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고향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골목길 구석구석, 친구들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너무도 빠른 변화의 세월에 기억력은 조금씩 마모된다. 엔간한 토박이가 아니고는 그 고향 어딘가에 남겨둔 ‘추억’이라는 보물을 현실에서 찾기란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했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의 경험으로 고통받았던, 혹은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감쪽같이 잊어버릴 수 없을까.” 상처로 남을 기억을 잊고 살기보다, 상처받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김탁환 작가의 어머니는 약한 분이다. 그녀는 가난과 정신적인 핍박을 온몸으로 부둥켜안으면서도 삶의 현장에서 의연하게 버티며 자식들을 가르쳤다. 이 정도면 ‘억척스럽고 강한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작가는 어머니를 약한 존재라고 말한다. 여기서 작가가 말하는 ‘약하다’는 것은 어머니에게 향한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낸 감정 표현이 아니다. 작가의 어머니에게 ‘추억’은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포근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떠올릴 때마다 가슴 저리게 하는 따가운 단어였다. 그녀는 추억의 ‘추’자만 들어도 한없이 약해지는 분이었다.

 

 

 마흔네 살에 홀로되신 엄마는 아이들 손이 닿지 않은 책장 제일 구석에 앨범을 올려놓고, 사별한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보곤 하였다. 믿기 힘든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들부터 제일 먼저 없앴지.”

 

(14쪽)

 

 

작가와 어머니는 함께 진해 곳곳을 걷지만, 서로 정반대의 길을 간다. 작가는 ‘엄마와 함께 걷는 골목’에 있고, 어머니는 ‘어머니 본인 마음의 골목’을 걷는다. 그래서 작가는 이 두 가지 골목을 합치려고 어머니와 진해를 걷는 시간을 늘려나간다. 아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통했을까. 어머니는 진해 곳곳에 남겨둔 자신만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아들에게 들려준다. ‘추억’이라는 매개로 모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은 어디를 가도 안방에 깔린 이불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작가는 책 제목을 ‘어머니의 골목’이 아닌 ‘엄마의 골목’으로 정했다.

 

 

“‘엄마의 골목’이 좋아요? ‘어머니의 골목’이 좋아요?”

“엄마의 골목!”

“왜죠?”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어머니는 안방에서 앞마당 정도 거리라면, 엄마는 안방을 벗어나지 않고 한 이불 속에 있는, 그런 기분!”

 

(182쪽)

 

 

이 글에서는 작가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기 위해 ‘어머니’라는 호칭을 쓴다. 그렇지만 ‘어머니’보다 ‘엄마’라는 호칭이 더 친근감을 준다. 나는 다 컸는데도 여전히 나를 낳으신 분을 ‘엄마’라고 부른다. 가끔은 경상도 출신답게 경상도 사투리로 ‘어무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 단어에 우러나오는 투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 ‘엄마’가 낫다. 죽을 때까지도 ‘엄마’라고 부르기로 했다. 예전에는 다 커서도 ‘엄마’라고 부르는 어른은 마마보이(mamma’s boy)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고 《엄마의 골목》을 읽으면서 ‘엄마’가 ‘듣기 싫은 말’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사실 말을 트기 시작하는 아기가 꺼낸 첫 번째 단어는 ‘엄마’다. ‘엄마’는 아이가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다. 그렇게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품속에서 먹고 자란다. 엄마들은 우리가 아기였을 때 기억하지 못한 것들을 ‘추억’이라는 이름표를 붙여 자신의 품속에 간직한다. ‘추억’의 중요성을 깨달은 자식은 엄마의 품속에 쌓인 그것들을 귀담아 듣는다.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만 살았어요?”

“하고픈 이야길 다 하고 살아, 그럼?”

“그건 아니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게 뭔지 아니? 일흔 살을 넘기며 늙어간다는 게 뭔지 아느냐고.”

“…‥”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거야. 차곡차곡 이 가슴에 쌓이지. 그렇다고 그걸 전부 누군가에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가끔 찾아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야. 네가 와서 이렇게 함께 걸으니, 네게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 것이고.”

 

(156쪽)

 

 

어머니에게 할 수 있는 효도는 다양하다. 큰돈 들이지 않고, 당장에 효도하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아주 간단하다. 그것이 뭐냐면…‥ 《엄마의 골목》 제일 마지막 장을 직접 확인하시라. 눈치 빠른 분이라면 벌써 이 글을 읽는 순간 알았을 것이다. 효도는 더 늦기 전에 빨리해야 한다. 일단 나부터 정신 단디 차리고, 효도하자.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비종 2017-08-07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글이네요. cyrus님의 글들 중 보기 드물게 감성이 많이 묻어나는. .^^ 제게 엄마는 제일 존경하는 분이면서 제 글속에서 자주 숨쉬는 분이시죠. 좀 있다 전화부터 드려야겠습니다.ㅎㅎ

cyrus 2017-08-08 12:04   좋아요 0 | URL
가끔 글을 잘 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리뷰 대회에 응모하기 위해 글을 쓰면 평소보다 더 잘 쓰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제가 ‘리뷰 MSG‘를 칩니다. 책을 보기 좋도록 소개하기 위해 감성적인 수사를 많이 쓰는 것이죠. 이런 글에 익숙해지면 몸에 해로울 수 있으니 조심해야 됩니다. ^^

2017-08-08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08 12:08   좋아요 1 | URL
저희 어머니도 매달 한번씩 양로원에 계시는 외할머니를 뵈러 갑니다. 저도 그곳에 한 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외할머니가 저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제가 누군지 기억 못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가슴 아팠습니다.

나비종 2017-08-08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MSG ㅎㅎ 몸에 좋지는 않지만, 가~~끔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글로 위로를 받을 때도 있죠.^^

cyrus 2017-08-08 12:45   좋아요 0 | URL
네.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

stella.K 2017-08-08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연극 같이하던 남자 후배놈이
지 아버지한테 아빠, 아빠하는데 어찌나 어색하던지.
낼모레면 장가갈 놈이 그러더라구.ㅎㅎ
난 엄마한테는 엄마라고 하지만 아버지한텐 아버지라고 했거든.
딸인데도 아빠가 닭살스럽더라고.
그러니 습관이 무서운 거지.
그 후배 지금은 애가 둘인데 애들 앞에서도 아빠, 아빠할지 가끔은 궁금해.ㅋ

cyrus 2017-08-08 14:20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부모님을 언급하면 호칭을 ‘아버지’, ‘어머니’로 써요. 그리고 아버지한테 ‘아빠’라고 못해요. 저는 ‘아빠’, ‘엄마’ 호칭을 쓰면서 높임말을 해요. ^^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