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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컬트, 마술과 마법 - 고대 주술부터 현대 마법까지 오컬트 대백과사전
크리스토퍼 델 지음, 장성주 옮김 / 시공아트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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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컬트(Occult)나 마법, 심령현상, 무속 신앙은 현실에서는 무시당하기 쉽다. 오컬트 마니아들이 믿는 영적인 힘은 우리 눈으로 확인이 안 된다는 점도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냐는 것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기이하게도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컬트가 더욱 주목받는다. 다양한 초자연적 현상들이 과학의 원리로도 여전히 설명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문화가 그런 ‘어두운 매력 덩어리’를 절대 놓칠 리가 없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소설, 영화야말로 오컬트와 환상의 궁합을 이룰 수 있다.
인간이 왜 유령에 호기심을 갖고, 과학이 부정하는 마법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두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다면 ‘오컬트의 보고(寶庫)’인 《오컬트, 마술과 마법》(시공아트, 2017)을 펼쳐보시라. 이 책을 읽으면 ‘오컬트란 무엇인가’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 ‘신기하고 이상한 것’들뿐만 아니라 그것에 푹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세상에는 꼭 한 가지가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천사의 반대편에 악마가 있었고, 과학과 함께 연금술이 존재했으며, 기도하는 성직자의 대척점에 주문을 외우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묶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바로 오컬트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은 ‘연대기적 접근’을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오컬트의 영향력을 생생한 도판과 귀중한 유물 등과 함께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오컬트와 관련된 유물 및 그림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마법사, 점성술, 카발라(Kabbalah, 고대 유대교의 신비주의 사상), 연금술,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샤머니즘(Shamanism), 프리메이슨(Freemason, 비밀 단체), 심령술 등 미스터리, 음모론을 논할 때 반드시 나오는 필수 요소들이 《오컬트, 마술과 마법》에 요약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서구 오컬트 문화에만 치중하지 않는 구성 방식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생소한 일본의 무속 신앙,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의 민간 신앙까지 다룬다. 아주 적은 내용이지만, 저자는 ‘동아시아의 마법’을 소개한 장에 우리나라의 도깨비를 언급했다(282쪽).
오컬트는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실체를 밝혀내는 학문이었다. 현실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갈망, 불투명한 미래를 알고 싶은 호기심은 늘 인간의 마음속에 있었고, 그 속에서 오컬트는 자연스럽게 등장해 당시 사람들의 삶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금도 성행하는 점술, 타로(Tarot)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오컬트를 배척하는 기독교의 힘이 유럽 전역에 확장될수록 마법과 신비주의의 관심도 커졌다. 기독교는 유일신의 영적인 힘을 믿지만, 민간신앙과 밀접한 마법은 인간인 마법사의 의지대로 신비로운 힘을 부리려고 한다. 그래서 마법과 신비주의 사상은 신을 거역하는 죄를 부추기는 ‘이단’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마법은 고대 로마 때부터 박해를 받아왔다. 로마 시대에 제정된 코르넬리우스(Cornelius) 법은 마법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중세 말기, 르네상스 초기에 있었던 마녀사냥의 참혹한 역사는 마법에 대한 서구문화의 적대감을 잘 보여준다.
세계에 드리운 미혹과 망상, 미신과 사이비를 거부하는 회의주의자들에겐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황당무계한 내용만 가득한 책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회의주의자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별점 네 개’를 주고 싶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쓴 저자는 ‘오컬트에 관심이 많은 예술사 전문가’이다. 그는 예술, 문학 분야에 새겨진 ‘오컬트의 희미한 흔적’을 보여준다. 《오컬트, 마술과 마법》을 읽는다면 우리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지나쳤던 ‘시시콜콜한 오컬트 지식’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어느 정도 비과학적인 현상에 대해 회의주의적 태도를 보인다. 19세기 중반 미국 전역에 심령술 인기를 일으킨 폭스(Fox) 자매의 영매 능력과 유럽에 유행한 심령사진들이 ‘조작’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또 그는 “마법은 언제나 기술일 뿐이지 결코 과학이 아니다”라는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황금가지》를 쓴 종교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현대의 오컬트가 ‘개인의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이 오컬트에 지나치게 심취하면 주변 사람들의 몸과 정신을 위협하는 사이비 종교 하나 만들어낼 수 있다. 오컬트를 악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와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오컬트 지식을 끌어들인다. 그건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오컬트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사기술을 맹신하는 가엾은 사람들은 오컬트를 ‘과학’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오컬트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단어로 오해받는다.
건강한 오컬트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유익한 지식이다. 그래서 오컬트는 ‘어두운 매력 덩어리’다. 오컬트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시대를 상상할 수 없다.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의 단편 소설 『추방자들』에 환상, 공포, 불가사의한 요소가 있는 문학을 ‘금서’로 규정하여 불태우는 미래 사회가 나온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상상력 충만한 책 없이 무슨 재미로 사나. ‘상상할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