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에 물든 과학
조너선 마크스 지음, 고현석 옮김 / 이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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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행동이 선천적인 것이냐 또는 후천적인 것이냐를 놓고 입씨름을 전개했다. 한쪽은 유전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믿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다른 한쪽은 환경 결정론을 주장한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유전적으로 부적합한 자’를 차별하게 되어 인종적 · 계급적 · 성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악용된다. 역사적으로, 생물학적 결정론을 중시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논리를 전개해 왔다. 기득권층은 범죄,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특효약으로 우생학을 주목했다. 환경보다는 유전이 인간 행동을 좌우한다고 전제하면, 하층민을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계층으로 몰아 붙여 그들에게 사회악의 모든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기득권을 수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를 휩쓴 우생학은 이제 사이비 과학으로 취급받는다. 반인륜적 인구 정책 입안에 기여한 과학자들의 행보는 과학계의 반성 거리가 됐다. 하지만 과학과 극우 인종주의자들의 은밀한 공생 관계가 과연 사라졌을까.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처럼 인종주의적 편견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그들의 발언은 <사이언스> 같은 공신력 있는 학술 잡지에 나오기도 한다. 왓슨은 동성애자로 판명된 태아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거나 흑인의 지능이 백인보다 떨어진다는 발언 등으로 수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과학자들은 과학에 기생하는 인종주의에 대해서 되도록 말을 아낀다. 상당수 과학자는 과학을 탄탄한 근거를 가진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에 대한 믿음이 컸던 만큼 인종주의가 가져오는 사회적 해악에 대해서 이들은 외면하거나 무관심했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이음, 2017)은 인종주의가 어떻게 ‘정치적 과학’을 만들고 이용했는지 자세히 읽을 수 있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에 실린 내용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종주의에 대한 논쟁을 담아냈다. 사료로서도 가치가 충분할 정도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을 쓴 조너선 마크스(Jonathan Marks)는 ‘인종’의 의미를 왜곡하고 오용하는 과학자들의 생각과 발언을 문제 삼는다. 과거의 과학자들은 피부색, 눈동자 색, 코의 모양 같은 신체적 특성으로 인종을 구분했다. 그들은 외모의 차이가 지니는 의미를 과장해서 ‘인종’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인종을 구분할 때 이용하는 기준은 전적으로 외형적인 특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두개골의 크기를 재고 인종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처음 인종주의를 만든 것이 과학이었다.

 

저자는 검증되지 않은 생물학적 구분으로 인간 본성과 행동을 설명하는 인종주의는 위험천만한 사고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바짝 세운다. 인종주의는 과학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그것은 현재의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저자의 비판은 인종주의의 신뢰성을 확보하려고 다윈(Dawin)을 거론하는 인종주의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은 다윈을 사회적으로 악용하는 무리들에게 보내는 고발장이다. 흑인의 후진성을 주장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지금도 과학에 기생하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인종주의를 설파하는 세력들 때문에 진화론이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이론으로 오해받는다. 저자는 인간이란 종이 나타내는 놀라운 다양성은 유전정보에 영구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 환경, 즉 문화적 요인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인종주의는 종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을 분류하면서 ‘차별’을 부여하는 잣대가 된다.

 

지난 세기까지 ‘인종주의가 기생한 과학’은 인간을 차별하고,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배척하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치우쳐왔다. 인종주의가 가져온 재앙은 사회와 정책이 과학을 무조건 신봉하고, 또 과학자들이 데마고그(demagogue, 선동가)에 맹목적으로 순종했을 때 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비극이다. 유전과 문화의 복잡하고 긴밀한 상호작용이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제 과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함으로써 대중이 인종주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학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특정 민족을 차별하려는 인종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인류의 문화적인 측면을 이해하려는 노력까지 과학 활동에 포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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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4:24   좋아요 0 | URL
히틀러 이전에 고비노라는 사람이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주장했어요. 인종주의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세력은 인종주의를 이용하거든요. 그들의 악행을 막으려면 인종주의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그에 대한 문제점을 꾸준히 지적해야 합니다.

이하라 2018-01-22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생학이란 것이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받던 시기가 있었던 것만으로도 끔찍한데요. 아직까지 인종차별주의와 타인종에 대한 혐오와 폭력 속에 잔재가 남아있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치네요.

cyrus 2018-01-23 14:26   좋아요 0 | URL
일상 속에 인종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다 보니 인종주의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AgalmA 2018-01-2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 보면 요즘의 DNA 결정론도 인간의 우생학적인 관점의 특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신경세포 중심주의 뇌과학과 인식 중심주의 철학이 그런 부분에서는 첨예한 대립을 하는 것도 같고요. 이것은 곧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과 같이 취급될 수 있느냐는 문제로까지 연결되죠.

cyrus 2018-01-24 16:12   좋아요 2 | URL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영향을 막으려면 과학도 철학, 윤리학, 사회과학 같은 다른 학문과 손잡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