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 철학 빈틈없는 철학사 1
피터 애덤슨 지음, 신우승.김은정 옮김 / 전기가오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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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흔히 서양 문명의 젖줄이라고 한다. 민주주의가 태동했고 올림픽이 처음 열린 곳이니 과언이 아니다. 그뿐이랴. 오늘날 서양 학예의 뿌리는 그리스에 있다. 문학은 호메로스헤시오도스에서 시작되어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로 이어져 내려왔고, 역사학은 헤로도토스에서 시작되어 투키디데스, 플루타르코스로 이어졌다. 철학은 서양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에서 시작되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면서 기초가 다져졌다. 자연과학도 탈레스로부터 시작되었다. 탈레스는 ‘최초의 과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의학은 히포크라테스에서 체계화되어 갈레노스에게로 이어졌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삶과 철학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이전 서양 철학의 씨앗이라고 할 ‘초기 그리스 철학’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초기 그리스 철학은 대체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 철학으로 분류되는 철학자 중에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도 있다. 따라서 초기 그리스 철학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으로 명명하는 것에 어폐가 있다. 초기 그리스 철학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저작은 흔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빈틈없는 철학사’ 첫 번째 시리즈인 《초기 그리스 철학》(전기가오리, 2017)은 덜 알려진 서양철학사의 시작점을 파악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빈틈없는 철학사’는 고대 철학 및 이슬람 철학을 전공한 피터 애덤슨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이다. 방송에 언급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서 저자의 생생한 입맛이 살아 있다.

 

철학과 과학을 흔히 관련성이 적은 개념 쌍으로 여긴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탈레스는 최초의 철학자이자 최초의 과학자이다. 탈레스는 밤하늘만 바라보고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무능한 철학자에 대한 풍자보다는 탈레스의 과학적 성취를 예견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탈레스는 꾸준히 천체를 관찰해 일식을 정확하게 예언하는 데 성공했다. 탈레스가 활동한 시대에 태동한 철학과 과학은 따로 분리된 학문이 아니었다. 철학과 과학의 연관성은 초기 그리스 철학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의학도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의학자’로 알려진 히포크라테스를 다룬 내용이 있다. 피터 애덤슨은 히포크라테스를 고대 철학과 과학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을 ‘신이 내린 저주’로 보지 않고, 의학의 신성함을 배제했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본을 탐구한 철학자들이다. 만물의 근원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지적 활동이 시작되면서 과학이 태동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그들은 신에 향한 종교적 경외감을 넘어서지 못했으나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작품 속에 드러난 ‘비이성적인’ 신 관념을 탈피하려고 했다. 크세노파네스는 신을 인간처럼 묘사한 시인의 권위를 처음으로 비판한 철학자다. 그는 인간의 형상을 모방한 신은 인간 본성이 반영된 존재라고 비판했다. 크세노파네스의 생각은 플라톤으로 이어진다. 플라톤은 시인을 부도덕하고 무가치한 것을 모방하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서양철학에서 최고의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어떤 문헌이나 기록으로 남긴 일이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초기 그리스 철학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문헌 또한 남은 게 없다. 그러나 이미 사라지고 없다는 이유만으로 서양철학사의 씨앗을 무시한 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난 고대 철학의 새싹을 본다는 건 철학 공부의 첫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이나 다름없다.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활약 덕분에 고대 철학은 ‘인간과 세상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풍부한 자료와 문헌상의 소중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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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8-01-05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탈레스가 우물에 빠진 이야기의 ‘가장 오래된 출처‘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에 따르면)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라고 해서 마침 그 대목만 일부러 찾아 읽어봤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비록 자신이 직접 쓴 문헌이나 기록이 하나도 없지만, 제자인 플라톤의 방대한 저작을 통해서 너무나 자세하고도 풍성하게 알려진 덕분에 도리어 ‘문헌이나 기록이 매우 풍부하게 남아 있는 철학자‘로 볼 수도 있지 싶습니다. 그걸 뒷받침하는 가장 단적인 예가 아마도 다음과 같은 ‘해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 * *
플라톤이 쓴 대화편 가운데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대화편을, 사건이 전개되는 시간순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테아이테토스》→《에우튀프론》→《크라튈로스》→《소피스테스》→《정치가》→《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
-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작품해설> 중에서

cyrus 2018-01-06 15:20   좋아요 1 | URL
소크라테스를 다룬 플라톤의 책이 뭐가 있는지 궁금했는데, 마침 oren님이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

sprenown 2018-01-05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연초부터 수준높은 철학이야기..바람직 합니다
이글을 계기로 앞으로 치열하고,수준높은 철학논쟁,철학베틀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철학 좋아하시는 알라디너님의 가열찬 참여 바랍니다!^^.

cyrus 2018-01-06 15:22   좋아요 0 | URL
제가 철학을 대충 이해하는 것 같아서 독자적으로 공부할 생각입니다. 이게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