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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집값의 경제학 - 우리 삶의 불평등, 그 시작은 땅과 집에서 비롯되었다
조시 라이언-콜린스.토비 로이드.로리 맥팔렌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7년 11월
평점 :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가 날갯짓하면 다음날 미국 워싱턴 상공에 거대한 폭풍이 생긴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z)는 예측 불가능한 연쇄반응의 결과를 나비효과로 표현하면서 카오스 이론을 만들었다. 언뜻 보기에는 나비의 날갯짓과 폭풍이 아무 관계없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전혀 쉽지 않은 변화가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은 인생사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땅과 집을 소유한 사람(‘사유재산권을 가진 자’, ‘주택소유자’, ‘토지소유자’ 등으로 다양하게 부를 수 있다. 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개인이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땅과 그 위에 세워진 집을 개인의 재산으로 본다. 이 글에서는 집과 땅을 소유한 사람을 ‘토지소유자’로 부르겠다)이 늘어나는 현상과 청년 실업률 증가. 이 양자의 현상은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실업률 증가는 토지소유자 증가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부동산 증여와 투기, 2008년에 터진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인 미국의 무분별한 주택담보대출, 1% 소수 기득권에 소득이 몰린 불평등 현상 등은 땅을 독점하는 토지소유자들이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지나친 ‘지대 추구 행위’의 나비효과로 볼 수 있다.
영국 출신 경제학자 3인이 공동으로 집필한 《땅과 집값의 경제학》(사이, 2017)은 토지소유자들만이 혜택을 점유하는 비효율적인 지대 추구 행위의 폐해를 보여준다. 우리가 늘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서민들은 열심히 일하고 절약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살림살이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일까. 부자들은 뭘 했기에 재산을 축적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 《땅과 집값의 경제학》 속에 있다. 근면하고 검소한 서민들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생산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 부동산 부자들이 지대 추구 행위를 해오면서 사회적 부를 끊임없이 획득했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권은 이윤 추구를 강조하는 자유 시장경제의 기본 조건이다. 이윤추구에 대비되는 개념이 지대 추구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란 기회비용을 초과하는 수익을 가리킨다. 이윤은 부가가치의 창출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지대와 구별된다. 지대는 인구 증가, 산업 발달,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으로 토지의 가치가 증가하는 데서 발생한다. 강남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 지대가 높아지면 지가(地價)도 상승한다. 현실적으로 지대의 형성과 정치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토지소유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부가 계속 나오는 ‘화수분’ 같은 땅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행사한다. 땅은 처음부터 주어진 자연이기 때문에 단지 토지 등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생산에 기여한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토지소유자들이 지대를 수취하는 것은 그 지대의 많고 적음을 떠나 정의와 공평에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부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십중팔구는 땅과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 부자들이다.
그런데 자유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은 땅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토지소유자가 몽땅 얻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지대 추구 행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입장은 ‘신고전 경제학’에 가깝다. 신고전 경제학은 시장 만능주의를 표방하는 경제학파다. 그런데 시장경제가 알아서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라고 믿었던 학자와 관료들은 지대 행위가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들은 ‘교과서 속 시장경제’의 환상에 사로잡혀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고, 정치적 · 사회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땅의 경제적 기능’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주류 경제학’이라는 자부심에 눈이 먼 신고전 경제학파는 지대 행위에서 비롯된 불평등 문제에 대응하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장 근본적인 생산수단인 땅이 기득권층에 의하여 독과점이 된다면 땅 이용의 대가인 지대를 불로소득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세월이 갈수록 더 높아진다. 이러면 서민들의 소득과의 격차는 확대되어 갈 수밖에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는데 소득을 얻는다면 시장경제의 원리가 아니다. 《땅과 집값의 경제학》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근거로 토지불로소득을 사유화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비판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사유재산제를 비판한다고 해서 사유재산제를 지향하는 시장경제를 깡그리 부정하는 ‘좌편향 책’이 절대로 아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헨리 조지(Henry Georgy)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은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면서도 토지에서 나오는 이득의 사유화에 반대했다.
헨리 조지는 ‘지대 행위의 덫’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지대 소득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무겁게 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헨리 조지의 대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적 주장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지대 추구 행위의 문제점을 외면한 채 헨리 조지의 대안이 ‘사회주의’에 가깝다는 궤변을 내세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지대 행위의 덫’을 치울 생각이 없다. 토지불로소득을 토지소유자가 독식하는 체제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의 주거의 자유가 침해된다. 지상자유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자유’란 ‘땅과 집을 소유한 사람들의 자유’인 것일까. 실업자와 구직 청년들이 집값, 땅값이 높은 지역에 있는 일을 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땅과 집만 가지고 있으면 장땡으로 아는 세상 풍조는 한탕주의 환상을 부추긴다. 이대로 두면 ‘도덕과 인간’이 무의미한 비정상적 시장경제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 이 책에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 ‘색인’이 없다. 경제학 서적치고는 구성이 허접하다. 이 책의 역자는 심리학을 전공한 ‘바른번역’ 소속이다. 만약 이 책을 경제학 전공 역자가 맡았으면 영국 경제학자 3인의 주장을 보충 설명하는 해제(解題)가 딸린 수준 있는 경제학 서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