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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 - 두려움에서 걸어나온 동성애자 이야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7년 12월
평점 :
차별받지 않고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과는 조금 달라서, 혹은 다른 처지에 놓여 있어서 같은 사회 구성원이면서도 수많은 편견과 혐오에 부딪힌다. 성 소수자들은 ‘최소한의 도덕’인 법적 장치를 통해 기본적인 인권이라도 보장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서 많이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정신이상으로 생각하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해로운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본인이 동성애자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아우팅(outing, 아웃팅)’이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어렵사리 마련한 직장에서 쫓겨나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한다. 개인적인 능력이 무시당하고 그 순간부터 동성애자는 ‘역겨운 호모 새끼’로 취급받는다. 삶의 기반을 빼앗기고 모든 인간관계가 무너진다.
《후천성 인권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시대의창, 2017)는 동성애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통해 아우팅의 실상을 조명하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는 우리 사회의 호모포비아(homophobia, 동성애 혐오)를 고발한다. 이 책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약칭 ‘행성인’, 구 동성애자인권연대)’ 소속 성 소수자 운동가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작년 12월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2011년 구판과 2017년 개정판의 차이점이 있다. 구판과 개정판 각각에 다양한 성 소수자 인권 문제를 다룬 칼럼 7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글쓴이와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성 소수자 인권 운동에 앞장선 사회단체 이름이 달라졌다. 2014년까지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2015년에 ‘행성인’으로 변경되었다.
이 인터뷰집은 다름을 부정하고, 다름을 이유로 차별하는 이들에게 작지만 큰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 소수자의 목소리를 당사자들이 직접 표출하려는 욕망은 진작부터 강했다. 성 소수자들이 타인의 시선을 피해 벽장 속에 숨어서 지낸 것도 있지만, 성 정체성을 드러낸 성 소수자들은 기피 대상 또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취급받아왔다. 동성애자 4명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과 용산 참사를 다룬 <공동정범> 등을 연출한 이혁상 감독은 미디어를 이용해 ‘성 소수자들이 성 소수자임을 드러내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연합’과 같은 기독교 극우단체는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광고를 내고 호모포비아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성애 가족을 강조하고, 정상 · 비정상을 구분할수록 호모포비아는 심해진다. 특히 극우 기독교계는 에이즈(HIV/AIDS)가 동성애를 포함한 성적 타락에 대한 신의 형벌이라는 인식을 퍼뜨리는데 재난이나 괴질이 발생했을 때 희생양을 찾음으로써 책임을 전가한다. 곽이경 씨는 교회에 다니는 레즈비언이다. 그녀는 동성애자를 이성애 중심 가족 제도를 붕괴하는 적으로 몰아세우는 극우 기독교의 낡은 혐오 공학을 비판한다.
이 사회의 가족 제도는 이성애 중심이잖아요. 동성애자들은 가족 제도에 편입되고 싶어하는 것이지, 가족 제도를 붕괴시키고 싶어하지 않거든요. 붕괴시키려고 마음먹었다면 ‘혁명 세력’일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개신교나 가톨릭계는 동성애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 같아요. 동성애자들이 우리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죠. (곽이경, 79쪽)
인터뷰에 참여한 민수 씨(가명)는 ‘군형법 92조 6항’에 의해 억울하게 피해를 본 동성애자다. 군형법 92조 6항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동성 간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강제성과 공연성이 없는 합의된 성적 접촉까지 형법으로 처벌한다는 이유로 비판 받아왔다. 성 소수자들은 동성애자 차별을 정당화하는 군형법 제92조 6항 폐지를 주장하지만, 국방부와 극우 기독교계는 병영 내 동성애가 지휘체계의 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조항 폐지를 반대한다. 그러나 미국, 유럽에서는 병영 내 동성애가 군의 기강과 사기를 저해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민수 씨는 군형법이 ‘동성애자를 잠정적인 성범죄 가해자 또는 감염자로 낙인찍는 규정’이라고 지적한다. 군대 내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들은 일단 ‘치료’라는 명목으로 병원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에이즈 검사, 독방생활 등을 경험하게 된다. 군대에선 여전히 동성애가 정신 장애이고 범죄 행위로 여겨진다. 이런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군인의 사생활 보호가 아무리 철저해도 동성애자 차별은 해소될 수 없다.
청소년 성 소수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중으로 고통을 겪는다. ‘동성애자’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아니, (정신적으로 미숙한) 학생이?”라는 편견과 맞물리면서 더욱 냉혹하게 증폭된다. 성인 동성애는 인권 논의 대상이 되지만, 청소년 동성애는 한때의 ‘치기’나 단순한 ‘성적 호기심’으로 치부된다.
청소년 성소수자는 청소년이란 것과 성소수자라는 이중적 약자잖아요. 사회는 사회대로 그렇고, 집에서는 집대로 통금 같은 거 두고, 그러면 이중으로 뭔가에 가로막히는 기분이죠. 당장 부모님이 무언가 강요하면 그것을 지키지 않고 나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니까요. 일을 해서 돈을 벌 수도 없고요. (김우주, 202쪽)
우리 사회는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에 질타와 비판만 가하고 있다. 청소년 동성애를 ‘비행’, ‘일탈’로 치부되는 것은 기성 사회의 일방적 시각이다. 학교 안에서 아우팅 당한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왕따를 당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자퇴를 결심한다. 아우팅 당한 동성애자는 자살을 선택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적어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고, 불이익을 겪거나 심지어 자살로 몰고 가는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인식이 사라져야 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은 생각보다 교묘하고 그 뿌리가 깊을 뿐 아니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성애만이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랑이고, 정상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배운다. 이렇게 뿌리 깊은 가치관은 동성애자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해 버린다. 소외당한 사람들은 자신들에 향한 억압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 억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자신의 삶과 인간적 권리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만다. ‘행성인’ 소속 성 소수자 운동가들은 일반(동성애자를 뜻하는 ‘이반’의 반대말, 이성애자)들의 동성애 편견을 바꾸기 위해서는 성 소수자들의 자발적인 사회적 연대가 감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려면 성 소수자들이 벽장에 나와 일반 세계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왜곡된 형태의 동성애가 아닌 진짜 동성애가 뭔지, 현실의 동성애자는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알려야 한다. 일반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 소수자를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이성애 중심주의와 남성 중심주의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사회에 실금이 갔다고 해서 와르르 무너지진 않는다. 작은 틈 위에 여섯 색깔 무지개(동성애자를 상징하는 깃발 디자인)가 생긴다면 그 사회는 성 소수자들이 원하는 세상, 무지개처럼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