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구, 미투에 응답하라!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오후 7대구시민공익지원활동센터 상상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분이 오셨는데요, 30명이 넘은 인원들이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일찍 토론회 장소에 도착한 레드스타킹 멤버 덕분에 저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레드스타킹 멤버는 저를 포함한 다섯 명입니다.

 

 

 

 

 

 

 

여성 운동과 관련된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은 어제가 처음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다섯 명의 발표자들이 준비한 자료들을 모은 책자를 받았거든요. 자료집, 넘나 소중한 것! 이 자료집이 없었으면 저는 후기를 못 썼을 거예요.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토론회를 진행했고요, 신미영 대구여성회 고용평등상담실장, 김정순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최현진 대구이주여성상담소 소장, 이정미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대표,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순으로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다섯 분이 발표한 내용은 자료집을 참고하면서 정리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 아주 많아서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어제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잘 선별했는지 모르겠군요. 여기에 정리한 내용 일부는 여러분들이 아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신미영 님의 발표 주제는 직장 내 성희롱과 법과 제도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성적 언동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입니다. 직장 내 성폭력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보통 직장 내 성폭력직장 내 성희롱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직장 내 성폭력’, ‘직장 내 성희롱의 의미를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위계, 위력에 의해 상대방의 의사를 침해하여 이루어진 성 접촉(간음 행위 필수) 행위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과 직장 내 성폭력 모두 권력형 성희롱 · 성폭력입니다. 권력형 성희롱 ·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사회 집단 내에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 특성상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부하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은 권력형 성폭력의 민낯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품절] 로빈 스턴 가스등 이펙트(RHK, 2008)

 

 

 

그렇다면 왜 성폭력 피해자들은 끔찍한 경험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일까요? 혹자는 따지듯이 말합니다. 왜 지금에서야 피해 사실을 호소하느냐고. 이건 생각 없는 발언이고, 성폭력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심정을 잘 모르고 하는 개소리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의해 성폭력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가스라이팅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 <가스등>(1944)에 유래한 심리학 용어입니다. 이 영화에서 남편은 아내를 미치게 하려고 계략을 꾸밉니다. 남편은 일부러 가스등을 어둡게 한 뒤 아내가 지적할 때마다 그렇지 않아! 네가 잘못 본 거야!”라고 반응을 드러냅니다. 그러면 아내는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결국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게 됩니다.

 

가스라이팅의 가해자, 즉 성폭력 가해자는 물리적 강압을 동원하지 않고도 피해자의 심리를 조종해 자신의 범죄 행위를 무마하는 시도를 합니다.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성폭력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정신적 폭력입니다.

 

김정순 님은 성폭력 피해와 관련법 개정을 주제로 성폭력의 정의성폭력 역고소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김정순 님은 강간또는 성폭력으로 쓰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새롭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의 경우 대체로 증거나 증인이 없기 때문에 피해 여성들의 진실은 쉽게 거짓말이 되고, 가해 남성들의 성폭력 역고소전략은 대체로 성공합니다. 역고소로 법정에 서게 되는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부담 속에 최소한의 자구노력마저 제약받게 됩니다.

 

최현진 님은 한국에 온 이주여성이 미투 운동에 소외되는 사회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이주여성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호소할 곳들에 대한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주여성은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법이나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최현진 님의 발표가 끝나고 다음 발표를 진행한 이정미 님은 여성 장애인도 미투 운동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장애인을 지적으로 취약한 존재 또는 무성적(無性的) 존재로 보는 편견은 장애인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비장애인으로부터 인격이 짓밟힌 여성 장애인은 성폭력 피해에 쉽게 노출됩니다.

 

남은주 님은 미투 운동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선 대중이 미투 운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은주 님이 제시한 대안 중 하나가 붉은 편지입니다. 붉은 편지 쓰기 운동은 최근 대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투 운동의 일종입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편지지에 익명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 또는 성폭력을 목격한 사실을 쓰는 것입니다. 다 쓴 편지는 붉은색 편지 봉투에 넣어 가해자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성폭력, 성희롱을 목격한 사람들도 붉은 편지를 쓸 수 있어요. 토론회가 끝난 후에 레드스타밍 멤버가 "우리도 붉은 편지를 써보자!"라고 제안했습니다. 독서 모임이 있는 다음 주 월요일에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붉은 편지를 써볼 예정입니다. 저는 후배 여학생 앞에 성적 농담을 하고, 후배 여학생에게 치근대던 대학교 선배에게 붉은 편지를 보내고 싶군요.

 

다섯 분의 발표가 끝난 후에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폭력 실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부족했고, 제가 질문을 위해 너무나 많이 생각하는 바람에 질문할 기회를 놓쳤어요. 어제 토론회에 나온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좋게 봤지만,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성소수자의 편견이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불감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사람은 성소수자는 문란하다’, ‘야한 옷을 즐겨 입는다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모든 성소수자는 문란하지 않습니다. 또 그들이 매일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트랜스젠더 여성 성폭력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비성소수자들은 야한 옷을 입었으니 성폭행당할 만 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소수자도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존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도 미투 운동 확산과 함께 생각해 볼 어젠다입니다.

 

 

 

 

 

 

 

 

포스터, 첫 번째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은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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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1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스등 이펙트가 품절됐구나.
한 10년쯤 전에 읽은 것 같은데...
그런 줄도 모르고 작년인가? 중고샵에 팔았다는.
이게 오늘 날 이렇게 쓰일 줄 알았으면 다시 읽어보는 건데.ㅠ

cyrus 2018-03-17 08:11   좋아요 0 | URL
대학생 시절에 학교에서 히치콕 영화를 틀어준 적이 있어서 그때 《가스등 이펙트》을 읽었어요. 저도 이 책이 품절될거라 생각 못했어요.. ^^;;

2018-03-17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7 19:42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 인스타그램 링크 주소 타고 들어가면 제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제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에요.. ㅎㅎㅎ

2018-03-18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