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페미니즘 - 일상을 뒤집어보는 페미니즘의 열두 가지 질문들
김보화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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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오죽했으면 성폭력을 당했겠어.’,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니까 성폭력을 당했지.’ 성폭력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친구들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가해자 못지않게 피해자에게도 사회적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언어적 폭력이다. 이미 상처를 당한 피해자에게 이중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피해자의 행동과 태도가 사건을 유발한 것이 아니므로 사건 당시 피해자의 행동을 책망해서는 안 된다. 어떤 때는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방지하지 못한 데 대해 죄의식이 들 수도 있다. 편견이나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엉뚱한 도움 등은 오히려 피해자에게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잘못된 사회적 통념에서 빚어지는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성폭력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강간은 낯선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 ‘강간범은 정신 이상자거나 사이코패스다.’, ‘부부간에 강간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믿는 남자들이 있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이 일어나기 쉬운 사회다. 과거의 남성은 힘이 세고 주먹을 휘둘러야 강인한 남자로 인정받았고, 여성을 남성보다 아래인 나약한 인간으로 봤다. 남성에게 성적인 문제가 생기면 쉽게 용서되나 여성에게 성적인 문제가 생기면 이혼을 당한다든지 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이 처한 끔찍한 상황을 주변 관계에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전환하려면 일상적이었던 것을 뒤집어 볼 수 있는언어화가 필요하다.[1] 과거 아내 폭력은 칼로 물 베는 부부싸움으로 인식되는 바람에 남편의 아내 구타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 대중화되어 확산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은 여성 혐오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언어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오랫동안 쌓인 남녀 불평등과 여성 혐오에 무감각한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했고, 이를 공론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신이 처한 개인적 상황(일상 속 성차별, 아는 사람에게 당한 성폭력 등)을 언어화하는 일은 그 상황을 변화시키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다.

     

메갈리아의 미러링(Mirroring)’은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추세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표현할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도 남성 중심의 권위주의가 팽배하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의 적대행위가 비일비재하다. 인터넷 공간상에서 여성들에게 폭력적인 언어로 인신공격을 일삼는 일베 회원은 사이버 마초(Cyber Macho)’들이다. 여성의 발언권 기회를 축소하는 남성 중심 인터넷 문화에 대부분 여성은 침묵을 지키거나 그 공간을 떠나버렸다. 성숙한 인터넷 토론문화를 만들기 위해 남성 중심의 인터넷 문화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여성들의 연대 운동도 진행되었다. 하지만 남성 유저들의 묵살이 계속되자 메갈리안(메갈리아 회원)을 중심으로 한 미러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발화를 남성들이 했던 것 똑같이 하는 것이다. 남성은 동성끼리 모인 은밀한 장소에서 여성을 소재로 성적 농담을 주고받는다. 메갈리안은 남성만이 향유할 수 있는 농담을 미러링하여 공개된 농담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따라서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전복시킨 급진적인 여성의 유머이다.[2] 미러링은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 미러링이 남성 혐오를 부추기기 때문에반 여성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권력의 억압과 위선을 깨부수는 웃음, 농담의 효과를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한다. 페니스는 남성의 서열이나 권력과 같은 사회적인 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메갈리안은 미러링 스피치(Mirroring Speech)를 통해 상징의 전복을 시도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런 말을 했다. 권위에 가장 강력한 적은 경멸이며,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웃음이라고.

     

그럼에도 페미니즘(은행나무, 2017)은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만 설파하는 책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성 평등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놓칠 수 있는 문제점(레즈비언 여성, 트랜스젠더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적 구조)도 명확하게 알려준다.[3] 성노동 비범죄화를 바라보는 두 필자의 상반된 글[4]을 배치함으로써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푸는 성노동 비범죄화의 장단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집필진에 참여한 김홍미리페미니즘을 남녀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여성이 처한 문제를 외면하는 남성 진보 논객뿐만 아니라 남성 모두 페미니즘과 같은 방향을 서보는 연습을 시작할 것을 권한다.[5] 앞으로 남성들은 여성에게 잘 해주겠다, 행동에 반성하겠다는 식으로 공약을 내세우기보다는 여성 혐오, 성 평등 문제 등에 여성과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한다. 말보다 행동이 우선이다.

 

 

 

 

 

[1] 그럼에도 페미니즘3치정과 멜로, 그 경계에서 데이트 폭력을 묻다, 김보화

 

[2] 같은 책, 1메갈리아의 거울이 비추는 몇 가지 질문들, 윤보라

 

[3] 같은 책, 7여성을 사랑하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나영

 

[4] 같은 책, 8성노동 비범죄화, 한국에서는 안 될 일인가?, 박이은실 / 9성매매 비범죄화, 안 될 일이다, 박은하

 

[5] 같은 책, 4남성 진보 논객과 담론 헤게모니, 김홍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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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9-05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성폭력은 꼭 젊은 여성만 당하는 게 아니야.
여성 노인이 당하는 성폭력은 제외되어 있지.
그들은 늙고 힘없다는 이유로 더 많이 노출되어 있을 수 있는데
그거 생각하면 아찔하다.

난 어떤 면에서 여성을 혐오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싶기도 해.
겉으로 여성을 옹호하는 척 하면서 결정적일 때 본색 들어내는
남자들 보면 좀 웃긴다 싶어.

cyrus 2017-09-05 18:15   좋아요 1 | URL
황혼 부부의 가정 폭력, 노년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 성폭력 문제도 공론화되어야 해요.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 또 다른 사회 문제로 대두될 거예요. 여성 혐오가 팽배한 사회일수록 여성이 피해 받는 문제들이 발생할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05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위의 댓글은 역대급이네요.. ㅎㅎ어떻게 저런 사고가 가능하지 ?!

2017-09-05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05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