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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생태환경사
김동진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옛 전통마을은 산을 뒤로하고 하천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가파르지 않은 남향 산기슭에 발달했다. 마을 앞의 논은 오랜 세월 산에서 흘러내린 유기질 토양이 쌓인 문전옥답(門前沃沓)이었다. 마을 뒤 경사면은 연결되었다. 이런 공간 배치는 풍부한 샘물로 취수가 편리하고, 일조량이 많고, 북서 계절풍을 피할 수 있으며 연료 채취에 유리했다.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전에는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이치를 절로 체득했다.
역사학자인 저자가 펴낸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우리 선조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생태학적 관점을 찾아내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준다. 생물은 주위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생물 상호 간에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이처럼 생물과 환경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계를 이루는 것을 생태계라고 한다. 생태학(ecology)은 자연 존재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각종 지구 생명체를 부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인간과 인간 문화도 그런 자연의 순환에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태주의 시각으로 보면, 15세기 조선 건국 초기에 이미 생태주의에 반하는 문명이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땅은 삶의 터전이자, 귀중한 목숨과도 같다. 농부들은 자연이 일으키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땅을 지키고 가꾸며 수확했다. 자연의 대지를 농지로 개간하는 과정에서 그곳에서 서식하던 호랑이들이 사람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가죽이 비싼 값에 팔리는 털가죽 때문에 조선 시대 중기부터 마구잡이로 포획되었다. 일반적으로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 온 일본인 사냥꾼들이 호랑이 가죽을 얻을 겸 민족정신 말살 목적으로 호랑이를 사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호랑이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조선 초기부터 호랑이 사냥 정책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호랑이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소나무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가 된 것은 농경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화전을 일구면서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바람에 활엽수는 줄고, 침엽수인 소나무가 늘어났다. 전염병은 역사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전염병의 유행을 일종의 재난으로 치부해 위정자의 허물을 물어 권력 교체가 이뤄진 적도 있다. 이런 전염병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자는 농지를 소중히 여기는 농경문화에 혐의를 두고 있다. 조선의 전염병은 콜레라나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 있었다. 누구나 한번은 걸린다고 하는 홍역은 전염성도 강해 일단 발생하면 삼천리 금수강산은 온통 죽음의 강토로 변하곤 했다. 그래서 ‘홍역을 치렀다’는 표현은 비참의 극을 형용하는 말이 되었다. 선조들은 전염병을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땅이 내린 재앙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조들이 소중히 가꾼 농지에 전염성 세균이 득실거렸다.
안정된 생태계는 어떤 원인에 의해 평형이 부분적으로 깨지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된다. 그러나 자기 조절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충격이 가해지면 생태계는 균형을 잃게 되어 평형은 깨어지고, 결국 생태계 전체가 파괴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 파괴된 생태계는 원상태로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만약, 생태계가 파괴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존에 뜻하지 않은 중대한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농지를 만들기 위해 무너미(범람원의 순우리말)를 개간하면서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이 사라졌다. 선조들은 풍족한 쌀 수확량을 확보했으나 홍수와 전염병의 공포를 안고 살아야 했다.
자연에 대한 15~19세기 한국인의 태도는 기존에 생각한 것과 다르게 ‘자연 친화’와 거리가 멀다. 자연을 섬겼어도 생존과 직결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자연을 이용했다. 그 시절 한국인들도 자신을 한반도의 주인으로 자처하면서 자연 정복을 정당화했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전체를 관류하고 있는 조선 시대의 생태환경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분석을 끝까지 따라가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자연에 대해 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될 것이다.
※ 딴지 걸기
“일찍이 찰스 다윈(1809~1882)은 《동물학》(Zoonomia, 1794)에서 생명체를 개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다.” (프롤로그 10쪽)
→ 《동물학》의 저자는 찰스 다윈이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 이래즈머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