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노르베르토 보비오, 문학과지성사 (1992년)
* 《헌법의 상상력》 심용환, 사계절 (2017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두 개의 이념 중 어느 한쪽을 맹신하면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다.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사람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정의와 민주주의이며 여기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불의와 권위주의 세력이다. 그 결과 지지자의 수가 힘이고 힘이 정의가 된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다수의 횡포’이다. 다수의 횡포를 부리는 자들이 내세우는 다수결 원칙은 사실상 중과부적(衆寡不敵)의 논리를 민주주의적인 것처럼 그럴 듯하게 포장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다수의 독재’로 둔갑한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본래 의미를 잃게 만든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기본권과 개인적 자유의 보장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국가나 사회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에 강력히 반대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개인에게 이러한 자유가 최대한 허용될 때 개인적으로나 사회 전체적으로 행복이 극대화된다.
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 질서가 개인과 국가의 부를 함께 증대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개인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시장경제 질서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칭’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한다. 자칭 자유주의자와 손을 맞잡은 우파 정치권과 극우 언론은 노조 결성을 ‘빨갱이’, ‘체제 전복 세력’으로 매도하기에 바쁘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전체주의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도 결합할 수 있다. 특정 정당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이념과 신념을 쉽게 조종할 수 있다. 원칙 없는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로 변질한다. 법치주의가 실현되는 자유주의의 토양이 부실하면, 성숙한 민주주의가 꽃필 수 없다. 우리나라 경우 좌우간 갈등, 분단 시대로 넘어가는 격동기를 겪었기에 정치 상황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당연히 이 시기 국회의 정치적 성숙도는 낮았다.
우리나라 헌법은 기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제헌의회부터 헌법 굴절의 역사는 시작됐다. 헌법기초위원회가 의원내각제를 기초로 한 헌법 원안을 통과시켰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 때문에 이는 하루아침에 대통령 중심제로 바뀌었다. 그가 대통령제를 택하면서 초대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확실한 권력자로 자리매김했다. 1952년 7월 ‘발췌개헌’을 통해 직선제 대통령제로 헌법을 개정했고, 1954년에는 대통령 중임 제한 규정에 부딪히자 ‘사사오입(반올림)’이라는 억지스러운 근거를 가져오면서 부결됐던 헌법개정안을 하루 만에 번복했다. 이승만과 자유당이 독재정치를 위해 대통령중심제를 택했던 것이 그 후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독재, 장기 집권, 정통성 문제 등에 대한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된 원인이 됐다.
조국 분단이 더욱 고착되면서 반공 이데올로기가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이 정통성 없는 권력 아래서 체계적으로 훼손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기득권을 누려왔던 국회의원들은 이승만을 옹호하고, 미화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대통령께서는 그의 거의 전 생애를 민주주의의 발상지이고 가장 모범국인 미주에서 지내셨습니다. 미주에서 공부를 해서 최고 학위를 받으시고 또 미주에서 거의 일생을 혁명운동 독립운동에 공헌한 어른이십니다. 그 어른은 철두철미한 민주주의자입니다. 그 어른이 헌법에 의지해서 국회에서 당선이 되었고 또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한 어른입니다. 그 어른은 헌법에 의지해서 앞으로도 행동할 것입니다. [1]
이 발언을 한 사람은 4·19 혁명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외무부 장관 허정이다.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이승만을 하와이로 망명시킨 뒤 새로 발족한 제2공화국의 내각에 권한을 넘겨줬다. 기분 탓인가. 이승만 하야 이후에 나타난 허정 권한대행 체제를 바라보면서 박근혜와 황교안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허정은 비밀리에 이승만의 망명을 도운 사람이다. 황교안은 초대 법무부 장관 이후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의 역할을 해왔고, 제기되었던 각종 문제에 대해서 통상 박근혜를 옹호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놀랍게도 50년대 국회의 수준과 지금의 국회 수준이 거의 비슷하다. 반세기동안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가치가 정치권력 아래서 훼손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외면한 구체제를 그리워하고,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왔던 수구세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박근혜 탄핵 표결을 반대하는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 글에서 김 의원은 박근혜가 ‘1원 한 푼 안 받은 지도자’라고 했다.[2] 전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은 2012년 대선경선 후보 시절 박근혜의 5·16 역사관 문제를 적극 옹호했다.[3] 박근혜는 5·16 군사 쿠데타를 ‘구국의 혁명’,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면서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녀의 과거 발언은 5·16 군사 쿠데타를 헌법 전문에 넣어 ‘혁명’으로 정당화한 박정희 대통령의 헌법 개헌 시도를 인정하는 것이다.
“뭐든지 싸우려고 하고, 상생이 아니라 상쟁하려는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고 또 국민을 어떻게 편안하게 할 수 있느냐.” [4]
이 발언을 누가 했는지 아는가. ‘수인번호 503번’으로 구치소에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 말했다. 이 사람은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면서 일갈했다. 그리고 수인번호 503번은 십여 년 지난 후에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수인번호 503번은 ‘상쟁하려는 대통령’이 되어 국정 운영을 하다가 임기를 1년여 앞두고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당했다. 파면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헌재는 ‘상쟁하려는 대통령’이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를 저질렀다고 봤다. 뭐든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상생이 아니라 상쟁하려는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자유와 민주라는 두 개의 가치 중에서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 다만, 국민을 상대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모두 이해시켜 나가는 데 있어 이념적 편협성을 극복해야 한다. 헌법의 가치를 무시한 정치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이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우게 하는 좋은 영양분이다.
[1] 《헌법의 상상력》 118쪽
[2] [김진태, 박근혜 탄핵 표결 앞두고 “1원도 챙긴 적 없는 지도자”]
스포츠동아, 2016년 12월 19일
[3] [이정현 “역사 평가는 다양, 김일성 찬양하듯 한군데로 몰수 없어”]
매일경제, 2012년 7월 25일
[4] [박 대표 “대통령 헌법수호 원칙 의심”] 연합뉴스, 2004년 7월 27일