 자신의 교육 방식은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머리에 많은 정보를 쑤셔넣는 것이 교장의 방식이야. 내 방법은 지식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내 방식이 어원적 의미에서 더 진정한 교육이라 할 수 있지. 교장은 내가 소녀들의 머리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고 있다고 비난하는데, 그건 실은 교장의 방식이야. 내 방식은 그 반대라고. 내가 너희의 머리에 어떤 생각을 집어넣었다는 소리를 하도록 그냥 두어선 절대 안 돼. 샌디, 교육의 의미가 뭐라고?”

  “밖으로 이끄는 거요.”

 

(49쪽)

 

 

브로디 무리는 다른 교사들의 수업에서 느낄 수 없는 브로디식 교육법에 매료된다. 브로디를 따르는 다섯 명의 학생들은 학교가 자신들을 ‘브로디 무리’라고 부르는 것에 희열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들이 ‘브로디 무리’에 속한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심리학자 매슬로(Maslow)는 인간은 욕구 충족을 위해 행동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자기 안에 내재한 안전과 소속감, 자아존중,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이 소설에 적용해볼 수 있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에 비추어서 소설에서 드러난 브로디 무리의 정서적 반응 및 변화를 유추할 수 있다. 욕구 단계설에 따르면 브로디 무리는 3단계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3단계는 집단에 소속되려는 욕구이다. 이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외로움으로 인해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4단계는 타인의 인정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이다. 자신감을 느끼고, 자신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라고 느끼려는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이 욕구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인간은 열등감을 느낀다. 브로디는 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자신만의 교육 방식으로 브로디 무리를 가르치는 위치에 오른 ‘전성기’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브로디 무리는 ‘크림 중의 크림’으로 성장해서 전성기를 누리고 싶어 한다. 브로디 무리는 4단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브로디의 가르침을 따른다.

 

인간이 행동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이다. 브로디는 자기 인정 욕구가 강한 편이다. 그녀는 자신을 지지하는 음악 교사 고든 로더, 미술 교사 테디 로이드와 연애를 한다. 브로디도 ‘인간’이고, 연인을 사귀고 싶어 하는 사랑 욕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연애는 실패로 끝나게 되고, 좌절한 브로디는 자신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한탄한다. 사랑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탓인지 브로디는 실연의 상처를 애써 숨기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연애 경험이 사직 근거가 될 수 없다면서 자신의 사랑은 육체적 관계가 없는 플라토닉 러브라고 강조한다. 브로디는 자신의 진취적인 이미지가 훼손될까 봐 연애 사실을 브로디 무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가장 믿고 사랑하는 유일한 제자인 샌디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브로디는 외강내유형 인물이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나, 속은 연약하고 불완전하다. 어쩌면 브로디는 연약한 속마음을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 자신을 따르는 브로디 무리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브로디는 자신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는 ‘연약한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강인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학생들 앞에서 파시스트를 옹호하는 발언과 행동을 한다.

 

  “파시스트예요.” 브로디 선생은 이렇게 설명하고 나서 물었다. “누구라고, 로즈?”

  “파시스트입니다, 선생님.”

  그들은 새까만 제복을 입고 똑같은 각도로 손을 올린 채 한 치도 어긋남 없이 나란지 줄지어 행진하고 있었으며, 무솔리니는 체육 선생, 혹은 걸가이드 단장처럼 단상에 선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략] 샌디는 문득 자신들 역시 행군중인 브로디 선생의 파시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봐서는 모르겠지만, 사실 브로디 선생의 필요에 맞춰 무솔리니 무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줄지어 걷고 있는 파시스트들. 그거야 그렇다 치고, 걸가이드를 향한 브로디 선생의 경멸에는 질투와 모순과 오류가 있었다. 어쩌면 걸가이드가 너무 강력한 파시스트 라이벌이라서, 그리고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서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무리에서 제외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다시 한번 샌디를 사로잡았고, 샌디는 브로디 선생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생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42~43쪽)

 

 

샌디는 브로디의 불완전하고도 모순된 모습을 간파한다. 그러나 샌디는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를 지키기 위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브로디의 자아도취는 점점 심해지고, 자신이 ‘크림 중의 크림’으로 살고 있으며 ‘강인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 소설은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의 행동과 심리적 반응을 교차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독자는 겹겹이 쌓아 올린 서사를 잘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브로디와 브로디 무리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뮤리얼 스파크는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 불완전한 인간의 모순을 표면화한다.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시간과 상황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변화를 통해 진정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소설은 불완전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개인적 고통과 실패가 보편적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자신의 ‘전성기’를 생각해보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전성기’는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만드는 편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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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2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어떤 책일까 궁금하긴 했어.

근데 너는 책을 아주 빨리 읽나 봐.
너도 완독 스타일이지?^^

cyrus 2018-03-22 17:44   좋아요 0 | URL
도서관 반납일이 얼마 남지 않은 책,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되도록 빨리 읽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완독이 독서의 최고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고, 읽을거리가 점점 많아지게 되면서 완독에 집착하지 않게 됐어요. 제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끝까지 다 읽지 않은 책이 완독한 책보다 더 많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