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롭스와 뭉크 - 남자와 여자
국립현대미술관 엮음 / 컬처북스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롭스와 뭉크: 남자와 여자」 전이 열렸다. 뭉크(Munch), 그의 이름을 몰라도 그가 그린 『절규』는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뭉크는 요람에 있을 때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운명 주변에 배회하는 것을 느꼈다. 뭉크의 어머니는 다섯 살 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 역시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특히 여동생의 죽음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병든 소녀』는 폐결핵으로 고생하는 여동생을 지켜봤던 이모의 기억을 되살려 그린 작품이다. 이런 그의 생애를 알고 그림을 들여다보면 그의 그림들이 왜 어둡고 쓸쓸한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뭉크는 불행한 기억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펠리시앙 롭스(Félicien Rops)는 우리나라에 생소한 이름이다. 롭스는 벨기에 출신의 화가이자 판화가다. 롭스의 그림은 에로틱하고 음습하다. 롭스는 세상을 풍자하기 위해 여성을 악녀로 설정하여 묘사했다. 롭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여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Femme fatale)’이다. 세기말 예술가들은 퇴폐적인 미적 이상에 집착했다. 이 주제에 맞춰 등장한 것이 팜므 파탈이었다. 팜므 파탈은 자유를 요구하기 시작한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남성의 반발이자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시집 《악의 꽃》을 발표하여 물의를 일으킨 샤를 보들레르가 팜므 파탈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졌다. 그와 교류한 롭스는 관능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끌어당기는 여성을 다양한 형태로 묘사했다. 롭스는 악마와의 섹스에 빠져 몸을 떨면서 황홀경을 느끼는 여성이나 음탕하기로 악명 높은 목신 상을 음흉하게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 등을 그렸다. 그의 그림들이 명작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더라면 불경스러운 그림으로 남았을 것이다.

뭉크와 롭스. 이 두 사람은 여성을 관능적인 팜므 파탈로 묘사했다. 『여자에 세 시기 : 스핑크스』는 뭉크의 여성관이 반영된 작품이다. 스핑크스(Sphinx)는 남자를 고통에 빠뜨린 신화 속 악녀의 대명사다. 뭉크는 자신의 실패한 연애 경험을 극복하지 못했고, 여성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래서 뭉크가 그린 여성도 얼굴은 창백하고 추하고 무섭다. 그렇지만 여성을 악녀로 그리는 두 사람의 의도는 다르다. 롭스는 사회를 냉소적으로 조롱하기 위해서 노골적으로 악녀를 묘사했다면, 뭉크는 살아남은 자신의 슬픔과 비통함을 드러내기 위해 여성을 변형되고 왜곡된 형태로 묘사했다.
롭스의 그림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책은 이 전시회 도록이 유일하다. 십 년 전에 나온 이 도록은 지금도 알라딘에서 구매할 수 있다. 「롭스와 뭉크: 남자와 여자」 전은 뭉크와 롭스가 제작한 판화 작품들 위주로 전시되었다. 뭉크는 생전에 판화 연작을 많이 남겼다. 그는 채색화로 표현됐던 주제와 이미지를 이용해 복제본 형식의 판화를 제작했다. 뭉크와 롭스의 그림은 다소 음울하면서도 난해하다. 게다가 여성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두 남성 화가의 편견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편견에 갇혀 영향을 받는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뭉크와 롭스의 그림에는 세기말을 지배했던 문화와 시대적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의 작품은 세기말의 사회적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매우 독특한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롭스는 세상의 어두운 면을 대담하게 응시했다면, 뭉크는 생의 한가운데 서성거리면서 죽음을 응시했다. 뭉크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이 두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병이었고, 도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