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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
다오얼덩 지음, 김영문 옮김 / 알마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고전은 후세에 전범이 될 만한 옛날 작품 또는 책을 의미한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고전을 사람들이 입에는 자주 올리면서도 막상 읽지 않은 작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책을 두고 귀중한 지적유산이니 하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책을 읽어보았느냐고 질문하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굳이 마크 트웨인의 익살이 아니더라도, 읽자고 결심해 책장 앞에만 서면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 고전이다.
《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알마, 2017)는 애서가의 마음에 떨떠름한 과제로 남아 있는, 가깝고도 멀기만 한 동양고전에 이르는 길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런데 꼬불꼬불하고 높기만 한 고전을 알려주는 중국인 길잡이가 까탈스럽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不必讀書目). 다오얼덩(刀爾登)은 ‘비판적 고전 읽기’를 중시하는 칼럼니스트이다. 그런데 그의 비판 수위가 좀 세다. 그는 그 유명한 《손자병법》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 《손자병법》은 ‘전쟁 같은 사회’에 승리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한경쟁의 시대 속에 사는 사람들 모두 생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알게 모르게 사람들은 《손자병법》의 지식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살고 있다. 《손자병법》을 완독하지 않아도 누구나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을 기억한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손자병법》에 등장하는 어구 중에서도 승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략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략은 경영학 교재에 나오는 내용이다.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를 알고 국제시장에서의 마케팅 기법을 파악하게 되면 그만큼 경쟁하기 쉽다. 이 때문에 전 세계 기업들은 자사의 기술 및 전략을 숨기고 경쟁 기업의 그것을 알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산해경》은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最古)의 동양 신화이다. 작년에 ‘포켓몬 Go’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이와 유사한 ‘산해경 Go’가 출시된 적이 있다. 게임 이용 방식은 ‘포켓몬 Go’과 거의 유사하다. 중국 고대의 신화집에 나오는 요괴들이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나면 손오공이 머리에 쓰는 금고아를 씌워 포획하면 된다. 《산해경》을 비판적으로 읽은 다오얼덩은 ‘산해경 Go’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는 《산해경》에 나오는 구절을 오독해서 근거 없는 중국 우월의식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이렇게 읽으려면 안 읽는 것이 낫다’라고 일침을 가한다.
다오얼덩이 읽지 말라고 당부하는 동양 고전은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것들만 소개하면, 논어, 노자, 맹자, 장자, 이백(이태백), 주역, 삼국지, 서유기, 수호전 등이 있다. 우리는 고전을 ‘전통’으로 받아들여 고전 읽기를 통해 현대 사회 문제점의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다오얼덩은 ‘공평한 마음을 가진 독자’라면 고전이 제시하는 교훈이 오늘날에는 무효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다오얼덩은 비판적 독서를 주저하는 독자들이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고전을 소개할 때 그것의 장점을 먼저 소개한 다음 비판점을 알린다. 고전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기보다는 주제, 문학적 의의 등 작품 해제 쪽에 무게를 둠으로써 독자들이 고전 작품을 직접 찾아 읽도록 신경을 썼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은 게 사람 마음이다. 다오얼덩의 책을 읽으면 굳이 안 읽어도 되는 고전을 한 번쯤이라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에 읽어야 할 책이 엄청 많다. 다오얼덩이 소개한 고전은 평생을 두고 읽어도 다 못 읽는다. 그래서 다오얼덩의 책 한 권 제대로 읽고 나면 50여 권의 동양 고전을 섭렵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 바로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처럼 알맹이 없는 요란한 말로 고전이 중요하다면서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자신의 지적인 면모를 상대방에게 과시하기 위해 언변으로 치장하기에 바쁘다. 안 읽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읽어보려는 시도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읽다가 포기하면 된다. 완독 달성이 독서의 전부가 아니다. 그래야 설득력 있는 ‘비판적 독서’가 가능해진다. 이 책, 《이렇게 읽을 거면 읽지 마라》의 독서가 우리에게는 능동적 독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