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Saint Exupery, 애칭 ‘생텍스’). 그는 ‘하늘을 나는 멋진 미치광이’[1]였다. 열두 살에 처음 비행기를 탄 이래 그는 자신의 삶을 하늘에서 떼어 놓지 못했다. 생텍스는 일상에서 철저히 탈출하는 걸 바랐고 비행에서 그걸 찾은 것이다. 그에게 글쓰기는 체험의 결과를 기록하는 행위다. 따라서 생텍스의 글은 철저하게 체험되었고 소설적 허구를 초월했다.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마카롱 에디션, 펭귄클래식코리아, 2015)
* 생텍쥐페리 《네 안에 살해된 어린 모차르트가 있다》 (에프, 2017)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는 생텍스식 글쓰기, 즉 체험의 결과를 기록하는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생텍스는 무수한 별들 사이를 떠돌면서 대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 대지 위에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투명한 ‘관계의 끈’을 보았다. 생텍스를 비행 경험을 통해 인류애에 눈을 뜬다. 오늘날에도 꾸준히 인용되고 있는 《인간의 대지》 속 문장은 생텍스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명징한 결론이다.
우리 외부에 있는 공동의 목적에 의해서 형제들과 이어질 때, 오직 그때에만 우리는 숨을 쉴 수가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임을. 동료란 도달해야 할 같은 정상을 향하여 한 줄에 묶여 있을 때에만 동료이다. [2]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동반자적 사랑’ 또는 ‘정신적 사랑(platonic love)’을 강조하고 싶을 때 이 문장을 인용한다. 나도 사랑을 주제로 글을 썼을 때 이 문장을 인용한 적이 있다. 7년 전에 쓴 글[3]을 다시 읽어보니 부끄럽구먼. 그런데 이 문장에서 말하는 ‘사랑’은 이성 간의 ‘정신적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에서 《인간의 대지》에서 인용한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생텍스가 생각한 ‘사랑’은 ‘동료애’다. ‘사랑’을 확장하여 해석하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하는 ‘인류애’로 볼 수 있다. 생텍스는 서구 문명의 파괴적 성향을 감지했고 《인간의 대지》에서 생텍스의 전쟁 비판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왜 우리는 타인을 미워하는가? 우리는 서로 굳게 결속되어 있다. 같은 별에 사는 이웃이고 한 배를 탄 선원이다. 새로운 통합을 이루기 위해 문명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문명이 서로를 잡아먹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4]
생텍스는 지상에 놓인 삶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 늘 하늘로 날아올라 탈출했다. 그렇지만 그는 하늘을 나는 동안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고 싶어 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탯줄’, 즉 연대감이다. 생텍스는 서로를 결속해주는 완벽한 소통의 모습을 동료 비행사와의 관계에서 찾았다. 《인간의 대지》에 등장하는 ‘나’는 생텍스 본인이다. ‘나’는 우편물을 비행기에 실은 채 유럽과 남미를 오가는 업무를 맡는다. 실제로 생텍스는 야간에 우편비행기를 모는 일을 했다. 비행사는 생사를 오가는 직업이다. 악천후 속에 비행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막에 추락하는 일이 다반사다. 운이 따르지 않으면 비행사가 실종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의 대지》는 생텍스를 포함한 우편업무 담당 비행사들의 경험이 반영된 소설이다. 그래서 동료 비행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리 상태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앙리 기요메(Henri Guillaumet)는 생텍스가 믿고 의지했던 동료 비행사이자 친구이다. 1930년 기요메가 비행 중 안데스 산맥에서 실종했을 때 그를 찾으러 나선 구조대 중 한 명이 생텍스였다. 실종된 지 일주일 만에 기요메는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기요메의 구출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했던 사람이 생텍스였다. 생텍스는 기적에 가까운 친구의 체험을 재구성하여 《인간의 대지》에 기록했다. 생텍스는 기요메를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혹독한 상황 속에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위대한 인물로 그렸다. 그러나 기요메는 1940년 비행 도중에 격추되어 사망했다. 친구의 부고를 확인한 생텍스는 진정한 우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 나탈리 데 발리에르 《생텍쥐페리 : 지상의 어린 왕자》 (시공사, 2000)
*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인간의 대지》는 소설보다는 산문에 더 가깝다. 생텍스의 생애, 그리고 그와 동료 비행사들과 끈끈한 관계를 모르고 《인간의 대지》를 읽으면 글 속에 숨어 있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의미’를 찾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인간의 대지》 뿐만 아니라 작가의 비행 경험이 반영된 《야간 비행》, 《남방 우편기》를 읽기 위해선 생텍스가 누군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동안 생텍스는 ‘비행사 겸 소설가’, ‘《어린 왕자》의 작가’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가 왜 하늘과 비행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생텍스는 ‘하늘을 나는 휴머니스트’였다. 위험한 비행길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 생텍스 같은 비행사들에게 ‘호모 아이테리우스(Homo Aetherius, 하늘의 인간)’라고 붙여주고 싶다. ‘하늘을 나는 멋진 미치광이들’보다 더 잘 어울리는 별칭이다.
[1] 나탈리 데 발리에르 《생텍쥐페리 : 지상의 어린 왕자》 102쪽
[2] 생텍쥐페리, 허희정 역 《인간의 대지》 200쪽
[3]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2010년 10월 6일
http://blog.aladin.co.kr/haesung/4197568
[4] 생텍쥐페리, 허희정 역 《인간의 대지》 206~20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